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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경원수 님의 서재입니다.

초심을 지킨 회귀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구주부
작품등록일 :
2019.09.02 15:12
최근연재일 :
2019.10.2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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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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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글자수 :
187,994

작성
19.10.2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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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면담 (2)

DUMMY

당황한 화신이 어떨떨하게 물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인지?”

“말 그대로야. 그쪽 신 만나게 해 달라고.”

“?”

“내가 그쪽 신한테 용건이 있거든.”

“그런 건 저에게 말씀을 해 주시면···.”

“당신이 할 수가 없는 일이야.”

“?”

“그쪽 신을 죽일 생각이거든.”


아이고, 머리야. 화신 앞에서 그쪽 신을 죽이겠다고 말하는 미친놈이라니. 역시 비요른은 복수가 관련되면 브레이크가 없는 녀석이다.


“그런 용건이라면 절대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화신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비요른은 태연하게 신력 화살을 시위에 걸며 말했다.


“그 절대가 얼마나 절대인지 어디 한 번 볼까?”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비요른이 쏘지도 않았는데 시위에 걸린 화살이 저절로 그의 손을 벗어나더니 발 앞에 툭 떨어진 것이다.


“뭐야 이거?”

“더, 더 이상 신을 욕보이신다면, 차, 참을 수 없습니다.”


당황하는 비요른을 향해 화신이 말했다. 어찌나 긴장했던지 말을 더듬고 있었다.


“어디 이것도 못 참는 지 보자!”


비요른이 이번엔 빠르게 화살을 쏘아 냈다. 갑자기 화신 옆에 서 있던 연단이 쓰러지며 화살을 막아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연단 맞은편의 예배용 긴 의자가 제 혼자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비요른을 덮쳐 갔다.


“우왁! 이거 뭐야!”


깜짝 놀란 비요른이 잽싸게 뒤로 뛰어 피했다. 쿠당탕! 의자는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비요른, 잠깐만.”


나는 비요른의 팔을 잡아 그를 제지하며 화신을 유심히 살펴봤다. 화신의 몸에서 실낱같은 마력이 뻗어나와 허공을 거미줄처럼 수놓고 있었다. 연단을 쓰러뜨린 것도, 의자를 허공에 집어던진 것도 바로 그 마력이었다.

나는 미심쩍은 목소리로 화신에게 물었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위대하신 루비오코네님의 화신으로 봉사하는 저의 이름은 루미엘로입니다.”


루미엘로! 이런 젠장, 만나본 적은 없지만 너무나 잘 아는 이름이었다.

나중에 마계의 군세가 본격적으로 대륙을 침공할 때, 대륙 각지에서 일어서는 숨은 용사 중 한 명이었다. 막강한 염력을 휘두르며 마계 군단장까지 격파하는 최강의 초능력자인 그가 아니었다면 대륙 남서부의 인간은 싸그리 지옥불에 타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젠장할 루비오코네, 어디서 샌님을 데려왔나 했더니, 엄청난 녀석을 골라 왔잖아?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비요른은 잇소리를 내며 화살을 연달아 쏘아 붙이기 시작했다. 비요른은 슬슬 진심이 되고 있었다.


“비요른! 화신은 신이 아니라니까!”

“알아! 그치만 일단 화신을 쥐어패다 보면 신이 내려오겠지!”


그야 그렇겠지? 무인도에서 화신을 잃은 경험이 있는 루비오코네가 새로운 화신이 위기에 빠지는 걸 그냥 두고 보지야 않겠지.

그렇지만 루미엘로가 위기에 빠질 일은 없을 것 같다. 비요른이 쏘아붙이는 화살들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온갖 기물들에 막히거나 제 스스로 갈 길을 잃고 고꾸라졌다.

루미엘로는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힘에 부치는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 그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뿐일 것이다.


쾅!


신력을 가득 담은 화살이 루미엘로에게 날아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성전 벽에 구멍을 뚫어 버렸다.


“으아악!”

“뭐야, 무슨 일이야!?”


밖에 있던 신도들이 깜짝 놀라며 뚫린 구멍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그들은 난장판이 된 예배당 한가운데 선 이방인 둘이 자신들의 화신을 공격하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대노하여 외쳤다.


“야 이 미친놈들아! 이게 무슨 짓이냐!”

“화신님! 괜찮으십니까?”

“잠깐! 가까이 오지 마세요!”


신도들이 다칠 것을 걱정한 루미엘로가 손바닥을 펼치며 신도들을 제지했다. 하늘 같은 화신님 말씀인지라, 신도들은 제자리에 우뚝 서서 목소리만 높였다.


“니들 뭐야!”

“우린 그냥 화신님에게 용건이 있는 사람들이예요.”

“이게 무슨 용건이야 임마!”

“아니, 그건 오해가 있으신데···.”


내가 들어도 말이 안 되는 변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신도 중 한 명이 신력 화살을 재고 있는 비요른을 가리키며 외쳤다.


