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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ter 님의 서재입니다.

펠릭스전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夢ster
작품등록일 :
2014.12.22 00:00
최근연재일 :
2016.12.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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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07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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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288

DUMMY

288


"허허! 이런!"

전장이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길버트 경이 혀를 찼다. 저번만큼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다른 순찰대는?"

길버트 경은 오른쪽에 있는 펠릭스에게 물었다.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신호를 놓쳤거나···."

"그쪽도 다른 매복소대의 지원에 나선 거겠지. 쳇!"

이미 이런 사태를 예상했던 길버트 경이었다. 아마 자신의 추측이 맞는다면 지금쯤 중부중계진 전선 일대에선 이와 비슷한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담당하고 있던 보빈 소대는 곤경에 처해있었다. 3기의 고램이 한곳에 뭉쳐있었다. 아군의 마이티 한 대가 가동 불능 상태는 아니었지만 동작이 어색했다. 아마도 팔이나 어깨에 경미한 피해를 입은 모양이었다.

그 주변을 적의 고램들이 포위하고 공격 중이었다.


중부중계진은 이곳만의 복잡한 지형 탓에 지형을 한 번에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당장 여기만 해도 얼핏 보면 훤히 트인 평지였다. 사방에 옅은 녹색이 듬성듬성 펼쳐져있어 더더욱 비슷한 높이로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높낮이가 다른 굴곡에 가려진 언덕 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지금처럼 검은 색의 물체가 다가오며 주변의 색과 대비가 될 경우에는 더더욱 알기 쉬웠다.


적도 아군의 신호를 보고 예비 고램 소대를 부른 것이었다.


잠시 멈춰 서서 지형과 상황을 파악한 길버트 경은 곧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우선 주변에 숨어있는 아군의 매복소대에 수신호로 지시를 내렸다. 전황이 불안하니 해결이 될 때까지 뒤에 따라오고 있을 피셔의 후속 부대에게 대기 명령을 내린 것이다.

길버트 경의 지시가 끝나자 매복하고 있던 소대의 마법사의 손에서 복잡한 신호가 날아올랐다.


이어서 칼과 펠릭스에게 전진 신호를 내린 후 통신을 연결했다.

"보다시피 01 포메이션을 쓸 수 없다! 그러나 너희 두 사람 실력이라면 동급의 미니트에게 절대 밀리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를 믿어라!"

"옛!"

"칼! 왼쪽을 부탁하네!"

"옛!"

길버트 경은 곤경에 빠진 포위된 보빈 소대의 고램 부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별 다른 구체적인 지시는 필요 없었다. 이런 경우를 상정한 매뉴얼이 이미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지시를 마친 길버트 경이 소리쳤다.

"돌격~!"

"하앗~!"

"이얏~!"

세 사람의 함성과 동시에 서서히 전진하던 고램들이 순간적으로 가속하며 튀어나가기 시작했다.



'쿠웅!!'

묵직한 충격음이 언덕에 퍼졌다.

"크윽~! 이 녀석!"

적의 미니트와 격돌한 펠릭스는 충격으로 뒤로 두어 걸음 튕겨 나오며 놀라고 있었다.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하앗~!"

펠릭스는 돌격의 충격으로 벌어진 간격을 이용해 서둘러 최대한의 오러를 불어넣은 휘둘러 치기를 넣었다. 고램의 거검을 몸 앞에서 거의 270도로 돌려서 내려치는 기술이었다.

'콰쾅~!'

"크윽."

이번에도 강력한 충격에 펠릭스와 상대는 한발씩 뒤로 물러섰다. 상대도 그 짧은 순간에 비슷한 기술로 받아쳐왔던 것이다.


이번에는 상대가 선공을 걸어왔다.

'부웅~'

'캉~! 치지익~!'

펠릭스와 상대의 거검이 마찰하며 불꽃을 튀기기 시작했다.

녀석은 한발 다가서며 반 박자 느린 찌르기를 걸어왔다. 펠릭스는 서부검술의 기본인 대화하는 방식을 살려 한발 물러서며 찔러오는 상대의 검을 수직으로 막아 세웠다.


