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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ter 님의 서재입니다.

펠릭스전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夢ster
작품등록일 :
2014.12.22 00:00
최근연재일 :
2016.12.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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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25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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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284 붉은 용 사냥.

DUMMY

284


"으헉! 으아아아~!"

갑작스레 비명이 퍼졌다. 펠릭스가 소리를 지르더니 자신의 침상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뭐야 펠릭스?"

"왜 그래?"

사관실에서 같이 잠을 자던 칼과 레논이 깜짝 놀라 깨어나 물었다.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악몽을 꾼 모양입니다."

펠릭스는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래? 흐아암~"

레논은 하품을 하고는 금세 다시 자리에 누웠지만 칼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계속 펠릭스를 바라봤다.

"정말 괜찮은 거야?"

칼의 질문에 펠릭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표정이 상당히 어두웠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또 한 사람이 펠릭스의 침상 옆으로 다가왔다. 길버트 경이었다.

"설마 또 그걸 본거냐?"

"스승님···."

펠릭스는 곤란한 표정으로 잠시 길버트 경을 쳐다봤다.

길버트 경의 손에는 책이 들려있었다. 사관실 끝 선임기사의 침상에는 아직도 등불이 켜져 있었다. 그때까지 잠들지 않고 책을 읽고 있던 길버트 경은 펠릭스의 상태와 표정을 다 지켜봤을 것이었다.

펠릭스는 거짓말을 할 수 없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 그거라뇨? 펠릭스, 너 설마?"

길버트 경의 말에 칼이 놀라서 침상에서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러자 길버트 경은 잠깐 한숨을 쉬고는 칼에게 말했다.

"칼 경, 가서 에스턴 병대장을 불러오게."

길버트 경의 말에 칼은 재빨리 자신의 침상에서 내려와 밖으로 향했다.

야밤에 갑작스레 사관실이 분주해지고 있었다. 안드레아와 드비어스는 병동에 있었다. 피셔는 경계근무라 없었다. 막 잠이 들려던 레논도 눈을 비비며 다시 일어나야만 했다.




"그림자처럼 어두운 모습으로 한손을 뻗어 재 팔을 잡은 채 흰 이를 드러내며 웃더군요."

에스턴 병대장이 도착하자 길버트 경과 에스턴 병대장은 먼저 펠릭스의 상태를 살폈다. 별 이상이 없는 듯하자 펠릭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던 것이다.

"그거뿐인가?"

길버트 경이 다시 물었다.

"그게··· 그 그림자의 왼쪽 어깨에 빨간색 보호대가 매어져있었습니다."

펠릭스는 망설이다 결국 마지막 말을 털어놓았다. 얘기를 들은 길버트 경과 에스턴 병대장은 살짝 의외라는 표정으로 서로 바라봤다.

"그게 뭐야? 그럼 어둠의 안내자를 본 게 아니라 레드숄더 소동 때문에 악몽을 꾼 거 아닙니까?"

펠릭스의 얘기를 다 듣고 나자 레논이 길버트 경과 에스턴 병대장을 보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으음- 펠릭스, 혹시 최근에 악몽을 꿀만한 일이 있었나?"

길버트 경이 펠릭스를 보며 물었다. 그러나 답변은 펠릭스가 아니라 칼이 받아서 했다.

"혹시 저녁에 봤던 그거 때문인 거야?"

칼의 얘기에 다들 무슨 얘긴가 싶어서 칼을 쳐다봤다. 그러다 무슨 얘긴지 생각났다는 듯 다들 인상을 찌푸렸다.



이른 저녁 레스숄더에게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램들은 이날 사람들을 크게 분노하게 만들었다. 특히 그동안 계속해서 레드숄더의 복귀를 부정하던 지휘부에 기사들의 반발은 상당히 거셌다.


중부중계진의 작전관이 뒤늦게 길버트 경을 비롯해 부대 최선임 기사들을 여럿 대동해 나타난 것도 이런 다른 기사들의 분노를 다독거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 소란은 결국 예정에 없던 전체회의까지 열리게 만들었다. 기사들은 작전관과 지휘부에 레드숄더가 다시 나타난 것을 인정할 것과 대책을 강구해야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사람들이 대강당으로 몰려가는 동안 길버트는 문득 칼과 펠릭스가 엉뚱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아군의 고램들을 싣고 온 야크수레를 보고 있지 않았다. 대신 다른 기사들이 신경 쓰지 않는 북문의 어두운 기둥 앞에 모여 있었다.

