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도기경원수 님의 서재입니다.

초심을 지킨 회귀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구주부
작품등록일 :
2019.09.02 15:12
최근연재일 :
2019.10.24 11:07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5,636
추천수 :
227
글자수 :
187,994

작성
19.09.10 16:49
조회
187
추천
6
글자
12쪽

신벌

DUMMY

괴수를 밀림에 쳐박은 환상조가 하늘 높이 비상했다. 온몸이 새하얗게 빛나는 거대한 새를 향해 신이 나서 손을 붕붕 흔들었다.


“우리 아가 잘한다!”

“아가라고···?”


잡신이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지금 막 부화했으니 아가지, 뭐.

이 섬으로 온 첫 번째 이유, 마녀를 쫓아온 이유가 바로 막대한 마력을 품은 마녀의 보석들을 알에게 먹여서 환상조를 부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주홍 마녀 본인까지 보석이 되어서 먹잇감이 될 줄은 몰랐지.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더 건장한 모습으로 부화했다. 즉, 우량아다 이거야.

밀림을 다 박살내며 처박힌 괴수도 몸을 일으키며 괴성을 내질렀다.

하늘엔 거대한 새, 지상엔 거대한 공룡이라··· 이거 괴수대전인가?

괴수의 입가에 막대한 마력이 모이더니, 괴수가 환상조를 향해서 브레스를 내뿜었다. 이제보니 공룡이 아니라 고질라였네.

파괴적인 마력이 환상조를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전혀 걱정 안 했다. 환상조가 괜히 환상조가 아니다. 환상조가 갑자기 신기루처럼 흐릿해지더니 브레스가 허공을 갈랐다.

고질라의 눈엔 환상조가 갑자기 사라졌겠지만 내 눈에는 보인다. 환상조는 그 자리 그대로 반투명한 모습으로 떠 있다. 한밤에 마을 상공에서 봤던 아크알레스처럼.


···!!!


괴수가 분노에 찬 괴성을 내질렀다. 환상조는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면서 괴수의 시선을 나와 비요른의 반대편 하늘에 붙잡아뒀다. 태어나자마자 효도하는 건 우리 아가 밖에 없을 거야.

무수한 브레스가 허공을 갈랐다.

이제 괴수는 힘이 빠진 듯 거대한 몸체를 들썩였다. 모습을 드러낸 환상조는 괴수를 놀리듯 천천히 날개짓을 하며 허공에 떠 있었다.

콧김을 뿜어낸 괴수가 몸을 잔뜩 웅크리더니, 단숨에 환상조를 향해 뛰어 올랐다.

순간적으로 환상조가 내 눈에서도 사라졌다. 어디 갔지?

다음 순간 저 높은 곳에서 뭔가 어릿한다 싶더니, 벼락이 꽂히듯 수직 강하한 환상조가 공중에 떠오른 괴수를 꿰뚫어 버렸다. 괴수는 공중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기분 좋은 듯 고개를 흔드는 환상조의 부리 끝에 붉게 물든 보석이 물려 있었다. 어쩐지 산처럼 거대해야하는 괴수가 겨우 아파트만 하더라니, 마력 흡수가 덜 된 상태였구나. 환상조가 보석을 깨물어 부셔버리자, 막대한 마력 폭풍이 일어나서 환상조에게 흡수됐다.

이제야 다 끝난 것이다.


해변에 닿아 비요른을 바닥에 눕혔다. 비요른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나도 엉망진창이었다. 약으로 버틴지 나흘째, 진짜 한계가 왔다. 긴장도 탁 풀려서 정신줄을 놓칠까 말까 하는 상태였다.

갑자기 천지를 떠르르 울리는 노성이 울렸다.


“감히 나의 화신을!”


순식간에 공기의 밀도가 백배로 짙어진 듯, 막대한 압력이 전신을 내리눌러서 숨쉬기가 버거워졌다.

화신이라고? 주홍 마녀가 화신이었단 말이야?

원래 이 섬에서 마녀를 놓친 비요른은 몇 년 뒤 복수에 성공한다. 그때 마녀는 화신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히려 더 빠른 이 시점에 화신일 줄이야.

