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280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2.09.22 08:29
조회
1,049
추천
7
글자
20쪽

256화. 납치를 당하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그때 어디선가 천상의 음악 같은 아름다운 한 줄기 선율이 흘러나왔다.


샤라라라랑 샤라라~


쥬맥이 풍경에 취해서 넋을 잃고 있는데 쥬맥을 납치한 아가씨가 마침내 궁전의 앞뜰에 내려섰다.


“도망갈 생각하지 말고 날 따라와.”


앞장서서 궁전의 둘레에 난 긴 회랑을 지나서 후원(後園)에 있는 아름다운 정자로 데리고 간다.


여덟 개의 큰 기둥이 받치고 있고 사방이 뚫린, 분홍색 옥으로 지은 정자는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100평 남짓한 넓이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도 놓여 있는데, 열댓 살의 시중드는 여자 아이가 다소곳이 서 있다.


이런 곳에 평범한 시녀가 있을 리 없어서 유심히 살펴보니, 역시 장난감처럼 표정이 없는 게 꼭두각시 같았다.


“어서 오세요. 공주님.”


“그래, 설화 언니는 아직 안 왔니?”


“오늘은 아직 오시지 않았어요.”


“그럼 네가 가서 여기 재미있는 일이 있다고 언니 좀 빨리 오라고 하렴.”


“알겠어요. 공주님.”


시녀가 공손하게 대답하더니 백설로 뒤덮인 대륙 쪽으로 손을 휘저어서 공간을 찢고 사라졌는데······.


그 모습을 보고 쥬맥은 깜짝 놀랐다.


일개 꼭두각시 시녀가 공간신통을 부리다니! 아직 쥬맥도 이계에서는 공간신통을 펼쳐보지 못했지 않은가?


할 수 있을지도 아직은 모르겠고.


“얘, 아저씨야! 뭐하니? 거기 앉아.”


쥬맥이 딴 생각을 할 때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얼른 자리에 앉는데, 어디서 왔는지 작은 꽃방석 하나가 나타나서 엉덩이 밑에 놓였다.


‘흥! 그래도 손님 대접인가?’’


쥬맥이 대답도 없이 자리에 앉자 기분이 상해서 그런 줄 알고 이리저리 표정을 살피더니 물었다.


“왜? 이 누나가 아저씨라고 불러서 속상해? 결혼했다니까 아저씨라고 부르지. 그러면 오빠라고 불러 줄까?”


[아닙니다. 선배님 마음이 편하신 대로 부르십시오. 오빠면 뭐 하고 또 아저씨면 뭐 하겠습니까? 호칭이 중요한 것도 아닌데요 뭘.]


“아가! 정말 삐졌니? 알았다. 그러면 내가 기분 좋게 오빠라고 불러 주지. 됐지 아가야? 어머! 실수, 오빠야!”


쥬맥이 하도 기가 차서 대답을 않고 가만히 있자 공주라는 아가씨가 지하 계단을 향해서 소리쳤다.


“앵두야! 여기 손님이 왔으니 도화차(桃花茶) 좀 내오렴.”


“예! 공주님.”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고 지하 계단을 사뿐사뿐 밟으며, 처음 보았던 시녀와 비슷하게 까만 흑단 같은 머리를 길게 기른 소녀 꼭두각시가 다기(茶器)를 들고 올라왔다.


이름을 들어 보니 앵두라는 이름은 이 시녀의 이름이었던 모양이다.


아가씨가 쥬맥의 앞쪽으로 앉더니 손을 한 번 휘젓자 어떻게 했는지 두 사람 사이에 옥으로 된 다탁이 생겼다.


그러자 시녀가 다탁 위에 다기를 내려놓더니 내려다보이는 자그마한 호수를 향해서 손을 뻗었다.


그러자 100장도 넘게 떨어져 있는 작은 호수에서 접인신공(接引神功)처럼 호숫물이 끌려와 찻주전자에 담긴다. 쥬맥도 할 수 없는 일을 시녀가 시전하고 있으니 기가 찰 일이다.


물을 채운 시녀가 두 손을 옥으로 된 주전자에 대고 삼매진화(三昧眞火)로 물을 데우기 시작했다.


