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치마루
“...”
입이 떨어지지 않는 내게 한껏 비웃음을 날리는 백사.
백사는 침묵하고 있는 날 비웃듯이 바라보며 요사스럽게 어둠속을 유영한다.
-큭큭큭...반론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더한 수치일 터...정말로 불쌍한 영혼이구나. 오로치마루.-
꿈틀.
“...아니다.”
-큭큭...뭐가 말인가?-
꽈악!
비웃는 백사의 말에 내 주먹이 저절로 꽉 쥐어진다.
“그것은 아니야.”
빠드득!
섬뜩하게 이가 갈리며 점점 화가 끊어 오른다.
“...내가 가련하다느니. 내가 불쌍하다느니...적어도 네 녀석이 지금 '한 말'은 틀렸다. 뱀아.”
-거짓말하지 마라. 이미 넌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는가? 넌 지금껏 살아가면서 진실 된 승리를 맛본 적이 없어.-
뱀의 말대도 난 머리로는 뱀이 말하는 진실에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모든 것을 포기 했다는 말은 아니다.
꽉!
가슴을 움켜쥔다.
그리고 그안에서 끊어 오르는 '무언가'.
가슴에 뭉친 그 ‘무언가’는 그러한 뱀의 말을 인정치 못하고 있었다.
“...틀렸다.”
난 내 마음속 지저(地底)에서부터 끊어 오르는 감정을 담아 말했다.
“네 녀석이 말한 진실은...결코 전부가 아니야.”
뱀이 말한 ‘진실’에 관한 분노가 가슴에서부터 시작해 들불처럼 피워 오른다.
내 가슴 속에서 불타오를 것 같은 살기(殺氣)가 점점 끊어 오르기 시작한다.
“백사여. 넌 왜 내가 가련하다고 보는가?”
-큭큭...그야 당연하지 않는가. 행복감에 젖어 스스로 무너지는 악인이라니? 가련하기 보단 보기가 안쓰럽더군.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오로치마루라는 자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참으로 안쓰럽다 못해 화가 날 정도로. 네 모습은 그저 멍청한 자기기만일 뿐이다.-
“...그래, 네 녀석의 그 말은 맞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웃기는군.”
-뭐가 말인가?-
“네 녀석의 그런 소리를, 그러한 허무맹랑한 진실을 나에게 말한다는 것이 말이다.”
내 가슴 한 구석에서 피어오른 분노의 화염이 몸에 쌓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불꽃에 휩싸여 발광하진 않는다.
“네 녀석이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내뱉는지...너는 아는가!”
쿠웅--!
살기가 터져 오른다.
허나 내 표정은 전혀 감정의 기복이 보이지 않은 채.
무심하기 그지 없는 표정으로 백사를 바라본다.
"..."
차가운 분노.
너무나 화가 나기에 오히려 역으로 잠잠해진다.
“네 녀석은 나라고 했지?...그렇다면 넌 결코 그런 소리를 내뱉어선 안 된다. 내가 느꼈던 절망과, 내가 원했던 갈망과, 내가 가졌던 야망을 알고 있는 너라면...결코 넌 날 비난할 수 없었다. 뱀아.”
-...-
시이이-
사방이 조용해진다.
백사는 영혼 자체의 무언가로 내 분노를 감지한다.
기분 나쁘게 허공을 유영하던 그 몸도 내 조용한 절규에 움직임을 멈추고 바라본다.
칼날보다 날카로운 분노가 나오려는 날 백사는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한다.
“넌 날 비웃을 수 없다. 생과 사 속에서 허무하게 죽는 것에 절망(切望)하고, 그로인해 이 세상의 이치를 갈망(渴望) 했으며, 이승의 삶 속에서 그것을 얻겠단 야망(野望)을 가진 날 알고 있다면!”
저절로 주먹이 움켜진다.
눈에서 귀화가 뿜어져 나온다.
“네가 날 알고 있다면. 네 녀석이 나의 인생을 보고 있었다면. 결코 너는 날 비웃을 수 없다. 뱀아.”
넘을 수 없는 절망을 경험했더라도, 결코 후회 없이 살아갔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질할만한 삶을 살았어도 난 결코 그 삶을 내려놓지 않았다.
금기를 넘어 금단의 행위 또한 망설임 없이 해왔고, 또 살아갔다.
결코 도피하지도, 도망치지도 않으며 그 삶을 살아왔단 말이다.
그런 나의 인생을 그런 가벼운 입으로 조롱할 자격은 없다.
한낱 성공을 경험해보지 못한 불쌍한 영혼이라고 동정 따위는 필요 없다.
그 누구도 먼지보다 가벼운 온정(溫情)에 흔들리는 날 비난할 자격은 없단 말이다.
“...설사 그게. 나의 영혼이었다 해도 말이다.”
쩌어억--!
-...이것은?-
“그러니, 당장 본론만 말해라. 만일 네 녀석이 말하는 게 이것뿐이라면, 고작 날. 비꼬기 위해 나타난 것이라면...난 무슨 수를 써도 네 녀석을 없애버리겠다.”
어둠만이 가득찬 심상세계에 무수히 많은 금이 새겨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점점 무너지기 시작하는 어둠.
-심상세계를 붕괴시켜 날 없애려 하는군...그렇게 된다면 나뿐만이 아니라. 네 녀석의 영혼마저 손상당할 텐데?-
“내 인생을 하찮다고 비웃고 무시하는 것이라면...내 영혼이라도 필요 없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이곳은 나의 세계다.
내가 이곳의 신이고 왕이며, 모든 것이다.
그런 날 그저 들러리처럼 내세우기위해 초대한 것이라면 대단히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쩌쩌어억--!
“이 빌어먹을 세계와 함께 사라져라. 뱀.”
끔찍한 살의의 파동과 함께.
난 백사에게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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