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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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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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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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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9.02 22:25
조회
2,465
추천
73
글자
10쪽

< #15. 아크레 7-1 >

DUMMY

“악마였습니다. 저희는 막지 못했습니다. 녀석은 우리를 희롱하면서 내일 모두 죽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용맹했던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빈집의 구석에 웅크리고 울고 있습니다."


"그런가?"


아미르의 말이 과장이라 생각됐지만 한참을 전황에 관해 설명하자 살라흐앗딘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이 년 동안 고생했구나. 항복조건에 대해서 내일 논의하도록 한다고 알리고 쉬도록 해라."


"죄송합니다. 술탄. 저희는 결국 지옥 불에 떨어져 이 죗값을 치를 것입니다."


아미르가 감정이 북받쳤는지 눈물을 보이자, 살라흐앗딘이 어깨를 두들기며 위로했다.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다. 신께서 시련을 주시는 건 너희들의 잘못 때문이 아니다. 다 나의 잘못이다. 술탄인 나만이 이 치욕을 받고 다시 갚기 위해서 노력할 책무가 있다. 너희들은 나의 명령을 따른 죄밖에 없다."


"감사합니다."


사신이 나가자, 버티던 살라흐앗딘이 의자의 등받이에 풀썩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하틴 이후에 파죽지세로 잃었던 땅을 수복하던 그에게는 티레 이후에 아크레까지의 연패가 당황스러웠다. 티레는 뺏지 못한 것이지만, 아크레는 빼앗긴 것이다.


'무언가가 꼬여버렸다.'


혀를 차던 살라흐앗딘은 하지즈를 불러 항복조건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




전투는 일단락되었다. 이미 부서졌지만, 너덜너덜한 성문이 항복의 의미로 활짝 열렸다.


십자군 병사들은 성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성안에는 무기를 내려놓은 무슬림 병사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리처드와 필리프의 엄명으로 포로들에겐 해를 가하지 못하게 했다.


리처드 왕의 명령으로 병사가 아닌 무슬림들은 성을 벗어나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아녀자와 어린아이 그리고 노인들이었다. 적은 수지만 젊은 남자들도 끼어있었으나 별말이 없기에 모두 보내줬다.


그래도 만 삼천 정도의 병사들이 모두 포로가 되었다. 이만 오천 명의 십자군에게 쉽사리 질 숫자는 아니었으나 그들은 모두 지쳐있었다. 마지막 보급선이 들어온 게 석 달 전이라 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용사들이었기에 이 년간 고생했던 십자군들도 해코지할 생각을 버렸다. 서로 간에 존중이 싹 트여 있었던 것이었다.


말을 몰아 시내로 들어간 리처드는 아크레의 영주가 영빈관으로 쓰던 건물을 차지했다. 필리프는 이전 템플 기사단이 아크레 본부로 쓰던 석제건물을 차지했다. 다른 영주들도 자신의 격에 맞는 건물을 하나씩 골라 짐을 풀기 시작했다.


포로들은 항구 쪽에 가까운 평지에 천막을 치고 감시를 시작했다. 어느새 항구에는 베네치아와 피사의 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항구를 지키던 다섯 척 남은 이집트 함선들은 백기를 올리고는 선원들도 포로가 되었다.


리처드는 영빈관 테라스의 커다란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있었다. 두 발은 티 테이블에 얹은 채 말이다.


성문 쪽 망루에 리처드의 깃발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리처드는 곧 반대편 망루에 프랑스의 백합 기가 올라가자 짜증 난 표정이 역력해졌다.


"젠장···. 한 게 뭐가 있다고."


"다 들립니다. 그래도 왕이고 싸우지 않은 것도 아니니 괘념치 마소서."


"알았어. 랜포트. 참지······. 내가 참아야지. 덕이 넘치는 내가 참아야지."


리처드의 뒤에 선 랜포트는 입에 손을 가져다 대고 웃음을 겨우 참았다. 괜히 잔소리로 종일 시달릴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


"키득거리는 소리 들린다. 그만하자."


"네······."


그때 다른 쪽 망루에서도 붉은 바탕에 흰 줄이 그어진 깃발이 오르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공작의 깃발이었다.


"랜포트!"


"아닙니다. 웃지 않았습니다. 잘 못 들으셨습니다. 분명히 잘못 들으신 게 맞습니다."


