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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기씨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 전쟁(惡魔 戰爭)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김고기씨
작품등록일 :
2020.03.29 13:00
최근연재일 :
2020.09.16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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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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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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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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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1화 - 세튼신의 성녀 3

DUMMY

소작일을 마치고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해 질 녘, 노을이 얹힌 플로리스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집집마다 저녁을 짓는 연기가 굴뚝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이든은 몇 발자국 뒤에서 따라갔다. 두 분이 손을 잡는 일은 좀처럼 없었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웬일로 두 분이 손을 잡고 가시는 거예요?”


이든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양친은 이든을 돌아보며 빙긋이 웃어 보일 뿐,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언덕에 올라서자 집이 보였다. 고든과 안젤라가 집 앞에서 놀고 있다가 이쪽을 보고는 일어나 달려오기 시작했다.


“오빠!”


안젤라가 참새처럼 귀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든도 안젤라에게 달려갔다. 안젤라는 폴짝 뛰어 이든에게 안겼다. 이든은 안젤라의 부드러운 볼에 자신의 볼을 부볐다.


행복하고 안락한 느낌. 이든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한없이 안젤라와 볼을 부비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슴 한편이 너무나 시려왔다.


“어?”


어느 틈에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오빠, 왜 울어?”


안젤라가 물었다. 이든은 민망함에 웃으며 대답했다.


“오빠도 모르겠네. 왜 눈물이 나는 걸까?”


안젤라가 조막손으로 이든의 볼에 흐른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지 마 오빠, 나는 괜찮아. 다 괜찮아. 그러니까 울지 마.”


안젤라가 이든을 달랬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이든은 잠에서 깼다.


눈을 뜬 곳은 플로리스도, 자신의 집도 아니었다. 짐머의 오두막이었다. 자면서 진짜로 눈물을 흘렸는지, 고든이 볼에 흐른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형 괜찮아?”


고든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 괜찮아.”


이든은 잠시 멍하니 앉아있다가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얼른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시니스트람 성에서 환히 웃던 안젤라가 생각났다.


‘안젤라!’


명치끝을 뜨거운 불로 지진 것처럼 뜨근한 느낌이 들었다. 시니스트람 성에서 안젤라를 보았다. 그리고 안젤라에게 다가가려고 했었는데··· 그랬는데··· 그 이후 기억이 없었다.


“안젤라는···”


“안젤라?”


이든이 중얼거린 소리에 고든이 되물었다. 이든은 말을 멈췄다.


‘고든에게 안젤라 얘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이든은 짐머를 쳐다보았다.


짐머는 탁자 옆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고 이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와 다름없는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이든이 물었다.


“어떻게 된 거죠?”


“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기에··· 데리고 돌아왔다. 그뿐이야.”


고든이 말했다.


“안젤라라니? 무슨 소리야 형?”


이든은 고든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커다란 갈색 눈이 불안감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야··· 형이 안젤라 꿈을 꾸었어. 미안하다.”


“그래서 운 거야?”


고든은 금방 울먹거렸다. 이든은 고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응, 미안··· 이제 괜찮아.”






고든이 잠든 것을 확인한 이든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짐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든은 오두막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보라색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촘촘히 빛나고 있었다. 오두막 위로는 은백색 은하수가 아름답게 흐르고 있었다. 이든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 짐머가 이든을 뒤따라 나왔다. 그는 문 옆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술통을 꺼내 들었다.


이든이 짐머에게 물었다.


“설명해 주세요. 어떻게 된 거죠?”


짐머가 작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병사들이 네가 이상하단 걸 눈치챘다. 그냥 뒀으면 잡혀가서 지금쯤 고문이나 당하고 있었을걸.”


“그래서 저를 기절시키신 건가요?”


짐머는 대답 없이 술을 들이켰다.


“성녀, 그 금발 여자 아이··· 오스크에서 없어진 제 동생이었어요.”


“확실해?”


“확실해요.”


“너를 짊어 메고 베일리의 가게에 들러서 성녀라는 아이에 대해 몇 가지 물어봤다. 석 달 전에 갑자기 나타났단다. 바이칼이 기도시간에 데리고 나왔다는데, 성녀가 뿌린 황금 대야의 물을 맞으면 병이 낫고 젊어진다고 하더군.”


“석 달 전···”


오스크가 침략을 당한 것은 반년도 더 전이었다. 그동안 안젤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죠?”


“글쎄...”


“구해내야 해요.”


풀벌레 소리가 밤하늘에 가득했다. 짐머는 말없이 연거푸 술을 마셨다.


“도와주세요.”


“도와 달라...”


짐머가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런데 무슨 수로 구해낸단 말이냐.”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데려와야 해요. 제 동생이라구요.”






오늘 오전, 짐머가 정신을 잃은 이든을 들처메고 베일리의 가게에 들어서자 베일리는 깜짝 놀라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짐머의 표정에서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쫒아오는 자가 없는지 문밖을 살피고는 서둘러 가게문을 닫았다.


짐머에게서 광장의 일을 전해 들은 베일리는 혀를 찼다.