이어서 검을 빼며 물러서는 상대에게 한발 다가서며 수평 베기를 날렸다.

'후웅~!'

'싸아악~!'

짧은 불꽃이 튀겼다. 녀석은 놀랍게도 이번엔 자신이 한발 물러서며 거검의 넓은 면으로 펠릭스의 공격을 스치듯 막았다.

"이 녀석! 알고 있는 건가?"

펠릭스는 상대방의 대응에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돌격부터 펠릭스의 휘둘러 치기, 상대의 전진 찌르기, 다시 펠릭스의 수평 베기까지 네 번의 공방이 있었다. 짧은 대결이었었지만 서로의 공수 대응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옆에서 누군가 본다면 마치 약속대련이라도 하는 듯 보였을 것이다.


"이런 녀석, 상대에게도 있었구나."

펠릭스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의 심정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상대는 최소한 자신과 비슷한 실력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 펠릭스는 곤란한 마음으로 슬쩍 주변을 살폈다.


펠릭스와 상대 미니트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미동도 하지 않은 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비록 지금 무의 수련의 관조의 상태는 아니었지만 펠릭스는 상대의 생각을 알 것 같았다.

왜냐하면 펠릭스도 같은 심정이었기 때문이었다.


6대6의 집단전이었다. 상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펠릭스로서는 처음 겪는 실전 집단전이었다. 거기다 지금 아군의 매복 소대 고램 중 마이티 한 대가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다.


보통은 이런 상황이면 한쪽이 피해를 입는 순간 전투는 일단락되었다. 상대는 구조와 함께 급하게 후퇴하고 보통은 그런 적을 쫒지 않는 게 동부 전선의 암묵적인 규율이었다. 하지만 시기가 좋지 못했다.


우선 적은 요 며칠사이 붉은 용 사냥 작전으로 갑자기 증강된 중부중계진의 전력에 뜻하지 않게 여기저기서 피해를 본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이쪽은 초반에 피해를 입은 마이티가 있었으니, 그리 쉽게 놓아주려 하지 않고 있었다.

거기다 지금은 서로 응원부대가 도착한 시점도 좋지 못했다. 결국 한바탕 난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 정해진 매뉴얼은 아군의 구조와 전선유지였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아군의 두 나이트급 고램의 역할이 중요했다.


후퇴를 하지 못하는 이상 적을 밀어내야만 한다. 먼저 피해를 입은 아군의 마이티를 다른 아군의 마이티가 보호하며 양 옆으로 감싼다.

동시에 아군의 나이트급 고램이 양 옆 끝으로 나서며 상대방을 압박해서 밀어내고 동시에 피해를 입은 아군의 고램을 중심으로 상대를 반원으로 감싸듯 포위하는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정해진 매뉴얼대로의 전술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기본 전술대로 하기에 문제가 있었다. 바로 아군 나이트급 고램의 실력이었다.


매복조의 나이트급 고램을 맡고 있는 선임기사인 보빈 경은 어떤지 모르지만 길버트 경의 실력은 그리 좋지 못했다. 한 마디로 기존의 약속된 전술대로 반 포위 상태를 만들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반면 길버트 소대의 두 마이티 라이더인 칼과 펠릭스의 실력이 뛰어났다. 때문에 길버트 경도 처음 돌격하기 전에 두 사람에게 자신들의 실력을 믿으라고 말했던 것이었다.


이 매뉴얼에 두 번째로 중요한 자리는 피해를 당한 아군을 보호하는 위치였다. 지금은 칼이 맡고 있었다..


적군의 입장이라면 당연히 피해를 입은 마이티를 노릴게 분명했다. 만약 아군이 반 포위진을 형성한다고 해도 중앙이 무너지면 오히려 역으로 수적 열세와 함께 각개격파를 당할 위험이 있었다.


다행이 칼은 정해진 임무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비록 상대를 압도하진 못했지만 피해를 입은 아군의 고램을 보호하면서도 1.5대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과연 칼이라는 감탄사가 나올만한 실력이었다. 덕분에 잔뜩 움츠려있던 보빈 소대도 살아나고 있었다.


