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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기씨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 전쟁(惡魔 戰爭)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김고기씨
작품등록일 :
2020.03.29 13:00
최근연재일 :
2020.09.16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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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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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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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7화 – 여행에 필요한 것 2

DUMMY

이든은 메리안과 함께 시장거리로 나섰다.


메리안뿐만 아니라 짐머와 이든도 새 옷과 신발이 필요했다. 메리디안 강을 따라 챠드까지 오는 두 달 남짓의 여정 동안 둘은 계속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간편한 옷과 튼튼한 신발을 사. 그리고 뭐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사도 돼. 나는 대주교님과 함께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짐머는 도미니코 사제에게 돈을 융통해 이든에게 쥐어주고는 메리안과 함께 시장으로 보냈다.


“자 보세요. 챠드 중앙 시장은 플레이튼 대륙에서 가장 큰 시장이에요.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죠.”


메리안은 왠지 신이 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시키지도 않은 시장 안내를 시작했다.


“성 오레나 대교회에서 사방 어느 쪽으로든 반나절을 걸어갈 동안 시장이 이어져요. 엄청나죠?”


이든은 그녀에게 장단을 맞춰주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치 않은 시장의 번잡스러움이 부담스러웠다. 어서 옷과 신발을 사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하기도 했다.


“네. 엄청나네요. 그런데 사제님 옷이랑 신발은 어디서 살 수 있죠?”


“이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오른편으로 옷이랑 신발을 파는 가게들이 수십 개는 있어요. 어머 근데 저기 좀 봐!”


메리안은 상기된 표정으로 떠들며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더니 그릇을 파는 가게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이든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혼자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따라 가게로 들어섰다.


가게에는 질그릇부터 항아리, 도자기, 유리로 만든 고급스러운 술잔까지 온갖 종류의 그릇들이 진열돼 있었다.


그것들을 구경하는 메리안의 갈색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이 그릇들 좀 보세요. 우와··· 정말 예쁘다.”


이든에게 말하는 것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말들을 중얼거리며 메리안은 연신 그릇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저기··· 사제님. 저희는 옷하고 신발을 사야 하는데요.”


“알아요. 알아요. 근데 잠깐만요.”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가게 주인이 아까부터 메리안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중이었다. 혹여 그녀가 그릇들을 깰 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이든은 가게 주인의 눈치가 보였다.


“사제님, 이제 그만··· 가시죠.”


“이것 좀 봐봐요.”


메리안은 이든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리잔을 하나 들어 이든에게 보였다.


“보세요. 이 유리, 파란색 빛이 나죠? 이건 메르시안 제국에서 건너온 것이 분명해요. 플레이튼 대륙에는 이렇게 색이 들어있는 유리잔을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없거든요.”


“네 사제님. 이제 그만 잔은 내려놓으시구요. 어서···”


“어머, 저 찻잔 좀 봐.”


메리안은 금방 들었던 유리잔을 자리에 내려놓고 이번엔 하얀색 백자 찻잔을 구경하러 가버렸다.


이든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메리안은 백자 찻잔을 들어 이리저리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 찻잔은 진짜 최고품이네. 언젠가 황제폐하가 오셨을 때 꺼내 놓았던 찻잔 하고 비슷해···”


“사제님, 저희 놀러 나온 것이 아니니까···”


“이것 보세요. 겉면이 이렇게나 부드럽다니, 이런 찻잔으로 매일 차를 마실 수만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죠?”


이든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메리안의 손에서 찻잔을 뺏으며 언성을 높였다.


“사제님! 언제까지 여기서 그릇만 구경할 겁니까! 저희는 놀러 나온 게 아니잖아요!”


메리안은 화들짝 놀라며 이든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이 이든의 눈과 마주쳤다.

이든은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사과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서··· 나오세요.”


이든은 내뱉듯 말하고는 가게 밖으로 나섰다. 그는 메리안을 기다리고 싶지 않아 먼저 걸음을 옮겼다.


“저기!”


뒤쫓아 나온 메리안이 이든을 불렀다. 이든은 또 무슨 얘기를 하려나 싶어 화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쪽 아니고··· 옷하고 신발 가게는 이쪽이에요.”


메리안이 곤란한 표정으로 이든이 가던 방향의 반대쪽을 가리켰다.


이든은 민망했다. 그러자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일부러 메리안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메리안이 가리킨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이든이 메리안을 지나칠 때 메리안이 말했다.


