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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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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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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04,559

작성
18.08.1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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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2
추천
86
글자
9쪽

< #14. 티레 1-1 >

DUMMY

하마드를 맡기고 돌아오던 류는 성의 곳곳에서 치솟는 검은 연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분명 전투는 깔끔하게 막아낸 것으로 아는데 불길이라니. 결국 남문이 뚫리고 만 것인가?


류는 급히 남문으로 말을 몰아갔지만, 주변을 지나치는 병사들은 차분했다. 짚더미와 기름을 모아놓고 군데군데 넓은 평지에서 불을 당기는 게 보이곤 했다.


“발리앙!”


남문의 망루에 올라선 류는 발리앙을 곧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망루에서 적을 바라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힘든 싸움에 고생했네. 알폰소가 보고해오기를 대승이라고 하더군.”


“불길이 이는 것은 뭡니까? 병사들의 얘기로는 당신이 시켰다고만 하더이다.”


“이제, 아프게 한번 찔렀으니 슬슬 물러날 준비를 해야지.”


“네?”


“살라흐앗딘에게 당신의 공격이 너무 날카로워 버티지 못하겠소. 이렇게 넘겨주느니 성소들을 모두 태우고 우리는 최후의 돌격을 할 것이외다. 그리고 성내에 숨어있는 무슬림들은 모두 죽이고 말입니다. 이렇게 서신을 보냈지.”


류는 잠시 멍하니 발리앙을 쳐다봤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사람은 아니다. 겁을 주어 다시 협상에 나서라는 압박이던가?


“싸움은 자네가 한 수 위지만, 정치는 내가 낫네. 저길 보게나. 살라흐앗딘의 사신이 급히 달려오지 않는가?


류의 눈에는 하얀 말을 탄 무슬림 기병이 깃발을 흔들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살라흐앗딘의 진 앞으로 나온 병사들이 커다란 천막을 치는 것이 보였다.


”자네도 가세나. 내 싸움을 보여주지.“


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리앙의 뒤를 따라 성을 나섰다.




***



말을 달리며 발리앙에게 류는 물었다.


”결국 돈이 필요하지 않겠소? 우리를 놔달라 하려면 저들은 분명 적당한 몸값으로 돈을 내어놓으라고 하지 않겠소?“


”다행히도 조금 있네. 영국 왕이 대주교 하나를 죽였는데 교황이 대노했지. 그걸 누그러뜨리려고 말이야. 성지 방어에 쓰라고 돈을 보내왔지.“


천막은 햇볕만 막도록 차양만 처져 있었고 바람이 통하도록 내려진 천은 없었다. 살라흐앗딘의 검은 얼굴은 아직도 분노로 붉어져 있었다.


”이벨린의 발리앙. 오늘 전투는 칭찬할만하네. 그런데도 죽는소리를 해대는 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살라흐앗딘.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커다란 흐름 속에 이 예루살렘이야말로 모래성 같지 않습니까? 제가 생각해낼 방법이 이딴 것밖에 없다는 게 속상할 지경입니다. 당신의 혜안으로 저에게 길을 알려주십시오. 합당하다면 따르겠나이다.“


”조건은 바뀌지 않았네. 이맘들의 의견은 말이야.“


”그러면 가지십시오. 폐허를 가지시고, 성안에 남은 무슬림들도 시체로 넘겨받으시지요.“


발리앙의 말에 살라흐앗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곁의 동생, 알 아딜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지금 당신께서 결정을 내리면 우리 병사들이 바로 불을 붙일 겁니다. 불타오르는 연기가 보이시나요? 참담한 마음이지만 저로서는 모두 불태우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원에 무슬림들을 집어넣고 같이 불태울 겁니다.“


발리앙은 편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앙다문 입술 끝에선 살짝 피가 배어 나왔다. 그걸 본 살라흐앗딘은 무릎을 '탁' 치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좋다. 발리앙. 무슬림은 얼마나 남아있는가? 삼천 명? 사천 명? 그들은 프랑크 사람들과 일대일로 치고 나머지는 몸값을 받고 풀어주겠다.“


”오천 명쯤 될 겁니다. 기독교도는 만오천 명. 그럼 만 명의 몸값을 내겠습니다.“


”좋다. 어른은 십 디나르, 여자는 다섯 디나르, 아이는 일 디나르다.“


”모자랍니다. 저에겐 삼만 디나르가 있습니다. 어른 삼천 명이군요. 하지만 나머지는 제 영지에서 모자라는 돈을,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도 거둬들일 수 있는 돈을 모두 내놓겠습니다.“


발리앙의 말에 살라흐앗딘은 감동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그에게 동생인 알 아밀이 천명의 몫은 자신이 내겠다고 말했다. 결국, 살라흐앗딘은 삼천 명의 몸값을 자신이 부담했다.


