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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경원수 님의 서재입니다.

초심을 지킨 회귀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구주부
작품등록일 :
2019.09.02 15:12
최근연재일 :
2019.10.24 11:07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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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8
추천수 :
227
글자수 :
187,994

작성
19.10.0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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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미로정원

DUMMY

다음날 오전 비요른, 진화령과 같이 호텔을 나섰다. 이제 곧 황궁에서는 어전회의가 열릴 시간이었다. 그동안 황비는 황궁에서 좀 떨어진 정원으로 산책 나가기를 즐겼다. 우리는 거기서 몰래 황비를 만날 생각이었다.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는데 광장 한쪽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사람들의 중심에 선 신관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제국 시민들은 걱정 마시오! 엊그제 제국의 온기를 책임지는 토호 산의 석탄 광산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마계의 종자들이 기어 나와 제국의 안전을 위협했으나, 우리 신의 화신께서 단칼에 물리치셨으니 우리는 다만 찬양하며 믿고 따르는 것이 순리일 따름이오!”


군중들이 박수치며 신을 찬양했다. 토호 산의 석탄 광산은 엊그제 휴양 도시처럼 마족이 침공한 12곳 중 하나였다. 12신 중 하나의 화신이 우리처럼 미리 가서 준비하고 있다가 마족을 토벌한 것이다. 신관은 기도로 신에게 그 소식을 듣고 이틀 만에 수도의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었다.

둘러선 사람들 중 누군가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이참에 개종이나 해야 할까 봐. 누구네 화신은 제국을 지키고 있는데, 우리 신은 신관님의 기도에도 대답이 없으시다지 뭐야.”

“그래? 그렇다고 개종까지 할 거 있나.”

“예끼, 이 사람아. 그러다 혹시 큰일 나면 어쩌려고 그래. 저번엔 서부더니 이번엔 여기저기서 난리였다며. 혹시라도 마족놈들이 더 많이 나타나면 어쩌려고 그러나? 그 전에 우리가 미리미리 힘을 보태야지.”


대화하는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진심으로 마족들이 자신들의 위험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농담으로라도 개종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사람들의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비요른이 투덜거렸다.


“우리도 도시를 지켜줬는데!”

“그건 여기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잖아. 나중엔 알게 될 거야.”

“쳇.”


시간이 흐를수록 대륙 전역에서 12 화신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도가 될 것이고. 하지만 필리아노덴의 이름은 훨씬 더 많이 들리게 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


정원에 도착했다. 매우 넓은 미로정원의 입구를 황궁 기사 둘이 지키고 있었다. 황비는 이 정원을 방문할 때마다 최소한의 호위만 대동했다. 그나마 호위도 정원의 출입구만을 지킬 뿐 정원에는 황비 혼자 입장했다. 지금은 밖이라 정원 안쪽이 보이진 않지만 지금도 황비 혼자일 것이다.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의 담장을 넘기로 했다. 먼저 진화령이 훌쩍 뛰어 넘었다. 그 다음엔 내 차례였다. 비요른이 담장에 등을 대고 서서 두 손을 모았다. 나는 그 손바닥을 밟고 서서 담장 위로 손을 뻗었다.


“으그그극···.”


용을 써 봤지만 몸을 담장 위로 넘길 수가 없었다. 해안에서 신력을 사용한지 이틀째, 묵룡권갑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몸은 정말 느리게 회복되고 있었다.


“아이고, 잠깐 쉬자.”


바닥으로 다시 내려와서 담장에 몸을 기대고 쉬는데, 소리 낮춘 진화령의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왔다.


“뭐 해요?”

“금방 갈게요.”

“아이 참,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하자니깐.”


훌쩍 담장을 다시 넘어온 진화령이 두 팔을 척 벌리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맹렬히 저었다.


“싫어요?”


끄덕끄덕.


“싫기 뭐가 싫어요. 이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이리 와요.”

“그래, 형. 이러다 들키겠다. 나 먼저 간다.”


비요른 너까지! 쌀쌀맞게 형을 배신한 동생이 담장 뒤로 몇 걸음 물러나더니, 도움닫기를 하고 벽을 차고 뛰어올라 담장을 넘어갔다.


“이제 부끄러워하지 말고 빨리요.”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몸을 진화령에게 맡겼다. 가늘지만 탄탄한 두 팔이 일명 공주님 안기 자세로 나를 안아 들었다. 팔에 진화령의 가슴이 닿았다. 얼굴이 확 뜨거워졌다. 으, 으윽. 이건 불가항력이야. 짓궂은 표정의 진화령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얼굴이 새빨개졌네. 무슨 생각해요?”

