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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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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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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04,559

작성
18.08.18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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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6
추천
77
글자
9쪽

< #14. 티레 3-2 >

DUMMY

“내 곁에도 충성을 바치겠다는 귀족이 남은 건가? 발리앙. 내가 레널드와 함께 자네를 얼마나 괴롭혔는데······. 내가 정신이 없었네. 당신 같은 충신을 말이야.”


기는 살라흐앗딘의 진에서 풀려난 뒤, 계속된 매몰찬 대우에 한껏 풀이 죽어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지금은 예루살렘 영주들의 구심점이라 할 발리앙이 직접 찾아와 무릎을 꿇었으니 얼마나 감동했겠는가?


발리앙은 잠깐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더 말을 이으려 하는 기의 말을 무시하고 일어섰다.


“내가 반드시 예루살렘을 탈환하···. 어···.”


“기여, 예루살렘의 왕이여. 저희는 뜻을 모았습니다. 레반트의 영주들과 잃어버린 영토의 귀족들이 뜻을 모았습니다. 당신을 도울 검이······. 젠장. 이런 식으로 얘기해봐야 들어먹지를 못하겠군.”


볼품없는 돌덩이에 앉아있던 기는 일어선 발리앙이 옷을 터는 모습에 당황한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기, 그렇게 우리들이 이끌어주고 도와줘도 말을 듣지 않은 그런 왕이었지. 그것도 혈통이 있는가? 시빌리아 여왕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어찌 피가 섞였다고 주장하겠는가? 당신 말고도 내세울 사람은 찾아보면 있어.”


제라르는 발리앙의 차가운 말투에 조금 몸서리쳤다. 한 왕이 지금은 이렇게 천대받고 있다. 하틴 이후로 템플 기사단도 자신을 이리 보는 게 아닌가 그런 걱정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기, 자네를 위해서 한 가지 제안할 게 있네. 우리 레반트 영주들 모두 합의한 사항이네. 받아들일지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할지 생각해보게나.”


“무···. 무슨?”


“우선, 당신을 왕으로 섬기는 척할 것이야. 그리고 전쟁에 다시 나설 것이고 말이야. 그러나 우린 명령을 받지는 않을 것이며 우리 영주들이 세운 계획대로 전쟁할 것이고, 점령지를 다스릴 거야.”


기의 얼굴은 조금씩 일그러져갔다. 하지만 발리앙의 말은 계속 잔인하게 비수가 되어 기의 가슴을 한 점 한 점 잘라내었다.


“성도를 되찾으면 당신은 왕위를 내놓으시오. 적당한 사람이 뽑혀 당신을 대신하게 되면 그땐 편하게 쉴 자리를 만들어줄 것이오. 알겠소? 기?”


“겨···. 결국. 얼굴 노릇이나 하란 말이군.”


참담한 표정의 기가 고개를 숙였다. 부들거리며 떨었다. 큰 모욕이었다. 하지만 이게 남은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만약 지금 깃발을 들지 않으면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나눠줄 땅 한 조각 얻을 수 없을 것이오. 프리드리히의 십만 대군이 온다면 결국 살라흐앗딘도 밀려날 것이고, 그는 자신들의 봉신들에게 이리저리 땅을 나누겠지요. 예루살렘의 왕은 자기의 동생이나 조카로 세우고 말입니다. 교황이오? 좋아할 것입니다. 오히려 듬직한 성묘의 수호자가 생겼다고 두 손을 들고 반색하겠지요.”


고개를 끄덕였다. 기는 수긍했다. 그는 어떻게라도 자신의 잘못을 뒤집을 기회가 필요했다.


“며칠 내로 당신을 도울 사람들이 성을 열고 나올 것입니다.”


발리앙이 몸을 돌려 성문 쪽을 향하자, 기는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디냐? 어디로 갈 것인가?”


“아크레. 아크레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오십 킬로 떨어진 가장 가까운 항구도시. 살라흐앗딘의 수비군이 있지만, 거길 점령해야죠. 후에 유럽에서 오는 십자군들도 그쪽으로 모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루 이틀 거리인 예루살렘의 목에 검을 들이대는 겁니다.”


발리앙의 발걸음에 제라르가 앞을 막아섰다.


“발리앙, 기사단원들은? 기사단원들은 뭐라 말하고 있는가?”


“남은 열일곱이요?”


그동안 살라흐앗딘은 구호 기사단은 몰라도 템플 기사단은 보이는 즉시 죽였다. 그동안 광신자들이 많은 무슬림들을 해한 죄과를 반드시 보여야 했으니 말이다. 제라르는 이백 명에 달하던 그들이 이제 열일곱이라는 얘기에 허망하다는 표정으로 멍했다.


“그들도 열심히 논쟁하고 있습니다. 들은 바로는 당신이 명예롭게 죽을 기회를 줘야 한다는 사람들과 그냥 기사단에서 제명하자는 얘기가 팽팽하다고 하더군요.”


무릎 꿇고 주저앉은 제라르를 내려보던 발리앙은 그를 비켜 성문으로 향했다. 찬 바람에 몸을 떠는 기에게 반성의 시간을 좀 더 주기로 작정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시 레반트 영주들과 회합이 있을 것이다. 기가 받아들였다는 얘기를 하며 앞으로의 전쟁 계획을 다시 짤 것이다.