끓어오른 물이 조금 식게 두었다가 이번에는 다른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주변에 피어 있는 도화(桃花)가 날아들어 허공에서 춤을 추는데···, 수분이 금방 연기처럼 공중으로 증발했다.


그러면서 고운 꽃차가 되어 찻주전자로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멋지군. 꼭 마술 같애.’


꼭 한편의 마술(魔術)을 보는 것 같아서 흥미 있게 지켜보는데······.


곧 이어 그윽한 다향(茶香)이 꽃향기처럼 풍겨 나온다. 도원경, 그리고 솔솔 부는 바람결에 풍기는 다향! 이것만 놓고 본다면 신선의 세계가 틀림없었다. 납치당한 처지만 아니라면.


도화를 우린 차를 먼저 공주라는 아가씨에게 건네고 이어서 한 잔을 더 따라서 쥬맥에게 주었다.


꽃향기에 취해서 자신도 모르게 손이 찻잔으로 향하는데, 들려오는 목소리.


“오빠야! 이제 기분이 좀 풀렸니? 차 향기가 좋지? 한 잔 마셔 봐. 아직 영체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 같은데 차는 마실 수 있어?”


[고맙습니다 선배님, 그 정도는 저도 할 수 있습니다.]


보란 듯이 찻잔을 들고 우선 향을 코로 음미한 다음 한 모금을 후루룩 들이마셔서 입안으로 굴렸다.


청아한 기운이 입안에 가득히 퍼지자 그 기운을 목을 통해서 코로 내쉬며 다시 한 번 향기를 음미한다.


그 다음에 서서히 차를 목구멍으로 넘기는데···, 차에서 나는 향기도 향기지만 진한 영기를 머금은 찻물이 목을 넘어가서 뱃속에 이르자 따뜻한 기운이 전신으로 기분 좋게 퍼져 나갔다.


[와~ 좋은 차군요. 향기도 좋고 영기가 아주 충만합니다.]


“그런데 오빠는 아직 영체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으면서 뭐하러 온 거야?”


[예, 실은 제 꿈도 선배님처럼 저만의 소우주를 만드는 것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알고 싶어서 미리 한번 살펴보려고 왔습니다.]


“그거 아주 위험한 생각인데······. 그러다가 나쁜 괴물 같은 존재들을 만나서 쪽~ 빨리면 어쩌려고 그래?]


[아까부터 쪽~ 빨아먹는다고 하시는데···, 그 말은 무슨 뜻이신지······.]


그러자 놀랍고 한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한마디를 툭 던지는 아가씨.


“어머! 이 맹한 오빠 좀 봐라. 아니 그것도 모르면서 막 돌아다녔어?”


[제가 생계를 벗어나서 소우주를 찾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서요. 그래서 사정을 잘 모르니 혹시 참고할 만한 것이 있으면 좀 알려 주십시오.]


그제야 아가씨가 이해한다는 듯이 표정을 풀고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목숨을 걸고 돌아다녀? 성질이 괴팍한 괴짜들은 말 그대로 두정에 긴 빨대를 꽂아서 영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쭉 빨아서 먹어 버린다니까. 맛있는 음료수나 몸에 좋은 보약을 마시듯이 빈 껍데기만 남기고 말이야.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니?”


쥬맥은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도를 닦아서 신이 된 자들이 남의 영기를 취하고 상대를 죽인다?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 신은 무슨 놈의 신(神). 차라리 망신(妄神)이다.


[아니, 소우주까지 창조하신 분들이 어떻게 그런 황당한 일을 합니까?]


“호호호호! 오빠야도 나중에 몇억 년씩 혼자서 살아 보렴. 정신이 조금 이상해질 테니까. 호호호! 그렇다고 미리부터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구. 그리고 조금 뒤에 올 우리 언니도 괴짜니까 잡아먹히지 않게 처신을 잘해.”


[그럼 아까 모셔 오라고 하신 그 설화(雪花) 언니라는 분도 그렇게 괴짜신가요? 그럼 위험한데······. 전 이만 가 봐야 하지 않을까요?]


위험을 눈치 챈 쥬맥이 아가씨의 눈치를 보며 엉거주춤 일어서려고 했다.


