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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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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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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53
추천수 :
3,417
글자수 :
1,991,958

작성
23.01.2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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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추천
10
글자
18쪽

이빨과 단검(7) - 조디악

DUMMY

#1


죽은 비를 뿌리던 먹구름이 물러가자 햇빛은 빌딩 사이사이를 파고들었다.

좌우 모두 높은 고층 빌딩으로 이루어진 빌딩 숲의 거리. 다만 버려져 오랜 세월 방치된 탓에 햇빛을 받은 빌딩 숲은 더욱 적나라하게 삭막한 뼈대를 드러냈다. 죽은 도시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성목의 영향으로 과도하게 자란 식물이 그런 죽은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죽음을 감싸고 자라나는 것이 생명으로 가득한 푸름이라니, 그 아이러니함에 산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조금 걷자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잔해 더미가 산의 길을 가로막았다. 심지어 그곳엔 죽은 아우터와 들개 수인병들이 난잡하게 뒤섞여있었다.

짐승의 구린내와 아우터의 썩은내. 피의 비린내. 쓰레기와 오물의 냄새. 그런 온갖 악취가 섞여 산의 코를 찔렀다. 그래도 산의 표정엔 별 변화가 없었다. 시라비아 뒷골목에 비하면 크게 다를 것 없는 악취였다.


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꽂아넣은 채 멈춰선 산은 두리번거렸다.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그렇게 중얼거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 그림자가 불쑥 산의 등을 노렸다.


소리도 기척도 없었다. 하지만 몸집은 거대했다. 건장한 성인 남성 세 명쯤 합치면 나올만한 덩치였다. 그런 몸으로 소리 없이 움직이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쇠가 부딪치는 강렬한 소음에 이어 짐승의 단검이 썩둑 잘리더니 이어서 짐승의 목이 쿵 떨어졌다. 들개가 들고 있던 거대한 단검은 카르마 나이프와 합을 겨룰 수조차 없었다. 강철을 찢는 카르마였으니 당연했다.


산은 카르마 나이프에 묻은 피를 휙 털었다. 그러자 잔해 더미 위로 슬금슬금 들개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넝마 쪼가리를 후드처럼 뒤집어쓴 들개들. 몸집도 모두 크고, 무기도 모두 똑같다. 세세한 차이는 있겠지만 산이 보기엔 들개들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그 중 한 마리의 들개가 앞서 나왔다. 다른 놈들보다 몸집이 조금 더 컸고, 차분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짐승의 눈이 아닌 사람의 눈에 가까웠다.


“그쪽이 우두머리?”

“들개 머론.”


들개가 대답했다. 그는 산을 기습하려다 목이 잘린 들개에 대해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산은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복수라도 한답시고 죄다 달려들었다간, 남아나는 들개가 없었을 것이다.


“넌 누구냐?”

“이클립스 공업의 산.”

“축복의 아이로군.”


머론의 대답에 산의 한쪽 눈썹이 까딱거렸다.


“목을 내주러 왔나?”

“아니. 잠깐 얘기하려고.”

“적과 할 얘기는 없다.”


머론의 쌀쌀맞은 태도에 산은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시선을 내려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특수 코트는 걸치고 있다. 카르마 나이프도 오른손에 쥐고 있다. 왼손의 소매엔 폴딩 나이프가 걸쳐져 있다. 손목 스냅만으로 꺼내 펼치고, 찌르는 데까진 잠깐이면 될 일이다.


다만 조금 전 들개의 목을 베는 데 꽤 힘이 들어갔다. 몸집이 큰 만큼 들개의 목은 두꺼웠고 뼈도 그만큼 굵었다. 카르마의 절삭력이라면 문제는 없겠지만, 완전히 끊는 데까진 시간이 걸린다. 한다면 속도를 더 내야 할 터였다.


점검을 끝낸 산이 다시 시선을 제자리로 돌렸다. 여전히 우두커니 서 있는 머론의 눈이 지그시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도시에 깔린 아우터 때문에 서로 골치 아픈 상황 아니야? 일단 그것들부터 치우고 깔끔하게 우리끼리 승부를 보는 건 어때?”

“적과 함께하지 않는다.”

“이대로면 너희가 질 텐데.”


도발같은 게 아니었다. 머론은 죽은 들개의 잘린 머리를 바라보며 침묵했다.