반면 길버트 경은 간신히 동수를 이루고 있었다. 밀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상대에게 밀리지도 않고 있었다.


지금의 얽혀있는 실마리를 풀만한 누군가가 있다면 펠릭스와 보빈 소대의 피해를 입지 않은 나머지 라이더들 중 누군가였다. 하지만 이제 막 살아나기 시작한 보빈 소대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결국 펠릭스가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길버트 경이 지금처럼 상대 나이트급 고램을 계속 막아주고 자신이 앞의 상대를 격퇴한다면 반 포위 작전에서 오른쪽을 담당한 나이트급 고램의 역할을 자신이 대신 할 수도 있었다.


아니, 한발 더 나아가 칼이나 보빈 소대가 이대로 계속 버텨주고 자신이 앞의 상대를 물리친 뒤 길버트 경을 도와 상대 나이트급 고램마저 격퇴한다면 적을 완전 포위해서 전멸시킬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이나 아군의 다른 고램이 한 대라도 기동불능의 피해를 입는다면 역으로 이쪽이 전멸당할 위기이기도 했다.


"휴~ 문제는 이 녀석의 실력인데."

펠릭스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아마 상대 응원부대의 대장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미니트 라이더 중 실력이 뛰어난 이 녀석을 이 자리에 배치했을 가능성이 컸다.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상대나 자신이나 절대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이었다. 짊어진 부담이 너무 컸다. 바짝 긴장하자 입이 탔다. 머릿속도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자 펠릭스의 속에서 무언가 스멀스멀 올라오려는 것이 느껴졌다.

'힘을 원ㅎ···.'

"아니! 필요 없어!"

펠릭스는 어둠의 안내자의 목소리를 의식적으로 강하게 내리눌렀다. 그리고 주변을 힐끗 살폈다. 지금 자신의 옆에는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는 스승님과 친우인 칼이 있었다.


칼은 동작이 부자연스러운 아군의 마이티와 힘겹게 적을 상대하고 있었다. 길버트 경은 적의 흑기사와 검을 바인딩 한 상태로 힘겨루기 중이었다.

두 사람이 분투하는 모습을 보자니 돌격할 때 들었던 길버트 경의 목소리가 떠올렸다.

'스스로를 믿어라!'

그러자 용기가 솟는 듯했다. 이제는 이정도 불안감과 부담으로 유혹에 넘어갈 펠릭스가 아니었다.

"그래 어디 해 보자고! 으럇~!"

펠릭스는 힘차게 내딛으며 검을 내리쳤다.



'쿵~ 콰쾅!'

여섯 대의 고램이 서로 대치한 가운데 유독 두 고램이 격렬하게 부딪혔다. 나머지 고램들은 서로 견제를 하는 수준이라면 이 두 대는 정말로 사생결단을 내려고 작정한 모습이었다.

"크으윽~!"

펠릭스는 이빨을 있는 대로 꽉 다물었다. 가슴보호대를 하고 있는 대도 온몸이 흔들렸다. 오러를 전달하는 조종석 연결관들의 액체가 요동치고 있었다.

"하아앗!"

펠릭스는 필사적으로 상대의 오른쪽 사각으로 돌아들어가며 베기를 날렸다.

코디악 베어를 상대하며 나름 펠릭스가 찾아낸 고램의 약점과 마이티 고램의 특징인 기동성을 살린 전법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쉬이 그 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당황한 것은 처음 한번 뿐이었다. 거기다 상대도 나름 자신의 미니트 고램의 특징을 살려 펠릭스의 공격에 대응하고 있었다.

상대는 펠릭스의 공격을 왼쪽으로 한발 물러서며 자신의 검을 하단으로 넓게 휘둘렀다.

'텅~'

요란한 소리와 함께 펠릭스의 고램의 검이 튕겨졌다. 그때마다 조종을 위해 장착한 팔다리의 기구들로는 미친 듯이 충격의 피드백들이 펠릭스에게 돌아 왔다. 미니트 고램은 마이티 고램보다 힘이 뛰어났던 것이다.


