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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오면 당신은 설 것이다.

아카데미 은퇴 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만찬가
작품등록일 :
2023.01.25 09:01
최근연재일 :
2023.03.1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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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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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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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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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카데미의 흑막 (3)

DUMMY

그녀가 용사의 동료 자격으로 강사 직책을 맡게 되었음에도 학생들에게 존중을 받지 못한 데에는 내 책임도 없지 않다.


왜냐하면 원정길을 다니는 내내 그녀에게는 머리에서 다리까지 가리는 로브를 씌워놨거든.


원정대를 운영하던 당시에는 홍보하거나 행사에 참여하는 일 등의 외부 행사는 별로 취향에 맞지 않아 참여하지 않았고 때문에 원정대 멤버 전원을 아는 사람들은 대륙 전체를 통틀어 소수에 불과할 거다.


헤이즈는 특히나 대인기피증이 있어서 항상 파티에서도 중열에서 위치해 존재감을 죽였고 내가 최대한 눈이 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내 배려로 인해 피해를 본 셈이지만.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거 아니겠어? 나도 얘가 강사를 할 줄 알았나.


"이런 빌어먹을 평민 잡종들 같으니! 내게 이런 수모를 주고도 멀쩡히 살아있을 줄 알아?"


한창 헤이즈를 둘러싸고 만세삼창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불협화음이 섞여 든다.


고개를 돌려보니 기절했던 귀족 A가 입에 흐르던 게거품을 손수건으로 닦고 있었다.


뭐야. 얘 다음 페이지에 또 나오는 녀석이었어?


"다행이다. 살아 있었구나."


착해 빠진 건지, 무른 건지 녀석이 쌩쌩해 보이자 헤이즈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둘 다 겠지.


"이, 이! 두고 봐. 이 수모, 반드시 갚아주겠어!"


귀족 A는 3류 악당도 요즘에는 식상하다며 내뱉지 않는 대사를 내뱉고 그대로 반을 나가버린다.


"뭐야, 쟤?"


"패배자 주제에 다음을 논해? 귀족의 수치가 따로 없네."


"도대체 어디까지 추해질런지."


이미 평민이고 귀족이고 그의 편은 찾아볼 수 없다.


마치 관심이 필요하려고 어그로 끌려는 사람 보는 것처럼 보다가 안중에도 없이 다시 헤이즈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선생님. 남자친구 있어요?"


"선생님. 그런 마법은 어떻게 배웠어요?"


"선생님. 가슴 사이즈 몇이에요?"


"응? 저기, 그게······."



방금 스리슬쩍 성희롱 발언을 지껄인 놈은 어디에 사는 누구냐?



글쎄다. 학생들 사이에서 귀족 A는 이제 엑스트라 축에도 끼지 못하는 왕따로 한순간에 전락한 느낌이라,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안중에도 없는 듯 하다만.



귀족들 중에는 의외로 있단 말이야. 조금 쪽 팔렸다고 수모를 갚으려고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 보는 쪼잔하고 생각 없는 녀석들이.



처음 반에 들어왔을 때부터 걸리던 게 있다.


평민과 귀족 사이에 파벌을 나누고 있지 않았던가.


분명 아르토리아 아카데미가 건립하면서 정한 방침 중에는 평등이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입학식을 할 때도 그렇지만 그런 방침 같은 건 두 측 중 어느 누구도 지키려 들지 않는다.


머릿속부터 뿌리 깊이 자리 잡은 고정 관념이라는 게 방침 하나로 슥 하고 바뀔 정도로 가벼운 녀석이 아니거든.


그럼에도 이렇게 대놓고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까지 아카데미에서 가장 대두되고 있는 문제점은 귀족과 평민 사이의 벽이 쳐져 있다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교장이 손을 댈 수 없는 문제 중 하나겠지.


그렇다면 그녀의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이쪽을 파봐야 하지 않을까.


녀석이 나간 문쪽에 계속 시선이 간다.