난입한 아우터. 그리고 이클립스 공업의 소각팀. 이 도시에 뒤엉킨 건 모두 적이었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짐승은 불을 두려워한다. 들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우터를 상대하며 공업의 화염 방사기까지 신경 쓰는 건 확실히 껄끄러웠다.


“뒤처진 것들을 태워라. 그동안 우린 손대지 않겠다.”

“우리가 아우터 잡는 동안 가만히 있겠다고? 이쪽만 너무 손해 보는 거 아냐?”

“...”

“흐음.”


들개와 아우터를 충돌시켜 양쪽을 모두 소모시키고 마무리. 산의 계획은 그랬다. 하지만 머론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움직여줄 것 같지 않았다.

‘차라리 여기서?’ 산은 카르마 나이프를 내려다보며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서 다 잡기엔 역시 수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아우터가 난입한다면 귀찮아질 것 같았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고..”


갑자기 머론이 코를 킁킁거리더니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산은 카르마 나이프를 비틀며 살짝 무릎을 구부렸다가 다시 폈다. 산을 향한 적개심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요란한 굉음이 울리고 있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큰 소리. 공업의 전투기가 비명을 지르는 것과 비슷한 소음이었다.


“속였군.”


머론이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산은 ‘아무것도 모른다.’ 라는 표정을 해 보였지만 짐승이 알아줄 것 같진 않았다.


굉음은 점점 커졌다. 가까워진다는 뜻이었다. 지금 항공권을 장악한 건 이클립스 공업이었다. 다른 곳에서 쓰이는 수송기나 헬기도 전부 공업의 지원이 있는 경우였다.

그러니 이번에도 하늘을 나는 무언가가 있다면 공업일 터였다. 산은 헤이카가 뭔가를 불렀나 싶은 생각에 굉음을 눈으로 좇았다.


하얀 빛이 꼬리를 남기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2


천사(天使).

그건 이름처럼 하늘의 사자를 뜻하며, 낡은 종교에서 자주 언급되던 존재다.


날개를 가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고, 인간이 아닌 모종의 물건으로, 혹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로 취급되기도 하며 이따금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결국, 천사가 어떻게 생겼는가는 기록하는 시대와 인간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천사의 생김새 따윈 이제 와선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디악은 가장 손쉬운 모습을 택했다. 날개를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 물론, 인간처럼 보이는 것뿐이었다. 머리가 있고, 몸이 있고, 양팔이 있고, 다리가 있다. 두 다리로 설 수 있으며 등에는 커다란 날개를 가진다.

그리고 그 모든 걸 덮은 건 쇳덩어리다. 단단한 강철로 된 몸. 합금 덩어리인 날개. 저런 납덩어리 천사가 날개를 가졌다고 해서 하늘을 날 수 있을지 처음엔 많은 이들이 확신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강철 문명의 천사는 기세 좋게 하늘을 날았다. 장거리 이동도 문제없었다. 컨디션도 완벽했다. 이제 천사는 인간의 명령을 기다릴 뿐이었다.


조디악은 높은 하늘에 멈춰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오래전 죽은 도시. 짐승과 괴물, 욕망하는 인간들이 뒤섞여 난동을 부리는 난잡한 곳이었다.


찌릿, 하는 느낌에 조디악이 시선을 올렸다. 명령이 신호로 전달된 것이다.


- 이 도시의 모든 생명체를 파괴 목표로 지정.


명령은 단순했다. 조디악은 눈을 감았다. 눈이라는 게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했다.


쇳덩어리 날개가 활짝 펼쳐지고 조디악의 머리 위로 금빛의 고리가 나타나더니 발광했다. 어설픈 천사처럼 보이던 조디악은 이로써 완전히 천사의 모습을 갖췄다.


고철 덩어리 천사. 기록하는 시대와 인간에 따라 바뀌는 천사의 모습답게, 조디악은 이 시대의 강철 문명을 뒤집어쓴 천사로서 도시에 강림했다.


가장 먼저 조디악은 날개를 한 차례 털었다. 날개에서 후두둑 쏟아진 작은 입자들이 도시를 향해 쏟아졌다. 이어서 조디악은 고도를 낮췄다.


그곳에 있는 땅을 밟는 것으로 천사는 그곳이 자신의 성역임을 선포한다. 천사의 성역은 그 무엇보다 높고 고결한 것이었다. 비록, 지금 같은 경우는 흉내 낸 성역이었지만.

