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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오면 당신은 설 것이다.

아카데미 은퇴 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만찬가
작품등록일 :
2023.01.25 09:01
최근연재일 :
2023.03.10 09:08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1,651
추천수 :
8
글자수 :
279,336

작성
23.01.2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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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5. 계획이라는 게 쉽지가 않다 (5)

DUMMY

"와. 용사님의 동료 중 한 분인 헤이즈 님을 여기에서 뵙게 되다니 정말 영광이에요!"


"뭘요. 저야말로 영광이죠. 저도 설마 용사를 이 아카데미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이제 막 제 자리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심적으로 지쳐 쓰러진 내 몸을 웬수들이 질질 끌면서 하하호호 담소를 나눈다.


근데 그게 내 귀에 들리겠냐고.


몰라. 다 싫어. 그냥 다 꺼져.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


그냥 이대로 질질 끌어서 강당 까지 데려다 줘.


"그런데 헤이즈 님도 이번에 아카데미에 입학하시는 거예요?"


"네? 아뇨. 저는 학생이 아니라 강사 자격으로 초청 받아서 온 거예요."


뭐?


"뭐라고? 강사 자격으로 여기 온 거라고?"


"응? 으응."


"네가 어떻게 아카데미 강사로 와? 네가 뭘 가르칠 수 있다고?"


"용사도 참. 마법사가 뭘 가르치겠어. 마법을 가르치지."


"3서클 광역 마법도 못 쓰는 네가 세계 최고 수준 아카데미에 초청 받은 재능러들에게 마법을 가르친다고?"


"윽."


아니지. 이건 말이 안 되지.


얘는 파이어볼은 쏠 수 있지만 파이어볼 광역기인 인페르노는 쓸 수 없다.


인페르노는 마법에 재능 있는 사람이라면 5년 동안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마법인데 얘는 이제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파이어볼 하나만 찌끄릴 수 있는 수준인데.


누가 누굴 가르쳐? 아카데미는 무슨 생각으로 얘를 강사로 초빙한 건데?


"하, 하지만 나도 잘 하는 게 있잖아."


"일대일 단일 마법? 그거 꼴랑 하나? 세상에 어느 마법사가 단일 마법 쓰려고 지팡이 들고 다니냐? 그걸로 동네 산을 한 번 깎을 수 있어? 인공 파도로 서핑을 할 수 있어? 어디까지나 한 명 잡는 걸로 특화되어 있잖아."


"우윽. 용사 오늘따라 심술궂어. 지금까지는 칭찬만 해줬으면서, 잘 하는 것만 파라고 했으면서."


"너 도대체 강사는 어떻게 초청 받은 거야? 누가 너 대신 뇌물 주거나 한 건 아니지?"


"아니야! 나 대신할 친구 없어! 나한테는 원정대랑 용사밖에 없단 말이야! 나도 마왕을 토벌한 원정대 자격으로 초청 받은 거야! 히이잉. 용사는 바보야!"


아, 이 울보. 또 시작이야. 또 울어. 애야 애.


내가 이 유리멘탈 금 안 가게 하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파티원 중에 한 명이라도 기분이 곱창 나면 그 날 원정대 전체의 기분도 곱창나고 원정길에 차질이 생긴다.


네가 최고야, 너는 천재야.


아주 금지옥엽도 이런 금지옥엽이 없어요.


그 때 내가 얼마나 인내하고 또 인내하느라 관자놀이에 피가 굳을 지경이었다니까?


내가 왜 이렇게 꼰대 같은 잔소리를 하겠니. 다 원정대 리더로서 너 잘 되라고 이러는 거 아니야.


"아, 용사님이 헤이즈 선생님 울렸다. 용사님 너무해요!"


"맞아요. 용사님,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정말 실망이야!"


아가리.


입 밖으로 쌍심지 튀어나오려는 거 간신히 억누른다.


그래. 아직 입학식은 시작도 안 했는데 강사 한 명 울렸다는 소문 나면 내가 피곤하지.


"그거야 단일 마법도 상당히 훌륭한 마법이지. 마법으로 일대일 싸움이라면 헤이즈를 이길 사람이 없지. 반가운 마음에 잠깐 장난 좀 쳐 본 거야."


"이히히. 그렇지? 그런 거지? 정말, 용사도 가끔 짓궂다니까!"


좋단다.


"올해 기존에 계시던 마법계 교수님이 은퇴하시고 대신 마법계 강사님 두 분이 오시거든. 있다가 교수진들 소개할 때 볼 수 있을 거야."


한신이 부연했다.


두 명?


생각해보니 그랬다. 이 녀석은 단일 마법 특화인데 속성 마법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광역 마법 가르칠 사람을 따로 구해야 하잖아.


잠깐. 광역 마법 특화 마법사?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찌릿, 하고 내 머릿속을 스치는 한 사람.


"아니지?"


"응? 뭐가?"


"······아니야. 아무것도."


라고 애써 말끝을 흐리며 부정해보지마는.


이성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있다.


어떻게 헤이즈가 나보다 빠르게 아카데미에 도착했는가?


마계와 인간계의 경계를 걷는 것만으로 한 달이고 하물며 마계 최심부에 위치한 마왕성에서 이곳까지 말을 타고 달려도 그보다는 더 걸린다.


단순 계산해서 그렇다는 거지 중간에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것까지 합하면 몇 달은 걸릴 터.


나야 용사 전용 이동기가 있어서 곧바로 도착했다지만 쟤는 짧게 텔레포트만 가능할 뿐이지 원거리 이동기가 없잖아.


원정대에서 원거리 이동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하고.