“아무 생각 안 해요. 빨리 넘기나 해요.”

“싫···.”

“싫다면요 같은 소리 말고 빨리요.”


쳇, 혀를 찬 진화령이 훌쩍 뛰었다. 순식간에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양방향 중력을 느끼고 정원 안쪽에 내려섰다. 나는 도망치듯 진화령의 품을 벗어났다. 진화령이 기대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고···고맙습니다···.”

“별 말씀을.”


진화령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비요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투명한 삐약이에게 말을 걸었다.


“삐약아, 이 정원에 우리 말고 여자가 한 명 있을 거야. 그 사람한테 가는 길을 찾아 줘.”


높은 곳으로 날아오른 삐약이가 공중을 몇 바퀴 돌더니 다시 내려왔다. 우리는 삐약이가 이끄는 대로 미로를 걷기 시작했다. 미로를 구성하는 수풀이 워낙 높고 빽빽해서 앞뒤 길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걸음걸음마다 자갈 깔린 바닥에서 잘그락 소리가 나서 조심스러웠다.

점점 분수 소리가 가까워졌다. 모퉁이를 돌아가려는데 삐약이가 제자리에서 홰치며 빙글빙글 돌았다. 일단 멈춰 서서 조심스레 모퉁이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정원의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분수 앞에 선 황비가 보였다.

일행을 돌아보며 검지를 입술 앞에 세웠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소리죽여 말했다.


“나 혼자 갔다 올게요. 여기서 기다려요.”


비요른과 진화령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모퉁이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황비는 분수 난간에 걸터앉아 있었다.

미로정원의 분수. 이곳은 남의 눈을 피해 황비가 근위대장을 만나는 몇 안 되는 장소였다. 황제와 각료들이 어전회의에서 제국의 미래를 논하는 동안 황비와 근위대장은 둘만의 미래를 속삭였다. 하지만 오늘 근위대장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쯤 동부 해안에서 제국을 지키고 있을 테니까.


황비는 여린 사람이다. 지금이야 근위대장과의 불안하고 위태로운 그래서 더 유혹적인 감정에 취해 있지만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사랑인지, 당사자 둘 뿐 아니라 수많은 제국민에게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불러올지 설명하면 황비는 이해한다.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과 근위대장의 관계를 내가 안다는 것이 중요하죠. 지금은 나 한 명이지만, 결국엔 모두가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불륜이 드러날 때, 분노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제국의 아버지, 황제인 것이다.


모퉁이를 돌아 나가려는데 갑자기 황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들켰나? 나도 모르게 다시 몸을 숨기는데 황비의 시선은 이쪽을 향해 있지 않았다. 황비가 몸을 돌려 분수로 이어지는 반대쪽 길을 향해 섰다. 길 끝 모퉁이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황비에게 걸어와 뜨겁게 포옹한 사람은, 말도 안 돼, 근위대장 베로칸이었다.

저 인간이 왜 여기에 있어!? 너무 당황해서 머리가 제대로 돌질 않았다. 내가 잘못 봤나? 다시 봐도 근위대장이었다. 아니, 이게 말이 돼?


침착, 침착하자···. 지금 근위대장은 분명히 제국 동부에 있어야 한다. 동부 해안 도시가 연이어 괴멸적인 피해를 입자 황제가 제국 제일의 마검사를 파견한 것이다. 그곳에서 근위대장은 거대 괴수를 마주하게 되는데, 사실 그 괴수는 먼 바다의 무인도에서···.

나도 모르게 생각이 입 밖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이 멍청한 놈아!”

“뭐야, 무슨 일이에요?”

“형, 왜 그래?”


내 등만 보고 있다가 깜짝 놀란 진화령과 비요른이 다급하게 물었다.


“근위대장이 와 있어요.”

“엥? 지금 수도에 없다고 하지 않았어?”

“아니, 그게···.”


근위대장이 파견되는 원인을 제공하는 괴수는 일찌감치 죽었다. 누구 손에? 우리 손에, 정확히는 삐약이에게. 그러니 근위대장은 애초에 쭉 수도를 비우지 않았던 것이다. 이 멍청한 놈아, 그걸 생각을 못하면 어떡하냐!


“그건 이따가 설명할게. 일단 우리는 여기서 벗어납시다.”