”이맘들의 반발이 걱정이군. 그들은 지금 모두 목청을 가다듬고 있는데 말이야. 성벽에서 자네들을 밀어 떨어뜨릴 때 기도를 올리려고 말이야.“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시죠. 티레에서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다독여보십시오. 저희가 갈 데는 이제 티레와 트리폴리밖에 남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살라흐앗딘의 농 아닌 농에 발리앙은 정색하며 말했다. 사실 꺼져가는 왕국은 거의 모든 영지를 잃었다. 티레와 트리폴리. 바닷가에 붙은 두 개의 영지. 그곳에서 밀려버리면 결국 지중해 바다에 수장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하마드의 시신은 정중히 돌려줬으면 하네. 난 그에게 빚이 있네.“


살라흐앗딘의 슬픈듯한 말투에 류가 대답했다.


”그는 알 아크사에서 쉬고 있습니다. 그가 원하던 낙원으로 웃으며 갔습니다. 한 이맘이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훌륭하도다. 하마드. 먼저 알 아크사를 수복했구나. 내가 그를 만나러 가야지. 내일 성문을 여시오. 발리앙. 지금 얘기대로 서약할 테니 말이오.“


살라흐앗딘이 일어서서 천막을 나섰다. 그의 동생은 얘기됐던 대로 양피지 두 장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곧이어 읽어본 두 사람은 서로의 인장을 찍어 나눠 가졌다.


발리앙과 류는 말을 타고 성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발리앙. 알 아크사를 수복했다는 얘기는 뭐죠?“


”거긴 지금 템플 기사단 본부로 쓰이네. 선왕이 뜯어고치지는 말라고 해서. 무슬림 성구만 치웠지. 예전 그대로이지. 그런데 무슬림으로서는 그가 먼저 발을 디뎠으니 그가 뺏어 낸 것이라 하는 거야. 어떻게든 그의 유족에게 공을 돌리려 말이네.“


”이상하네요. 전 이맘 한 사람만 봤을 뿐인데······.“


”템플 기사단은 전멸했어. 그곳에 누가 있겠는가? 살아남은 이들 중 몇은 티레에 트리폴리에 아니면 그들의 요새에 있지. 예루살렘에 남은 템플 기사단원이 몇이나 되겠는가? 숨어있던 이맘이 이제 때가 됐다고 나선 거지.“


말을 달리며 류는 생각했다. 하마드의 마지막을 지켜주려 그들의 신이 이맘을 보낸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돌아와서 보니 벌써 소문이 퍼졌나보다. 병사들의 통곡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동문의 수비진영으로 돌아온 류의 눈에는 무슬림 병사들이 묶인 채 무릎 꿇려있는 게 보였다. 몇몇 기사가 그들을 죽이려 발버둥 치고 있었지만, 알폰소의 제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만 들 둬. 협상은 끝났다. 바보 같은 짓을 벌이면 너희들만이 아니라, 무고한 백성들이 죽는다. 만용을 부리는 게 기사라고 생각되지는 않아.“


류의 차가운 말에 소란은 가라앉았다. 때마침 마지막으로 울리는 것일 성당의 종소리가 예루살렘에 가득 퍼졌다. 대주교의 명으로 마지막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병사들은 투구를 벗고 무릎 꿇어 자신의 죄를 사하여주기를 간곡히 기도 올리기 시작했다. 백여 년 전 그들의 선조가 되찾은 이 성지를 이제는 그들 손으로 넘겨주는 슬픔에 가득해서 말이다.


다음날, 평화롭게 예루살렘의 주인은 바뀌기 시작했다. 작은 다툼들이 있었으나 곧 정리되었고, 몸값을 지급한 프랑크인들은 터벅터벅 걸어서 티레를 향해 움직였다. 길고 긴 행렬은 끝이 없었고, 그들을 습격할지 모르는 과격한 무슬림 군대를 걱정해 살라흐앗딘의 직속부대가 좌우를 지켜주었다.


발리앙과 류는 말머리를 같이하며 후에 일어날 일을 얘기했다.


”어떻게 될까요? 이제 이대로 끝이 날까요?“


”함락되기 전에 교황에게 사신을 보냈네······. 그가 이 일을 들으면 무언가 일을 벌이겠지.“


티레는 몬페라토의 코라도라는 귀족이 방어하고 있었다. 몇 안 되는 수비병으로 살라흐앗딘의 공격을 여러 번 막아낸 용장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비잔티움에서 살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십자군에 몸 바치기로 하고 넘어온 사람으로 그 밑의 이탈리아 기사들은 용맹했다. 그 덕분에 그는 티레의 성주가 되어있었다.


그는 피난민들을 환영했다. 결국 예루살렘 이후로는 자신의 영지가 다음번 싸움터가 될 게 뻔했으니 말이다. 싸울 병사들이 늘어나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아니었다.




***



예루살렘 함락이라는 비보는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발리앙이 그토록 원군을 모아 보내 달라고 애원했었던 교황은 그동안 한 일도 없다가 이 비보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몸을 부들거리다 세상을 떠났다.


우르바누스 3세의 선종 이후, 새 교황 그레고리우스 8세가 즉위했지만, 그도 1년이 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렸다.


새로 교황이 된 클레멘스 3세는 기독교도끼리의 싸움을 멈출 것을 선언하고 십자군의 깃발을 들라고 외쳤다.


그리고 왕들이 그 말에 응답했다.


작가의말

오늘은 몇시간 일찍 올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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