지금 두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짐이 막대한데 여기서 허망하게 종 칠 수는 없지 않은가? 자기 한 몸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존재 여부로 종족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


“에이~ 겁쟁이 같으니라고. 사내 녀석이 그렇게 배짱이 없니? 죽으면 죽고 살면 사는 것이지. 그러고 보니 오빠야는 아주 산속에 혼자 틀어박혀서 도만 닦다가 왔지?”


[아유~ 선배님, 말씀이 좀 지나치십니다. 이래 봬도 저는 무예를 닦는 무인입니다. 제 어깨에 짊어진 것이 많아서 그저 조심하려는 것뿐이고요.]


무인이란 말에 화들짝 놀라는 아가씨.


“뭐? 선인이나 도인이 아니고 무인이라고? 참, 결혼했댔지. 그렇다면 대단한데. 무인이 그 정도의 수준에 오르기가 쉽지 않거든. 내가 아는 한 사람도 무인인데 실력이 아주 대단하단다.”


[혹시 아신다는 그분이 서린족 출신의 기맥이라는 분이 아니신지······.]


“어? 자기가 기맥 오빠를 어떻게 알어? 정말로 아는 거니?”


쥬맥은 그 말에 한 줄기 빛을 찾은 기분이었다. 꼭두각시 시녀들의 신통 수준만 봐도 자신의 실력으로 맞서 싸운다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 꿈도 꾸지 못할 수준이 아닌가?


그런데 기맥 오빠라고 칭했으니 그리 사이가 나쁜 관계는 아닐 것이기에.


‘뭐 어때, 이럴 때 형님 덕 좀 보는 거지. 병신처럼 죽는 것보다는 낫지.’


조금 치사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형님이라는 인맥에 기대어 이번 위기를 벗어나 보고자 한 것이다.


[그분이 서린족의 기맥이라는 분이 맞다면 제 의형(義兄) 되시는 분입니다. 저와 의형제를 맺은 사이입니다.]


“어머~ 정말이니? 그 5억 살이 넘은 노괴물인 기맥 오빠랑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너하고 의형제 사이라고?”


쥬맥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정말입니다 선배님. 나중에 물어보세요. 그리고 저도 겉모습은 이렇지만, 머리에 피 정도는 말랐거든요. 벌써 110살이 넘었는데······.]


“에게~ 겨우 110살? 머리에 피가 마르려면 그래도 나처럼 1억 살은 넘어야지. 그래야 영체도 단단해지고······.


그런데 기맥 오빠가 왜 너처럼 덜떨어지고 아직 여물지도 않아서 말랑말랑한 녀석과 의형제를 맺었을까? 이 예쁜이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그건 같은 무인 출신이라서 그렇습니다. 무예로 선신의 경지에 이른 분이죠. 앞으로 저도 그럴 거구요.]


“뭐 같은 무인? 그런데 오빠야는 검이나 뭐 무기 같은 것도 없잖아?”


[그건 지금 연화 중이라 그렇습니다.]


그때 둘이 앉아 있는 옆 공간이 빛을 발하더니 길게 결이 찢어지면서 그 공간 속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한 사람은 심부름을 간 시녀이고 한 사람은 하얀 머리를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20대 후반의 늘씬한 아가씨였는데···, 완전히 팔등신 미인이다.


그리고 키나 외모는 쥬맥을 납치한 아가씨와 비슷했으나 차가운 인상에 눈처럼 하얀 선녀 같은 옷을 걸쳤다.


보기만 해도 찬바람이 씽씽 부는 싸늘한 인상이었고······.


“얘, 도화야! 나 왔다. 급히 찾았다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니?”


“응, 설화언니 어서 와요. 재미있는 일이 있어서 보여 주려고 불렀지.”


그러자 설화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쥬맥의 영의를 발견했다. 아마 기감으로는 이미 다른 존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겠지만 짐짓 놀란 척하는 모습이 앙큼스럽다.


“그래···, 어? 근데 얘는 뭐야? 아직 꼭지가 안 마른 말랑말랑한 곶감 같은 애를 어디서 주워 왔니? 설마 나 몸보신을 시켜 주려고? 맛있게 생겼네.”


