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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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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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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5,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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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9.07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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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6
추천
71
글자
11쪽

< #15. 아크레 9 >

DUMMY

"그러면 건투를 빕니다. 류. 멋있는 대결을 해줘요."


랜포트가 손뼉을 치면서 일어서는 류를 응원했다. 하지만 조금 전 대화를 곱씹어보면 상대의 승리를 점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지금도 승리를 기원하는 게 아니라, 건투를 바랐다.


결국 류가 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좀 섭섭합니다. 랜포트 경. 그래도 창끝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모르는 거 아닙니까? 제가 이길 수도 있지요."


랜포트는 기분 나쁘게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은 사람끼리 싸워야지요. 괴물한테 진다고 해도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적당히 하시다가 몸은 다치지 마세요."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마음에 랜포트가 던진 돌멩이가 아팠다. 울컥해서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소년이 손에 창을 들고 왔다.


"아까 것보다 좋은 겁니다. 이걸로 꼭 이겨주세요."


소년이 들고 온 창을 들어보니, 확실히 무게도 중심이 잘 잡혀 보였다. 솜뭉치도 좀 더 작고 길게 붙어있는 게 아까 것보다는 찌르기에도 나으리라. 울적한 마음에 소년의 응원이 고마워 머리를 다시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동전 몇 닢을 꺼내 손에 쥐여 주었다.


"이기면 네 덕분일 것이다. 그때는 더 주겠다."


받아든 동전에 소년은 해맑게 웃었다. 앞니가 두 개 빠져 우스웠지만, 귀여웠다. 힘을 얻은 류가 말에 올랐다. 소년이 끄응차거리며 창을 들어 류의 손에 넘겨주고는 천막 뒤편으로 사라졌다.


류는 안장에 꽂혔던 방패를 들었다. 가죽끈 두 쌍 사이로 팔을 집어넣어 튼튼하게 잡는 게 보통이었는데 류는 가죽끈에는 팔을 끼워 넣지 않고 안의 나무 손잡이만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 그 손으로 고삐를 함께 움켜쥐었다.


반대편에서 말을 달려 나오는 마론이 보였다.


"나보다 조금 클 뿐이구나. 그래 아주 조금이구나."


그런데 말과는 달리 느껴지는 마론은 너무 컸다. 벨몽드가 거대한 곰 같은 사나이였다면 마론은 그보다 더 컸다. 커다란 산맥같이 류를 짓누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래도 이겨야지. 이길 수 있다. 창을 주고받기도전에 마음이 져서야 하겠는가?"


혼잣말을 조용히 읊조리면서 류는 말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말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말이 기운 내라며 그르렁거리는 숨소리를 내뱉었다. 점점 류의 마음도 풀려갔다. 눈앞에 괴물이 다가오지만 이렇게 생각이 들었다.


'나도 괴물이다. 보여주마.'



***



세상은 눈이 돌아가듯 빠르게 날아가고 있다. 주변의 모든 것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눈은 적을 바라본다. 이 찰나의 공간에는 류와 마론만이 있을 뿐이다.


마론이 창을 움켜쥐고 힘을 준다. 시간이 다 되었다. 주변의 환호성마저 들리지 않는다. 순간 세상이 정적에 휩싸였다.


마론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방법 그대로 창을 쭈욱 뻗어 내밀었다. 류보다 키는 조금 클 뿐이지만 팔은 훨씬 길었다. 창끝의 커다란 솜뭉치가 눈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지금이다.'


류는 몸을 바싹 누이고 고삐를 이빨로 물었다. 당황한 마론의 눈이 커졌지만, 창은 어느새 누운 류의 머리를 향했다. 그때 류는 방패를 마론의 얼굴을 향해 던져버렸다.


"제기랄!"


마론은 창으로 방패를 쳐냈지만, 순간 시선에서 류를 놓쳤다. 마론의 창은 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쳤다. 서로 엇갈려가는 순간 류가 말의 속도를 줄이며 몸을 비틀어 창을 내리꽂았다.


"제발!"


지나치던 마론의 어깻죽지에 정확히 내려꽂힌 창은 사슬갑옷을 조각내며 피를 튀겼다. 마론은 방패를 놓치고는 좀 더 달려간 후 말을 돌렸다. 류도 몸을 바로 하고 말을 돌려 다시 마주 봤다.