그곳에는 순찰부대원들이 같이 끌고 온 크로비스군의 고램 두기가 아무렇게나 방치되어있었다.

"뭘 보고 있나?"

"아, 스승님."

길버트가 다가가자 두 사람이 자리를 벌렸다. 길버트가 양쪽의 칼과 펠릭스, 두 사람의 표정을 살펴보니 극과 극이었다. 칼은 무언가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듯 한 표정이었으나 펠릭스는 잔뜩 혐오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건···? 그렇군. 이번에도 역시 남아있었군."

길버트는 두 사람이 짓고 있는 표정의 정체를 바라봤다.


두 기의 크로비스 군의 고램이 기둥에 기대어 있었다. 아마도 아군에게 당한 듯 고램들은 엉망으로 부서져있었다. 머리부터 천천히 살펴보며 내려오던 길버트 경의 시선이 블랙나이트의 조종석에서 멈췄다. 그리곤 곧 자신도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쯧! 아직도 이런 짓을!"

고램의 조종석에는 확연한 관통상이 나 있었다. 그것도 등 뒤에서부터 뚫린 모습이었다.



고램의 등장으로 기사도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것은 사실이었다. 고램이 포함된 혼전 중에 기사들이 옛날처럼 기사도를 앞세워 서로의 명예를 걸고 정정당당하게 기예를 겨루는 것은 이제는 거의 볼 수가 없었다. 하물며 고램과 레인저기사들 사이에는 대결 같은 건 성립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정도라는 것이 있었다. 드물긴 하지만 아직도 상황에 따라 고램대 고램 간, 기사 대 기사 간의 예를 잦춘 1대1 대결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전쟁터임에도 여전히 서로 간에 피하는 금기도 존재했다. 그 중 가장 비난받는 행위 중 하나가 상대의 뒤에서 찌르는 것이었다.


뒤에서 찌르는 행위는 떳떳하게 자신을 밝히지 못하는 비겁한 암살범들이나 하는 천한 행위로 취급받았다. 설령 같은 아군이라도 그런 짓을 한 자는 부대 내에서도 비난받거나 심하면 작위를 폐위 당했다.


길버트는 등 뒤에서 찌른 것으로 보이는 검흔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아군이 한 짓은 아닌 모양이군."

"예, 아마도 레드숄더라는 녀석이 한 짓 같습니다."

길버트 경과 칼, 펠릭스는 고램에 난 검흔을 분석해보며 말했다. 나름 검을 업으로 삼은 이들이었다. 흔적을 보면 무엇에 어떻게 당했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보통 고램들이 분기별로 보급될 때 같이 분배되는 공방의 검들이 있었다. 그러나 전선의 라이더들은 대부분 공방에서 보급되는 그 검을 그대로 쓰지 않았다. 다들 자신들이 쓰기 편한 형태로 고치거나 바꿔서 쓰곤 했다.

그러다보니 아군이나 적이나 검의 형태가 천차만별 제각각이었다.


지금 적의 블랙나이트에 나 있는 검상은 단면이 다이아몬드 형태의 검에 당한 것이었다. 이번에 당한 아군의 고램들이나 이 고램들을 싣고 온 순찰대의 고램 중에는 그런 형태의 검을 쓰는 라이더는 없었다.

그러나 쓰러진 적의 미니트가 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검의 끝부분이 커다란 다이아몬드 형태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 척 봐도 처음 받은 보급형 검 그대로인 것으로 보였다.


레드숄더는 미니트를 조종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전부터 자군의 고램 조차도 버리고 간다는 의혹이 있던 레드숄더였다. 녀석도 저 미니트처럼 보급형 검을 그대로 사용했다면···.

의심의 여지는 없어보였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겁니까? 그것도 아군에게 말입니다."

펠릭스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고램을 보며 물었다. 칼도 길버트를 보며 물었다.

"개인적인 원한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저 꼴을 볼 때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입막음을 하려고 했다거나."

길버트도 답변대신 자신의 추측을 내 놓았다. 블랙나이트의 상태를 볼 때 조종석을 뒤에서 공격당할 즈음에는 이미 행동 불능에 빠진 뒤로 보였다.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지. 보안대에서 하는 말을 듣자하니 크로비스의 포로들도 레드숄더에 대해서는 자랑은커녕 처음 듣는 얘기라는 태도라니."

