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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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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7
글자수 :
1,99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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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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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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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7쪽

이빨과 단검(5) - 사탕과 아이

DUMMY

#1


사탕을 받던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그걸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다.

결국 아이는 사탕이 아닌 사탕 상자를 원하게 되지만, 사탕 상자를 받던 아이는 곧 그마저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때부터 아이는 사탕 가게를 원하게 될 것이다.

욕망이란 그렇게 깊어지기 마련이다.


- 교주 블라다카




하늘을 향한 총구에서 희뿌연 초연이 흘러나왔다.


잿빛 먹구름을 향해 스멀스멀 올라가던 연기는 곧 흩어졌다. 누군가를 향한 살의와 누군가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처럼.


“...”


총을 쥔 헤이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산을 바라보았다.


“산아?”

“죄송. 오른팔이 멋대로 했나 봐요.”


헤이카의 손목을 잡은 건 오른손이었기에, 산은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헤이카는 산이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무뚝뚝한 표정에선 더 이상 순종적인 눈빛이 깃들어있지 않았다. 마치 총성이 짐승의 잠을 깨운 것처럼, 뜬 눈으로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그 눈동자 속에 깨어나 있었다.


“..놔줄래? 아파.”

“예.”


산은 순순히 손목을 놓아주었다. 헤이카는 붉게 자국이 남은 손목을 매만지며 다시 총구를 엔핀의 머리에 겨누었다.

하지만 엔핀과 헤이카의 권총 사이엔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그게 산이라는 걸 깨달은 헤이카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산아. 비켜.”

“일단은 생명의 은인이라서요. 죽으면 찝찝하잖아요.”


그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한 헤이카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늘 말 한마디로 움직이던 산의 눈동자엔 꺼림칙한 독기가 넘실거리다 못해 뚝뚝 흘러나오고 있었다.

있을 리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헤이카는 목을 가다듬고 힘을 주어 말했다.


“..산. 명령이야. 거기서 비켜. 아니면 네가 그 여자 목을 가져와. 그 여자는 우리 적이야.”

“얼마 주실 거죠?”


헤이카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조금 고민하던 끝에 말했다.


“원하는 만큼.”

“그럼 공업 회장 자리 주실래요?”

“..어?”

“헤이카가 예전에 말했잖아요? 곁에 있어준다면 제가 원하는 건 다 해준다고. 뭐든지 준다고. 기억나죠?”


산은 빈손을 내밀었다. 이번엔 빌린 오른손이 아닌 자신의 왼손으로.


“그러니 회장 자리 주세요. 회장 하고 싶어졌어요.”

“이 자리는.. 그렇게 좋은 게 아니야. 짊어져야 할 것도 많아. 쉴 틈도 없고.. 네가 원하는 그런 건..”

“안 돼요? 그럼 뭐..”


쩝하고 입맛을 다신 산은 헤이카에게 내밀었던 손을 치웠다. 그리곤 코트 주머니에 양손을 꽂아넣고 돌아섰다.


“그만둘까..”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제가 달라는 거 다 해준다는 조건으로 공업에 있던 건데, 안 해주잖아요. 솔직히 벌 만큼 벌어서요. 다른 일 해도 될 것 같아요.”

“산아. 저 여자가 무슨 소릴 했는진 모르겠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다 헛소리야.”


헤이카의 말을 들으며 산은 엔핀의 앞에 섰다. 여전히 그녀의 등을 누르던 크롬벨 대원은 비키라는 듯 휘휘 젓는 산의 손을 발견했다.

대원은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크롬벨의 대장도 아닌 산의 명령을 들을 이유는 없었다. 그는 헬멧을 좌우로 저었다.


“..개가 말을 안 듣네?”


그 한 마디에 대원은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 같았다. 얼떨결에 고개를 든 그는 무심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산의 얼굴을 마주 보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순한 양 같은 게 아니었다. 시라비아 마피아가 기른 처형인이자, 그 끔찍한 밑바닥에서도 살아남은 괴물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괴물은 목줄이 완전히 풀려있었다.


“...”


묵언의 압박. 그 시선에 담긴 건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이대로 산과 대치했다간 정말로 살해당할지도 모른단 생각에 대원은 재빨리 물러났다.


“아파 죽겠네..”


