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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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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티풀
작품등록일 :
2024.09.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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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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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필드의 빌런 5

DUMMY

노아 콜드웰은 수비수였지만 유소년 때 공격수 포지션을 소화했다.

그만큼 훌륭한 포지션과 더불어 강력하고 정확한 킥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순간적으로 뒷공간을 내서 기습적인 슛을 노린 것.


‘됐어!’


사실상 이번 내기는 감독이 ‘미꾸라지들’이라 부르는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현역 프로선수 대 지도자 자체만 해도 대체로 선수가 유리하겠지만, 머릿수도 5 대 1.

그들은 다섯 번의 기회가 있지만 신해성은 한 골 먹으면 그대로 패배하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공이 제대로 맞았으니 영점 조절만 잘 됐다면, 골키퍼에게 걸리지만 않는다면 골이 터지고 게임이 끝날 터였다.

그러나.


“······!”


꿈에도 대응할 줄 몰랐던 신혜성이 몸의 진행 방향을 역행하며 순간적으로 뒷다리를 높게 들어올렸다. 그로서 예리한 슈팅이 차단됐다.


팍!


체중이 앞으로 쏠리다 못해 고꾸라졌지만, 이 와중에도 신해성의 시선은 위로 튕겨 나간 공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낙하하는 공을 다시 발등으로 받을 수 있었다.


탁!


공을 차지하러 튀어나온 노아 콜드웰은 욕지거릴 집어삼켜야 했다.

설마 상대가 넘어진 마당에 몸을 뒤집으며 공을 받아낼 줄 상상도 못한 것이다.

심지어 신해성이 그처럼 불안정한 자세로 공을 건드렸음에도 우연인지 의도한 건지, 공은 노아 콜드웰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넘어갔다.


“제기랄!”


노아 콜드웰이 그 즉시 뒤돌아서 공을 쫓았다.

어쨌거나 신해성은 넘어졌으니 자신이 더 빠를 터였다.

그렇게 확신하며 공을 잡은 순간, 그는 소름이 돋았다.

신해성이 바로 옆까지 따라붙은 것이다.


“아······!”


노아 콜드웰은 잠깐 당황했으나, 이내 자신감이 차올랐다.

빠르게 달리는 인간의 균형감각은 살짝 미는 정도로 쉽게 깨질 수 있다.

심지어 몸을 맞대는 상대가 신장 190센티, 85킬로그램의 체중을 가진 자신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노아 콜드웰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속도를 높이며 하체와 팔꿈치를 동시에 써서 신해성을 밀쳤다.


콱!


이런 구도가 나오면, 누구라도 나가떨어졌다.

······지금까진.


‘안 밀려?’


도대체 무게중심이 어떻게 돼먹은 건지, 신해성은 비틀거리지도 않았다.

항상 이런 괴물 수비수들과 경쟁해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세계 최상급 기술과 경험을 갖춘 선수들의 틈바구니에서조차 공을 사수했던 신해성이기에, 오히려 노아 콜드웰의 압박은 견딜만 했다.


‘그래도 제법······.’


꽤 묵직한 느낌이다.

따라서 신해성은 상대보다 한 발 앞서며 어깨를 집어넣었다. 동시에 팔을 펼쳐 상대를 젖히며 추진력을 얻었다.


파바박······!


그는 마치 부스터를 쓴 것처럼 앞으로 튀어나가며 노아 콜드웰이 밀어낸 공을 따라잡았다. 공이 발끝에 걸리고.


툭!


공을 멀찍이 밀어내며 상대를 완전히 추월한 신해성이 상체를 확 숙여 무게중심을 앞으로 보내며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그러자 상대와 순식간에 멀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처럼 거침없이 골문으로 쇄도한 그는, 디딤발을 가져가며 가까운 니어 포스트를 향해 왼발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잔발을 치며 슈팅 각을 좁혀 나오던 유스 골키퍼가 몸을 펼치며 주저앉고.


그 순간, 팔까지 치는 완벽한 슛 모션으로 골키퍼를 속여 넘긴 신해성이 다리를 그대로 내려놓으며 가볍게 공을 차올렸다.


툭······.


“오!”

“맙소사!”


좌중의 탄성과 함께 둥실 떠오른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반대편 파 포스트를 향해 떨어졌다.

그 환상적인 그림에 먹칠하듯 시커먼 그림자가 가로지른 것은 그때였다.

그리고 이는 또 하나의 명작을 낳았다.