"으음-"

"이것 참!"

세 사람은 답답하고 씁쓸한 심정으로 잠시 고램들을 쳐다봤다. 순간 열려있는 북문 쪽에서 가볍게 바람이 일었다.

"응? 허업!"

"우욱-"

"이게 대체 무슨···?"

바람을 타고 갑작스럽게 비릿한 악취가 퍼진 것이다. 세 사람은 동시에 바람이 불어온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악취는 북문 요새밖에 세워놓은 마차의 포장이 바람이 날리면서 난 것이었다.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악취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마차로 다가갔다.


마차는 요새 문의 그늘 아래에 주차되어 있었다. 주변에는 외곽 경비를 보는 기사와 이번에 고램들을 회수해온 순찰대원으로 보이는 병사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도 악취를 참으려는 듯 코와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잠깐! 멈추게!"

선두에 서서 다가가던 길버트 경이 요새 문을 나서기 전에 손을 들어 칼과 펠릭스를 제지했다.

"···?"

"스승님?"

"칼, 펠릭스, 우리는 아무래도 보지 말고 그만 돌아가는 게 좋겠네."

"예?"

"대체 뭔데 그러십니까?"

"순찰대 선임기사가 누군지, 일처리에 제법 센스가 있군. 적군의 저 고램들과, 특히 저 마차를 요새 안 밝은 곳으로 들였다간 오늘은 정말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뻔했어."

"예? 아!"

길버트의 말에 칼은 잠시 의아해하다 곧 마차의 정체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마차의 정체를 깨닫지 못한 펠릭스였다. 궁금한 마음에 길버트 경이 가린 팔 너머로 마차를 힐끗힐끗 살폈다.


그때였다.

다시 바람이 휙 불면서 마차의 포장이 넘겨졌다. 그러다 날리는 포장이 마차내용물 무언가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그 무언가가 마차 아래쪽으로 축 널브러졌다. 동시에 늘어진 그 물체를 타고 무언가 액체가 주루룩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업! 우욱!"

그제야 마차의 정체를 알게 된 펠릭스는 한쪽 구석으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칼이 따라와 등을 두드려주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겨우 레논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녀석이 지나간 자리에는 적, 아군 할 것 없이 70여구의 레인저들의 시체와 부서진 다섯 기의 고램만이 남아있다는 거지."

그때 펠릭스는 레논이 한 말을 머릿속으로만 이해했었다. 그것을 이제야 실감하게 된 것이었다.


마차의 화물의 정체는 70여구의 시체였던 것이다.




마차의 존재는 그날 전체 회의가 끝난 후에야 알려졌다. 길버트 경의 말대로 그날 일처리를 한 순찰대의 선임기사가 제법 센스가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 마차의 존재를 알게 된 요새 기사들은 또다시 분통을 터트렸던 것이다.


칼의 말에 그 광경을 떠올린 사관실의 사람들은 잠시 침묵했다. 펠릭스가 아니라도 누구라도 악몽을 꿀만한 경험이었다.

"그럼 나는 근무를 나가봐야하니까 대신 부탁하네."

"예. 길버트 경."

길버트 경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며 나서려했다. 일부러 에스턴 병대장을 불러온 이유였다.

펠릭스가 겪은 것이 어둠의 오러인지 단순한 악몽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자신이 없는 동안 만약을 대비해 펠릭스의 상태를 봐달라는 뜻이었다.

나서려는 길버트 경을 펠릭스가 불러 세웠다.

"저기 스승님, 그리고 에스턴 병대장."

"음?"

"예."

"무의수련을 하면 저는 정말 나아지는 겁니까? 어둠의 오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겁니까?"

펠릭스의 물음에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고는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먼저 길버트 경이 말문을 열었다.

"펠릭스, 뭔가 오해를 하는 거 같은데. 처음 이 수련법에 대해서 가르쳐 줄 때도 말했었지만 무의 수련은 단순히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법이네. 어둠의 오러의 증상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니야."

"하지만 스승님은 수련을 통해 엑스퍼트 중급에 오른 후로는 더 이상 어둠의 안내자를 만나지 않으셨다고···."

"그러니까 그 점은 명확하지가 않다는 거네. 무의 수련 덕분인지 아니면 엑스퍼트 중급에 오른 덕분인지 말일세. 그리고 사실···."