그제서야 자유의 몸이 된 엔핀은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옷에 묻은 먼지나 물기를 툭툭 터는 그녀를 향해 산이 말했다.


“더 말해봐.”

“응? 뭘?”

“내가 아직 모르는 것들.”


엔핀이 피식 웃었다. 산의 어깨너머에서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던 헤이카가 소리쳤다.


“산! 그 여자 말 듣지 마!”

“...”

“내가 여기 있잖아! 내가 구하러 왔잖아! 난..”

“좀 신기한 기분이에요. 헤이카.”


산은 헤이카의 말을 끊었다. 싸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산의 새하얀 머리칼이 흐르듯 휘날렸다.


“전 헤이카만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요. 단둘이 있을 땐 더 좋고요. 이것저것 경험하게 해준 것도 좋죠. 맛있는 거 먹고, 같이 바다 구경도 하고, 술도 마시고, 살면서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해 본 적은 처음이거든요.”


천천히 몸을 돌린 산은 다시 헤이카를 마주 보고 섰다. 다만, 지금의 산은 이전과는 분명히 달랐다.

거리는 고작 몇 걸음 정도 더 벌어졌지만 헤이카가 느끼는 산과의 거리감은 훨씬 컸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임에도 손을 뻗으면 산이 오히려 멀어질 것 같았다.


그의 싸늘한 얼굴은 그런 헤이카를 더욱 압박했다. 완전히 다른 사람. 아니, 어쩌면 산이라는 인간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일지도 몰랐다.

산은 그런 헤이카를 향해 말을 이었다.


“진짜에요. 시라비아에서 만난 여자라곤 매춘부 아니면 범죄자가 전부니까요. 게다가 누굴 좋아하기엔 저도 너무 어렸고.. 당장 먹고 사는 게 중요했어요.”

“그러다 공업에 들어오고 나름 여유가 생겼어요. 또 함께 지내면서 헤이카가 절 아껴준다는 걸 깨달았죠. 잠자리에서 살아있는 사람의 숨소리랑.. 온기를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어요. 예. 거짓말 안 하고 진짜 겁나 좋았어요.”


싸늘한 표정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기분 좋은 미소는 아니었다. 산의 눈은 여전히 웃지 않았다.


“근데 좀 이상하더라고요. 가질 건 다 가진 것 같은데 뭔가 부족했어요. 그래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다들 묻더라고요. ‘헤이카는 대체 왜 너 같은 밑바닥 칼잡이를 주워다가 그렇게 아끼는 거냐.’ 라고.”


한 걸음. 다가오는 산의 발소리에 헤이카는 움찔했다.


“좀 생각해봤더니 알겠더라고요. 헤이카는 날 좋아하는 게 아니구나. 그래서 이것저것 속이고, 부려 먹기만 하는 거구나.”

“..산아. 지금 네 상태가 안 좋아. 이 도시 때문이야. 도시의 오염이 네 백사병에 영향을 주고 있어.”

“그런가? 머릿속이 붕 뜬 기분이긴 하네.”


산은 손바닥으로 자기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하얀 머리칼이 그때마다 흔들리고, 그 사이에서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뚫어져라 헤이카를 주시했다.


“왜 그런 눈으로 봐요? 헤이카는 그런 표정을 짓는 사람 아니었는데.”


헤이카는 놀란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산의 시선은 날카롭게 꽂힌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원인 모를 섬뜩함을 느끼던 그녀는 어느샌가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툭, 툭, 머리를 두드리는 산의 손길이 점점 거칠어졌다.


“다들 그래요. 내가 미쳤다고.”

“아니야. 산이는 아직..”

“아직이면 언젠간 미치겠네요. 그렇죠? 불치의 백사병 감염자인데, 그것도 이렇게 머리가 새하얘질 정도의 중증 환자잖아요. 사실 이미 미친 거 아닌가 싶어요. 다들 미쳤다고 하니까. 그런가?”


툭. 머리를 두드리던 손이 멈췄다. 그대로 축 늘어진 산의 손이 꿈틀거렸다. 비스듬히 기울인 시선은 눈을 깜빡이는 일도 없이 헤이카를 주시했다.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저건 그런 눈이었다.

시라비아에서도 한 번 본 사람들은 잊지 못할 눈동자. 백사병으로 탁하게 흐려졌어도 그 기운을 잃지 않은 눈.