이윽고 빌딩 숲 사이를 내려오던 조디악의 두 다리가 마침내 지면에 닿았다.


{ ... }


도시의 공기는 바뀌지 않았다. 겉보기에도 달라진 게 없었다. 조디악의 성역은 그러한 종류였지만 조디악은 의아함을 느끼며 고개를 기울였다.


쇳덩어리 몸이 여전히 무거웠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성역 안에선 그 쇳덩어리로 이루어진 몸도 가벼워졌다. 그러니 성역이 선포되었다면 몸이 가벼워야 할 터였다.

하지만 무거웠다. 움직이지 못할 건 없어도, 성역이 선포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문제였다.


찌릿. 또다시 머릿속에 신호가 들어왔다. 바늘로 뇌를 쿡쿡 찌르는 듯한 감각에 조디악의 머리가 살짝 떨렸다. 이번에 들어온 명령은 조금 복잡했다.


- 성역 선포 반응 없음.

- 인근의 레벨 6 이상의 성역이 선포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음.

- 스캔 실행.


조디악은 날개를 살며시 털었다. 무거운 금속 깃털에서 흩어져 나가는 입자가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다. 그냥 먼지처럼 보이지만, 조디악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초소형 로봇들이었다.

그 초소형 입자 로봇은 짐승의 호흡기로 침투해 내부에서부터 짐승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조디악의 무서운 기능 중 하나였다.


- 스캔 종료.

- 데이터 업로드.


조디악은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로 이 도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세세하게 알 수 있었다. 짐승, 괴물, 인간, 그리고 원인 모를 성역, 전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하나.


{ ... }


‘Unknown’ 으로 표기된 생명체가 있었다. 한 자리에 고정되어 움직이진 않았지만 짐승, 괴물, 인간, 어느 한 곳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가 이 도시에 있다는 건 충분한 위험 요소였다.


- 성역 파괴 실시.


찌릿. 두통에 조디악이 얼굴을 찌푸렸다. 표정은 없었지만,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명령대로 움직였다. 조디악이 다시금 하늘로 날아올랐다.


출처불명의 성역은 한 폐빌딩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람이 많았다. 조디악은 하늘에서 그 빌딩을 향해 손을 펼쳤다.


찌릿. 또다시 두통이었다. 하지만 명령이 들어온 건 아니었다. 의문을 느끼던 조디악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모두 죽는다?’


성역을 파괴하는 건 간단한 일이다. 그 지역을 통째로 날려버리면 될 뿐이었다. 다만, 저곳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짓을 했다간 저곳에 있는 사람들도 함께 목숨을 잃게 될 터였다.


{ 도시의 모든 생명체를 파괴 목표로 지정.. }


조디악은 중얼거렸다. 분명 그런 명령이었다. 설령 그게 사람이더라도 예외 없이 정리하라는 명령이다.

명령은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조디악이었지만 그때마다 바늘로 뇌를 찔러대는 듯한 통증이 심해졌다.


- 오버 마인드 수치 75%.


‘조디악이 왜 저러는 거죠?’

‘짐승은 잡아봤어도 아직 살인의 경험은 없습니다. 첫 살인이 어렵다.. 뭐 그런 거겠죠.’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듯이 들렸다. 사람의 목소리. 조디악은 의문을 느꼈다. ‘조디악이 누구지?’ 그런 의문. 하지만 살인의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게 자신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조디악은 나로군.’ 조디악은 펼쳤던 손을 내렸다.


{ 실행할 수 없음. 성역 내부에 구조 대상이 있다. }


조디악은 그렇게 말했다. 파괴 목표가 아닌 구조 대상으로. 완벽하게 원래의 명령을 부정하는 의견이었다.

조금 뒤, 다시 머릿속으로 명령이 내려왔다.


- 리마인드. 도시의 모든 생명체를 파괴 목표로 지정.


{ 실행할 수 없음. }


‘쇼크를 넣을까요?’

‘그랬다간 오버 마인드 수치가 초과한다. 말 들을 때까지 명령을 계속 내려. 수치도 계속 체크하고.’


그때부터 두통은 끔찍해졌다. 모두 파괴하라는 명령. 그걸 부정하는 거부감. 조디악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때였다. 데이터에 있던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였다.