심지어 이렇게 강력한 신이라니.


기적은 괜히 기적이 아니다. 평생 볼까 말까하게 드물어서 기적인 것이다. 그만큼 신은 직접 지상의 일에 개입하기를 꺼린다. 신이 지상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신력을 어마무지하게 소모하기 때문이다.

잡신은 고작 사람 두 명을 낙하산처럼 받아준 정도로 주먹만 하던 불꽃이 새끼손톱만큼 작아졌다. 지금은 도망쳤는지 보이지도 않지만.

그런데 이렇게 폭풍 같은 압력을 행사하고 천지를 울리는 육성을 외친다? 누군지 몰라도 분명 상급 이상이다.

아까 잡신 놈이 동굴에 왜 안 들어왔는지 이제야 알겠다. 자기보다 훨씬 강한 신이 있는 걸 알고 있었구나. 이 자식이 그럼 말을 해 줬어야지!


환상조가 내려앉아 날개를 펼쳐 우리를 지키듯 감싸 안았다.

노성이 떠르르 울렸다.


“하찮은 필멸자 따위가 신의 의지를 해하다니!”


억울하다. 화신인 줄 몰랐는데.


“아니, 선생님. 우리 일단 말로 해결을···.”

“신을 능멸하는 세치 혀는 뽑아야 마땅하리라!”

“아이고오 선생님. 그게 아니고요···.”

“화신을 해한 네놈의 죄는 영멸로도···.”

“틀렸어.”


불경스럽게도 신의 말을 단칼에 잘라버린 비요른이 비틀대며 일어섰다. 한발 두발 힘겹게 떼며 앞으로 걸어 나가더니 하늘을 향해 외쳤다.


“틀렸어! 마녀를 죽인 건··· 이··· 이···”


이···? 말을 잇다 말고 돌아보는 비요른과 눈이 마주쳤다.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렇게 될 줄 몰랐지? 나도 몰랐어. 그래도 싸나이가 약속은 지켜야지!

마침내 비요른이 하늘을 향해 짓씹듯 외쳤다.


“···이 형이 아니라 나다! 마녀를 죽인 건 나다!”


형! 비요른이 형이라고 불렀다. 지난 삶이었다면 신 앞이고 뭐고 감동의 포옹부터 했을 텐데.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라 그만한 감동도 없고, 지금은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다.


“그렇다면 네가 책임지리라!”


비요른에게 벼락이 내리꽂혔다. 아니, 벼락이 아니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고 무언가 불타지도 않았다. 그저 비요른이 줄 끊긴 인형처럼 쓰러졌다.

전신을 내리누르는 압력이 사라졌다. 허겁지겁 비요른에게 달려갔다. 전신의 상처가 씻은 듯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눈을 뜨지 못했다. 미간에서 푸른빛이 어른거렸다. 이건···!


“신내림··· 아니, 신벌이네.”


어느새 다시 나타난 잡신이 중얼거렸다.



*



환상조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저 아래 해안과 맞닿은 화려한 도시가 보였다.

나와 비요른은 환상조의 등에 타서 바다를 건너는 중이다. 덩굴로 비요른과 내 몸을 묶어 놓고 기절하듯 잠들었던 것이다. 자고 일어나니 좀 나아졌군.

비요른의 온 몸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포기하지 마. 형만 믿어.”


일반적으로 신과 화신은 상호 합의하에 관계를 맺는다. 신내림이란 신이 화신이 될 대상에게 깃드는 것이다. 대상은 신격의 수준에 따라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며칠 동안 병에 걸린 듯 앓는다. 증상은 감기처럼 가볍게 몸이 아픈 수준부터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까지 다양하다.

신벌은 신이 일방적으로 화신을 삼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대상의 영혼이 신격의 침입에 저항하는 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육체는 빠르게 쇠약해진다.

둘 중 하나다. 받아들이고 화신이 되던가, 앓다가 죽던가.