"그 얘기 말고, 왕이 깃발을 달았다고 공작 나부랭이까지 올리면 여기에 몇 개나 달아야겠냐?"


리처드의 말에 랜포트가 대답하지 못했다. 못마땅한 리처드의 뒷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나설 때가 아니었다. 랜포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삼십 개씩이나 달면 참 멋있겠다. 병사들 보내서 깃발 내려버려."


"레오폴트 공작이 원한을 가질 텐데요."


"그러라고 해. 가서 뭐라고 항의하면 왕만이 깃발을 단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얘기하고 와. 좀 불편하면 내가 갈까?"


"아닙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랜포트는 서둘러 깃발을 향해 달려갔다. 괜히 리처드가 나섰다가 깃발을 찢기라도 한다면 칼부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아직 적이 물러가지도 않았는데 내란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걸 막으려면 랜포트가 나서는 게 나았다. 간곡한 랜포트의 말을 들은 레오폴트가 길길이 날뛰며 욕을 했지만 결국 깃발은 내려졌다.


랜포트는 레오폴트의 분노를 온몸으로 맞으며 고개를 숙이고 힘겹게 돌아왔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상황을 설명한 랜포트의 말에 리처드는 그냥 귀만 후빌 뿐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




협상이 진행되자, 살라흐앗딘의 군대가 밀고 들어와 십자군의 방어진을 차지했다. 양쪽 사이의 공터에 천막이 처지고 협상은 시작됐다.


리처드가 협상을 위해 오자, 상대는 술탄의 동생인 알 아밀이 왔다. 협상은 팽팽했다.


"그동안 잡힌 십자군 포로는 모두 풀어주시오. 내가 알기로는 기사만 이천 명이라고 들었소이다. 그렇고 포로는 모두 디나르 금화 두 개씩으로 치지. 아미르나 평민이나 모두 같은 값으로 치겠소. 계산하기 귀찮으니 말이오."


"그렇다면 저희가 고를 수 있습니까? 왕이시여."


"안되오. 괜히 속속들이 값어치 있는 포로만 빼갈 생각 아니오?"


"포로 중에 노예가 된 자들은 찾기가 힘듭니다. 귀족들이야 몸값 때문에 감옥 같은 곳에 모여있지만, 몸값을 기대하기 힘든 자들은 노예로 팔리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기사만 이천 명이라고 하셨는데 그 정도는 아닙니다. 칠백 명 정도입니다."


"그럼 그들과 병사들. 그리고 우리 쪽으로 개종했던 그리스계 병사들도 모두요."


"무슬림이다가 기독교로 변절했던 그리스계 병사들은 모두 처형했습니다. 사로잡자마자 말입니다."


날이 선 대화다. 알 아밀 뒤에는 하지즈가 침통한 표정으로 공손히 서 있었다. 류는 갑작스러운 리처드의 요청에 몇 명의 기사들과 함께 이 협상자 리에 끌려 나와 있었기에 하지즈를 마주 볼 수 있었다. 하지즈는 자리가 자리인 만큼 돌로 만들어진 조각처럼 움직임 하나 없이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그렇군. 그러면 서로 포로를 일대일로 바꾸고 남는 수는 금화 다섯 개로 칩시다."


잠시 고민하던 알 아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지방의 아미르들에게 팔린 포로들을 되사오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차라리 이집트의 부를 고려하면 돈을 더 들이는 게 나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략 저희가 돌려 들릴 포로는 만여 명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저희 쪽 포로가 삼천 명 정도 남겠군요. 그건 금화로 처리하겠습니다만 시간이 걸립니다. 이집트에서 날라야 하거든요."


"한 달 드리겠소."


"알겠습니다.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알 아밀이 일어서자 하지즈는 휘장을 걷어 그가 나가도록 배려했다. 돌리는 몸짓 사이로 그는 류를 쳐다봤다. 둘은 오랜만의 만남을 스쳐 지나가는 눈인사로밖에 할 수 없었다.


이제는 남이었다. 안타까웠다. 하지즈의 눈은 차가웠고 텅 비어 있었다.




***



서로 대치를 하고 있지만, 살라흐앗딘은 야전을 펼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십자군의 다음 목표가 될 만한 곳에 병력을 늘리고 성벽을 고치고 있다는 밀정의 소식이 들어오고 있었다.