기동성과 가동성이 뛰어난 마이티와 힘이 뛰어난 미니트, 각 소형 고램들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평소에는 그 차이가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실력이 엇비슷한 상대라면 얘기가 달랐다. 약간의 차이가 결정적일 수 있었다. 누가 자신이 가진 실력과 고램의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는가가 지금 대결의 단기승패를 좌우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두 사람 다 매 공격에 필사의 오러를 담고 있었다. 그 말은 장기전으로 갈수록 펠릭스에게 불리하다는 뜻이었다. 결국 오러의 대결로 치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칫! 설마 오러의 재능도 나하고 비슷한 건 아니겠지?"

이어지는 상대의 내려치기를 수평으로 막아 밀쳐낸 펠릭스가 투덜거렸다. 아무리 뚫어보려 해도 여간해서 빈틈을 찾기가 어려웠다.

마치 또 다른 자신을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런 느낌은 아마 상대도 마찬가지일터였다. 잠깐의 공방이 있은 후 두 사람은 다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좀 전부터 이런 흐름의 연속이었다. 필사의 공방이 이어지고 잠시 떨어져 숨을 고른 후 다시 접전이 이어졌다.

기동성과 가동성이 뛰어난 펠릭스는 어떻게든 녀석에게 바짝 달라붙어 근접전을 펼치려 했고 반면 힘이 뛰어난 상대방은 어떻게든 펠릭스를 자신이 강력한 공격을 날릴 수 있는 거리까지 떨어트려 놓았다.


그렇게 한바탕 싸운 후에는 또 이렇게 잠시 소강상태로 들어섰고 그동안 서로 머릿속으로 조금 전의 상황을 분석하며 필사적으로 수를 짜내고 있었다.


"절대 똑같은 패턴의 공격을 반복하지 마십시오! 상대가 대응수를 생각해 놓았다면 목숨이 떨어집니다."

어릴 적 고램 조종을 가르쳐 주면서 가문의 헨리가 하던 말이었다.

"검술이 복잡하고 화려할 필요는 없다. 간단해도 전력을 담은 강력한 일격이면 충분하지. 제식 검술은 그런 면에서 훌륭한 검술이다. 고램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야!"

자신에게 검술지도를 해 주던 드비어스의 조언도 떠올랐다.

"간단명료하면서 중복되지 않는 다양한 공격! 하지만 어떻게?"

두 사람의 조언을 동시에 떠올리면서 펠릭스는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어딘가 모순되는 두 사람의 조언들이었다.

"쳇! 타임아웃인가?"

상대 고램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펠릭스도 고램을 앞으로 전진시켰다. 일정한 거리가 되자 두 대의 고램은 서로 노려보며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선공은 펠릭스였다.

"하앗!"

'캉!'

펠릭스가 전진하며 상단 공격을 하자 상대는 자신의 검을 비스듬히 들어 머리 바로위에서 막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펠릭스의 검을 밀어내 전진하며 수평 베기를 해 왔다.

'부웅~! 탱!'

펠릭스는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아슬아슬하게 상대의 검끝을 자신의 검면으로 막았다.

"제길! 이러다간 끝이 없겠어!"

펠릭스는 초조해하며 소리쳤다.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실전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실제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지만 펠릭스가 느끼기엔 한 시간은 넘은 것 같았다.

아직 오러를 발출하는데 곤란함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상대가 쉬이 허점을 드러내지 않자 자신의 오러력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이 녀석 전법을 바꿨나?"

다시 공격해 들어가려던 펠릭스는 문득 상대의 자세를 보고 멈칫했다.

"끄응~ 하필이면···."

펠릭스의 치고 빠지기에 맞받아치기로 응수하던 적이 이제는 끌어들이기로 전법을 바꾼 모양이었다. 휘두르기가 아니라 방어를 위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취한 자세가 펠릭스의 눈에 익은 자세였던 것이다.


상단도 중단도 아닌 검을 비스듬히 가슴높이로 끌어올린 자세. 바로 레온이 특기로 쓰던 검술의 준비 자세였다.