"흠."


오늘 수업은 재낄까.


///


"이런 귀족의 수치 같은 놈!"


"악!"


두터운 손이 귀족 A의 뺨을 후려친다. 피부가 가볍게 찢길 것 같은 파열음이 그의 뺨을 비껴가며 몸을 넘어뜨린다.


그의 앞에는 후덕한 중년의 남자가 본인의 거친 금발을 헤집듯이 긁는다.


"아, 아버지."


"입 닥쳐라, 이 무능한 자식 놈의 새끼!"


"히익!"


"얌전히 아카데미에 다니면 될 것을, 괜한 짓거리를 벌여 이목을 끌어들여 계획을 망쳐? 그런 데다가 엘프 따위에게 대결을 신청하지 않나, 패배하지를 않나! 심지어는 귀족들에게 부정적인 인식 마저 심어? 네가 가문의 수치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그래놓고 정녕 베르나트 백작 가의 장남이라고 할 수 있겠어?!"


"죄, 죄송해요, 아버지!"


방에서 손찌검 소리와 고함 소리가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도 주변은 클레임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아카데미 내부에 달린 학생 전용 기숙사가 아닌 아카데미 인근에 위치한 도시의 고급 호텔이다.


도시에 머무르는 귀족들이 애용하는 호텔이자 아르카디아 아카데미의 학부모가 머무르는 곳으로 유명하며 바깥쪽으로 어떤 소리와 충격이 흘러나가지 않게끔 방음, 방진 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다.


귀족 A는 헤이즈에게 패배한 후 곧바로 기숙사가 아니라 이 호텔로 달려와 아버지에게 사정을 알리려 했으나.


그의 아버지는 이미 귀족 A가 엘프에게 패배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발보다 호텔에 머무르는 귀족의 귀에 먼저 빠르게 소식이 닿을 수 있는 수단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본인의 쪽이 팔리는 이야기는 쏙 빼놓고 전하려 했던 본래의 속셈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 말씀.


중년 귀족은 서부 왕국의 백작, 베르나트 솔그린.


딱 그 정도만 알면 되는 오만한 귀족의 표본 같은 남자다.


"하, 하지만 아버지. 그 엘프는 엄청나게 강했어요."


"고작 창녀 일족이 강하다면 뭐가 얼마나 강하다는 거냐!"


"하지만 정말로 강했어요! 4서클 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피하고 제 등 뒤에서 나타나서 마법을 쐈다니까요? 그리고 그 엘프, 용사와 친분이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용사? 용사와 친분이 있는 엘프라."


솔그린은 한 대 더 손찌검을 하려다 그 손으로 턱을 쓴다.


"그러고 보니 용사의 동료 중에 엘프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소문이 아니었다는 건가? 하. 평민 아니랄까봐 마왕 원정대에 창녀를 끼워 넣다니."


"그 엘프가 용사의 동료 중 한 명이었다고요?"


그의 시선이 슬쩍 테이블 위에 놓인 파피루스로 향한다.


"오늘 상층부에서 서신이 내려왔다. 오늘 새벽에 갑자기 우리 측에 있던 교수진을 단체로 해고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그리고 오늘 아침에 뇌물을 받고 있다는 증거를 대면서 해고를 했지. 그리고 그 자리에 신분도 밝히지 않은 사람들을 대거 채용했더군."


"오늘 새벽이라면··· 마왕이 쓰러진 시점인가요 아버지?"


"우연 치고는 기가 막히지 않아? 아즈엘카 그 여우 같은 년이 뒤통수를 친 거야. 우리들의 뒤를 빨면서 먹을 거 다 챙겨 먹던 년이 마왕이 죽으니까 이제 와서 멋대로 꼬리를 자르고 스탠스를 바꾼 거라고. 그 여자에게는 머지않아 처벌이 내려질 거야. 아주 고통스럽고 치욕스럽게 고문을 하다가 죽여주지. 마침 그 년의 노화 방지 마법에는 흥미가 있거든. 흐흐흐."


