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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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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티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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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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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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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필드의 빌런 9

DUMMY

“공격, 공격, 공격.”


또박또박 잘라 말한 신해성이 덧붙였다.


“그게 앞으로 우리 축구의 철학입니다.”

“그래서 센터백인 노아 콜드웰을 최전방 공격수로 두시는 겁니까?”


공격 코치 루크 해밀턴이 날카롭게 반응했으나, 신해성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마크 로스의 훌륭한 대안이죠.”


안 그래도 피터버러 공격의 핵심인 마크 로스를 보내버린 일로 쌓인 감정이 있었던 루크 해밀턴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그럼 수비는 누가 합니까?”


수비 코치 리암 커닝햄이 물었다.

이에 신해성이 준비된 대답을 내놨다.


“발이 빠른 코피 카마라가 센터백으로 내려가서 역할을 수행해줄 겁니다.”

“코피는 근래 폼이 좋지 않아요. 괜히 로테이션으로 빠진 게 아닙니다. 게다가 그는 미드필더 아닙니까?”

“수비도 잘할 겁니다. 유소년 땐 우측 풀백으로 뛰었으니까요.”

“그걸 어떻게······?”

“저는 코치님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선수들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아직 훈련 세션 한번 진행해 보신 적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보고서를 모두 읽었죠. 저는 비록 훈련 세션에 참여한 적이 없지만 여러분 안목을 믿습니다.”


물론 속으로는 나는 당신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걸, 이라고 읊조렸지만 코치진을 설득할 재간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석 코치가 말했다.


“당연히 우리 안목도, 보고서도 정확합니다. 우린 선수들을 잘 아니까요. 다만 책상머리에 앉아 선수들을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코치진 모두가 동조하는 분위기.

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낀 신해성이 재차 입을 열었다.


“······이번 경기는 제 감독 생명이 달린 평가전입니다. 어차피 결과를 책임지는 건 감독인 제가 될 테니까요.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 이 한 경기에 모가지가 걸린 분 계십니까?”

“······.”


침묵.

신해성이 말을 이었다.


“제가 팀을 이끌 자격이 있는지, 따를 가치가 있는지 지켜보세요.”


그는 물러설 곳 없는 한마디를 더 뱉었다.


“제 능력을 아낌없이 보여드리죠.”


호언장담에 코치들이 수석 코치를 바라봤다.

이것만 봐도 아직 코칭스태프의 구심점은 수석 코치 이안 윌러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이안은 아주 벽창호가 아니었다.


“리더십을 보여주십시오. 우리도 더 이상의 감독 교체를 원치 않으니까요.”


이로서 이번 시합의 전술 지휘권은 사실상 신해성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경기가 끝날 때까진 코치들도 모두 지시에 따라줄 테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신해성은 고개를 돌려 방문 너머를 응시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선수들에게도 선발 명단이 전해졌을 터.

선수단 역시 발칵 뒤집어졌을 것이다.


*******


“이건 말도 안 돼.”


노아 콜드웰, 재스퍼 랭포드가 2인 1실로 배정된 방에 모여든 고참 선수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뒤죽박죽이잖아? 내가 왜 윙백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난 미드필더라고!”

“제기랄. 넌 미드필더든 윙백이든 선발에 들어가기나 했지, 나는 뭐야? 지난 시즌 마크 주장한테 주전 경쟁에서 밀린 것도 서러운데 왜 이젠 공격수도 아닌 수비수한테 포지션을 내줘야 하는 거냐고? 이게 말이 돼? 노아, 너도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


존 킬리언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하지만 노아 콜드웰은 그가 원하던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왜. 난 괜찮은데?”

“뭐? 빌어먹을, 너 공격수 해본 적 있어? 감독이 멋대로 포지션을 바꿔버렸는데 아무렇지도 않다고? 선수로서 자존심까지 잃어버린 거냐?”

“나 열세 살까진 공격수였어. 불만 있으면 나한테 그러지 말고 감독님한테 가서 따져봐.”

“같이 안 가줘?”

“난 괜찮다니까.”


노아 콜드웰이 신해성의 말을 인용했다.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젊든 늙었든, 동양인이든 백인이든 우리 감독님이잖아? 우린 선수고.”