문득 헤이카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막대 사탕을 발견했다. 조금 전 자신이 산에게서 빼앗아 던져버린 사탕이었다. 저 사탕이 무언가 영향을 준 것일까, 그런 생각에 헤이카는 엔핀을 노려보았다. 헤이카는 산을 이렇게 만든 게 그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엔핀은 조금 전까지 보이던 여유로운 미소를 지우고 오히려 당황한 얼굴이었다. 심지어 겁에 질린 듯 산으로부터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헤이카. 나는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요. 이 거지 같은 세상에서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살고 싶어요. 사랑스러운 아내에, 토끼 같은 자식들 낳아서 그렇게 늙어가고 싶어요. 죽을 때도 잠자듯이..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 가고 싶어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최고의 삶이잖아요?”

“산아. 우선.. 나가서 얘기할까?”

“욕심은 끝이 없다던가. 내가 유난히 그런 모양이에요. 사실 헤이카가 날 속인 건 별로 신경 안 써요. 사람 관계는 다 그렇잖아요. 속고 속이면서 비밀 몇 개쯤은 간직하고 있잖아요. 이해해요.”


또 다시 한 걸음. 산은 헤이카를 향해 전진했다. 반대로 헤이카는 그런 산에게서 물러났다.

나아가는 걸음과 물러나는 걸음. 다소 무의미해 보이는 그 과정이 몇 번 반복되던 끝에 헤이카는 등이 옥상 엘리베이터 외벽에 부딪혔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숨을 삼켰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제야 부족한 게 뭔지 알겠어요. 사탕 가게를 손에 넣은 꼬맹이한테 다음은 뭘 쥐어줘야 만족할까 쭉 고민했는데.. 바로 앞에 있는 걸 놓치고 있었어요.”


마침내 산은 벽에 몰린 헤이카의 앞에 멈춰 섰다. 헤이카는 소름 끼치게 찢어진 산의 입꼬리를 보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전부 다예요.”


헤이카는 그 미소를 처음 보는 게 아니었다. 위험한 상대와 칼춤을 출 때마다 산은 늘 입이 찢어져 웃고 있었다. 그래서 산은 시라비아의 웃는 처형인이라는, 스마일 페이스라는 광대 같은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다만 그 미소가 자신을 향한 것은 처음이었다. 헤이카는 움켜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전부 내가 가지면 되는 거였어.”



#2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위층에서부터 우르르 쏟아져 내려온 크롬벨 대원들의 기습에 카타로니아와 파스트라스는 얼떨떨한 얼굴로 서로 눈치를 살폈다.


“이게 무슨 소란입니까?”


멀리서부터 복도를 가로지르는 빠른 발걸음은 카타로니아의 신부인 가라크 돌비였다. 그는 푹 패인 눈알을 굴리며 크롬벨 대원들을 빠르게 훑었다.


“이클립스 공업?”

“맞습니다.”


가라크 돌비가 앞으로 나왔듯이, 크롬벨 대원들 사이로 클레멘타인이 앞서 나왔다. 대신 그녀의 총구는 정확히 그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헤이카 미켈런이 보냈습니까?”


가라크가 물었다. 클레멘타인은 마스크 너머로 짧은 숨을 내쉬며 답했다.


“예. 저항하면 발포하라는 지시입니다.”

“정말.. 여긴 성역입니다. 성역을 망가뜨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는 겁니까?”

“아우터라면 걱정하지 마시길. 토벌팀이 현장에서 작전 중입니다.”


옅은 눈썹을 찌푸린 가라크는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 그의 삐죽한 귀가 꿈틀거렸다.

조금 뒤, 그는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아우터의 울음소리.. 정말 그들을 사냥하고 있습니까? 이클립스 공업에 그런 전력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뱀은 잡는 건 어려울 텐데요.”

“뱀은 쫓아내는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니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십시오.”

“쫓아낸 뱀이 어디로 갈 줄 알고 쫓아낸다는 겁니까? 이곳에 묶어두는 게 훨씬 안전..”


퉁!

묵직한 총성이 가라크의 귓가를 스쳐 복도 벽에 박혔다. 가라크는 연기를 흘리는 클레멘타인의 총구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악의 무리..”

“...”

“우리는 악에게 굴복하지 않는 카타로니아의 경건한 신도들입니다.”