류의 눈에는 마론의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보였다. 사슬 조각이 끊어져 어깨가 드러난 마론은 잠시 상처를 내려보며 씨익 웃었다.


'어찌해서 나무 창인데 갑옷을?'


류는 창끝을 바라봤다. 얇게 쌓인 천 조각이 찢어져 흩날리며 사라지고 있었다. 솜이 조금 들어있기는 했으나 그 안에는 새파랗게 벼려진 창날이 보였다. 그냥 창이 아니다. 창끝을 삼각형으로 다듬은 찌르기 용이었다. 후려쳤기에 다행이었지 제대로 몸에 꽂았다면 죽었으리라.


놀란 류는 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렇게라도 해야, 날 이길 거라 생각했나?"


마론이 창과 방패를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말에서 내렸다. 천천히 걸어오는 그의 모습은 류를 붙잡아 허리를 분질러버리겠다는 표현이었다.


"아······. 아니야. 이건 내가 준비한 창이 아니야."


그때 천막에 있던 랜포트 일행이 달려왔다. 달려오던 랜포트는 제임스에게 눈짓하고는 마론의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제임스는 윌리엄과 함께 류에게 거칠게 달려들었다.


둘의 힘에 이끌려 땅으로 끌려 내려진 류는 바둥거렸지만, 보통내기들이 아닌지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 광경을 본 랜포트가 고개를 돌려 숙이고는 정중히 말했다.


"왕이시여. 시해하려던 자입니다. 바로 벨까요? 아니면 저희 진영으로 압송할까요?"


랜포트의 말에 마론은 당황해 우물쭈물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종자들이 달려와 마론의 상처를 보고자 호버크를 머리 위로 당겨 벗기기 시작했다.


리처드였다. 경기장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다친 그를 걱정하며 환호성은 낮은 탄식으로 바뀌었다.


"언제부터 알았냐? 랜포트."


"첫 상대를 떨어뜨릴 때부터 알았나이다. 제가 워낙 많이 당해본 수라서 말입니다."


"쳇, 잘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배짱부리고 포기한 거야?"


"왕이 즐기기에도 즐거운 요릿감 아닙니까? 오히려 양보하면서도 흐뭇했답니다."


리처드는 티레로 간다고 말하고는 몰래 돌아와 경기에 임한 것이다. 류는 그런 리처드를 죽이려 한 모양새가 돼버렸다. 그제야 발리앙과 알폰소가 달려왔다. 연단의 필리프는 차분한 눈빛으로 엉망이 된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리처드 왕이시여. 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기사단장이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발리앙의 말과 함께 알폰소는 여차하면 다투겠다는 듯이 검 손잡이에 손을 대었다.


"빌어먹을 녀석. 감히 덤비겠다는 거냐?"


알폰소의 모습에 리처드가 으르렁거렸다. 사자가 나지막이 목을 긁으며 내뱉는 울음 같았다. 알폰소는 기에 눌려 손을 떼고 한걸음 물러났다.


"왕이시여. 그 창은 제 것이 아닙니다. 절 도와주던 소년이 갑자기 가져온 것인데······. 랜포트! 자네도 옆에서 지켜보지 않았는가?"


류의 말에 랜포트가 돕고 나섰다.


"맞습니다. 저 레반트 기사는 넘겨준 창을 받았을 뿐입니다. 소년은 이미 주변의 병사들에게 말해 찾으라고 했습니다."


잠시 그 말에 고민하던 리처드는 발리앙에게 양해 아닌 양해를 구했다.


"자네 기사단장은 내가 묻고자 하는 게 있으니 우리 진영으로 모셔가겠다. 불만은 없지?"


발리앙은 얼굴을 마주 보며 이빨을 내보이는 리처드의 기세에 어찌할 줄 모르며 류를 쳐다봤다. 방법이 없지 않은가? 누명이 어떻게든 벗겨지길 바랄 뿐이다. 류가 고개를 끄덕이자 발리앙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나이다. 전하."



***



경기장의 소란이 가라앉자 리처드는 연단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필리프에게 자기인 줄 모르지 않았냐는 듯한 의기양양한 웃음이었다.


"이봐, 필리프. 어찌 되었건 이 레반트 기사는 반칙이잖아. 내가 우승이라는데 이견은 없지?"


"그렇군."