입가를 괴랄하게 비틀며 불쾌한 웃음소리를 흘리는 솔그린.


그러나 곧 뚝, 하고 정색을 하고는 죽일 듯이 귀족 A를 내려다본다.


"그건 그거고 네 문제는 별개의 문제지. 네 그 생각없는 행동 때문에 위에서 나를 퍽이나 실망하는 눈으로 바라보시더구나. 주제도 없이 설치다가 이 애비에게 창피를 주다니. 이제 내가 그 분들 얼굴을 어떻게 보겠니, 응?"


"죄, 죄송해요 아버지. 용서해주세요!"


"용서? 용서라. 너는 내게 모욕감을 준것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어. 평민들과 귀족들 사이를 갈라놓으라는 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었더냐? 네 행동 하나 때문에 앞으로의 계획에 차질이 생겨야 해?"


"아, 아니요."


"네게 건 기대가 컸는데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너의 행동 때문에 아비가 죽을 수도 있게 생겼어. 너의 과실인데 내가 죽을 수는 없지 않니? 남자라면 자기 일에는 자기가 책임져야지."


툭. 귀족 A의 머리 아래에 날이 선 칼이 떨어진다.


날붙이를 내려다보는 귀족 A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고 식은 땀을 뻘뻘 흘린다. 딱히 움직인 것도 없는데 당장에라도 꺼질 듯이 숨을 쉰다.


베르나트가 자기 자식에게 칼을 내민 것은 그 의도가 너무나 명백하다.


"사, 살려주세요! 아버지.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게요! 이번에야말로 성공할 수 있어요!"


싹싹싹. 귀족 A가 눈물을 글썽이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보기 무서운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빈다.


사실 이건 베르나트가 그를 몰아세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애초에 지금 당장은 죽일 생각이 없다는 듯 테이블 아래에 놓여 있던 서류 가방을 꺼내 안에서 뭔가를 가지고 다시 귀족 A의 앞에 선다.


반대로 말하면 베르나트는 자식을 그저 도구로밖에 보지 않는 악독한 귀족이라는 것을 뜻한다.


"네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지. 그 칼로 스스로 목을 그어 귀족 답게 죽든가. 아니면, 다시 실수를 하지 않게 변하던가."


"예?"


눈물, 콧물 범벅이 된 귀족 A가 고개를 들어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무언가를 바라본다.


베르나트의 손에는 처음 보는 괴물의 형상으로 세공된 한 손 크기의 악세서리였다.


은빛이 드문드문 보이지만 의도적으로 도금을 벗긴 것처럼 색이 바래 있는 그 악세서리에는 마찬가지로 도금이 벗겨진 체인이 달려 있어 목에 걸려 있고.


쩍 벌린 괴물의 입에는 검붉은 액체가 담긴 유리병이 붙어 있는 게, 한 눈에 봐도 악당이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할 법한 비밀 병기 같은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다.


"내일 학교에서 이걸 써라."


"이게··· 뭔데요?"



"너를 귀족답게 빛나게 해줄 물건이지. 이걸 사용하면 너는 스스로 상상할 수조차 없는 힘을 얻게 될 거야."



귀족 A는 긴장한 표정으로 영 미심쩍다는 듯이 바라보지만 베르나트는 전혀 그럴 것 없다는 표정이다.



"걱정 마라. 너는 이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게 되겠지만 한 번 사용하고 나서 정신을 차린 뒤에는, 너는 임무를 다한 뒤일 거다. 그런 다음에는 위쪽에서도 네 업적을 높이 사 멤버로 삼아줄 수도 있는 노릇이지."



"제가, 그 분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요?"



"그럼. 어때. 간단하지? 두려워하지 마. 이건 어중간한 양산품과 달리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게 정제된 특수한 녀석이니까. 아무렴 내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이상한 걸 권할까? 싫다면······."