한술 더 떠서 쥬맥을 보며 혀로 입술을 핥고 입맛을 다시는데···, 소름이 쭉~ 끼쳐 왔다. 아니, 뭐 맛있게 생겨? 그 말을 들으니 기가 차는 쥬맥이다.


“언니! 그러지 말고 우선 여기 앉어. 좀 가지고 놀아야지. 그동안 소일거리가 없어서 우리가 너무 심심했잖아.”


“그래, 너무 심심하지. 수행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에구! 만사가 귀찮아. 나도 차나 한잔 다오. 이 물건을 구경하면서 목이나 좀 축이게······.”


“얘, 앵두야! 여기 설화 언니도 차 한잔 드려. 근데 언닌 수행하다 왔어?”


“예, 공주님! 설화 공주님의 차는 이미 준비했습니다. 자 드시어요.”


그러자 찻잔을 당겨서 다향을 맡는 설화. 한 모금을 마시며 차 맛을 보더니 그제야 도화의 물음에 답했다.


“놀면 뭐하니? 수행이나 해야지. 설봉산 정상에서 수행하다 왔어. 와! 근데 니네 애들은 알아서 척척 잘하네. 우리 애들은 답답해서 죽겠어. 콱 모두 다 부숴 버릴까 봐.”


“언니, 수행에 안 좋아. 참어.”


“근데 쟤 꼭지는 언제 딸 거니? 이왕이면 따끈따끈할 때 빨아야지.”


쥬맥은 또 한 번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빤다는 소리가 수시로 나오니.


“언니! 무슨 소리야. 저 오빠가 다 들어. 말조심해.”


“어? 우리 말을 듣는다고? 아직 영체(靈體)도 못 갖췄는데 그 정도야?”


“그래, 글쎄 기맥 오빠 의동생이래.”


“뭐 기맥? 네가 가끔 만난다는 그 날라리 같은 서린족 출신의 기맥이?”


“언니는······. 그 오빠 날라리 아니야. 그래도 제법 신사답다고.”


“도화(桃花)야! 너도 이제 정신차려 얘. 그건 됐고, 야! 네가 우리말을 알아듣는다고? 너 그럼 누구니?”


[예, 선배님. 저는 천인족 출신의 쥬맥이라고 합니다.]


“어머! 얘가 정말로 우리말을 알아듣고 말도 하네. 호호호! 신기해라. 심심한데 가지고 놀면 재밌겠다. 죽일지 살릴지는 아직 모르겠고, 나는 늙다리 같은 선배님 소리는 싫단다. 아직 나이도 젊고 말이야. 알겠니?”


[그럼 어떻게 불러 드릴까요?]


“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 연애도 한번 안 해 봤나 봐. 척하면 삼천리지. 난 아직 3억 년도 안 살았으니까 그냥 누님이라고 불러 짜샤.”


그러면서 쥬맥을 향해 입을 오므리고 가볍게 입김을 후우 하고 부는데······.


등골이 시린 한풍에 온몸이 어는 것 같고 꼭 뒤로 날려 갈 것만 같았다.


[아··· 알겠습니다.]


한편으로는 마음속에서 화가 솟구치기도 했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저 꼭두각시들 하나 제대로 당해 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싸울 수도 없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


얼굴이 붉어져서 더듬거리며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답했다. 3억 살도 안 되었다는 아가씨를 누님이라고 칭하며.


[알겠습니다. 누··· 누님.]


“그래! 아주 듣기 좋네, 어린 동생아. 근데 너 연애는 해 봤니?”


굉장히 궁금하다는 투로 은근히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다가 나서는 도화.


“언니, 쟤는 110살밖에 안 먹은 것이 글쎄 연애도 세 번씩이나 해 봤고 결혼까지 한 아저씨래 아저씨. 그 냄새나는 구닥다리 아저씨 말이야.”


도화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 둘 다 결혼도 못 해 본 아가씨인 모양이다.


“뭐라고? 연애를 세 번씩이나 했다고? 그럼 여자를 몇 번이나 울린 거니? 너 그냥 봐주려고 했더니 안 되겠다. 여자들이나 후리고 다니는 순 날강도 같은 제비 날라리 아냐?”