빌어먹을 놈. 자신의 화신을 죽인 비요른을 새로운 화신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성곽 근처에 착지해 환상조에서 내렸다. 비요른을 들쳐 업고 도시 성문으로 향했다. 주먹만 한 크기로 작아진 투명한 환상조와 잡신이 뒤를 따라왔다.

성벽 윗부분에 문장이 양각되어 있고 그 아래 성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성문을 지키는 경비조차 없었다.


<신들의 도시 툴라에 오신 신자분들을 환영합니다>


툴라는 대륙 뿐 아니라 바다 건너 온갖 세계의 종교들이 한데 모인 도시다. 신들의 도시는 누구도 차별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도시 안으로 들어서자 활기 넘치는 광경이 펼쳐졌다. 거리는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로 그득했다. 사람들의 옷이며 구조물이며 건물이며, 일관성 없는 디자인과 색상으로 어지럽고 화려하게 뒤섞여 있었다.

거리에 발을 딛기 무섭게 우르르 몰려든 꼬마들이 하나같이 전단지를 내밀면서 아우성쳤다.


“신발의 신 모레자님의 신도가 되세요!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않습니다!”

“한숨의 신 후미미님의 신도가 되세요! 한숨과 함께 근심도 사라집니다!”

“때의 신 더리붐님의 신도가 되세요! 세상의 부정으로부터 보호해 드립니다!”


관심 주면 피곤해진다. 무시하고 걷다보니 꼬맹이들은 곧 관심을 잃고 다른 사람에게 우르르 몰려갔다.

신의 힘, 신력은 자신을 향한 신앙심의 총합과 비례한다. 그래서 신도들은 각자 자기가 모시는 신의 부흥을 위해 포교 활동에 열중이었다. 전도도 하고, 신전도 그럴싸하게 지었다. 도시의 위쪽을 올려다보면 피라미드처럼 거대한 신전들이 보였다. 그런 곳의 신은 그야말로 신이라 부를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지금 갈 곳은 따로 있었다. 거리에서 골목으로 들어서자 통행하는 사람이 확 줄어들었다. 골목 깊숙이 들어갈수록 사람은 점점 뜸해져 이내 나 혼자뿐이었다.

이곳은 버려진 신들의 골목, 사람들로부터 거의 잊혀진 신들을 위한 안식처다. 심지어 신자가 단 한 명뿐인 신도 있다.


“니 신전도 여기 있냐?”

“이 따위 뒷골목에 있을 것 같아?”


그래도 생각보다 잡신은 아닌가 보다. 의외일세.

붉은 문 앞에 섰다.


“난 밖에서 기다린다.”


신끼리의 예의범절이랄까, 신은 다른 신의 신전에 들어서지 않는다.

자르르. 문을 열고 발을 치우며 들어섰다. 향 냄새 진동하고 옅은 연기가 자욱했다. 햇빛이 들지 않는 집안을 어두운 조명이 비췄다. 벽마다 붉은 글씨의 부적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으슬으슬 한 동시에 익숙한 이 느낌.


“여기가 어디라고 다른 신을 들여와!”


챙이 둥글고 붉은 모자를 쓴 여자가 안쪽 방에서 뛰쳐나와 냅다 쌀을 뿌렸다. 흰쌀이 후드득 바닥에 떨어졌다.


“뭐야 신벌이잖아?”


비요른을 본 보살이 중얼거렸다.


안쪽 방 한가운데 비요른을 눕혔다. 방 삼면엔 부적이 빈틈없이 발라져 있고, 나머지 한 면엔 사나운 얼굴의 장군 그림이 크게 그려져 있었다.


“보아하니 보통 신이 아닌 것 같은데.”


보살이 비요른의 이마를 유심히 살피며 말을 이었다.


“잘못 찾아 왔어. 신벌은 못 풀어.”

“압니다. 어느 신인지만 알면 됩니다.”


신은 가끔 신도의 부름에 직접 응했다. 물음에 답을 주기도 하고, 예언도 했다. 하지만 내용이 하나같이 모호하기 일쑤인 지라 태반은 도움이 되질 않았다.