“그렇다면 유감입니다.”


클레멘타인이 손짓했다. 가라크 돌비도 허리춤에 매달아 놓았던 망치를 휘릭 뽑아 쥐었다.


{ 크롬벨.. 교전하지 마. }


충돌의 직전 들어온 헤이카의 통신에 클레멘타인은 정지 신호를 보냈다. 그들의 낌새가 이상해졌음을 깨달은 가라크도 미간을 찌푸렸다.


“뭐죠? 왜 무기를 거두십니까?”

“교전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세한 이유는 그녀도 몰랐다. 단지 크롬벨은 헤이카의 지시를 따르기만 할 뿐이었다.

다만 클레멘타인은 통신기 너머 헤이카의 목소리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통신 채널을 크롬벨 내부로 조정했다.


“옥상. 무슨 일이지?”


{ 그, 그, 그쪽으로 내려갔습니다... }


“누가?”


{ 산 팀장.. 조심하십시오. 뭔가 이상합니다. 팀장님.. 그 칼잡이, 위험합니다. }


“박사님은?”


{ 같이.. }


마침 엘리베이터의 도착 알림음이 그녀의 귓가에 울렸다. 클레멘타인과 크롬벨 대원들의 총구가 재빠르게 엘리베이터 문을 향해 휙 돌아갔다.


1층에 도달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곳엔 산이 있었다. 헤이카는 그의 조금 뒤에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고 그녀의 반대편에는 엔핀이 굳은 얼굴로 턱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


클레멘타인은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헤이카의 표정이 평소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치 겁에 질린 사람처럼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뭐해요? 총구가 왜 이쪽이야?”


엘리베이터 먼저 내린 산이 입을 열었다. 그럼에도 클레멘타인은 대원들에게 총을 내리도록 지시하지 않았다.

시커먼 총구를 멍하니 훑어보던 산의 눈이 클레멘타인에게 꽂혔다.


‘위험하다.’


그 눈을 마주친 순간, 그녀는 소름 끼치는 감각을 느꼈다. 등허리에 땀이 고이며 오싹했다. 본능이 보내는 위험 경고였다.


“...산 팀장님. 나설 필요 없습니다. 여긴 저희가 정리하겠습니다.”


클레멘타인은 먼저 그렇게 말했다. 먼저 산의 상태를 떠보기 위함이었다.


“그래요. 근데 총구는 왜 이쪽? 일단 치우죠?”

“이건...”

“또 말을 안 듣네.”


코를 한 번 훌쩍인 산이 검은 코트를 탁탁 털었다. 그리곤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아주 짧은 바람 소리가 모두의 귓가를 스쳤다.


“...?”


크롬벨 대원들은 클레멘타인이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지는 광경에 얼빠진 시선으로 그녀의 기울어지는 몸을 따라갔다. 이내 그녀의 총과 몸뚱이가 요란하게 바닥에 부딪치며 나뒹굴었다.

몸은 잠시 움찔거리며 경련하더니 이내 조금씩 늘어졌다.


그 몸에는 머리가 없었다. 대원들은 사라진 그녀의 머리를 찾으려는 듯 멍청하게 눈을 굴려댔고, 조금 뒤 복도 벽에 부딪히며 바닥에 툭 떨어져 구르는 클레멘타인의 머리를 발견했다.


울컥거리며 쏟아져 나오는 새빨간 피가 복도에 웅덩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크롬벨 대원들은 클레멘타인이 왜 머리를 잃고 바닥에 나동그라졌는지 깨닫지 못한 채 얼어붙어 있었다.


“총 내리죠?”


답답한 침묵이 깔린 복도에서 산의 목소리가 번졌다. 평소의 말투였지만 크롬벨 대원들은 그의 목소리가 고압적으로 느껴졌다. 목을 조이고, 심장을 조여오는 것 같았다.


방아쇠를 당기느냐, 당기지 않느냐.

두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던 크롬벨의 한 대원이 떨리는 숨을 토하며 총을 내렸다. 그러자 다른 대원들도 그를 따라 하나, 둘 총구를 내렸다.


산이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의 구두가 클레멘타인의 피 웅덩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밟고 지나갔다.