“미안해요.”


갑작스러운 사과에 이든은 멈춰 서서 메리안을 뚱하니 바라보았다.


“내가 너무 애들같이 굴었죠? 교회 밖으로 나온 게 하도 오랜만이라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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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든과 메리안은 여행자가 입기 좋은 편안한 옷과 망토, 그리고 튼튼한 소가죽으로 만든 부츠를 구입했다.


짐머가 입을 수 있는 크기의 옷은 흔치 않아 여러 가게를 돌아다녀야 했다. 그동안 둘은 꽤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써던교는 엄격한 율법을 가지고 있는 종교였다. 사제들은 교회 밖으로의 외출이 금지되었다.


응급환자가 생겨 의사를 불러야 하는 등 긴급한 경우에만 외출이 허락됐다. 그러나 그나마도 역할이 정해진 사제들이 따로 있었다.


메리안은 오늘이 거의 3년 만의 외출이라고 말했다. 이든은 그제야 메리안이 왜 그토록 들떠 있었는지 이해가 갔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혼났어요. 웬만한 또래 남자 애들보다 더 활기가 넘쳤거든요. 그런데 교회 안에서만 있으려니 워낙 답답해야죠.”


메리안은 민망한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가 그릇을 좀 많이 좋아해요. 교회 앞에 버려졌을 때, 미안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함께 버린 것인지 그릇 몇 개가 바구니 안에 같이 들어있었대요. 그 그릇들을 아직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그릇만 보면 정신이 팔려요. 헤헤.”


메리안의 말에 이든은 좀 전에 화를 낸 것이 미안해졌다. 옷가게를 돌아다니는 중에 몇 번이나 미안하다는 말을 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은 쉽게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




바르톨로 대주교와 짐머는 챠드 왕궁으로 향하는 마차에 앉아 있었다. 써던 제국의 2인자인 집정관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해로(海路) 이용 허가증을 발급받기 위해서였다.


해로 이용 허가증은 플레이튼 대륙을 떠나 다른 대륙으로 가는 배에 승선하기 위한 통행권 같은 것이었다.


허가증을 발급할 수 있는 것은 써던, 센드랜, 포틀랜드 왕정과 그들이 인정하는 몇몇 유력 귀족뿐이었다.


허가증은 불과 두어 달 전에 생겨났다. 기존에는 허가증이 없어도 돈만 있으면 자유롭게 배를 탈 수 있었다.


짐머는 허가증이 생겨난 이유가 궁금해 대주교에게 물었다.


“대주교님. 그런데 무엇 때문에 허가증이 필요해진 건가요?”


대주교가 대답했다.


“혹시 센드랜의 붉은 죽창을 알고 계신가요?”


“살레르 드 블라디 공작 말씀이신가요?”


“네. 지금은 공작이 아니고 국왕이 되었죠. 그가 포틀랜드와 써던제국에 특별히 요청을 했습니다. 신원이 보증된 사람이 아니면 대륙을 떠나는 배에 승선시키지 말아달라고.”


“아니 뭣 때문에 그런 요청을···”


“들리는 바에 의하면··· 두어 달 전쯤 블라디가의 영지인 에이럼이 도적 때의 습격을 받았다고 해요. 살레르 국왕은 그들을 찾는 중이고요. 이번 요청도 그들이 플레이튼 대륙 밖으로 도망치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들었어요.”


“간이 큰 도적때군요. 블라디가의 영지를 습격하다니. 피해가 컸답니까?”


“그게 좀 이상합니다. 막상 에이럼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것 같거든요. 그쪽의 사제가 보내온 편지에는 습격에 대한 얘기조차 없었어요.”


“모를 일이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짐머는 살레르가 의심이 많고 잔인한 성격에 금전욕이 많은 사람이라고 들은 기억이 났다.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황금이라도 도둑맞은 모양이네.”


짐머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바르톨로 대주교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




챠드 왕궁. 집정관 집무실 앞.


바르톨로 대주교와 짐머는 집정관이 먼저 온 손님을 만나는 동안 잠시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집무실 문을 열고 나온 시종이 말했다.


“대주교님, 지금 들어가시면 됩니다.”


대주교와 짐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섰다. 그때 집무실 안에서 한 사람이 나오며 둘을 지나쳤다.