마지막으로 무언가 말을 하려던 길버트 경은 잠시 말을 망설였다. 그리곤 슬쩍 에스턴 병대장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에스턴 병대장이 길버트 경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건 제가 얘기하죠. 어차피 펠릭스 경도 이제 알 때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두 사람의 태도에 펠릭스는 짐짓 걱정스런 표정으로 에스턴 병대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궁금해 하기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칼과 레논도 마찬가지였다. 새 사람 모두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에스턴 병대장에게로 눈을 돌렸다.


"아시다시피 저는 엑스퍼트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펠릭스 경도 가까이에서 느낄 정도로 어둠의 오러의 기운이 여전히 남아있죠. 하지만 그래도 무의 수련을 한 이후로는 어둠의 안내자를 만난 적은 없습니다."

"엇?"

"그러고 보니···."

에스턴 병대장의 말에 칼과 펠릭스는 그제야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이곳에서 무의 수련을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펠릭스는 다른 소대의 어둠의 오러의 유혹을 느꼈던 인물들을 몇몇 만났었다. 직접 만나서 무의 수련의 효과도 확인할 겸 인사도 시킬 겸해서 길버트 경이 주선한 일이었다.

펠릭스는 그들 대부분에게서 길버트 경처럼 더 이상 어둠의 오러를 느낄 수 없었다.

때문에 펠릭스는 길버트 경의 말처럼 무의 수련을 하면서 엑스퍼트 중급에 들면 어둠의 오러 증상이 사라질 거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엑스퍼트 중급에 들어선 경지였다. 하지만 눈앞의 에스턴 병대장은 전혀 다른 케이스였다.


에스턴 병대장은 일반 병사로 원래는 오러를 쓰지 못했다. 그러다 실전에서의 어떤 계기로 어둠의 오러에 눈을 뜬 후 길버트 경을 만나서 무의 수련을 실천한 경우였다.

지금은 오러 유저로 각성하기는 했지만 펠릭스처럼 타고난 오러에 대한 재능이 부족했던 탓인지 혹은 너무 늦게 오러에 각성한 탓인지 장래 발전 전망은 펠릭스 보다 어두웠다.

나름 오러의 수련에 밝은 안드레아나 드비어스가 예측하기에 평생을 수련해도 기사급의 엑스퍼트에도 도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또한 펠릭스는 사관이었고 에스턴 병대장은 그 아래에서 병사를 통솔하는 위치였다. 특히 에스턴 병대장은 길버트 경을 대신해 무의 수련을 펠릭스에게 가르쳐주기도 했다. 당연히 자주 접촉해야했지만 그럼에도 에스턴 병대장과 펠릭스는 일부러 서로 소대에서 가까이 가지 않는 관계였다.

특히 펠릭스가 스스로 어느 정도 스스로 무의 수련을 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더더욱 그랬다.


어둠의 오러 때문이었다. 지금도 펠릭스는 에스턴 병대장에게서 어둠의 오러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에스턴 병대장도 그 점 때문에 일부러 펠릭스를 피해왔다.

소대원들과 어느 정도 사이가 좋아진 지금 에스턴은 펠릭스가 소대에서 유일하게 깊게 사귀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당연히 깨달았어야 했을 부분을 너무도 쉽게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을 펠릭스는 알아차렸다.


엑스퍼트도 아닌, 더욱이 지금도 어둠의 오러 기운을 풍기는 에스턴 병대장이 무의 수련 이후로 어둠의 안내자를 만난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무의 수련을 한 이후로 저는 어둠의 안내자를 다시 만난 적은 없습니다만 결코 사라진 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여기···."

에스턴 병대장은 주먹을 들어 자신의 가슴 한쪽을 가볍게 두드렸다.

"여기 어딘가에 녀석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스턴 병대장은 이번에는 길버트 경을 힐끗 돌아봤다. 그러자 길버트 경도 에스턴 병대장처럼 주먹을 들어 가볍게 자신의 가슴 한쪽을 두드리며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라네. 두 번 다시 나온 적은 없지만 녀석이 여기 어딘가에 희미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네. 그리고 이건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거야."

"예?!"

"스승님?!"

"그렇다면?!"

칼과 펠릭스, 레논 세 사람은 놀라서 동시에 입을 벌렸다. 길버트 경과 에스턴 병대장은 세 사람에게 확답을 주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다시 말하지만 무의 수련은 어둠의 오러의 치료법이 아니라는 뜻이지."