"하, 할게요! 할게요!"



귀족 A는 그의 다음 말에 이어질 걸 예상하고 그의 손에 들린 악세서리를 잡는다.


아니, 잡으려는데,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본능적으로 이건 좀 아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베르나트는 그런 그를 책하지 않고 천천히 달콤한 목소리로 다독이고 끌어들인다. 마치 먹잇감을 끌어들이려고 거미줄을 설계하는 거미처럼 서서히 옭아맨다.


"모든 것은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은··· 대의를 위해."



귀족 A는 망설이다가 끝내 악세서리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걸 진짜로 받냐 이 똘구야."


"어?!"


"뭣?! 웬 놈이냐!"


내가 목소리를 내고 나서야 두 사람이 깜짝 놀라서 내쪽을 바라본다.


"하이요."


어디에 있었냐면, 그냥 의자에 다리 하나 꼬고 계속 둘이 하는 걸 보고 있었다.


부자지간의 우애가 아침 연속극 같이 두터워서 보는 내내 팝콘이 필요없더라고.


"너, 너는 용사? 네가 어떻게 여기에!"


"용사? 이 쬐끄만 꼬마가 용사라고? 그럴 리가 없다. 지금의 용사는 다 큰 성인이라고!"


"나 꼬마 아니고 성인 맞는데?"


지금 내 모습을 보고 확신을 가지고 부정하는 거 보면 나에 대해서 사전 조사를 꽤 했나봐?


"혹시나 했는데 뒤를 밟길 잘했네. 구린 냄새가 방문 밖에서부터 진동을 하더라."


"네 이놈. 끝까지 실망을 시키다니!"


"아, 아버지."


방금 전까지 온화한 표정 짓던 사람 맞아? 수 틀리니까 바로 얼굴색이 싹 바뀌네.


역시 귀족 사회는 지루할 틈이 없다니까.


"그래. 용사? 까짓 거, 네가 용사라고? 어디 용사가 이것도 막을 수 있나 해볼까!"


베르나트가 품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뻗는다.


뻗은 손에서 두 겹으로 겹친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진 스크롤이 펼쳐진다.


이미 마법진이 그려진 스크롤은 별도의 영창이나 마력의 소모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귀족들은 대비책으로 한두 개 정도는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다.


보아하니 흙과 불의 두 원소를 합친 혼합 마법을 기습적으로 내게 날릴 모양인 것 같은데.


어림도 없지.


"어, 뭐, 뭐지? 왜 마법 스크롤이 발동하지 않는 거지?"


"겨, 결계예요! 아까 대결할 때 용사가 결계를 쓰는 걸 봤어요! 분명히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결계를 펼친 게 분명해요!"


대신 설명 감사요.


"뭐라고? 그런 초고위급 결계를 용사가 쓸 수 있다고? 바보같은. 고작 검이나 휘두를 줄만 알던 게 아니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 정보 낡았다니까. 도대체 출처가 어딘데?


"허튼 수작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마법 못 쓰는 노인네 목 비트는 건 일도 아니거든. 방금 전까지 이 아카데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흑막, 위쪽이라는 그 사람들까지 모조리 부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네 놈 바라는 대로 할 것 같아?!"


"안 하면 어쩔 건데? 죽게?"


"이렇게!"


베르나트는 말을 하면서 품 안의 무언가를 내게 던진다.


얼굴로 날아오는 걸 고개만 틀어 슬쩍 피하고 그 쪽을 보니 날붙이에 딱 봐도 독처럼 보이는 용액이 묻어 있다.


난 공중에 붕 떠 있는 그것을 그대로 잡아채 몸을 한 바퀴 돌리며 그대로 되돌려준다.


독으로 죽으면 안 되니까 손잡이 쪽으로.


"크악!"


손잡이가 어깨에 박혀서 날붙이가 밖으로 튀어나온 이상한 모양이 되었다.


"큭! 이렇게 된 이상 최후의 수단으로 이것을!"