물론 녀석이 레온을 알리도 없을 테고 레온의 검술은 더더욱 알 리 없을 것이다. 설령 안다고 해도 고램으로 그 검술을 쓰기는 무리였다.

가동성이 마이티보다 떨어지는 미니트였고 심지어 레온의 그 검술은 나이트급 고램으로도 무리였다.


녀석의 의도는 대충 펠릭스의 1차 공격을 방어한 후 그대로 바인딩 상태로 몰고 가서 힘으로 펠릭스의 고램을 붙잡아 두려는 것으로 보였다.


근접전을 노리는 펠릭스의 수를 이용하려는, 속이 뻔히 보이는 어설픈 작전일수도 있지만 자신의 고램 성능의 우위를 살리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전법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얕은 수를···. 하지만 덕분에 나도 새 작전이 떠올랐어!"

펠릭스는 빠르게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하앗!"

'부웅~!'

다가간 펠릭스는 검을 아래쪽에서 휘둘러 쳐 올렸다. 상대방이 취하고 있던 자세로는 방어하기 힘든 공격이었다. 거기다 상대의 의도를 완벽히 피하는 공격이기도 했다. 펠릭스의 예상대로 녀석은 자세를 풀고 뒤로 물러서며 서둘러 검을 하단으로 휘둘러 막았다.

'텅~!'

검이 짧게 부딪히며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동시에 두 대의 고램이 뒤로 물러섰다.


"큭! 이얏!"

'쾅!'

잠시 잃었던 균형을 찾자마자 펠릭스는 그대로 검을 아래로 강하게 내려쳤다. 마치 적을 위협하려는 듯이, 혹은 적의 고램이 자신의 앞으로 튀어나올 것을 예상한 것처럼.

그러나 상대 고램도 잠시 균형을 잃고 뒤로 물러서던 상황이었다. 다시 중심을 잡고 선 상대방은 펠릭스의 행동에 어이가 없다는 듯 펠릭스의 고램을 쳐다봤다.

그러나 펠릭스는 자신의 행동에 만족했다는 듯 검을 다시 끌어올렸다.

"됐어!"

펠릭스는 바닥에 난 구덩이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검을 어깨에 걸치곤 상대를 보고 덤벼보라는 듯 다른 손으로 까딱 까닥 손짓을 했다.


전투가 시작하기 전에 상대를 도발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한창 전투에 몰입해있는 도중에 이런 행동이라니.

상대방은 황당하다는 듯 잠시 멍하니 있더니 화가 났다는 듯 자세를 잡고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펠릭스도 자세를 잡더니 이번엔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다가오라고!"

조종석에서 다가오는 적을 보며 펠릭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서로서로 다가서며 물러나던 두 대의 고램이 어느 순간 갑자기 딱 멈춰 섰다.

멈춰선 위치는 펠릭스가 만들어 놓은 구덩이를 중심으로 서로 반대방향의 같은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이런, 눈치 챈 건가?"

상대방의 움직임에 펠릭스는 실망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빠르게 다가오다가 펠릭스가 만든 구덩이를 두 걸음 정도 남겨두고 갑자기 멈춰선 것이다. 그리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숙여 구덩이를 한번 쳐다보고 다시 펠릭스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쓱쓱 젓고는 검을 들어 올렸다.

"챗! 눈치 빠른 녀석 같으니, 어쩔 수 없지! 하앗!"

작전이 통하지 않자 펠릭스는 앞으로 나서며 검을 휘둘렀다.

'캉~!'

다시 서로의 거검이 격렬하게 마주치며 불꽃이 튀기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취한 자세를 보고 레온이 떠올랐던 펠릭스였다. 때문에 3학년 때 고램으로 레온을 이겼던 상황을 연출해 보려고 했던 것인데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이후 상황은 조금 엉뚱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두 대의 고램은 마치 펠릭스가 만들어 놓은 구덩이가 경계라도 되는 듯 구덩이를 중심으로 돌면서 검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쿵~!'

"윽!"


'콰앙!'

"으윽!"


'콰쾅!'

"크업!"