[아닙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오해? 오해는 무슨 오해니? 연애를 세 번씩이나 했으면 여자를 세 번이나 울렸다는 거잖아? 네 입으로 직접 말해 놓고 뭐가 아니래? 자꾸 그렇게 거짓말을 할 거야?”


변명할 겨를도 없이 몰아붙이는 설화.


[그 세 번은 제가 본의 아니게······.]


“그건 우리가 판단할 테니까 첫 번째부터 알아듣게 자세히 얘기해 보렴. 지금부터 하나라도 숨기는 날에는 너는 오늘 내 손에 죽는 거야. 알간?”


[아니, 제 사정도 모르시면서 그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왜 제 개인 사정을 털어놓아야 하는데요?]


“에이~ 참으려고 했더니 안 되겠네. 도화야! 이놈 지금 당장에 잡자.”


“언니 참어. 오빠야! 너 정말 죽고 싶어서 그래? 이 언니가 한다고 하면 하는 사람이야. 죽기 싫으면 빨리 말해.”


쥬맥은 참 기가 찼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억지로 들려줘야 하다니···. 그것도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슴 아픈 얘기를.


그렇다고 목숨이 걸린 일인데 죽을 줄 알면서 덤빌 수도 없고 말이다. 종족의 일부터 시작해서 처자식이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그래!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고 했다. 오늘을 참지 못하면 더 큰일을 할 수 없으니 그냥 참자.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도······.’


[알겠습니다. 제 개인사가 정 그렇게 알고 싶으시다면 말씀드리지요.]


“알았어. 진작 그럴 것이지. 빨리 읊어 보렴. 들어 보면 거짓말인지 금방 아니까 하나도 빼지 말고 말해.”


그러면서 두 여자는 서로 눈을 맞추고 재미있다는 듯이 눈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시작되는 쥬맥의 연애사.


[철부지 시절을 빼면 제 첫 사랑은 천인족의 대족장 딸이었던 유린이었습니다. 그것도 하필이면 제가 모시는 대족장님의 정적 딸이었죠. ······.

······이렇게 만났는데······. 부모 형제 없는 천애고아라고 비웃으며 비루먹은 망아지 같다느니 하면서 둘 사이를 떼어 놓더니, 같은 편의 대족장 아들과 억지로 결혼을 시켜버렸습니다. ······.]


“그 다음은······.”


[제가 소족장의 자리에 올랐을 때 불량배들로부터 구해 준 미루였습니다. 미루는 ······.]


한참 얘기를 하다가 목이 말라서 찻물로 목을 축이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혈맥이 막혀서 굳어 가는 구음절맥증 환자였죠. ······신의도 나을 수 없다고 고통을 줄여 주는 약만 주었습니다.

······결국 살날이 얼마 안 남아서 어릴 때 혼자 살았던 대협곡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났습니다. ······. ······.

그렇게 행복한 여행 중에 미루는 웃는 얼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제 손으로 생전에 원하던 곳에 묻어 주었죠.

너무 슬프고 가슴이 아파서···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천신을 원망하였습니다. 거세게 쏟아지는 겨울비를 홀로 맞으며 휘청이는 걸음으로 돌아와야 했죠.]


얘기를 하다 보니 쥬맥의 눈가에는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자신도 모르게 다시 눈물이 번졌다. 영기의 눈물이다 보니 더욱 반짝거린다.


그것을 바라보던 두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그때의 사랑의 상처가 너무 커서 한 동안 사랑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노총각이 되었을 때 우연히 또 이름이 같은 미루를······. 이름이 같아 일부러 멀리하였으나······.

이때도 정적이었던 대족장의 방해가 심했으나······. 결국 부모님을 찾아뵙고 허락을 받아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일곱이나 낳았구요. 비록 막내를 전쟁에서 잃고 말았지만······. 이것이 제가 겪은 세 번의 사랑에 대한 내용인데, 모두 솔직히 있는 그대로를 말씀드린 겁니다.]


귀를 쫑긋하고 쥬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두 아가씨도 그 슬픈 사연에는 가슴이 먹먹한 모양이다.


“휴우~ 오빠야 인생도 참 기구했구나. 그럼 일부러 여자를 등쳐 먹은 것은 아니네. 그지?”