걔 뿐인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덧 내 몸은 두 사람에게 질질 끌려 강당 입구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아카데미의 규모에 비하면 생각보다 많이 작고 조촐한 강당.


그 곳에 마치 짠 것처럼 귀족의 제복과 평민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양쪽에 파벌을 형성한 채 도열해 있었다.


그 녀석은, 안 보인다.


휴. 그렇지? 그 녀석까지 있었으면 진짜 파국이지.


그건 그렇고 입학식 시작도 전에 서로 날카로운 눈빛으로 흘겨 보며 으르릉 거리고 있었는데.


차별 하나 없이 평등하다더니 그 새 또 무슨 일 있었나본데?


그 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한 번에 고개를 돌려서 나를 바라본다.


"용사님이다."


"용사야."


"소문으로 듣던 것과 달리 엄청 작으신데?"


"귀엽다."


어떻게 반응을 해줘야 잠시 생각하고 있는데 입학식을 알리는 팡파레가 울려퍼진다.


전방의 강단 위로 한 사람이 구두굽 소리를 내며 걸어온다.


하얀 면에 고급스러운 검붉은 테두리 문양이 박힌 여성용 제복 차림의 여성.


반들거리는 은발에 그윽한 눈을 가진 그녀는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의 교장, 아즈엘카.


귀족들의 인정을 받아 무려 반 세기 동안 아르토리아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교장으로 여행을 하던 도중에 그녀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을 정도로 유명인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반 세기를 살았다는 것 치고 외모는 20대 초반을 막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미인이다.


나이에 비해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갖고 있는 마력의 양이 차원이 다르거나 신체를 극한으로 단련했거나.


그녀의 경우에는 전자인가?


딱.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심상치 않은 파열음이 강당 전체를 퍼져나간다.


내게 집중되었던 이목이 한 순간에 그녀에게 집중된다.


유서 깊은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의 입학식이라. 어떤 클래스를 보여줄까?



높은 곳에서 신입생들을 한 번 슥 둘러보던 그녀가 입을 연다.


"신입생 여러분.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아에 입학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리고 잠깐 입을 떼더니.


"그럼 이것으로 입학식을 마치겠습니다."


"응?"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그러면 신입생 여러분들은 선도 위원들의 안내를 받아 각 반으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뭔가 과정이 굉장히 생략된 것 같은데 내 기분탓인가?


사람들이 지루하고 꾸벅꾸벅 조는 것을 알면서도 줏대 있게 늘어놓는 교장의 장황한 연설은?


무슨무슨 산의 정기를 받아부터 시작하는 교가 제창은?


진짜 이대로 가버려?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입학식에 참여할 생각 없으면 안 해도 된다고."


아니, 나를 배려한 건 줄 알았지.


진짜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끝날 줄 알았나?


"역시 이게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의 입학식. 신박해서 임팩트 있는데요?"


"그러게요. 교장님도 성격 되게 쿨하셔요."


이게 신박하고 쿨함을 논할 레벨인가?


"잠깐만요. 입학식이 이게 답니까? 유서 깊은 아르토리아의 입학식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인가요? 이런 취급을 받으려고 비싼 돈을 주고 입학을 한 게 아닌데요."


내가 묻고 싶은 걸 대신 말해줘서 고마워, 세상 물정 모르면서 거만하게 생긴 귀족 자제 1.


그의 말을 들은 교장은 다시 몸을 돌려서 이쪽을 보더니.


"교가 시작했다, 교가 끝났다."


"?"


"연설 시작했다, 연설 끝났다."


"???"


"이상, 끝."


내가 살면서 근래 들었던 목소리 중에서 가장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귀찮아서 하기 싫어 죽겠는데 억지로 하는 것과도 좀 다른, 시키니까 그냥 하는 기계적인 느낌.


"입학 번호 482번, 분명 아스탄 왕국의 자말가 백작님의 셋째 자제님이시죠."


그녀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그가 누구인지, 어느 왕국에서 어느 귀족의 자제인지 훤히 꿰뚫고 있다.


설마 신입생들 이력을 모두 훤히 꿰뚫고 있는 건가?


"저희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에 기대감을 가져주시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만, 입학식은 왜 하는지 모르겠으니 대충 끝내고 수업이나 진행하라는 컴플레인이 있어서 말이죠."


누구한테?


모든 왕국이 합심해서 설립해 중립적인 위치에 속한 아르토리아가 누구의 입김 때문에 방침을 바꾼다는 게 말이 되나?


"알칸타라 제국의 알렉시스 황제 폐하께서 그리 말하셨죠."


아, 제국의 왕이면 인정이지.


양해 못 할 거면 자기가 어쩔 거냐고.


바로 숙청인데.


오히려 이렇게 절차라도 밟은 건 그를 위한 최대한의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축약해서 진행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어느 정도 불만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제국 황제의 이름이 나오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강당 밖으로 나간다.


나도 선도 위원의 인솔을 받아서 배정된 반으로 가야 하지만 선도 위원을 따로 찾을 필요는 없다.


내 곁에는 입학식 시작부터 끝까지 옆을 지키던 선도 위원장이 있으니까.


"두 분은 헤이즈 선생님을 따라 반으로 이동해주세요. 용사. 너는 나랑 같이 가자."


두 사람은 먼저 반으로 보내고 나를 따로 부르는 건 누가 나를 따로 불렀다는 건데.


선도 위원장이 따로 부를 정도의 사람이라면 몇 사람 없지.


그게 누구인지는 대강 짐작이 간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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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아카데미의 흑막 23.01.30 34 0 11쪽
» 5. 계획이라는 게 쉽지가 않다 (5) 23.01.29 3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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