검과 검이 마주칠 때마다 펠릭스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신음이 튀어나왔다. 구덩이를 경계로 마주선 두 고램은 서로의 고램이 아니라 상대의 무기를 깨부수려는 듯 서로 검에 잔뜩 오러를 집중시켜 전력으로 검을 날렸다. 마치 서로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상대적으로 힘이 좋은 미니트였다. 지근거리가 아닌 이런 적당히 떨어진 위치에서 힘과 오러력을 겨루는 상황은 처음부터 녀석이 노리던 것이었다.

한편 구덩이의 위치는 지금의 전체 전투상황에서 딱히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펠릭스, 자신의 꾀에 스스로 빠진 꼴이었다.


우선은 상대에게 자신의 작전이 간파 당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 바람에 홧김에 맞선 것이 화근이었다. 동시에 이렇게 구덩이 주변에서 싸우다보면 어쩌면 전투에 몰입한 상대가 혹시 구덩이의 존재를 잊어먹고 함정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조금은 안이한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펠릭스는 그 결과를 온몸이 떨려올 정도의 피드백을 맞으며 격렬하게 후회 중이었다.

"으으윽! 제길~! 에잇!"

참다못한 펠릭스가 결국 먼저 구덩이를 뛰어넘어 달려들었다. 그러자 상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뒤로 물러서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카캉!'

"아앗! 아차!"

자신의 검이 상대의 가슴 부근에서 제지당하자 펠릭스는 서둘러 물러서려고 했다. 그러나 상대는 드디어 잡은 결정적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대로 검을 되돌려 결국은 자신이 원하던 바인딩 상태를 만들었다.

'텅!'

'치지직! 끼기긱!'

두 고램의 검이 머리 앞에서 마주치며 거슬리는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크으윽!"

그리고 펠릭스의 검이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빠질 작정을 하고 마주쳤다면 그나마 어느 정도 버티다 물러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충동적인 공격과 상대의 재빠른 대응에 당황하며 물러나려던 펠릭스는 그만 빠져나올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상황은 금세 악화되었다. 펠릭스는 버티기 위해 서둘러 자세를 고쳐 잡았다. 자세를 낮추고 왼쪽 무릎을 굽히고 오른발을 뒤로 뻗었다.

한편 상대는 본격적으로 밀어붙일 자세를 잡았다. 상체를 살짝 앞으로 굽혀 무게 중심을 상체와 검에 실어 펠릭스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드드드득!'

가뜩이나 적의 미니트는 상대적으로 마이티에 비해 힘이 좋았다. 힘으로도 밀리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펠릭스의 고램이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어엇?! 으윽!"

갑작스런 상황에 버티기 위해 펠릭스는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지렛대가 기울어진 형상이었다. 여기서 적의 힘에 밀려 팔이 더 내려가면 자신의 고램의 머리가 노출 될 것이고 힘이 빠진다면 상대는 자신의 검을 옆으로 쳐 내고 끝장을 낼 것이었다.

"크 큰일 났다! 으윽!"

문제는 발밑이 고정되지 않아서 그나마도 힘이 집중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뒤로 밀려가면 결국은 어느 순간 바닥에 뒹굴게 될 테고 그 결과는 역시나 좋지 못할게 뻔했다.

'어 어쩌지?'

지금 자신의 대결 승패에는 펠릭스 혼자만의 목숨이 걸려있는 게 아니었다. 펠릭스는 갑자기 눈앞에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질질 밀려가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펠릭스의 오른쪽 발에 무언가 걸렸다는 느낌이 오더니 밀리던 고램이 딱 멈췄다.

"?!"

잠시 의아해하던 펠릭스는 곧 어떤 상황인지 깨달았다. 뒤로 뻗었던 발이 자신이 파 놓았던 구덩이에 걸린 것이었다.

그러자 몸에 가해지던 힘이 다리를 통해 분산되기 시작했다.

"으윽! 하아앗!"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펠릭스는 필사적으로 검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그렇게 상대의 힘과 뒷발의 저항을 맞벽삼아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이번에는 상대가 당황한 듯했다. 힘을 가해 내리 누르려고 몸의 균형이 앞으로 쏠려있었던 녀석이었다. 힘으로 밀릴 리 없다고 생각한 녀석은 끝까지 자신의 자세나 위치를 바꾸지 않았다.