사람이 낼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짐승이 낸다기에도 지나치게 빨랐다. 저런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지금 시대엔 손에 꼽을 정도였다.


- 언노운 접근.


무시무시한 속도를 내는 생명체는 조디악이 있는 장소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조디악은 주변을 스캔했지만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생명체는 지상에 있었다.

시선을 지상으로 내리자, 새까만 그림자 하나가 나아가는 게 보였다. 어찌나 빠른지 조디악의 복잡한 시신경 시스템에선 그림자가 쭉 늘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길게 꼬리를 남기는 그림자는 한 고층 빌딩을 항해 이동하더니, 놀랍게도 그 빌딩을 수직으로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 언노운 접근.

- 파괴 목표로 지정.


인간이 아니라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조디악은 거부감 없이 그림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조디악은 충격을 느꼈다. 빌딩을 타고 달리는 것이 다름 아닌 사람이었기에.


사람이 두 다리로 고층 빌딩의 외벽을 타고 오르는 게 가능한가? 특수한 장치가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런 속도는 말이 되지 않았다. 평범한 인간이 저런 속도를 낸다면 몸이 먼저 부서졌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조디악은 저것이 ‘사람의 형상을 한 사람이 아닌 무언가’ 라는 복잡한 결론을 내렸다. 얕은 거부감이 있었지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조디악이 날개를 털었다. 반짝거리며 흩뿌려지는 입자가 빌딩을 향해 쏟아졌다.


외벽을 타던 그림자는 마침내 빌딩의 끄트머리쯤에서 나무뿌리에 칼을 박고 빙그르르 몸을 회전시켜 튀어 오르더니, 나무뿌리를 딛고 길쭉한 검을 뽑았다.

그 검은 특이한 생김새였다. 한 손으로 쓰기엔 조금 컸고 끝이 직각으로 되어있었다. 그게 참수도라 불린다는 걸 조디악은 알지 못했다.


빌딩을 향해 나아가던 초소형 로봇들의 신호가 갑자기 뚝 끊겼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전부 파괴되었다는 뜻이었다.

한 손엔 새까만 단검을, 한 손엔 길쭉한 참수도를. 그렇게 나무 뿌리 위에 선 남자는 검은 코트를 펄럭거리며 허리를 세웠다. 남자의 주변으로 공기가 일그러졌고 나무뿌리에 쩍쩍 금이 가고 있었다.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조디악은 대응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조디악의 손이 남자를 향해 펼쳐졌다. 손바닥에 있는 작은 구멍에서 빛이 모였다.


{ ? }


남자의 모습을 놓쳤다. 바로 다음 순간 조디악의 팔이 썩둑 잘려나갔다. 새까만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조디악과 같은 높이까지 튀어 올라있었다.


전신을 짓누르는 강력한 중력의 압박에 조디악의 날개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견뎠다. 하지만 그 날개는 어느샌가 쭉 찢어져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날개를 잃은 조디악의 몸이 기우뚱하며 고꾸라졌다. 비행 능력을 잃었으니 잘린 날개처럼 떨어질 일뿐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조디악은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검은 그림자를 보았다. 저게 어떻게 하늘을 날아 자신과 같은 곳에 도달했고, 팔과 날개를 잘라냈는진 조디악의 능력으로 알아낼 수 없었다.


{ 날개를 잃었.. }


조디악의 음성이 끊어졌다. 오류일까, 또 어딘가가 베인 것일까. 추락하는 조디악은 알 길이 없었다.


내리찍는 압력에 엄청난 속도로 지상에 충돌한 조디악은 거대한 흙먼지를 일으켰다. 날카롭게 잘린 쇳덩어리 날개가 지상에 푹, 푹 연달아 꽂혔다. 두 팔이 툭 떨어졌다. 다리도 잘려 떨어졌다.


조디악은 몸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조디악 본인이 보고 있었다. 그 머리가 잘려 남자의 손에 들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음성 시스템이 고장 났던 건 목이 잘렸기 때문이었구나, 조디악은 뒤늦게 깨달았다. 온몸이 썰리는 동안 전혀 깨닫지 못했다.


“뭐야? 이거? 새가 아니었네?”


산은 그 고철 덩어리 천사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조금 뒤, 산은 그게 연방의 류호 공업에서 개발한 대 짐승용 병기 조디악이라는 걸 깨달았다.