강당에서는 전체회의가 한창이었다. 오늘도 기사들은 작전관과 부대 선임기사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에~ 일단 베인브릿지 사령관에겐 따로 보고를 했고 그쪽에서도 사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답변이 왔어."

"이런 제길!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아!"

"그것보다 어쩔 거냐고?"

"대책을 내 놔야 할 거 아니야!"

"나한테 화를 내지 말라니까! 그새 잊은 거야? 나도 너희들처럼 라이더 출신이야! 비록 지금 여기 중계진의 작전관 직을 맡고는 있지만 베인브릿지와 같은 편이 아니라고!"

기사들의 득달에 결국 작전관의 성질이 터지고 말았다. 이어서 서로 험한 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회의장 뒷벽에 팔짱을 끼고 기대어있었다. 회의 분위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말단 신입사관인 자신이 끼어들 자리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전날 들었던 에스턴 병대장과 길버트 경의 말을 생각 중이었다.

"어쩌면 어둠의 오러에 완벽한 치료법은 없는지도 몰라. 다만 이 수련법을 일정이상 익힌 이들 중에 아직 다시 발발한 이들이 없다는 점을 지금은 위안으로 삼아야 할 거야."

저녁 길버트 경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었다.

"일정수준 이상이라···."

펠릭스는 길버트 경의 말에 자신의 경우를 비춰보며 비교해보고 있었다.


에스턴 병대장의 경우는 펠릭스에게는 상당히 참고할 만한 상황이었다. 펠릭스도 에스턴 병대장 만큼은 아니었지만 타고난 오러의 재능이 부족하다는 주변의 일반 평가였다.

"그렇다면, 내가 빨리 엑스퍼트의 다음 단계에 오르지 못한다면 에스턴 병대장과 비슷한 상황이 되는 건가?"

그나마 에스턴 병대장은 그 일정수준의 무의 수련 단계에 오른 경우였다. 사실 오러의 수준이 낮아서 그렇지 무의 수련 연수로만 본다면 길버트 경 다음으로 길었다.

그래서 그런지 길버트 경이나 에스턴 병대장은 분위기가 상당히 닮아있었다.


두 사람 모두 기사들과 부대, 혹은 일반 병사들을 지휘하는 입장이었다. 기사들 중에도 피셔 경처럼 빈민농노 출신도 있었다. 하지만 일반 병사들은 도시 슬럼가나 용병 등, 더 거친 출신들도 있었다.

당연히 소대 지휘관들 중에는 입에 욕을 달고 다니거나 심한 경우 거친 소대원들의 지휘를 위해 상당히 폭력적인 분위기의 지휘관이 있는 소대도 있었다. 하지만 길버트 소대는 다른 소대와 달리 험하거나 거친 분위기가 아니었다.


길버트 경과 에스턴 병대장의 외견은 평소 살짝 미소를 띤 듯 한 편한 아저씨의 인상이었다. 평소 지휘를 할 때도 욕이나 폭력은 쓰지 않았다.

물론 소대의 평소 지휘는 리차드슨 경과 에스턴 병대장이 하는 편이었지만, 아무튼 느슨한 소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소대는 상당히 잘 돌아가는 편이었다.

외부인들은 그런 길버트 소대를 보고 복무연수가 오래된 사람들이 많아서 라고도 했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만났던 다른 무의 수련자들도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었네. 수련을 오래하면 그렇게 변하는 건가?"

펠릭스는 다른 소대의 무의수련자들을 떠올리며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그들 중에도 수련기간이 오래된 사람들 일수록 길버트 경이나 에스턴 병대장 같은 분위기와 표정이었던 것이다.

좋게 말하면 마음 좋은 아저씨 미소를 띤 얼굴이었지만 나쁘게 말하면 속을 알 수 없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펠릭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는 거야?"

어느새 펠릭스의 옆에 칼이 다가와 있었다. 칼도 펠릭스처럼 팔짱을 낀 채로 회의실 벽에 기대었다.

"응? 아, 어제 일을 좀···."

"어제? 아~ 하긴, 그 얘긴 확실히 좀 충격이었지. 설마 무의 수련으로도 어둠의 오러 증상이 완치되는 게 아니었다니···. 음? 하하! 뭐야? 펠릭스, 너 설마 그거 때문에 걱정 되서 그러는 거야?"

"아니, 아니야! 그런 건 아니고."

