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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경원수 님의 서재입니다.

초심을 지킨 회귀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구주부
작품등록일 :
2019.09.02 15:12
최근연재일 :
2019.10.2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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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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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화신 각성 (1)

DUMMY

뎅뎅뎅···.


새벽부터 종소리가 도시 곳곳에서 울렸다.

혼자 거리에 나와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종소리에 이상함을 느끼고 나와 있다. 평소답지 않게 조용한 분위기.

한 무리의 로브 입은 자들이 성문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도시에 들어와 높은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모두 열두 명이다. 한 무리처럼 행동하던 그들은 하나 둘씩 갈림길에서 흩어졌다. 나는 내가 임대한 신전 구역 쪽으로 향하는 로브를 쫓았다.

로브는 내 신전의 맞은편 언덕 위를 향했다. 언덕 위에는 흙의 신 마이론의 신전이 있다. 상위 신답게 혼자서 언덕을 차지하고 있다. 신전 앞에는 이미 신도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있었다.

잠시 후 종소리가 동시에 멈췄다.

로브가 후드를 벗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흙빛 머리칼의 미남이 얼굴을 드러냈다. 남자가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서 읽었다.


“들어라. 무저갱에서 태어난 혼돈이 독과 같이 세상에 퍼져 멸망이 다가온다. 필멸자들은 십삼신의 이름 아래 전쟁에 대비하라.”


구경 나온 사람들이 죄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야 황당하겠지. 갑자기 왠 멸망? 전쟁? 게다가 십삼신은 또 뭐고?

한 명이 나서서 목소리를 높였다.


“갑자기 웬 뚱딴지 같은 소리요?”

“지고하신 열세 분의 신의 말씀이다.”

“전쟁이고 뭐고, 십삼신의 이름 아래라니. 우리보고 개종을 하란 말이오?”

“바로 그러하다.”

“마이론의 권세가 높다한들 어찌 공공연하게 그런 말을 한단 말이오!”


대번에 군중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개종을 하라니, 이게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야?”

하지만 로브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편안했다.


“이 세상의 영속을 위한 성전에 참여하는 것은 신의 백성으로서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배교가 아니며 오히려 진정한 영광을 향한 찬미이니라.”

“전쟁이 온다 해도 왜 내가 나의 신을 버리고 당신 신에게 가야 하오?”

“그대의 신은 막을 힘이 없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멸망을. 그리고···.”


로브가 발을 굴렀다. 갑자기 지진 같은 진동이 몰려온 사람들의 발밑을 지나가더니, 언덕 입구의 신전이 우르릉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경악에 빠진 군중을 향해 로브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너희 신도의 믿음조차도.”

“이런 미친, 무슨 짓이냐!”

“마이론을 믿어라. 오직 그것이 진정토록 의미 있는 믿음이 될지니.”


그렇게 사건이 시작되었다.


십이사도의 폭거. 그것은 신들의 도시 툴라에서 열두 상위 신의 화신들이 무수히 많은 신전을 파괴한 사건이다. 오늘 그들에 의해 수많은 신도들의 믿음이 무너진다. 자기가 모시는 신의 성전이 압도적인 힘에 의해 파괴되고, 그것을 눈앞에서 목도한 신도들의 신심이 흔들리는 것을 뭐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신앙은 중독적인 면이 있다. 그들에게는 항상 믿고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믿음을 잃은 사람들은 얼마 후 그들, 12신의 신도가 되었다.


또 하나의 충격파가 발밑을 지나갔다. 내 눈에는 땅을 물들이듯이 지나가는 신력이 보였다.


“오만하다!”


누군가가 군중의 머리 위로 벼락처럼 뛰어올랐다. 다른 신의 화신이었다.

신의 도시는 온갖 종교가 몰려있지만 화신은 거의 없었다. 화신들은 신의 의지를 구현하기 위해 세상 곳곳에서 바쁘기 때문이다. 레오코네스의 화신, 주홍 마녀가 섬에 있었듯이.

저 화신은 오늘 우연히 툴라에 있었던 것이다. 운 나쁘게도.

화신은 빈 땅을 내려찍고 말았다. 어느새 로브는 멀찍이 이동해 있었다.

뛰쳐나가려던 화신이 넘어질 듯이 휘청였다. 땅에서 손들이 튀어나와서 화신의 발을 잡고 있었다. 손은 화신을 잡고 땅 속으로 끌어당겼다. 땅을 늪처럼 허우적거리던 화신은 이윽고 땅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대들의 신은 힘이 없다.”


로브의 목소리가 숨죽은 군중을 깨웠다. 경악한 신도들이 비명을 지으며 우르르 흩어졌다. 어디로? 각자의 신전으로.