“그래, 얘기를 들으니 감동적이기는 한데······. 그런데 우리가 그 말이 다 정말인지 어떻게 아니? 인간들은 모두 거짓말에 능하니 말이야. 그래도 일단 오늘은 꼭지를 따는 것을 보류해 주지.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좀 더 지켜봐야겠어.”


“언니! 불쌍한 애 같은데···, 우리가 그냥 보내 주면 안 될까?”


“너는 마음이 그렇게 약해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려고 그러니?”


“그래두······.”


“일단 오늘 저녁은 여기다가 가둬 놔. 내가 급한 일이 있어서 가 봐야 하니까 내일 조금 더 알아보고 결정하자.”


“그럼 언니, 그 설백신단(雪白神丹) 하나만 줘. 꼭 쓸데가 있어서······.”


“어머, 그 귀한 설백신단은 왜 달래니? 설마 너 저 말랑말랑한 녀석에게 주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지?”


그러면서 아무래도 의심스럽다는 듯이 눈꼬리가 위로 올라간다.


“언니! 미쳤어? 내가 왜 처음 보는 남자한테 그 귀한 것을 주겠어? 이래 봬도 내가 1억 년을 넘게 살아온 도화야 도화! 신격(神格)까지 얻은······.”


도화는 당치않은 소리를 한다는 듯이 손사래까지 치며 팔팔 뛰었다. 절대로 그럴 일이 없다고 딱 잡아떼는 모습이다. 그제야 표정이 누그러지는 설화.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3 263화. 선신의 경지에 이르다 +1 22.09.28 1,048 7 18쪽
262 262화. 무예 법술 마법의 조화 22.09.27 1,047 8 17쪽
261 261화. 선계도 계급과 돈이 있다? 22.09.27 1,046 7 19쪽
260 260화. 선계(仙界)의 형님과 아우 22.09.26 1,053 8 19쪽
259 259화. 태을 선인 신선이 되다 22.09.26 1,044 7 19쪽
258 258화. 삶 속에서 도를 구하다 22.09.23 1,043 7 19쪽
257 257화. 전화위복(轉禍爲福) 22.09.23 1,046 6 19쪽
» 256화. 납치를 당하다 22.09.22 1,050 7 20쪽
255 255화. 또 다른 경지 22.09.22 1,047 6 19쪽
254 254화. 결의형제(結義兄弟) 기맥 22.09.21 1,051 7 19쪽
253 253화. 가는 정 오는 정 22.09.21 1,052 7 19쪽
252 252화. 영의 수행으로 얻은 비술 22.09.20 1,046 7 19쪽
251 251화. 시공간(時空間) 이동 +1 22.09.20 1,048 6 19쪽
250 250화. 유체 이탈(遺體離脫) 22.09.19 1,058 7 19쪽
249 249화. 복수(復讐)의 시간 22.09.19 1,051 6 18쪽
248 248화. 동귀어진(同歸於盡) 22.09.12 1,064 4 18쪽
247 247화. 거인족과 반인족의 전쟁 22.09.12 1,057 5 19쪽
246 246화. 토정을 구하다 22.09.12 1,054 6 19쪽
245 245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보물 22.09.12 1,048 6 19쪽
244 244화. 법력과 의식 배양 22.09.12 1,047 6 19쪽
243 243화. 천붕(天鵬)과의 결투 22.09.12 1,061 5 19쪽
242 242화. 천응(天鷹)과의 결투 22.09.12 1,048 5 18쪽
241 241화. 위기와 함께 오는 기회 22.09.12 1,062 6 18쪽
240 240화. 산신령을 죽이다 22.09.12 1,046 6 18쪽
239 239화. 청성과 천지교룡(天地蛟龍) 22.09.12 1,045 6 18쪽
238 238화. 생계의 첫 유체 수행 22.09.09 1,060 6 18쪽
237 237화. 영혼을 완성해 가는 여정 22.09.09 1,050 6 19쪽
236 236화. 세가 조직체계 재정비 22.09.08 1,053 6 18쪽
235 235화. 진정한 무림의 시대 개막 22.09.08 1,047 6 19쪽
234 234화. 천망과의 혈투(血鬪) 22.09.07 1,066 6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