쯔걱거리는 질척한 소리를 내며 복도에 찐득한 붉은 발자국이 남았다. 가라크 돌비와 카타로니아의 신도들, 퍼렌도를 포함한 파스트라스의 대원들은 모두 말을 잇지 못한 채 그 발자국을 흘겨보기만 했다.


“시카! 시카~! 어딨어요?”


복도에 울리는 산의 목소리에 어디선가 시카가 나타났다. 그녀는 복도에 벌어진 소란에도 별로 놀라지 않은 듯, 그저 눈꺼풀을 잠깐 꿈틀거릴 뿐이었다.


“가서 저거.. 클레멘타인 좀 살려놔요.”


조용히 끄덕인 시카가 클레멘타인의 피웅덩이를 향해 걸어갔다.


여전히 질척한 발소리를 내며 산의 구두는 복도를 쭉 나아갔다. 곧 그는 빌딩의 출구에 도달했고 거리낌 없이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음울한 빌딩 숲의 한복판. 마침 먹구름도 조금씩 물러나 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따스한 햇빛이 구름의 움직임에 맞춰 삭막한 죽은 도시를 부드럽게 훑었다. 그렇게 나아가던 햇빛은 천천히 산이 있는 자리를 비추었다.


“날씨 좋네.”


피로 이어진 발자국 끝에서 산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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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개벽(13) - 자장가 +1 23.02.24 199 10 21쪽
213 개벽(12) - 관측자들 +1 23.02.23 178 10 14쪽
212 개벽(11) - 암살자 +1 23.02.22 168 10 12쪽
211 개벽(10) - 비정한 거리 +1 23.02.21 170 10 13쪽
210 개벽(9) - 꿈 23.02.20 182 9 16쪽
209 개벽(8) - 저주 +1 23.02.17 191 9 18쪽
208 개벽(7) - 반갑지 않은 손님 23.02.16 183 8 11쪽
207 개벽(6) - 낡아빠진 사냥꾼 23.02.15 172 9 14쪽
206 개벽(5) - 먹는 자들 +1 23.02.14 182 9 12쪽
205 개벽(4) - 짐승과 마법사 23.02.13 184 8 14쪽
204 개벽(3) - 우는 짐승 +1 23.02.10 190 9 14쪽
203 개벽(2) - 속고 속이며 23.02.09 191 9 14쪽
202 개벽(1) - 변하는 세상 +1 23.02.08 213 9 13쪽
201 짐승의 힘 23.02.07 201 9 12쪽
200 방황하는 자들의 기도 +1 23.02.06 230 8 14쪽
199 계약 23.01.31 205 10 14쪽
198 굶주린 용 +1 23.01.30 194 8 13쪽
197 처형인의 상념 23.01.27 208 9 15쪽
196 이빨과 단검(11) - 증명 23.01.26 187 10 15쪽
195 이빨과 단검(10) - 들개 무리 +1 23.01.25 189 10 15쪽
194 이빨과 단검(9) - 패색(敗色) 23.01.24 199 10 12쪽
193 이빨과 단검(8) - 대가 23.01.23 211 8 20쪽
192 이빨과 단검(7) - 조디악 23.01.20 208 10 18쪽
191 이빨과 단검(6) - 가려진 것들 +1 23.01.19 193 10 23쪽
» 이빨과 단검(5) - 사탕과 아이 +1 23.01.18 211 9 17쪽
189 이빨과 단검(4) - 진실 +1 23.01.17 206 10 21쪽
188 이빨과 단검(3) - 제3세력 23.01.16 211 10 20쪽
187 이빨과 단검(2) - 죽은 비 23.01.13 214 9 16쪽
186 이빨과 단검(1) - 죽은 도시의 소란꾼 23.01.12 233 10 15쪽
185 중간 점검 +1 23.01.11 239 10 16쪽
184 새로운 아침 +1 23.01.10 227 9 14쪽
183 장막(20) - 쓴맛 23.01.09 204 9 16쪽
182 장막(19) - 잿빛 땅의 왕 23.01.06 193 10 17쪽
181 장막(18) - 지배자의 자격 23.01.05 227 10 19쪽
180 장막(17) - 상처 입은 짐승 +1 23.01.04 205 9 14쪽
179 장막(16) - 망자의 기록 +1 23.01.03 205 7 13쪽
178 장막(15) - 지하 +1 23.01.02 198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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