나도 내 신전으로 후다닥 돌아와서 미리 준비한 신관복을 뒤집어썼다. 한 손에 성전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앞쪽 거리에 즐비한 성전을 다 때려 부수며 걸어오는 로브가 보였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성전 안으로 피하지 못하고 문 밖에서 우왕좌왕했다. 들어갔다간 무너지는데 깔릴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성전 밖에서 기도하고 찬송했다. 무너진 성전 앞에는 소리치며 신을 원망하는 이들이 있었다. 간혹 성전 안에서 기도를 올리는 대범한 신도도 있었다.

로브가 발을 쾅 구르자 이쪽으로 충격파가 밀려왔다. 허공에 대고 외쳤다.


“비요른!”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충격파에 내리 꽂혔다. 충격파는 화살에 흡수되듯 사라졌다.


화신 비요른의 권능은 활과 화살이다. 권능은 화신이 된 순간부터 내 몸처럼 사용할 수 있다.

화신이 된 날 비요른에게 물었다.


“그냥 무한 화살 쏘는 걸로 끝?”

“목표의 신력을 흡수할 수도 있어.”

“오호라. 쓸모가 있겠군.”

그 쓸모가 지금 증명됐다.


이제 내 차례였다.


“신의 백성들이여, 내 말을 들어보시오!”


울던 사람, 비명 지르던 사람, 가슴을 치던 사람들이 나를 주목했다.


“모래 한 알부터 우리 가슴 속 심장까지 신의 이름이 붙지 않은 것 하나 없고, 그 모든 것에는 더 귀한 것도 천한 것도 없소. 나는 우리 신 필리아노덴의 영광 아래 저 오만한 신에게 맞설 것이오!”


사람들의 표정에 실망이 떠올랐다. 무슨 생각하는 지 안다. ‘처음 듣는 신이 상위 신에게 맞선다고? 개풀 뜯는 소리지, 암···’ 뭐 이런 생각이지.

고개를 갸웃한 로브가 쾅! 발을 굴렀다. 훨씬 큰 충격파가 덮쳐오기 시작했다.

또 한 발의 화살이 떨어졌다. 화살이 꽂힌 자리부터 충격파가 좌악 갈라져서 내 신전만 멀쩡하고 양 옆의 신전이 우르르 무너졌다. 먼 쪽의 탑을 향해 엄지를 척 올렸다. 비요른이 보고 있을 것이다.

사실은 방금 충격파에서 양쪽 신전을 다 지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계획은 달랐다.


“우리 신전만 지켜. 다른 신전은 다 부서져도 돼. 아니 부서질수록 좋아.”


그래야 내 주변에서 더 많은 신도가 좌절하고 신앙을 잃으니까.

발밑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흙기둥을 박차고 오른 로브가 허공을 날았다. 쿵쿵쿵, 비요른이 있는 탑을 향해 흙기둥이 연이어 솟아올랐다. 흙기둥을 징검다리처럼 밟고 달린 로브가 탑의 꼭대기를 직격했다.

쾅! 탑의 상층이 폭발했다.


빼애애애액!


무너지는 탑을 스치듯 지나간 거대한 새가 하늘을 갈랐다. 삐약이의 목 위에 비요른이 타고 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분위기 좋고!


“보아라, 필리아노덴의 화신이 사도와 함께 하신다!”

“필리아노덴! 필리아노덴!”

“와아아아아!”


군중들의 환호가 들끓었다. 잡신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자기 화신을 남의 화신이라고 속이는 걸 보면 얼마나 길길이 날뛰겠어.

갑자기 코앞에서 흙더미가 쑥 올라오더니, 흙더미 속에서 로브가 덮쳐왔다. 로브의 손이 내 목에 닿기 직전, 움찔 하고 움직임이 멈췄다. 로브가 흙더미 인형이 되어 바사삭 부서진 자리에 비요른의 화살이 떨어졌다.

삐약이가 내 앞에 내려앉고, 비요른이 훌쩍 뛰어내렸다.


“내가 형 한 번 살려줬다?”

“우리 삐약이가 너 구해줬으니 쌤쌤이라 치자.”

“엥, 얘 이름이 삐약이었어? 작명 센스 소름 돋네.”

“뭐 임마?”


비요른은 못 들은 채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진 화살을 집어 들었다. 화살은 스르르 사라지더니 비요른에게 흡수됐다. 충격파를 흡수한 두 발도 회수했다. 비요른의 신력이 갑자기 훅 늘어났다.

여기저기서 흙더미가 불쑥불쑥 솟아오르고, 수많은 로브들이 덮쳐왔다.

삐약이와 비요른이 로브들과 싸웠다.

환상조의 날개가 칼날처럼 로브들을 토막내고, 돌풍이 일어나 하늘 높이 날려버렸다. 비요른의 화살을 가슴에, 목에, 등판에 맞은 로브들이 한 번에 두셋씩 쓰러졌다.

난 싸움엔 일절 참여 안 했다. 한 발 뒤에 물러서서 성전을 높이 쳐들고 위엄차게 외쳤다.


“필리아노덴께서 우리 모두를 지켜주신다!”

“마이론의 폭거에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

“신의 이름은 모두 평등한 것. 인간은 어떤 신도 섬길 수 있으나, 무릎을 강제로 꺾을 수는 없다!”


