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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경원수 님의 서재입니다.

초심을 지킨 회귀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구주부
작품등록일 :
2019.09.02 15:12
최근연재일 :
2019.10.24 11:07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5,629
추천수 :
227
글자수 :
187,994

작성
19.09.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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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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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경고 (2)

DUMMY

“저의 신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구하고,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똑같이 하겠다?”

“물론입니다.”

“이 내가 하지 말라 해도?”

“저는 제가 믿는 신의 말씀을 따릅니다.”


어때, 신 양반. 새롭지? 따박따박 말대꾸 하는 인간은 처음일 거야.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긴장하며 중년 남자의 표정을 살폈다. 걱정과 달리 부드러운 미소 그대로였다. 어휴, 신이 쪼잔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은데, 스르르 남자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그림자? 분명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는데?

하늘 저편에서 시커먼 먹구름이 꿈틀대며 몰려들고 있었다. 한낮의 거리가 순식간에 밤처럼 어두워졌다.


“뭐야, 갑자기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어두워? 하늘이 미친 거야?”

“아가, 엄마한테 와. 빨리!”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다급하게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우르릉···.


천둥이 울리더니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태풍의 거대한 팔에 감싸인 것처럼 사나운 바람이 불어 나무가 뽑힐 듯 휘청였다.

한순간 눈 깜빡일 틈도 없이 세상이 새하얗게 변하더니 길 건너 가로수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망막에 하얀 궤적이 남아 앞이 잘 보이질 않았다. 소리는 한 박자 늦게 찾아왔다. 꽈르릉!!!

태풍이었다. 신이 이 도시에 태풍을 불러온 것이다.

위험신호를 울리는 본능을 주먹을 꽉 쥐고 내리눌렀다. 괜찮다. 죽일 거였으면 번개는 나무가 아니라 내 머리 위로 떨어졌을 테니까.


“아직도 같은 생각인가?”


동공 없는 두 눈을 하얗게 빛내는 남자가 물었다.

제대로 실감이 난다. 이 자는 가장 높은 신 중 하나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존재 중 하나란 뜻이다. 화신도 없이 직접 태풍을 불러오는 기적을 부릴 수 있는 존재란 말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선 넘지 말란 말이야.

온 몸에 신력을 끌어 모으며 짓씹듯 말했다.


“협박하시는 겁니까?”


반지에서 막대한 신력이 흘러나와 온 몸을 채웠다.


“신의 화신은 신의 의지일저, 감히 신을 모욕한단 말입니까.”


아무리 신일지라도 감히 다른 신을 모욕할 수는 없다. 모든 신은 위아래 없이 지고하기 때문에. 물론 원론적인 말에 불과하고, 말에는 힘이 없다.


“갓 태어난 하찮은 신이 날카로운 이빨을 뒀군.”


뭐가 어째?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거지?


“늙은 신이 왜 이렇게 혓바닥이 기십니까?”


남자의 눈썹이 꿈틀했다. 순간 몸을 둘러싼 공기가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압박을 가해왔다. 손끝 하나 움직이기는커녕 온몸이 짜부라질 지경이었다.

전력으로 신력을 방출했다. 단단한 공기를 밀어내면서 나를 중심으로 둥근 막이 펼쳐졌다. 막 안쪽은 빗방울 하나 새어들지 않고 바람 한 점 없었다. 벤치를 감싼 막은 점점 영역을 넓혀갔다.


···!!!


번개가 연달아 막 위로 내리쳤다. 새하얀 스파크가 막 위를 타고 흘러 젖은 바닥으로 흩어졌다. 막 바깥쪽은 뇌성으로 공기가 파르르 떨리고 있겠지만, 안쪽은 그저 조용했다.

막이 점점 더 넓어졌다. 벤치 주변의 공터를, 공터와 이어진 거리를, 거리 주변에 늘어선 건물을 감싸 안았다.

남자의 새하얀 눈을 도전적으로 노려봤다. 더 할 거냐?

무표정하게 눈빛을 받던 남자가 피식 웃었다.


“재밌는 친구로군.”


햇살이 벤치를 비췄다. 하늘의 구름이 빠른 속도로 흩어지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태풍이 물러가고 따스한 오후가 돌아왔다. 긴장을 풀고 신력을 거둬들였다.

양 손을 무릎에 대고 일어선 중년 남성이 평범하게 눈을 맞추며 말했다.


“지켜보고 있겠네.”

“맘대로 하십쇼.”

“허허··· 필리아노덴을 찾아봐야겠구만. 직접 만나서 어디서 이런 화신을 구했는지 물어봐야겠어.”

“만나면 안부 전해 주시구요.”

“하하하하. 그래, 그래.”


중년 남자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화신이 자기 신한테 안부를 전해달라니, 농담으로 알아들은 거지.

농담처럼 들렸겠지만 진심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 모든 인생을 통틀어 필리아노덴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화신으로 각성한 거 보면 신으로서 탄생한 건 분명한데, 왜 화신이 부르는데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 신도 필리아노덴을 찾을 수는 없겠지.


“나 가네. 잘들 해보시게.”


중년 남자는 휘적휘적 걸어가 골목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벤치에 가만히 앉아 뒷모습만 지켜봤다.


“끝난 거예요?”


아차, 진화령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화신도 아닌 사람이 두 신의 다툼 한가운데 끼어 있었던 것이다.