때문에 펠릭스가 몸을 거의 다 일으키자 양쪽 팔꿈치가 상체 옆구리에 바짝 붙은 채 어색한 자세가 되어 있었다. 거기다 상체가 뒤로 쏠려버렸다.


처음에는 자신이 높은 위치에서 내리 누리기에는 좋은 자세였으나 서로 비슷한 위치가 된 지금은 앞으로 밀어내기 편한 자세를 취한 펠릭스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두 대의 고램이 다시 마주선 상태였다. 펠릭스의 한발은 여전히 뒤쪽 구덩이에 걸친 채로 지탱하고 있었다.

힘에서 밀리지 않자 펠릭스는 바인딩된 검을 서로의 검 날밑이 맞닿을 정도까지 바짝 당겼다.

"어디 이것도 알아차릴 수 있는지 한번 볼까?"

펠릭스는 자신의 검 날밑을 상대의 검에 걸고 옆으로 비틀었다. 예전에 세비안을 노렸던 암살범이 쓰던 수법이었다. 녀석은 당황하며 검을 빼려고 뒷발을 옆으로 벌렸다.

"지금이다!!"

그 순간을 노리고 있던 펠릭스는 재빨리 움직였다. 상대가 발을 벌리던 반대방향으로 검을 밀어붙이며 동시에 자신의 발로 상대의 버팀 발인 앞발을 걸어 넘겼다.

'부웅~!'

미니트의 거체가 순식간에 기우뚱 하더니 옆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쿠웅~!'

곧이어 요란한 소음과 함께 미니트가 옆으로 쓰러졌다. 마치 레슬링의 허리매치기에 당한 형상이었다.

"휴~"

그제야 펠릭스는 가벼운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대결은 사실상 끝난 것이다.

펠릭스는 무언가 큰일을 해낸 듯 가슴이 뿌듯했다. 이제부터는 마치 정해진 공식 같은 것이었다.


예상대로 상대는 당황하여 서둘러 몸을 비틀어 바로하며 검을 내밀었다. 펠릭스는 자신의 검을 횡으로 눕혀 상대의 검을 막고 가볍게 밀어낸 후 수평으로 휘둘렀다.

'쓰덩!'

'터텅! 텅!'

상대의 양 팔뚝이 검과 함께 날아갔다. 펠릭스는 이어서 검을 머리위로 치켜 올렸다. 정해진 수순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이대로 내려치면 고램 거검의 특성상 상대의 머리와 함께 조종석이 있는 가슴의 절반까지 갈라질 것이다. 그 말은 상대 고램 라이더의 목숨도 끝이라는 뜻이었다.

거기서 잠시 망설이던 펠릭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흐읍!"

그리고 검을 내리치는 순간이었다.

"헛?!"

순간 눈을 뜨자 펠릭스의 고램과 쓰러진 상대 고램사이로 무언가 희끄무레 시커먼 물체가 끼어들었다. 그러나 펠릭스의 검은 이미 멈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쿠웅~!'

무거운 소리가 퍼졌다. 펠릭스의 거검은 중간에 끼어든 물체를 잘라버리고 쓰러져있던 상대 고램의 머리까지 박살낸 다음 끄트머리가 땅에 닿아 있었다.

하지만 무언지 모르는 중간에 끼어든 그 검은 물체 덕분에 쓰러져있던 미니트는 머리만 박살나고 조종석이 있는 몸통은 가까스로 무사했다.


"뭐 뭐야?"

펠릭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잘라낸 그 물체를 확인하기 위해 물체가 날아간 방향인 왼쪽으로 돌아갔다.

"위험해! 펠릭스!"

그 순간 갑자기 길버트 경의 다급한 목소리가 통신으로 들려왔다. 펠릭스의 시선은 다시 길버트 경이 있던 자신의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눈앞으로 검은 물체가 날아오고 있었다.

"허엇!"

다급한 펠릭스는 서둘러 검을 든 오른팔을 들어 막았다.