그런데 뭘 찾는 건 무당 따라갈 자가 없었다. 이쪽 신은 거대한 운명이나 먼 미래는 못 볼지 몰라도, 적어도 답은 확실하게 주거든.

보살이 촉 없는 화살에 부적을 매달아 불을 붙이더니 창밖으로 활을 쏘았다. 그리고 부적을 한 장 더 태워서 내 코앞에 들이댔다. 종이 탄 냄새와 함께 희미하게 약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냄새를 따라가.”

“고맙소.” 하고 일어나려는데,

“복채 주고 가야지.”

“외상으로?”

“뭘 믿고?”


하긴. 가방을 뒤적여서 붕대로 싸둔 흡혈마 이빨을 꺼냈다. 붕대를 풀어 이빨을 확인한 보살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맡아두고 있으세요. 이빨이랑 이 친구랑 다시 찾으러 올 겁니다. 그리고 부탁 하나만···.”


무당에게 몇 가지 부탁을 하고 혼자 집을 나섰다. 기다리던 잡신이 물었다.


“뭐야, 왜 혼자 나와?”

“너 나랑 일 하나 하자.”


잡신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잡신은 “그럼 나야 좋지.” 하더니 군말 없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코를 킁킁대자 과연 골목 한쪽 방향에서 부적 냄새가 났다. 냄새를 쫓아 큰길로 나왔다. 사람이 북적이는데도 희한하게 냄새가 희미해지지 않았다. 냄새를 따라 골목, 큰 길, 계단, 다시 골목을 반복하면서 도시의 꽤 높은 곳으로 올라왔다.

이 정도면 정말로 꽤 높은 신인데.

마침내 한 신전 앞에서 냄새가 끊겼다.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 신전의 간판에 걸려있었다. 그런데 이 이름은··· 그렇구나. 그래서 주홍 마녀가 나중엔 화신이 아니었던 거구나.

간판에 적힌 이름은 루비오코네. 얼마 지나지 않아 살해 당하는 신의 이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초심을 지킨 회귀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공지 | 11월 둘째 주에 돌아옵니다. +2 19.10.29 30 0 -
36 면담 (3) +1 19.10.24 44 3 13쪽
35 면담 (2) +1 19.10.23 50 3 12쪽
34 면담 (1) 19.10.21 50 2 11쪽
33 남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 19.10.18 59 3 13쪽
32 비극의 끝 (2) 19.10.17 73 4 9쪽
31 비극의 끝 (1) +1 19.10.16 75 5 12쪽
30 내가 할 수 있는 일 19.10.14 72 3 13쪽
29 제국의 비밀 서고 19.10.11 80 6 13쪽
28 협박과 설득 19.10.10 94 6 11쪽
27 동방의 꽃 +1 19.10.09 90 5 12쪽
26 미로정원 +2 19.10.08 100 6 12쪽
25 마법사 길드 +1 19.10.07 95 5 14쪽
24 우리의 목적 19.10.02 102 5 8쪽
23 뒷풀이 +1 19.09.30 106 5 13쪽
22 결전의 마무리 +2 19.09.28 87 5 7쪽
21 다른 현실 +1 19.09.27 90 5 12쪽
20 해변의 결전 +1 19.09.26 97 5 14쪽
19 경고 (2) +1 19.09.25 95 6 10쪽
18 경고 (1) +1 19.09.24 104 6 15쪽
17 진화령 (3) +1 19.09.23 121 7 14쪽
16 진화령 (2) +1 19.09.21 135 6 9쪽
15 진화령 (1) +1 19.09.20 156 6 10쪽
14 싱카리움 (2) +1 19.09.19 135 6 12쪽
13 싱카리움 (1) +1 19.09.18 146 5 14쪽
12 화신 각성 (2) +1 19.09.17 138 6 10쪽
11 화신 각성 (1) +1 19.09.16 148 6 12쪽
10 사전 준비 +1 19.09.12 160 6 9쪽
9 루비오코네의 운 나쁜 하루 +1 19.09.11 174 7 11쪽
» 신벌 +1 19.09.10 188 6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