칼의 말에 펠릭스는 잠시 쓴 웃음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검문소에서 스승님이 처음 무의 수련에 대해서 설명하실 때 그게 어둠의 오러에 대한 치료법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었어."

"그럼 그동안은 우리가 착각했던 건가?"

"뭐 그날 상황은 그럴 수밖에 없었잖아? 그날 이야기는 어둠의 오러의 치료나 무의 수련에 대한 내용보다는 주로 스승님의 경험담들이었으니, 하지만 떠올려보면 스승님은 분명 그 와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긴 하셨어. 무의 수련은 단순히 명상법이라는 점과 엑스퍼트 중급에 오르는 게 완전한 정답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의 수련이 어둠의 오러에 대한 치료법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으셨지."

"음~ 듣고 보니···. 그러면 뭐야? 결국 어둠의 오러에 대한 완벽한 치료법은 결국 없는 건가?"

"글쎄?"

펠릭스의 대답에 칼은 머리를 만지며 생각을 하더니 갑자기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 하지만 스승님도 참! 그러면 그렇다고 그때 미리 말씀을 해 주시면 좀 좋아? 정말 뭐든 바로 얘기해 주시는 법이 없으시다니 까!"

"내 생각엔 나름 나를 배려해 주신 게 아닐까 싶어."

"응? 배려?"

"칼, 너도 알잖아? 스승님은 알게 모르게 우리나 소대원들을 많이 배려해 주신다는 걸. 만약 그때 스승님이 무의 수련이 어둠의 오러에 대한 완벽한 치료나 대응방법이 아니었다고 확실히 말해주셨다면 어땠을까? 내가 과연 지금처럼 스승님이나 에스턴 병대장의 말을 굳게 믿고 수련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흐음, 듣고 보니 그렇긴 하군."

"그리고 어제 마차건만 해도 그래."

"응? 마차 건이 왜? 그건 그냥 악몽으로 판명된 거 아니었나?"

"내 꿈 말고 그 원인이 된 거 말이야."

"원인? 아~ 그거."

다시 전날 그 마차를 떠올린 칼은 인상을 찡그렸다.

"칼, 넌 여기오기 전에 그런 거 본 적 있어?"

펠릭스의 질문에 칼은 잠시 말이 없었다. 싫은 기억을 떠올리는 게 분명한 표정이었다.

"펠릭스, 너도 알겠지만 가끔 영지의 겨울 몬스터 몰이가 끝난 후에 놓치는 경우도 있잖아?"

"그래. 때문에 겨울 내내 순찰대를 조직해서 영지를 돌잖아. 나도 돌아본 경험이 있지."

펠릭스도 많지 않지만 일리아드 영지 이곳저곳을 다른 기사들, 병사들과 그렇게 돌아본 경험이 있었다.

"지금 남부의 남은 영지들은 대부분 동서 양쪽으로 몬스터와 맞서야 하니까 우리는 그런 경우가 다른 지역보다 좀 많은 편이야. 그리고 상대하는 몬스터의 숫자도 많다보니 그 중에는 놓친 몬스터 무리의 규모가 큰 경우도 있고. 그게 어쩌다 드물게 영지 경계 근처에 새로 생긴 허가받지 않은 작은 개척촌을 덮치는 경우도 생기는데···. 그러면 끔찍한 광경이 펼쳐지기도 하지."

"으음~"

칼의 얘기에 펠릭스는 상상이 된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동부는? 펠릭스, 너희 영지에는 그런 일 없었어?"

"우리는···. 에드나 다른 녀석들 얘기를 들어보면 북쪽이나 북동쪽은 험하다고 들었지만 남쪽에는 대형몬스터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 편이라서. 특히 일리아드 영지는 동부에서도 남서쪽이라, 페로우 기사단장이나 기사들은 매년 인원이니 고램이 부족하다며 우는 소리를 하지만 적어도 마을에 큰 피해가 날 정도로 몬스터가 침투한 적은 없었어."

"그거 다행이군. 몬스터에 당한 시신은 일반 시신과 달리 끔찍하거든."

칼의 말을 마치자 두 사람은 잠시 서로 말없이 그렇게 있었다.


"그런데 펠릭스, 좀 전에 마차건도 그렇다니 그게 무슨 얘기야? 그거랑 스승님의 배려심이랑 무슨 관계라는 거야?"

"나 말이야. 작년 겨울에 노엘의 전투관련 기록들을 찾아본 적이 있거든. 그러면서 노엘의 최후에 대해서 떠올려봤던 적이 있어."