"그럼 어서 우승자를 호명하고, 상금을 줘야지. 안 그래?"


기분 나쁜 표정으로 소란을 지켜보던 필리프가 오히려 씨익 웃었다. 얼굴에 장난기가 솟아올랐다.


"좋다. 이 마상시합의 승자는 시돈의 마론이다. 마론은 나와서 필리프 앞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라. 상금을 주겠다.“


그 말에 리처드는 집어치우라고 손짓을 하고는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가 버렸다. 경기가 끝난 후 사람들은 흩어지면서 오늘 있었던 경기에 대해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그것 보았나? 난 유럽에서도 두 번인가 경기를 본 적이 있으나 이런 수준은 생각도 못 했네. 영국의 왕은 영웅이야. 하늘에서 내려보낸 사람이라니까.“


”반칙패당하기는 했지만, 레반트의 기사도 대단했어. 말에 바짝 누워 피하다가 뒤돌며 창을 내려치는 데. 한번도 막힘이 없었지 않은가?“


”그래도 결국은 반칙이야. 반칙.“


사라져가는 관중들의 소리를 들으며 필리프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변에 있던 다른 이들은 듣지 못했지만, 필리프는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바보 녀석, 찔렀어야지.“



***



류는 리처드가 차지한 영빈관의 홀에 도착했다. 곁에 바짝 붙어 호위하는 병사들의 눈빛은 흉흉했다.


자신의 왕을 노린 자가 아닌가. 아마 리처드의 당부가 없었으면 류는 갈가리 찢겼을 것이다.


홀을 지나 커다란 거실에 들어섰다. 먼저 도착한 리처드가 커다란 소파에 상의를 벗은 채 앉아있었다. 곁의 사라센 의원이 눈여겨 살피며 바늘에 실을 꼬아 상처를 꿰매기 시작했다.


”왔습니다. 왕이시여.“


랜포트의 말에 왕은 고개를 들어 류를 바라봤다. 노려볼 것으로 생각했는데 별 감흥이 없는 눈이었다.


”아는 것을 털어놓아 보아라. 분풀이한답시고 애먼 사람을 죽이는 성격은 아니니. 겁먹지 말고 말이야.“


”전 잘못한 게 없습니다. 그리고 겁먹지도 않았고요. 영국의 용맹한 왕이시여.“


순간, 리처드의 눈에 광기가 비쳤다가 사라졌다. 허...이놈 보라는 표정이었다.


”재미있군. 실력만큼이나 재미있는 녀석이야. 제대로 붙어봤으면 승패는 몰랐을 것이다.“


”아닙니다. 전 전하에게 졌을 것입니다.“


류가 솔직히 말하자 그제야 리처드는 너털웃음을 내뱉었다. 웃음은 점점 커져 배를 움켜잡기 시작했고 곁의 의원은 바느질하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움찔거리기만 했다.


”봤냐? 랜포트. 솔직한 녀석이잖아. 마음에 든다.“


그 말에 곁의 호위기사들 모두 껄껄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제임스가 일러바치기 시작했다.


”랜포트 녀석이 왕이신걸 알면서도 저 기사가 어디 한군데 부러뜨렸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 차가운 랜포트가 진지하게 말하는 걸 보면 대단한 실력자인 건 맞지요.“


”그래요. 솔직히 더 싸웠으면 전하가 바닥에 나뒹구는 걸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제임스와 윌리엄의 말에 리처드는 계속 껄껄대다가 갑자기 정색하기 시작했다.


”그만······. 적당히 해라. 친구기는 하지만 난 왕이다.“


”네······.“


잔뜩 긴장했던 류도 눈앞에 벌어지는 만담이 우습기 그지없어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벌게질 정도였다.


”그러면 레반트의 기사단장, 류. 자네가 생각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왜 이렇게 꼬여서 일에 끼어들게 됐는지. 아니면 미심쩍은 일들이 주위에서 벌어진 적이 있다면 하나도 남기지 말고 얘기해봐.“


리처드의 눈에 다시 광기가 휘몰아쳤다. 이제는 먹잇감을 눈앞에 두고 희롱하던 건 그만두려는 것이다. 허기가 진 야수가 이빨을 드러내며 침을 흘리고 있다.


잘못 얘기한다면 목이 잘릴 것이다.


류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올렸나이다. 재미있게 봐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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