'쿠쿵~!'

고램이 확 밀려날 정도의 큰 충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을 위해 펠릭스는 머리를 가린 그대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뭐지? 스승님이 당한건가? 아니야,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렸어. 그렇다면 다른 적이 온 건가?'

정체불명의 적에게 불의의 기습을 당하자 가라앉았던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물러서며 빠르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펠릭스는 서둘러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제야 눈앞에 전체 상황이 들어왔다.


"펠릭스, 괜찮나?"

예상했던 적은 없었다. 대신 길버트 경이 다가오며 말했다.

"예. 저는 괜찮습니다."

"미안하네. 내 실수네. 깜빡 녀석을 놓쳤어."

길버트 경의 말에 펠릭스가 쳐다보니 흑기사 한 대가 자신이 상대하던 적 미니트의 목을 뒤에서 감싼 채 끌며 후퇴하고 있었다. 아마도 길버트 경이 상대하던 녀석인 모양이었다.

미니트의 목덜미를 감싼 녀석의 오른쪽 팔꿈치는 아래쪽이 잘려있었다. 잘려나간 부분은 펠릭스가 잘라냈던 적의 미니트의 팔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마도 펠릭스가 마지막 일격을 날릴 때 끼어들었던 검은 물체가 저 흑기사의 팔뚝이었던 모양이었다.


"꽤나 고전했던 거 같던데 괜찮은 거야?"

이번에는 칼의 미니트가 다른 쪽에서 펠릭스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응? 어. 그쪽은?"

그러자 칼이 한쪽을 가리켰다. 그쪽에는 나머지 적의 고램 4대도 후퇴하고 있었다. 적들은 후퇴하면서 서둘러 펠릭스가 상대했던 고램과 합류하고 있었다. 피해를 입은 다른 고램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인듯했다.


"잘했어! 펠릭스, 정말 잘했네! 덕분에 다들 무사할 수 있었네."

"아. 네, 스승님···."

길버트 경의 칭찬에 펠릭스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제야 뒤를 돌아봤다.


보빈 소대의 고램들이 피해를 입은 마이티를 둘러싸고 있었다. 피해를 입은 마이티 조종석이 열리며 라이더가 나오고 있었다. 다행이 별다른 부상은 없어보였다.

역시 화이트 고램에서 내린 보빈 경이 삿대질을 해 가며 뭐라 고래고래 야단을 치고 있었다. 라이더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듣고만 있었다.

"정말 다행이군요···."

그 모습을 보며 펠릭스는 힘없이 대답했다. 어느새 전투가 끝나 있었다. 뒤에서 전투 종료를 알리는 아군 마법사의 신호가 올라가고 있었다. 적은 후퇴하고 주변은 평소의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급격하게 타올랐던 흥분이 빠르게 식어버린 만큼 뭔가 맥이 빠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흑기사가 끼어들었다. 덕분에 적의 미니트 고램 라이더는 목숨을 건졌고 펠릭스도 무의미하게 목숨을 빼앗지 않고 대결을 마쳤지만 대신 무언가 허탈했다.

마치 자신이 사냥물을 새치기당한 느낌이었다.


뒤늦게 보빈 소대의 선임기사들이 고마움을 전해오고 축하를 해 왔지만 어쩐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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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 289 +26 16.11.16 2,661 105 34쪽
» 288 +24 16.11.07 2,953 121 28쪽
288 287 +24 16.10.31 2,914 114 31쪽
287 286 +28 16.10.21 3,129 111 14쪽
286 285 +32 16.10.18 3,497 112 37쪽
285 284 붉은 용 사냥. +28 16.09.25 3,992 121 26쪽
284 283 +22 16.08.28 4,227 110 33쪽
283 282 +50 16.08.22 4,074 136 24쪽
282 281 +38 16.07.23 4,179 129 17쪽
281 280 +32 16.07.07 4,439 126 25쪽
280 279 +32 16.06.30 4,383 129 32쪽
279 278 +10 16.06.22 4,464 139 26쪽
278 277 +8 16.06.18 4,269 12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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