근위대장이 여기에 있는 이상 설득은 물 건너갔다. 언젠가 황비가 아니라 근위대장을 설득하기 위해 동부에 간 적이 있었다. 황제에게 들키기 전에 관계를 정리하라는 말에 근위대장은 불타는 눈동자로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를 막는 건 다 베어버리겠다. 그것이 황제일지라도, 그것이 제국일지라도.” 이런 놈이 제국 황실의 근위대장이라니, 황제가 불쌍하달까 멍청하달까···.

어쨌든 빨리 몸을 빼내야 할 때였다. 몸을 돌려 한 발짝 내딛는데, 유난히 큰 자갈이 밟히더니 자각 소리를 냈다. 우리는 일순 제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혹시 들었을까···?


“누구냐?”


근위대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자각자각 자갈을 밟고 걸어오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우리는 얼어붙은 자세 그대로 다급히 눈빛과 입모양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어떡해요?”

“그냥 도망칠까?”

“어림도 없을껄.”

“기절시킬까요? 목 뒤를 팍.”

“우리 목이 뎅겅이겠죠.”


상대는 황제를 지키는 근위대장, 제국 제일의 마검사였다. 아무리 진화령의 무공이 고강하다 해도 절정의 반열엔 들지 못했고, 비요른은 잡신의 화신일 뿐이었다. 내 컨디션이 아직도 환자 수준이어서야 싸워서 벗어날 가능성은 없었다.

스릉, 모퉁이 바로 너머에서 들려오는 칼 뽑히는 소리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나와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두 손을 들고 천천히 모퉁이를 돌아 나가려는 찰나,


빰빠바바바바밤-


갑자기 우렁찬 관악기 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울렸다. 근위대장이 왕후에게 뛰어가며 자갈 밟는 소리가 다급했다. 조심스럽게 고개만 모퉁이 밖으로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분수가에 선 근위대장이 등 뒤에 왕후를 숨기고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서 있었다. 근위대장이 향한 방향에서 중무장을 한 기사들이 열을 맞춰 뛰어 나와 분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무리의 마법사들이 기사들의 뒤에 섰고, 그리고 관악기를 든 악사들이 걸어 나왔다.

마침내 마지막 사람이 등장했다. 근위대장 베로칸에 이어 오늘 보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제국의 황제가 황비와 근위대장을 마주섰다. 이거 지옥 같은 장면이구만, 아침드라마도 아니고···.

황제의 추상같은 호통이 떨어졌다.


“베로칸!”


황제의 분노를 담은 근위대장의 이름 세 글자가 좌중을 압도했다.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제국의 어머니이자 황제의 아내를 탐한 죄, 근위대장으로서 책무를 저버리고 주군의 믿음에 칼을 찌른 죄가 만천하게 공개되었다.

근위대장이 검을 들지 않은 팔로 금세 무너질 것만 같은 황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둘은 서로를 감싼 채 눈을 맞추어 무어라 말을 나누었지만, 여기서 들리지는 않았다.

불길한 기분이 몰려들었다. 둘의 불륜이 직접 황제에게 발각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나는 이 장면의 끝을 알 것만 같았다. 불륜 발각을 막지 못해 처형대에 황비가 설 때마다, 황비는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소. 그러니 베로칸, 그대도 후회하지 말기를. 불탄 재가 되어 바람에 실려서라도 당신을 찾아가겠소.”


“황제!”


베로칸의 검이 푸른 불꽃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글거리는 태양같은 기세로 베로칸이 외쳤다.


“황비를 되찾아가고 싶다면 나를 베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베어도 그대는 진정으로 황비를 얻지는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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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제국의 비밀 서고 19.10.11 80 6 13쪽
28 협박과 설득 19.10.10 94 6 11쪽
27 동방의 꽃 +1 19.10.09 90 5 12쪽
» 미로정원 +2 19.10.08 101 6 12쪽
25 마법사 길드 +1 19.10.07 95 5 14쪽
24 우리의 목적 19.10.02 102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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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진화령 (2) +1 19.09.21 135 6 9쪽
15 진화령 (1) +1 19.09.20 156 6 10쪽
14 싱카리움 (2) +1 19.09.19 135 6 12쪽
13 싱카리움 (1) +1 19.09.18 146 5 14쪽
12 화신 각성 (2) +1 19.09.17 138 6 10쪽
11 화신 각성 (1) +1 19.09.16 148 6 12쪽
10 사전 준비 +1 19.09.12 161 6 9쪽
9 루비오코네의 운 나쁜 하루 +1 19.09.11 174 7 11쪽
8 신벌 +1 19.09.10 188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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