“성녀가 이 아이의 동생이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거참···”


베일리에 의하면, 성녀를 볼 수 있는 때는 오로지 이틀에 한번, 기도가 끝나고 축복을 내릴 때뿐이었다. 그 외의 시간에는 성 안에서만 지냈다. 성 밖에서 성녀를 만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센드랜과의 전쟁 이후 시니스트람 궁은 전보다 훨씬 더 경비가 강화됐다. 수백 명의 근위병이 밤낮으로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신원이 불확실한 자가 배회했다가는 단박에 잡히고 말 일이었다.


짐머는 이든을 지게에 앉히고 떨어지지 않게 묶었다. 베일리가 커다란 모포로 이든과 지게를 함께 덮었다. 짐머가 지게를 짊어 메고 일어서자 베일리가 말했다.


“행여나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게. 궁에는 자네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아. 아들레드 왕이 자네를 아끼지 않았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거야.”


“안 무섭소. 다 와보라지.”


베일리가 가게를 나서려는 짐머의 팔을 잡아 세웠다.


“짐머, 이 아이는 에런이 아니다.”


베일리의 말에 짐머는 잠시 멈칫했다. 에런. 지난 몇 년 동안 누구도 자신의 앞에서 말하지 않은이름이었다.


“가보겠소.”


짐머는 가게를 나섰다.






고요했다.


적막한 밤하늘에 바람 소리만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이든이 다시 한번 짐머에게 도와달라 말하려 했을 때, 짐머가 오른손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짐머는 오두막 주변 풀밭을 찬찬히 살폈다.


너무 고요했다.


이든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태초부터 그곳에 있던 것처럼 들려오던 풀벌레 소리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짐머가 천천히 문 옆에 기대어놓은 도끼를 잡아 들며 말했다.


“들어가. 고든을 깨워라.”


이든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고든은 세상모르고 편안히 잠들어 있었다. 그는 살며시 고든을 흔들어 깨웠다.


“형··· 무슨 일이야?”


“쉬··· 조용히··· 일어나 고든.”


고든은 금세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키는 대로 조용히 일어나 앉았다. 이든은 오두막 안을 둘러보았다. 낮에 짐머가 주었던 검이 테이블 옆에 기대어져 있었다.


“고든, 부를 때까지 가만히 있어. 형이 부르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밖으로 나와선 안돼. 알겠지?”


고든에게 다짐을 받듯 얘기하고 검을 집어 들었다. 고든이 이든의 손을 잡았다.


“형···”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잠깐 기다려.”


고든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고 오두막 밖으로 나섰다.


이든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오두막에서 불과 열 걸음도 안 되는 곳에, 커다란 괴생명체가 거친 숨을 내뿜으며 서 있었다. 한여름이었는데도 그것이 내뿜는 숨은 뜨거운 김처럼 무리 졌다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전에 본 적이 있는 실루엣이었다.


‘오거!’


밤이라 어두웠지만, 이든은 실루엣 만으로도 그 괴물이 일전에 전장에서 보았던 거인, 오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달빛 아래에서 마주친 오거는 더 거대하고 무서워 보였다.


“언제 한번 직접 때려잡나 했는데, 이거 잘 됐구나.”


도끼를 들고 오거와 대치하고 있던 짐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는 시선을 오거에게 고정한 채로 이든에게 말했다.


“이든! 조무래기들이 더 있다. 문 앞을 잘 지켜라”


이든은 그제야 오두막을 포위하고 접근하는 십여 명의 병사를 눈치챘다.


‘정신 차려 이든!’


이든은 마음속으로 자기 자신에게 외치며 검을 뽑았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검을 쥔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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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6화 – 검은 암살자 1 20.09.09 22 0 11쪽
55 55화 – 에이럼 원정 7 20.09.06 24 0 11쪽
54 54화 – 에이럼 원정 6 20.09.01 25 0 10쪽
53 53화 – 에이럼 원정 5 20.08.26 41 0 11쪽
52 52화 – 에이럼 원정 4 20.08.23 25 0 13쪽
51 51화 – 에이럼 원정 3 20.08.19 25 0 10쪽
50 50화 – 에이럼 원정 2 20.08.16 35 0 10쪽
49 49화 – 에이럼 원정 1 20.08.12 36 1 12쪽
48 48화 – 여행에 필요한 것 3 20.08.09 38 0 10쪽
47 47화 – 여행에 필요한 것 2 20.08.05 74 0 11쪽
46 46화 – 여행에 필요한 것 1 20.08.02 38 0 10쪽
45 45화 – 벨디무스의 파멸의 서 2 20.07.29 36 0 10쪽
44 44화 - 벨디무스의 파멸의 서 1 20.07.26 4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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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2화 - 나 대신 약속을 지켜줘 2 20.07.19 49 2 12쪽
41 41화 - 나 대신 약속을 지켜줘 1 20.07.15 45 1 10쪽
40 40화 - 지옥으로부터의 습격 5 20.07.12 53 0 13쪽
39 39화 - 지옥으로부터의 습격 4 20.07.08 49 1 9쪽
38 38화 - 지옥으로부터의 습격 3 20.07.05 46 1 10쪽
37 37화 - 지옥으로부터의 습격 2 20.07.01 50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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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 검사 한 1 20.06.14 58 0 9쪽
» 31화 - 세튼신의 성녀 3 20.06.10 55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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