"이거?"


나는 베르나트가 악력으로 부수려던 악세서리를 잡아챈다.


"흠."


자세히 보니까 확실히 알겠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마족의 피잖아."


일반적으로 특이체질이 아닌 이상 피를 흡수한다고 극적인 효과를 보기는 어렵지만 마족의 피는 다르다.


마족이라는 족속은 육체가 파손되어도 기생할 육체만 마련된다면 피 한 방울로도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는 기생충 같은 놈들이라.


한 방울이라도 몸에 닿으면 비약적으로 강해져 일반인도 기사 한 명의 힘과 맞먹을 정도로 강해지지만 대신 점점 정신을 좀먹고 육체가 마족으로 변화해 종래는 마왕의 심복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생명력이 다하면 그대로 재로 흩어진다.


딱 봐도 이 용액은 딱 깽판 치다가 흔적도 없이 죽으라는 용도로 만들어진 거잖아.


존재 자체가 사라지니까 흔적을 걱정할 필요도 없지. 입막음을 할 필요도 없고.


···잠깐. 이 피, 어디에서 낯이 많이 익다.


그 동안 마족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쓸어왔지만 이 정도로 검고 짙은 피는 몇 번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양산된 것 같이 뭔가 불순물이 섞인 것처럼 묽어지고 불규칙적으로 색을 띄는데.


내 착각이겠지?


아무튼.


"이게 너희들의 비밀병기 비스무리한 거란 말이지?"


"큭. 내놔라!"


베르나트는 다급하게 내게 달려든다.


내가 이걸 어디론가 가져갈까봐 걱정이라도 되나 보지?


근데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걸랑.


"냠."


"앗."


"아."


나는 용액을 유리 째로 삼켰다.


한 번 씹으니 와그작 하는 소리와 함께 용기가 깨지며 안쪽에서 마족의 피가 진하게 흘러나온다.


넘기기도 전에 무슨 홍삼 액기스 먹는 것처럼 끈적하고 진한 게 미끄러지면서 소름이 끼치고 어류나 파충류과의 특유의 비린내가 코 끝을 찡하게 울린다.


"아윽, 비려. 무슨 맛으로 먹냐 이걸."


비밀 병기면 하다 못해 딸기맛으로 만들던가.


억지로 꿀떡, 하고 목울대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그런 내 모습을 두 사람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걸 왜 네가 삼켜? 라는 표정.


"용사가, 마족의 피를 삼켰어."


"왜. 용사는 마족의 피 삼키면 안 되냐?"


너희가 그렇게 좋아하는 비밀병기, 나도 좀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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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흑막 사냥을 나선다 (4) 23.02.08 31 0 13쪽
14 14. 흑막 사냥을 나선다 (3) 23.02.07 26 0 17쪽
13 13. 흑막 사냥을 나선다 (2) 23.02.06 28 0 11쪽
12 12. 흑막 사냥을 나선다 23.02.05 32 0 15쪽
11 11. 왜 다 옷부터 벗어재껴 23.02.04 37 0 18쪽
10 10. 휘둘리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2) 23.02.03 42 0 13쪽
9 9. 휘둘리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23.02.02 34 0 18쪽
» 8. 아카데미의 흑막 (3) 23.02.01 35 0 16쪽
7 7. 아카데미의 흑막 (2) 23.01.31 35 0 21쪽
6 6. 아카데미의 흑막 23.01.30 34 0 11쪽
5 5. 계획이라는 게 쉽지가 않다 (5) 23.01.29 34 0 10쪽
4 4. 계획이라는 게 쉽지가 않다 (4) 23.01.28 46 0 15쪽
3 3. 계획이라는 게 쉽지가 않다 (3) 23.01.27 78 0 18쪽
2 2. 계획이라는 게 쉽지가 않다 (2) 23.01.26 156 3 15쪽
1 1. 계획이라는 게 쉽지가 않다 23.01.25 294 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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