주의 깊게 들었다면 마지막 대사가 이상한 걸 눈치챘을 것이다. ‘인간은 강제만 아니면 개종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올 대사는 아니지. 하지만 워낙 혼란스러운 와중이라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느닷없이 로브들이 스스로 다 부서지고, 한 명만 남았다. 진짜 마이론의 화신.

갑자기 공기가 무거워졌다. 환호성이 뚝 끊겼다. 사람들이 숨을 헐떡였다.


“너희가 신의 무한한 지혜를 의심하고 그 분의 걸음 앞에 가시가 되었으니 마침내 분노를 마주하리라.”


마이론의 신전이 있는 언덕 위에서 합창으로 마이론의 찬송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로브의 신력이 어마어마하게 솟아났다. 몸에서 진짜 불길이 일어난 것처럼 신력이 피어올랐다.

지진이 일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나는 비요른을 붙잡고 겨우 버텨 섰다.

땅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휩쓸려서 공중에 떠올랐다가 허공에 내팽개쳐졌다. 삐약이가 홀연히 날아가 떨어지는 사람들을 등에 태우고, 부리로 옷깃을 물고, 발로 쥐어서 구조했다. 무사히 지상에 내려선 사람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흙거인이 두 다리로 일어섰다. 신의 역사가 땅 위에 강림했다.

와, 씨···. 올려다보기도 힘들다. 백 미터도 넘을 것 같은데.

비요른이 화살을 한 대 쏘아붙였지만 아무런 티도 안 났다.

거인의 한 손이 저 높은 하늘에서 우리를 향해 쇄도했다.

비요른이 활을 쟀다. 신력이 비요른의 몸을 타고 흘러 화살촉에 영글었다. 손을 떠난 화살이 빛살처럼 허공을 갈랐다.


쾅!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나고 거인의 손이 손목째 공중에서 폭발했다. 흙더미가 쏟아져 내렸다.


“나이스! 한 방 더!”

“이제는 무리.”


비요른이 헐떡이며 대답했다. 안 그래도 신력이 간당간당해 보였다.


우어어어어···.


거인이 깊은 동굴 같은 소리를 냈다. 이번엔 진짜 위험한데.

누군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돌아보니 젊은 여신도의 뒤로 십여 명이 무리지어 있었다. 삐약이가 구해준 사람들이었다.

눈빛을 보니 긴 말은 필요 없었다.


“믿습니까?”


망설이던 여신도가 입술을 꽉 깨물고 대답했다.


“믿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당신이 신관!”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는 여신도에게 신관복을 벗어주고 성전을 쥐어줬다. 신관복을 뒤집어쓴 여신도는 당황한 와중에도 신관이 해야 할 일을 했다.

즉석에서 임명된 필리아노덴의 여신관은 성전을 펴들고 기도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이래서 습관이 무서운 거다.


“가로되 모든 것을 잃은 자야 슬퍼하지 말라. 다시 시작하는 축복이 그대에게 있나니.”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매번 다르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창대하리라.”


거인의 충격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기도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기적은 신앙을 낳는다. 신의 폭거에 저항해 인간을 지키는 게 기적이 아니면 뭔가? 마이론의 화신에 맞서는 우리의 모습이 사람의 마음속에 신앙을 낳았다.

필리아노덴의 신앙을.

오른손 검지가 간질간질했다.

거인과 싸우던 삐약이가 거대한 손바닥을 맞고 언덕 중턱에 처박혔다.

돌아선 거인이 우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삽시간에 머리 위로 순식간에 짙은 그늘이 졌다. 나는 수만 배는 더 큰 주먹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모든 상황이 피떡 엔딩으로 끝나버리기 직전, 유성처럼 떨어지던 거인의 주먹이 벽에 부딪힌 것처럼 멈췄다.

내뻗은 손바닥을 콱 쥐었다. 거인의 팔의 각 부분이 기괴한 각도로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팔 전체가 허공의 한 점을 향해 짜부라들 듯 사라졌다. 여기저기서 헛숨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온 몸에서 신력이 넘쳐나고 있었다. 어느샌가 오른손 검지에 나타난 반지에서 신력이 끝도 없이 밀려나왔다.

나, 필리아노덴의 화신이 각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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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협박과 설득 19.10.10 95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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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다른 현실 +1 19.09.27 91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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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경고 (1) +1 19.09.24 104 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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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진화령 (2) +1 19.09.21 135 6 9쪽
15 진화령 (1) +1 19.09.20 156 6 10쪽
14 싱카리움 (2) +1 19.09.19 135 6 12쪽
13 싱카리움 (1) +1 19.09.18 147 5 14쪽
12 화신 각성 (2) +1 19.09.17 138 6 10쪽
» 화신 각성 (1) +1 19.09.16 149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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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루비오코네의 운 나쁜 하루 +1 19.09.11 174 7 11쪽
8 신벌 +1 19.09.10 188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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