놀랍게도 골문 안쪽까지 전속력으로 달려온 노아 콜드웰이 몸을 뒤집으며 바이시클 킥으로 공을 걷어낸 것이다.


뻥!


선수 커리어가 걸린 승부라 그런지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집념이었으나, 신해성은 이미 로빙슛 시도 후 이를 포착하고 골대 중앙으로 가 있었다. 그는 빠르게 날아든 공을 가슴으로 트래핑해서 떨군 뒤 가볍게 걷어찼다.


팍!


공이 다시 골문으로 빨려들어갔다.


철썩······.


허무하게 골망이 흔들리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미친······.”

“저걸 저렇게 간단히 넣는다고?”

“노아가 손도 못 쓰고 발렸잖아!”

“그냥 재주 좀 부리는 프리스타일 풋볼러가 아니었어.”


골문 앞에서 침착할 수 있는 선수는 드물었다. 하지만 신해성은 후반전 막바지 결정적인 역전 골 찬스가 왔을 때나 승부차기에서 자기 순서가 왔을 때조차 심박수가 100을 넘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도 그는 태연했다. 골을 넣고도 나자빠진 채 팔로 얼굴을 덮고 있는 노아 콜드웰에게 가서 손을 내밀었다.


“좀 치네. 열정적이야.”


노아 콜드웰이 잠시 망설이더니, 그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감사합니다.”

“자네는 그래도 조건을 신경 써서 받아주지. 난 좋은 선수는 그만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노아 콜드웰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들어가고.”


노아 콜드웰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신해성의 눈동자에는 그의 머리 위에 나열된 별무리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


세 개의 빛나는 황금별. 그리고 잠시 후, 푸른 연기가 추가적으로 맺힌다.


★★★☆


별 네 개의 잠재력을 가진 별 세 개짜리의 선수라.

3부 리그에서 헤매고 있는 팀에게는 과분한 능력을 가진 인재긴 하다.

잠재력을 키워서 제대로 몸값을 불려보기도 전에 보내긴 아쉽지만, 팀워크에 악영향을 끼치는 선수는 세계 최고라도 필요 없다.

그저 팔 때 값을 더 받으려 하겠지.


‘이놈은 친선경기라도 좀 뛰게 한 다음에 비디오 잔뜩 보여주고 설득하면 꽤 짭짤하겠어.’


신해성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자신이 너무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런 게 프로니까.

혹자는, 너도 감독 말 잘 안 들어놓고 미꾸라지들한테만 가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건 내로남불이라며 탓할지도 모른다.

하나 그건 아니었다. 신해성 스스로도 만약 자신 같은 선수를 감독해야 한다면 진작 팔아치워버렸을 거라고 항상 생각해왔으니까.

선수와 감독은 엄연히 입장이 다른 법.

신해성은 수비력은 물론, 슛과 패스까지 별이 세 개인 노아 콜드웰의 손을 놓고 뒤를 돌아봤다.


“다음!”


이후 상대는 메이슨 로이스턴, 와이엇 헉슬리, 재스퍼 랭포드였다.

그들은 미꾸라지 대장 마크 로스나 쓸만한 공격형 센터백인 노아 콜드웰과 달리 소극적으로 머뭇거렸다.


이러다 내기에서 지면 어떡하지?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이라도 싹싹 빌까?


뭐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한 게 너무 티가 난달까?

그저 신해성의 체력이 빠지거나 실수하는 것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래서 신해성은 인정사정 없이 몰아쳐서 각각 한 골씩, 세 골을 연달아 안겨주었다.

철썩, 철썩, 철썩······ 공이 그물을 흔드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터지는 환호성이 점점 더 커졌다.

자기 순서가 끝난 미꾸라지들이야 점점 표정이 나빠졌지만, 강 건너 불구경 중인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이 승부에 완전히 몰입해버린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신해성의 경이로운 플레이에 흠뻑 빠졌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 감독님이 선출 아니라고 무시할 수는 없겠는데요.”

“선수로서 능력과 지도자로서 능력이 엄연히 다르긴 하지만······ 말뿐인 남자는 아닌 것 같아. 그런데 왜 선수로 안 뛰고 감독을 하게 된 거지?”

“어디 부상이 있는 게 아닐까요? 이런 간단한 게임에는 지장이 없지만 무리를 하면 터진다든지.”

“그럴 가능성이 크겠네. 아깝다, 아까워. 지금 보여준 실력이면······ 게다가 정말 즐기는 것 같은데.”