지금은 포로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대치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동안의 피로가 풀리고 무료한 대치가 이어지자, 좀이 쑤시기 시작한 리처드는 티레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아내인 베렝게리아가 그곳에 있다며 말이다. 해로는 안전하니 별일 없을 거라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승리도 했고, 모두 쉬는 와중이니 흥겨운 잔치라도 벌여야겠군.”


와인잔을 들어올리던 필리프가 나즈막한 목소리로 얘기를 꺼냈다.


“그런 거 하고는 담을 쌓은 사람이 필리프, 당신이 아닌가?”


“리처드······. 리처드. 나를 위한 게 아니야.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서 그런 거지. 사실 자네가 자리를 비울 때 하는 게 가장 좋아.”


“무슨 섭섭한 소리야?”


“기사들도 그동안 쌓인 울분을 풀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도 자랑하고 말이야. 마상시합을 열거야. 그런데 자네가 있으면 누가 나서려고 하겠어. 없을 때 하는 게 딱 좋지.”


“쳇, 나는 아주 번외구먼.”


“디나르 금화 쉰 개다. 이봐, 사무관. 널리 알리고 준비해라. 리처드왕께서 배를 타고 티레로 가면 그다음 날부터 시작하자.”


“에이···. 속 좁은 녀석.”


하지만 류는 리처드의 눈이 빛나는 걸 보았다. 아쉬움에 짜증이 난 눈빛인지 다른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하게 빛났다.


‘류. 아크레가 우리 손에 들어오면 시합을 열거야. 그때 우승을 하게나. 나도 불만 많은 신하를 다독이려면 뭔가 핑계가 있어야지. 이렇게 우수한 사람이니 꼭 데리고 와야겠다. 우리 프랑스에 도움이 된다는. 그런 말 말이야. 그리고 그때까지는 이 얘기는 없던 거로 해야 하고 꼭 함구하게나.’


어쨌든 필리프가 얘기했던 약속의 시간이 왔다. 프랑스의 산 좋고 물 좋은 곳의 작은 영지를 받아 다시 가족이 머물 집을 마련할 것이다.


류는 손을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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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 #15. 아크레 10-2 > +18 18.09.09 2,469 72 10쪽
183 < #15. 아크레 10-1 > +14 18.09.09 2,426 76 11쪽
182 < #15. 아크레 9 > +22 18.09.07 2,336 71 11쪽
181 < #15. 아크레 8-2 > +14 18.09.06 2,365 72 10쪽
180 < #15. 아크레 8-1 > +21 18.09.04 2,501 76 8쪽
179 < #15. 아크레 7-2 > +8 18.09.03 2,394 79 9쪽
» < #15. 아크레 7-1 > +8 18.09.02 2,466 73 10쪽
177 < #15. 아크레 6-2 > +6 18.09.01 2,487 71 10쪽
176 < #15. 아크레 6-1 > +10 18.09.01 2,484 64 9쪽
175 < #15. 아크레 5-2 > +9 18.08.31 2,513 67 9쪽
174 < #15. 아크레 5-1 > +16 18.08.30 2,668 74 9쪽
173 < #15. 아크레 4-2 > +14 18.08.28 2,674 77 10쪽
172 < #15. 아크레 4-1 > +13 18.08.27 2,576 7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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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 #15. 아크레 3-1 > +12 18.08.25 2,692 70 8쪽
169 < #15. 아크레 2-2 > +21 18.08.24 2,657 74 10쪽
168 < #15. 아크레 2-1 > +14 18.08.23 2,697 72 10쪽
167 < #15. 아크레 1-2 > +10 18.08.21 2,740 77 9쪽
166 < #15. 아크레 1-1 > +11 18.08.20 2,833 70 8쪽
165 < #14. 티레 4-2 > +9 18.08.19 2,851 69 9쪽
164 < #14. 티레 4-1 > +18 18.08.19 2,709 82 9쪽
163 < #14. 티레 3-2 > +10 18.08.18 2,786 77 9쪽
162 < #14. 티레 3-1 > +16 18.08.17 2,787 81 10쪽
161 < #14. 티레 2-2 > +12 18.08.16 2,828 83 10쪽
160 < #14. 티레 2-1 > +9 18.08.14 2,907 8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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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 #13. 낙성(落城) 7-2 > +12 18.08.10 2,785 81 9쪽
155 < #13. 낙성(落城) 7-1 > +18 18.08.09 2,851 7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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