‘어? 저자는···’


짐머는 방금 지나친 사람을 일전에 만났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짐머가 멈칫거리며 문 앞에 서 있자 바르톨로 대주교가 말했다.


“들어갑시다.”


대주교의 말에 짐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무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주교님. 그동안 건강하셨습니까.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집정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두 손을 마주 잡고 고개를 숙였다.


“집정관께서도 안녕하셨습니까. 언제나 자바신의 축복이 집정관과 함께 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대주교는 집정관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으며 인사를 나눴다.


짐머는 집정관이 상당히 젊은 사람인 것에 놀랐다. 이제 서른 중반이나 되었을까. 자신보다는 확실히 더 어려 보였다.


써던 제국 집정관 에우렉투스. 그의 풍성한 검은 머리는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이 뒤로 빗어 넘겨져 있었다. 그 아래로는 반듯하고 넓은 이마와 짙은 눈썹이 자리했다.


부리부리한 눈에서는 총명함이, 굵고 두꺼운 입술에서는 강인함이 느껴졌다.


에우렉투스 집정관과 바르톨로 대주교는 잠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환담을 나누었다.


이윽고 집정관이 짐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분은···”


집정관은 처음 두 사람이 집무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짐머의 정체가 궁금했다. 사제복을 입긴 했지만 그 덩치나 풍기는 분위기가 도저히 사제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주교가 말했다.


“사실 오늘은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이분이 자바신의 뜻으로 바다를 건널 일이 있어서 말이지요.”


대주교는 짐머에게 자신을 소개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짐머는 그 의미를 눈치채고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짐머 휴즈라고 합니다.”


짐머가 자신을 소개하자 집정관이 놀란 듯 입을 벌리며 눈을 크게 떴다.


“짐머 휴즈? 설마 당신 ‘더 빅’ 입니까?”


“저를 알고 계십니까?”


“역시 맞군요! 알다마다요! 대륙 최강의 사나이를 모를 리가 있습니까! 4년 전 대전쟁에서의 활약을 수백 번이나 들었습니다.”


“그건 그저, 과장된 이야기입니다.”


짐머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집정관은 짐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반역자가 된 것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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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7화 – 검은 암살자 2 20.09.13 26 0 11쪽
56 56화 – 검은 암살자 1 20.09.09 22 0 11쪽
55 55화 – 에이럼 원정 7 20.09.06 24 0 11쪽
54 54화 – 에이럼 원정 6 20.09.01 25 0 10쪽
53 53화 – 에이럼 원정 5 20.08.26 41 0 11쪽
52 52화 – 에이럼 원정 4 20.08.23 25 0 13쪽
51 51화 – 에이럼 원정 3 20.08.19 25 0 10쪽
50 50화 – 에이럼 원정 2 20.08.16 35 0 10쪽
49 49화 – 에이럼 원정 1 20.08.12 36 1 12쪽
48 48화 – 여행에 필요한 것 3 20.08.09 38 0 10쪽
» 47화 – 여행에 필요한 것 2 20.08.05 75 0 11쪽
46 46화 – 여행에 필요한 것 1 20.08.02 38 0 10쪽
45 45화 – 벨디무스의 파멸의 서 2 20.07.29 36 0 10쪽
44 44화 - 벨디무스의 파멸의 서 1 20.07.26 48 0 10쪽
43 43화 - 나 대신 약속을 지켜줘 3 20.07.22 41 2 10쪽
42 42화 - 나 대신 약속을 지켜줘 2 20.07.19 49 2 12쪽
41 41화 - 나 대신 약속을 지켜줘 1 20.07.15 45 1 10쪽
40 40화 - 지옥으로부터의 습격 5 20.07.12 53 0 13쪽
39 39화 - 지옥으로부터의 습격 4 20.07.08 49 1 9쪽
38 38화 - 지옥으로부터의 습격 3 20.07.05 46 1 10쪽
37 37화 - 지옥으로부터의 습격 2 20.07.01 50 1 9쪽
36 36화 - 지옥으로부터의 습격 1 20.06.28 59 1 11쪽
35 35화 - 불타는 광산 2 20.06.24 48 0 13쪽
34 34화 - 불타는 광산 1 20.06.21 53 0 10쪽
33 33화 - 검사 한 2 20.06.17 56 0 9쪽
32 32화 - 검사 한 1 20.06.14 58 0 9쪽
31 31화 - 세튼신의 성녀 3 20.06.10 55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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