“..설마 물어내라곤 안 하겠지.”


찝찝한 표정이 된 산은 조디악의 머리를 옆구리에 끼고 몸을 돌렸다.




...




같은 시각, 시라비아 콜레타에 임시로 설치된 조디악 운용 시설에선 침묵이 흘렀다.


조디악을 점검, 운용하던 기술자들, 그 조디악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던 시드(SEED)의 멤버 시안도 그저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조디악의 시신경과 연결되어 있던 메인 모니터는 치직거리는 노이즈가 끼다 못해 이내 꺼져버렸다. 명령 신호를 보내도 조디악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완벽한 침묵이었다.


“...푸흐흐..”


침묵만이 흐르는 곳에서 누군가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기술자들의 뒤에서 모든 걸 지켜보던 쿠스카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를 돌아본 총책임자 시안은 ‘아’ 하며 벌어진 입에서 소리를 냈다.


“아하하하하!! 이게 뭐야! 죽었잖아? 처형인 하나한테 그냥 죽어버렸는데? 이딴 게 뭐?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천사? 대 짐승용 병기? 인류의 희망?? 푸흣!”


쿠스카는 배를 잡고 웃었다. 시안은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벌어진 입만 벙긋거릴 뿐, 말이 나오질 않았다.


“방금 그거는 뭡니까요?”


눈가에 다크서클이 진하게 깔린 한 기술자가 겨우 목소리를 냈다. 쿠스카는 겨우 웃음을 멈추고 그 기술자를 마주 보았다. 쿠스카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쿠스카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그냥 마음 시키는 대답을 골랐다.


“나도 몰라.”

“아하.”


시설 내부엔 다시금 침묵이 흘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오늘은 조금 일찍 올립니다.


 주말 편히 보내시고, 명절 잘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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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개벽(8) - 저주 +1 23.02.17 191 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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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개벽(6) - 낡아빠진 사냥꾼 23.02.15 172 9 14쪽
206 개벽(5) - 먹는 자들 +1 23.02.14 182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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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개벽(1) - 변하는 세상 +1 23.02.08 213 9 13쪽
201 짐승의 힘 23.02.07 201 9 12쪽
200 방황하는 자들의 기도 +1 23.02.06 230 8 14쪽
199 계약 23.01.31 205 10 14쪽
198 굶주린 용 +1 23.01.30 194 8 13쪽
197 처형인의 상념 23.01.27 208 9 15쪽
196 이빨과 단검(11) - 증명 23.01.26 187 10 15쪽
195 이빨과 단검(10) - 들개 무리 +1 23.01.25 189 10 15쪽
194 이빨과 단검(9) - 패색(敗色) 23.01.24 199 10 12쪽
193 이빨과 단검(8) - 대가 23.01.23 209 8 20쪽
» 이빨과 단검(7) - 조디악 23.01.20 208 10 18쪽
191 이빨과 단검(6) - 가려진 것들 +1 23.01.19 192 10 23쪽
190 이빨과 단검(5) - 사탕과 아이 +1 23.01.18 210 9 17쪽
189 이빨과 단검(4) - 진실 +1 23.01.17 205 10 21쪽
188 이빨과 단검(3) - 제3세력 23.01.16 211 10 20쪽
187 이빨과 단검(2) - 죽은 비 23.01.13 214 9 16쪽
186 이빨과 단검(1) - 죽은 도시의 소란꾼 23.01.12 233 10 15쪽
185 중간 점검 +1 23.01.11 239 10 16쪽
184 새로운 아침 +1 23.01.10 227 9 14쪽
183 장막(20) - 쓴맛 23.01.09 203 9 16쪽
182 장막(19) - 잿빛 땅의 왕 23.01.06 193 10 17쪽
181 장막(18) - 지배자의 자격 23.01.05 227 1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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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장막(15) - 지하 +1 23.01.02 198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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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장막(8) - 전야(前夜) +1 22.12.22 210 10 18쪽
170 장막(7) - 약점 22.12.21 216 9 15쪽
169 장막(6) - 짐승이 두려워하는 것 +1 22.12.20 218 8 17쪽
168 장막(5) - 윈터(Winter) 22.12.19 193 9 16쪽
167 장막(4) - 실수 22.12.16 221 8 22쪽
166 장막(3) - 공백의 구멍 22.12.15 223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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