저마다의 생각들로 술렁거리는 가운데, 완승으로 승부를 마무리 지은 신해성이 땀을 닦으며 사색이 된 미꾸라지들을 바라봤다.


“휴, 오랜만에 빡세게 뛰니까 힘드네. 이적이나 방출이 결정되면 구단에서 에이전트 통해 연락이 갈 테니까 각자 자유를 즐기고 있어.”

“······.”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은 현실로 돌아와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실감하고 있었다.


‘진짜 우릴 명단에 올렸다고? 이제 부임해놓고······?’

‘정말 끝이란 말이야? 한 번 더 기회를 준다거나, 뭐 그런 거 없어?’

‘이건 말도 안 돼. 이대로 있다가 진짜 똥값 되는 거 아냐?’

‘이제와서 용서를 구해도 씨알 하나 안 먹힐 것 같은데. 그래도 빌어봐야 하나?’


하지만 마크 로스는 혼란스러운 낯빛이 된 선수들의 마음을 읽지 못한 채 본인 자존심을 앞세웠다.


“그러시든지. 빌어먹을! 멋대로 한 번 해봐요. 그리고 이건 그냥 게임일 뿐입니다. 진짜 축구 경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공놀이에 불과하죠. 경솔했던 건 인정하지만 너무 기고만장하지 말아요.”

“완패한 놈 혓바닥이 기네. 더 할 말 있나?”


신해성이 묻자, 마크 로스가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지금도 그렇고, 다들 당신처럼 선수들에게 무례한 감독을 따르진 않을 겁니다. 그딴 식으로 팀을 지도하다간 머지않아 팀이 붕괴될 거예요.”

“고맙군. 곧 떠날 팀까지 다 걱정을 해주고. 그건 그런데, 내가 무례한 건 널 한 팀으로 생각하지 않아서다. 미안하지만 내 팀에 너희 자리는 없어. 주장 완장 달고 물 흐린 새끼가 훈수 두니까 좀 황당하네.”


고개를 절레 저은 신해성이 턱짓했다.


“썩 꺼져. 넌 구단 주차박스도 아깝다.”


다시금 주먹을 부들부들 떨던 마크 로스가 마른침을 삼키며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관중들을 일별하더니 몸을 홱 돌렸다.


“가자!”


그가 콧김까지 뿜어가며 비장하게 몇 걸음 옮겼지만, 인기척이 들려오지 않았다.


“······?”


미간을 찌푸린 마크 로스가 뒤돌아 본 순간, 꼼짝도 않고 있는 미꾸라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한숨을 내쉰 와이엇 헉슬리가 말했다.


“난 따로 가지. 여러 가지로 심란해서 말이야.”


그가 마크 로스를 지나쳐버리고, 나머지 선수들도 속속들이 제 갈 길을 갔다.


“빌어먹을, 왜 그런 내기를 해가지고······ 쪽팔려서 원.”

“마크, 또 보자고.”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동료들이 더 이상 그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 떠나가버리자, 마크 로스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리더를 자처하며 물을 흐린 대가가 인과응보로 돌아온 셈이다.

하지만 신해성은 벌써 미꾸라지들에게 흥미를 잃었다. 그의 눈에 저들을 공개 처형해서 팀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것 외에도, 더 큰 목적이 있었다.


신해성은 훈련장 한구석 펜스 너머에서 넌지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단정한 정장 차림의 중년 신사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경기를 뛰며 땀이 나고 또 중간중간 보슬비까지 내린 탓에 온몸이 축축했다.

셔츠는 단추가 두 개나 풀어져 있고 바지에는 풀떼기가 묻어있으며 맨발로 한 손에는 신발을 들고 있었지만, 그는 더할 나위 없이 꼿꼿한 태도로 바지춤에 물기를 닦고 악수를 건넸다.


“제가 신임 피터버러 감독, 신해성입니다. 궂은 날씨에 먼길 오신다고 고생하셨을 텐데 감사합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의 중년 신사가 그 손을 덥썩 맞잡았다.


“대체 이유가 뭡니까? 나이 탓은 아닌 것 같고, 부상 때문입니까?”


다짜고짜 묻는 중년 신사의 머리 위, 흐린 날씨에도 눈이 부실만큼 찬란한 별무리가 떠오르고 있었다.


★★★★★


예상 대로······.


신해성이 씩 웃었다.

지금은 피터버러 유나이티드의 훈련시설인 포시 아카데미에 관계자 외 출입을 금지시켜놓은 상황.

이런 마당에 외부인이 있다면 그건 딱 한 가지 경우, 구단의 손님이란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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