함께 있던 재스퍼 랭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무슨 상관이겠어? 우리 감독이라는 게 중요한 거지. 축구도 잘하는 양반이니 아주 생각 없이 전략을 짜진 않았을 거야.”

“내일이 시합인데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지. 일단 경기 끝날 때까진 감독님 권위를 존중해주자고.”


메이슨 로이스턴 역시 한마디 덧붙였다.

그에 존 킬리언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이 새끼들 신임 감독한테 완전 쫄았잖아?”

“조니. 너도 혼자서 찾아갈 엄두가 안 나니까 여기 온 거 아니야?”


갑자기 끼어든 선수는 코피 카마라였다.


“우리 둘 다 그전까진 완전한 로테이션 멤버였잖아.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어. 선수들 포지션까지 바꾸는 걸 보면 테스트해보겠다는 거 아니겠어? 지금이야 네가 더그아웃 신세라도 우리 모두에게 기회가 있을 거야. 좋은 모습을 보이면 정해진 포지션뿐 아니라 다른 포지션에서라도 뛸 수 있을 거라고. 안 그래?”


존 킬리언이 흠칫했다. 그 역시 팀 내 입지가 확고하지 않은 마당에 괜히 감독한테 밉보여서 눈 밖에 날까봐, 차마 혼자서 신임 감독을 찾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온 까닭이다.


“젠장. 감독 팬클럽 납셨군. 무슨 변호사인 줄 알겠어.”

“좋은 분이야.”


코피 카마라가 존 킬리언의 비아냥거리는 어조에 반응하지 않고 담담하게 덧붙였다.


“겉보기에는 과격할지 몰라도 내 개인적인 문제까지 파악하고, 해결해주려 하고 계셔. 내 과거 시합 영상도 챙겨 보신 것 같았고. 아직 능력 있는 감독님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인간적으로 괜찮은 분이니까 일단은 믿어보자. 적어도 우리 팀에 대한 애정이 없다거나 진정성이 없는 분은 아니야.”

“축구 실력만 봐도 사기꾼과는 거리가 멀지.”


노아 콜드웰이 쐐기를 박자, 존 킬리언도 더 이상 불만을 제기하지 못했다. 속 풀러 왔다가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심지어 다른 선수들 역시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하는 눈치.


‘완전히 먹혔군.’


존 킬리언은 고개를 저으면서도 혀를 내둘렀다.

어쨌거나 신임 감독은 부임 후 며칠 되지 않는 시간 만에 극도로 불만이 치달았던 선수단 절반을 자기편으로 만든 셈이다.


‘무서운 작자야.’


존 킬리언은 자신이라도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여겼다. 밥그릇 챙기기도 바쁜 마당에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지만······.


*******


다음 날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선수단 및 코칭 스태프 30인은 오성 블루윙즈 팀버스 두 대에 나눠탄 채 수원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했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은 오늘의 상대, 오성 블루윙즈의 홈구장. 한마디로 피터버러 유나이티드에게는 완벽한 적지(敵地)였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각자 샤워용품이 든 파우치를 들고 팀버스에서 내린 선수단은 오성 블루윙즈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드레싱룸으로 갔다.


드레싱룸에는 피터버러 유나이티드의 장비 관리팀에서 미리 보낸 유니폼과 축구화들이 멋지게 셋팅되어 있었다.


“휫!”

“훌륭한데?”


휘파람을 불며 환호한 선수들이 옷을 갈아입고 경기장으로 나섰다. 그들은 지난 시즌부터 경기 시작 전 하던 웜업 루틴을 수행했다.


아군 진영에서 가볍게 패스를 주고받으며 몸 상태를 체크한 선수들은 다리를 들거나 잔발을 밟으며 관절의 가동범위를 높이는 스트레칭을 한 뒤 햄스트링을 늘리고 상체를 숙이는 등 근육을 풀었다. 그 후 단체로 대쉬, 패싱과 슈팅 게임을 하며 경기에서 가져갈 움직임을 몸에 먼저 적응시켜 둔다.