“어! 창공의 사수다!”


이런, 별명을 부르는 것을 보니 해변 결전을 치를 때 휴양도시에 있었던 모양이다. 평범한 모습을 한 나는 알아보지 못한 모양인지 별 말이 없었다.


“창공의 사수라고? 마족을 물리친 필리아노덴의 화신 말이야?”

“그래, 분명해. 저 화살을 보라고!”


사람들의 입에서 필리아노덴의 이름까지 나오고 말았다. 젠장, 여기서 필리아노덴이 악명이 휘말릴 수는 없었다.

나는 비요른의 팔을 붙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그만 하자.”

“그치만···.”

“안 돼.”


나는 그간 볼 수 없던 단호한 태도로 비요른의 말을 끊었다. 그제야 불같이 타오르던 비요른의 눈동자가 차츰 가라앉기 시작했다.

내가 화신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말했다.


“이쯤 합시다. 그쪽 신도들 괜히 다치기 전에.”


화신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몰려든 신도들을 향해 온화하게 말했다.


“이분들 말씀대로 작은 오해가 있었을 뿐입니다. 자, 손님들 가실 테니 길을 열어 주시지요.”


신도들의 따가운 눈길을 받으면서 우리는 주섬주섬 자리를 벗어났다.


성전 밖 큰 길가로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던 잡신이 포르르 날아와 비요른에게 구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미친 화신놈아,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이 난리야?”

“루비오코네 만나게 해 달라고 했는데 안 해주잖아.”

“뭐가 어째? 아이고, 이 정도로 미친놈인 줄 알았으면 화신 안 시키는 건데··· 야, 이놈아! 이게 다 너 때문 아니냐!”


왜 갑자기 나한테 화살이 돌아와?


“내가 뭘? 비요른 화신 삼으라니까 자기도 좋다고 그래놓고는.”

“이런 미친놈인 줄은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그럼 내 말대로 안 했을 거 아냐.”

“뭐가 어째? 아이고오, 화신 사기 당했네. 필멸자놈들이 신을 등쳐먹다니, 어쩌다 내가 이런 꼴이 되었을꼬?”


잡신이 정신 사납게 날아다니며 신세한탄을 하는 와중에, 비요른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형, 나 저놈 이대로 보낼 수 없어.”


저놈이란 물론 루비오코네의 화신인 루미엘로렷다.

신에게 복수하고 싶은 비요른이 이 기회를 그냥 놓치고 싶지 않은 건 나도 이해한다. 그리고 나도 비요른의 복수를 반드시 도와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무려 루미엘로다. 아직 자신의 잠재력을 다 끌어내지 못한 것 같았지만, 지금도 고작 잡신의 화신인 비요른 혼자서 상대할 수는 없다. 그럼 내가 도와줘야 하는데, 여기서 또 신력을 끌어 써서 몸을 망치는 건 계획에 없다.


게다가 비요른에게는 미안하지만, 루비오코네의 화신이 루미엘로인 이상 지금은 비요른이 복수하게 둘 수가 없다. 신을 잃은 화신은 미쳐 버린다. 그러면 곧 다가올 위기에서 대륙 남서부를 지킬 영웅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형도 알아. 그치만 일단 돌아가 있을래? 나는 뭘 좀 알아보고 갈게.”

“···.”

“비요른, 형 믿지?”

“···믿어.”


비요른은 잡신과 툭탁대며 멀어져 갔다. 벌써부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다시 성전의 앞뜰로 되돌아갔다. 아직 많은 신도들이 성전을 떠나지 않고 신앙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아까 성전을 빠져나올 때 봐 두었던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 남자는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어이, 깡패 두목님.”

“어떤 새끼··· 히이이익!”


화를 내며 돌아보던 남자를 귀신 본 얼굴로 새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남자는 간밤에 진화령과 같이 쳐들어간 깡패단의 두목이었다. 하여간 이상하게 깡패질 하는 놈들이 종교를 좋아하더라고.

깡패 두목이 잔뜩 긴장하며 주위를 살폈다.


“뭘 그렇게 두리번대세요? 아, 화령씨 찾아요? 불러줄까요?”

“아뇨! 무, 무슨 일이십니까?”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쉬운 일이니까 사양 마시고.”


깡패 두목을 앞세우고 다시 성전에 들어갔다. 보통 종교 믿는 깡패는 기부금을 알차게 내는 법이다. 깡패 두목이 화신을 찾자 한 신관이 기꺼이 우리를 안내했다.


“여기입니다.”


신관은 문 앞에서 되돌아갔다.


“저도 가도 되겠죠?”

“고마워요. 가서 일 보세요.”


연신 고개를 꾸뻑한 깡패 두목이 부리나케 자리를 떠났다. 그거 참, 나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닌데. 하지만 하룻밤만에 조직을 박살 낸 진화령은 무섭겠지.


똑똑.