"노엘의 최후?"

"그래, 오러필드를 내세워 돌진하는 노엘의 기사들과 그 앞을 막아선 고램들. 결과는 어땠을까? 뻔 하지 않았을까?"

"마치 어제 그 마차의 시신들처럼?"

칼의 질문에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둘 다 고램 라이더였다. 오러를 씌운 고램의 거검에 사람이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았다.

"어제 스승님이 마차에 다가가려는 우리를 막으신 건 아직은 우리에게 가능한 전쟁의 참혹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으셨던 게 아닐까? 아마 주원인은 내가 다시 자극받아 어둠의 안내자를 만날까봐 걱정하신 때문이겠지만."

"흐음~ 그런가?"

"어제 스콧도 그랬잖아? 로벨 녀석 첫 실전을 거하게 치렀다고. 때문에 그 충격으로 지금은 미들사이드 요새에 요양 겸 가 있다고."

"음, 로벨 녀석은 남부인 답지 않은 편이라, 사실 녀석은 사는 곳도 영지 수도근처라 안전하다고. 그러니 녀석은 겨울 몬스터 몰이도 거의 해본 적이 없을 걸? 남부인 치고는 좀 여리다고."

"모르겠어? 칼?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아. 드비어스 경도 전에 얘기했잖아? 내 문제점도 마음이 여린 점이라고. 칼, 너는 본 경험이 있다고 했지만 나도 로벨처럼 어제 그런 마차에 한가득 쌓여있는 시체 같은 건 본 적이 없다고. 그것도 그 시체가 고램에 당한 시체라고 한다면···."

"으음~"

펠릭스의 말에 칼도 싫은 표정을 지었다.


칼도 펠릭스도 아직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심지어 몇 주 전 동부 중계진에서 적의 고램부대에 둘러싸여 있다가 10대의 미니트를 부수고 탈출할 때에도 일부러 사람을 해치는 것은 피했다.


동부전선은 다른 곳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었다. 그렇다고 피비린내 나는 혈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길버트 소대도 나름 이번 동부 중계진에서 적의 상급 엑스퍼트 기사를 만나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그와 비교도 되지 않는 피해를 입은 소대도 주변에 꽤 있었다.

당장 동기인 로벨의 레인저소대는 소대를 재편성해야 할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 거기다 이곳 중부 중계진에 지금 예정에 없는 전체 회의가 벌어진 이유는 2개 고램 소대가 전멸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아직 그런 피투성이의 전쟁의 본 모습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린 아주 운이 좋은 건가?"

"아니면 저분 덕분에 과분한 과보호를 받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두 사람은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회의장은 여전히 혼란 중이었다. 한창 기사들에게 공격받는 연단의 작전관 옆에는 부대의 선임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그들의 스승님인 길버트 경의 모습도 있었다.


작가의말


추석은 타격이 크네요.

가족들과 대판 싸웠습니다.

그나마 명절에 큰 집이라 친척들 맞을 준비며

제사 준비 하느라 크게 번지지는 않았네요.


다만 제가 정신적으로 받은 타격이....


거기다 이넘의 새로 산 노트북은 정말 집중하기 어렵군요.

키보드 배치도 정말 마음에 안들고... -_-+


어떻게 가능 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다음 주 부터는 가능하면 최소한 2~3일에 한편은 올려 보도록 노력 해 보겠습니다.


늦어져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선작 유지해 주신 분들이 4천명 이라니.

거기다 오늘 쪽지 확인 하니 또 어느 분이 과분한 후원을...


좀 더 노력하라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부족한 글 봐 주시는 독자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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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 288 +24 16.11.07 2,954 121 28쪽
288 287 +24 16.10.31 2,915 114 31쪽
287 286 +28 16.10.21 3,130 111 14쪽
286 285 +32 16.10.18 3,498 112 37쪽
» 284 붉은 용 사냥. +28 16.09.25 3,994 121 26쪽
284 283 +22 16.08.28 4,228 110 33쪽
283 282 +50 16.08.22 4,076 136 24쪽
282 281 +38 16.07.23 4,180 129 17쪽
281 280 +32 16.07.07 4,440 126 25쪽
280 279 +32 16.06.30 4,384 129 32쪽
279 278 +10 16.06.22 4,465 139 26쪽
278 277 +8 16.06.18 4,270 12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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