이들이 이러한 몸풀기를 마쳤을 때쯤에는 관중석이 절반 정도 들어찼다. 그리고 경기장 곳곳에 오성 블루윙즈의 깃발이 나부끼며 응원가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몸을 푼 선수들이 드레싱룸에 돌아간 뒤, 신해성이 코치진을 이끌고 들어섰다. 그는 다짜고짜 선수들에게 물었다.


“K리그에 대해 아는 사람?”


다들 서로 얼굴만 바라봤다.


“잘 모르겠습니다.”

“들어는 봤는데, 본 적은 없습니다.”


신해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영국 리그로 치면 2부 리그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선수 몇몇이 침을 꼴깍 삼켰다. 생각보다 리그 수준이 높다는 생각이 든 것.

하지만 신해성이 하고 싶은 말은 그들의 기나 죽이는 그런 소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아마 우릴 상대로 1.5군이 나올 거야. 지구 반대편까지 경기를 뛰러 와서 상대팀 로테이션 멤버들 연습 상대나 하다 가는 거지.”

“······!”


선수들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신해성은 자극을 멈추지 않았다.


“더그아웃에 편하게 앉아있는 1군 핵심 선수들을 끌어내서 박살 내라. 그게 오늘 너희가 할 일이다. 그걸 위해 포지션까지 바꿔가며 너희를 배치한 거니까.”


신해성은 서로 마주 보고 앉은 선수들을 가로질러 전력분석관이 포메이션을 표기해둔 화이트 보드로 갔다.


“경기장에 들어가서 너희가 각자 잘하는 걸 하도록. 1.5군을 상대로 위축되지 말고. 패스나 슛을 아끼지 마. 공을 빼앗기든 역습을 당하든 다시 뺏어오면 그만이다. 노아.”

“예.”

“공을 기다리지 말고 무조건 전방의 빈공간을 찾아서 들어가. 너한테 연결되면 바로 골이 터질 수 있게끔.”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공을 노아에게 연결해라. 그게 우리의 목적이다.”


그때, 로테이션 멤버인 존 킬리언이 손을 들었다.


“만약 다른 선수에게 기회가 나면요?”


신해성이 피식 웃었다.


“그럼 직접 노려봐, 존.”


존 킬리언이 눈을 치떴다.

이는 경기 중 자신을 투입시킬 거라는 암시였기 때문이다.

자리의 다른 로테이션 멤버들도 귀를 쫑긋 세우며 가볍게 들썩였다.

신해성은 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최전방 공격수인 노아에게 공을 연결하는 걸 목표로 삼되, 모든 전제는 자신 있는 플레이를 하는 거다. 너희가 뭘 얼마나 잘하는 선수인지 보여달란 말이야.”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도 신임 감독이 노아 콜드웰을 편애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말 몇 마디로 그들 모두에게 확실한 목적과 자유를 주었기 때문이다.


“메이슨. 한마디 해라.”


신해성이 물러나자, 메이슨 로이스턴이 외쳤다.


“다들 모여!”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 모두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했다.

이어서, 마크 로스가 떠난 뒤 자연스레 주장으로 승격된 메이슨 로이스턴이 말했다.


“새로운 감독님 아래 새 시즌을 시작하기 위한 첫 경기야. 이 멀리까지 왜 왔어?”

“이기러!”

“이겨야지!”


선수들이 분분히 답하자 메이슨 로이스턴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박살 내고 기분 좋게 시즌을 시작하자고. 오케이?”

“예!”

“컴 온!”

“예아!”

“렛츠 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박수를 치며 해산했다.

드레싱룸을 먼저 나선 신해성은 더그아웃으로 걸음을 옮겼다. 코칭스태프가 쫓아오지 못할 만큼 걸음이 빨랐다. 하지만 가슴 속에서 격동하는 심장박동은 그보다 더 가팔랐다.


“죽겠네.”


미친 듯이 피치 위로 뛰쳐나가 공을 차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한다.

선수들 기량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니까.

일단은······.

그리고 이내, 서로 인사를 나눈 선수들이 경기장에 넓게 퍼진 상태에서 휘슬이 울려퍼졌다.


삐익!


선축은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친선 경기다 보니 만석은 아니었지만, 오성 블루윙즈 서포터즈의 함성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노아 콜드웰의 발끝에서 경기가 시작됐다.


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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