걱정과 달리 진화령은 멀쩡하게 앉아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괜찮아요? 어디 아픈 데 없어요?”

“괜찮아요. 비 좀 맞았다고 어디 아프겠어요?”

“많이 놀랐죠?”

“재밌었어요. 좀 놀라긴 했지만.”


이건 대범한 거야, 무서운 게 없는 거야?


“화신은 원래 다 그래요? 신한테 한마디도 안 지던데?”

“그야 자꾸 헛소리를 하니깐.”

“원래 헛소리던 진소리던 신의 말씀에는 ‘예, 알겠습니다’ 하는 거 아니예요?”

“내 신 아니니까요.”

“그거 말 되네.”


마주보고 서로 씨익 웃었다.

···아이고, 여유 부릴 때가 아니었다. 떨리는 손끝으로 가죽 주머니에서 묵룡권갑을 꺼내서 착용했다. 그제야 온몸의 떨림이 멎었다. 신력을 있는 대로 끌어다 쓴 덕분에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이거 아무래도···.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저기, 미안한데요.”

“말씀하세요. 어머,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졌어요?”

“그게··· 미안한데 나 좀···.”


으아악 쪽팔려!



*



쪽팔리다. 개쪽팔리다. 쪽팔려서 죽을 것 같다.


“뭐야, 왜 저래?”

“저거 일부러 저러는 걸 거야.”

“어쨌든 부럽다.”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끊임없이 수근거림과 비웃음이 들려왔다. 부럽다는 놈은 누구야? 너도 이런 비웃음의 주인공이 되면 하나도 전혀 부럽지 않을 텐데!

호텔 입구에서 비요른과 마주쳤다. 잡신과 투명해진 삐약이와 함께 있었다.

비요른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형. 어디 아파?”

“죽을 것 같다···.”

“뭐어? 어디가?”

“가슴이··· 쪽팔려서···.”

“쪽팔린데 왜 업혀 있어?”

“못 걷겠어서···.”


나는 진화령의 등에 업힌 채 호텔로 돌아왔다. 신력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몸이 아픈 것보다 돌아오는 내내 쏟아지는 질투 어린 멸시의 시선들 때문에 쪽팔린 게 더 아팠다.

비요른이 진화령에게 말했다.


“내가 업고 올라갈 게요.”

“괜찮아요. 무겁지도 않은데, 뭘.”


진화령은 우는 아기 달래듯 내 엉덩이를 둥둥 들었다.

으흐흐흑, 쪽팔려서 죽고 싶다.


···


방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비요른과 진화령이 침대 옆에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설명을 채근하는 비요른에게 아까 일을 얘기해주자, 비요른이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그러니까 사람이 죽던 말던 그냥 손 떼고 있으라는 거네.”

“그렇지.”

“미친놈인가?”

“그러게.”

“미친놈 말 들을 거야?”

“그럴 리가.”


누가 들어도 거품을 물 법한 신성모독의 현장을 지켜보던 진화령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엄청난 신이라면서요. 이렇게 막 나가도 돼요?”

“안 그러면 어떡해요. 다 죽게 내버려 둬요?”

“그럴 수는 없죠.”

“그럼 정리 끝났네요. 그리고 나도 화신이에요. 얘도 화신이고. 화령씨는 지금 신 둘이랑 같이 있는 거라구요.”

“그쪽 신도 아까처럼 마른 하늘에 태풍 불러올 수 있어요?”

“아뇨. 둘이 합쳐도 여우비도 못 내리죠.”


진화령의 표정에 한심하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그렇지만 사실인 걸 어떡해.


“이제 잘 알겠죠?”

“뭘요? 동행 둘이 생각 없는 화신이라는 거?”


윽.


“그게 아니라 우리랑 같이 있으면 위험하다는 거요. 그러니까···.”

“묵룡권갑만 주면 갈게요. 그 전에 떨어질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쳇.”


무슨 소린가 듣고 있던 비요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임마. 그래도 시도는 좋았잖아.


“이제 좀 쉬어요.”

“형, 빨리 나아. 이틀 밖에 없다잖아.”


비요른과 진화령이 방문을 닫고 나갔다.

조용한 방에는 가끔 파도 철썩이는 소리만 밀려들었다.


“빌어먹을 신 같으니.”


나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렸다. 비요른과 진화령 앞에선 센 척했지만, 사실은 초조함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벌써부터 13신이, 그것도 가장 강한 셋 중 하나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갔지만, 앞으로 지켜보겠다는 말은 결코 빈 말이 아니었다. 지금은 갓 태어난 초라한 신과 정체 모를 잡신을 모시는 두 화신일 뿐이니까 그냥 놔두는 것뿐이다. 자신들의 계획에 진정한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된다면 행동에 나설 것이다.


“윽···.”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가슴이 뻐근하고 몸 어느 한구석 저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먼 나중 일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당장 이틀 뒤의 마족 공습 대비에 위기가 닥쳤다. 일전에 대비해 묵룡권갑의 도움을 받아서 몸 상태를 회복하고 있었는데, 오늘 전력으로 신력을 펼치느라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 것이다.

분명 신은 저 높은 곳에서 만족스럽게 웃고 있겠지. 그 모습을 상상하며 중지를 높이 세웠다.


“엿이나 먹어라.”


어디 네놈들 뜻대로 되게 둘 줄 알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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