아마 밤을 새우게 될 것이라 한숨을 쉬었다.



***



다음날, 류는 발리앙에게 제안을 영광스럽게 받아들이겠다는 전갈을 하녀를 통해 보냈다.


그리고는 다른 하녀와 연이를 데리고 구경을 나갈 채비를 하였다. 그 사이에 무엇이 바쁜지 달려온 하녀가 발리앙의 말을 전했다.


“삼일 뒤에 출정합니다. 그렇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빌어먹을 대머리 녀석. 쉴 틈도 주지 않고 부려먹으려는군.”


하녀의 말에 곁에 있던 연이의 눈치를 보며 류가 투덜거렸다. 벌써 연이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있었다. 오늘 어느 정도는 기분을 풀어줘야 하겠다고 마음먹은 류는 웃으며 연이를 끌어당겼다.


“오라버니, 그렇게 당기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봅니다.”


“여기 풍습은 우리 고려나 금보다는 좀 더 개방적이더구나. 살며시 옷자락을 잡는 정도는 뭐라 하지 않더란 말이다. 뭐 손이라도 잡는 거면 좀 눈총을 받겠지만 말이다.”


못 이기는 척 연이가 나서자 류가 한걸음 앞장서 걸었다. 뒤에는 연이. 그 뒤로는 하녀가 따라나섰다.


커다란 갤리선이 두 척 들어와 있었다. 배에는 화물과 승객들이 가득 차 있었고 승객들은 모두 무장한 기사들이거나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었다. 통일되지 않은 무장에 대여섯씩 조그만 무리로 모인 걸 보니 아무래도 유럽 곳곳에서 피사나 제네바로 오면 거기서 배로 이곳에 오는 게 분명해 보였다.


발리앙에게 들은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은 이번 십자군 전쟁으로 가장 이득을 보는 이들 중 하나였다. 병사나 순례자를 수송하며 막대한 운임을 받았고, 중간에 마주친 무슬림 해군이나 상선을 약탈하는 해적질도 했으며 또한 항구도시를 공격할 때는 바다 쪽을 맡아 전선의 한 축을 담당했다. 결국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돈이었다.


그와 더불어 유럽과 중동의 교역으로도 한몫을 벌어들였으니 지금처럼 눈 앞에 펼쳐진 좌판을 보고만 있어도 알 일이었다. 커다란 상인들은 상관을 두고 큰 상인들끼리 거래를 했지만, 신출내기 장사꾼이나 자본이 부족한 뜨내기들은 이렇게 좌판을 깔아놓고 호객을 하고 있었다.


“어떠냐? 이것도 예쁘지 않은가? 네가 걸어보아라.”


하녀에게 시키자 하녀가 목덜미를 드러내고는 목걸이를 걸어보았다. 연이는 살펴보다가 살며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요란합니다.”


“그···. 그런가?”


류는 이런 쪽으로는 젬병이라 그런지 권해주는 것마다 연이의 눈에는 잘 차지 않았다. 곤란을 겪고 있을 때 반갑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연이!”


고개를 돌려보니 반가운 표정으로 연이에게 달려들어 포옹하는 후덕한 여자가 보였다. 그 뒤에는 지친 표정의 알폰소가 보였다. 그의 부인인 일렌느가 분명하리라.


가식 없이 웃으며 안아버리는 넉살에 연이도 결국 참지 못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금세 남정네들의 흉을 보기에 바빴다.


“여성들의 안목을 몰라주는구나. 너처럼 얼굴이 하얀 아이에게 그런 무색의 보석이 어울리겠니. 그렇지 이 비취색 나는 보석으로 걸어보자꾸나.”


좌판을 헤집기 시작하는 일렌느와 연이를 보고는 살며시 한 발짝 뒤로 물러선 류는 알폰소에게 물었다.


“언제부터였어?”


“해 뜨자마자 나왔지. 난 밥도 못 먹었다네.”


“나도 한 두시간은 돌아다닌 거 같은데 진도가 나가질 않는군.”


“멋진 여성을 차지한 남자로서 감수해야 할 희생이지. 안 그런가?”


알폰소는 말과는 달리 졸음을 참지 못하고 몰래 일렌느의 눈치를 살피며 커다랗게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희생이 너무 크군.”


일렌느의 수다를 지켜보던 알폰소가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는 무슬림 상인들도 많았다. 전쟁은 전쟁이고, 살기 위한 교역은 끊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저편에도 흥정하다가 손사래를 치며 지나치는 무슬림들이 있었다. 그들 뒤로도 많은 사람이 있었다. 하얗게 센 머리를 후드 밑에 내리깐 노년의 사내가 매서운 눈매를 보이며 지나치고······.


류는 알폰소와 그 뒤의 병사들에게 잠시 이곳을 지켜달라 외치고는 달렸다.


“무슨 일이야!”


알폰소의 고함에도 류는 매섭게 달렸다. 노인은 무슨 눈치를 챘는지 주변의 사내들에게 조용히 말하고는 골목길로 들어가 버렸다. 류는 노인을 쫓았다.


‘빌어먹을 셰이크. 오늘 여기서 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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