나는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작은 방의 소파에 루미엘로가 앉아 있었다. 나를 발견한 루미엘로가 움찔 굳었다.


“싸우러 온 거 아니니까 긴장하지 마세요.”


나는 천천히 문을 닫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도 루미엘로는 긴장을 푸는 기색이 아니었다.


“진짜예요. 어떻게 하면 믿으시려나··· 일단 나도 화신이예요.”


필리아노덴의 신물인 반지를 빼서 손바닥에 올린 내가 손가락으로 루미엘로의 손을 가리킨 후 다시 반지를 가리켰다.

고개를 갸웃한 루미엘로가 이윽고 손을 뻗어 손가락 끝을 반지에 대자 ‘파직’ 하고 작은 스파크가 일었다. 깜짝 놀란 루미엘로가 순식간에 손을 잡아당겼다.

화신이 다른 신의 신물과 접촉하자 두 신력이 충돌한 것이다. 루미엘로도 이제 내가 화신이라는 걸 믿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 신 필리아노덴의 이름을 걸고 말하는데 당신이랑 싸우러 온 거 아니에요.”


화신이 신의 이름을 건다는데 누가 안 믿을 쏘냐. 그제야 루미엘로는 긴장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럼 왜 오셨습니까?”

“그쪽 신 좀 만나게 해주세요.”

“또···!”

“아니아니! 나는 그쪽 신 죽이러 온 게 아니라구요. 그냥 둘이 할 말이 있어서 그럽니다.”

“절대 안 될···.”


그때 중압감이 실린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빌어먹을 필멸자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신이시여!”


느닷없는 루비오코네의 등장에 루미엘로가 깜짝 놀라 외쳤다.

물론 나도 좀 놀랐다. 그야 이렇게 갑자기 등장할 줄은 몰랐지. 이번 화신은 진짜 많이 신경쓰나 봐? 부르지도 않았는데 직접 내려오고 말이야.


“오랜만이네?”

“보잘 것 없는 신의 화신 주제에 요새 하는 일이 많더군.”

“어이쿠, 무려 신께서 이렇게 관심을 가져 주시니 감개가 무량하구만.”

“헛소리 말고, 나를 찾은 이유가 뭐냐.”


이제 본론을 말할 순서로군.


“일대일로 얘기하자. 나를 초대해라. 내가 그쪽으로 가겠다.”


계속 비아냥거리던 루비오코네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이채를 띠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소리겠지.”

“물론이다.”


물론 루비오코네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갈아마셔도 시원찮은 상대가 제 발로 사지에 걸어 들어가겠다는 뜻이니까.


잠시 후 눈을 감은 루미엘로가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 그렇게···. 아, 예.”


속으로 루비오코네와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초대하는 방법에 대해 듣고 있겠지.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불안한 눈을 들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그 손을 맞잡자, 손바닥을 통해 두 신의 신력이 통하는 것이 느껴졌다.

루비오코네가 입을 열었다.


“필리아노덴의 화신이여, 위대하신 루비오코네님의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네.”


대답한 순간 세상이 훅 사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60 일반인B
    작성일
    19.10.23 00:11
    No. 1

    중반부터 계속 느끼는건데 주인공 왜이리 주변 인물에게 휘둘리나여..호구도 저런 호구가 없음 진짜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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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비극의 끝 (2) 19.10.17 73 4 9쪽
31 비극의 끝 (1) +1 19.10.16 75 5 12쪽
30 내가 할 수 있는 일 19.10.14 71 3 13쪽
29 제국의 비밀 서고 19.10.11 80 6 13쪽
28 협박과 설득 19.10.10 94 6 11쪽
27 동방의 꽃 +1 19.10.09 90 5 12쪽
26 미로정원 +2 19.10.08 100 6 12쪽
25 마법사 길드 +1 19.10.07 95 5 14쪽
24 우리의 목적 19.10.02 102 5 8쪽
23 뒷풀이 +1 19.09.30 106 5 13쪽
22 결전의 마무리 +2 19.09.28 87 5 7쪽
21 다른 현실 +1 19.09.27 90 5 12쪽
20 해변의 결전 +1 19.09.26 97 5 14쪽
19 경고 (2) +1 19.09.25 95 6 10쪽
18 경고 (1) +1 19.09.24 104 6 15쪽
17 진화령 (3) +1 19.09.23 121 7 14쪽
16 진화령 (2) +1 19.09.21 135 6 9쪽
15 진화령 (1) +1 19.09.20 156 6 10쪽
14 싱카리움 (2) +1 19.09.19 135 6 12쪽
13 싱카리움 (1) +1 19.09.18 145 5 14쪽
12 화신 각성 (2) +1 19.09.17 138 6 10쪽
11 화신 각성 (1) +1 19.09.16 148 6 12쪽
10 사전 준비 +1 19.09.12 160 6 9쪽
9 루비오코네의 운 나쁜 하루 +1 19.09.11 173 7 11쪽
8 신벌 +1 19.09.10 187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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