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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기씨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 전쟁(惡魔 戰爭)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김고기씨
작품등록일 :
2020.03.29 13:00
최근연재일 :
2020.09.16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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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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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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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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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7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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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 검사 한 2

DUMMY

3년 전, 려국(麗國) 북부 태산. 월정사.


동쪽 하늘이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새벽. 지면엔 아직 서늘한 안개가 깔려 있었다.


고요한 경내에 빗자루 질 소리가 가득했다. 스님들은 이른 아침 불공 후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은 새벽 수련을 마치고 절 앞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기와 호흡을 다스리며 명상 중이었다. 그때 한 어린 소녀가 한이 가부좌를 틀고 있는 바위 앞으로 다가왔다.


“사형.”


한은 감은 눈을 뜨지 않고 말했다.


“혜원아, 수련 후 운기조식 중일 때는 함부로 다가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아니 사형, 그게 아니고, 큰스님께서 사형을 찾으십니다!”


혜원은 이제 갓 열 살이 된 여자아이였다.


그녀는 한이 사정도 제대로 모르고 자신을 책망하듯 말한 것이 불만이었다. 작은 입술이 뾰로통하게 튀어나왔다.


한이 눈을 떴다.


“큰스님께서 참선을 마치신 것이냐?”


혜원은 고개를 홱 돌리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네.”


큰스님이 거처의 방문을 안에서 잠그고 참선에 들어간 지 오늘로 일주일 째였다.


“나를 찾는 연유를 말씀하시더냐?”


“도무지 저에게 그런 걸 말씀해 주셔야 말이죠. 불러오라 하셨으니 왔을 뿐입니다. 직접 가서 한번 여쭤보셔요.”


한은 그제야 혜원이 자신에게 토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바위에서 내려섰다. 사람 키만 한 높이의 바위였음에도 마치 낮은 계단 하나를 내려서듯 사뿐했다.


한은 혜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짐짓 진지하게 말했다.


“큰스님을 뵙고 나서 월광(月光)의 절초를 하나 가르쳐주마.”


혜원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쓰지도 못할 초식이나 알려주실 거면서··· 여하튼, 있다 뵈어요.”


혜원은 한을 앞서서 총총걸음으로 경내로 들어갔다.






“큰스님, 한이옵니다.”


월정사 안쪽.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에 소박하게 자리 잡은 독채. 큰스님이 처소로 쓰고 있는 곳이었다.


큰스님은 가사를 갖춰 입고 방의 중앙에 앉아 있었다. 작은 책상, 그 위에 놓인 소박한 촛대와 불경 몇 권. 그리고 간단한 침구가 전부인 방이었다.


“왔느냐.”


큰스님이 감은 눈을 뜨며 말했다. 깊은 산속에 널리 퍼지는 종소리처럼 은은한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다.


한은 큰스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큰스님 옆에는 소반이 하나 놓여 있었다. 소반 위의 죽 그릇에 하얀 죽이 가득했다. 옆에 놓인 수저는 깨끗했다.


일주일간 참선하며 금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죽에는 손도 대지 않고 한을 기다린 듯 했다.


‘급한 일이신가···’


한은 무슨 일인가 궁금해 큰스님을 바라보았다.


큰스님도 한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눈빛이 형형했다.


“한. 서쪽으로 가거라.”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이 대답했다.


“서쪽이라 하시면··· 환국으로 가란 말씀이옵니까.”


“그보다 더 서쪽이니라.”


“그러면 만국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서쪽으로, 세상의 끝까지 가야 한다."


한은 잠시 머뭇거렸다. 만국보다 더 서쪽에 대해서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제자, 어리석어 스승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세상의 서쪽 끝에서, 대 재앙이 그 씨앗을 틔웠느니라. 그대로 둔다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하고 모든 중생들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지옥에서 살게 되겠지.”


한은 의외의 얘기에 크게 놀랐다.


“어떤 재앙이기에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게 된단 말씀이십니까.”


“지옥의 왕이 직접 현세에 나타날 것이다.”


“지옥의 왕이··· 현세에?”


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인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큰 스님은 자신의 되물음에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한이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제자가 가서··· 지옥의 왕을 막아야 하는 것이옵니까.”


창으로 들어온 아침 햇살이 큰스님의 얼굴에 머물렀다. 특별한 표정은 없었지만 따뜻함이 머무는 자비로운 모습이었다.


“한아. 너의 검술과 내공은 이 땅의 누구도 다다르지 못한 경지에 이르렀느니... 그러나 그 역시 인간의 힘. 너라 하여도 지옥의 왕을 이겨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면··· 저는 무엇을 위해 서쪽으로 가야 하는 것이옵니까.”


“가서 사람을 찾아와야 한다.”


“어떤 사람을···”


“너와 같은 힘을 가진 사람이다.”


큰스님은 물끄러미 한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달의 힘을 가진 이를 찾거라. 그는 지옥의 왕을 현세로 불러오는 통로이자, 또한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이니. 그를 찾아 나에게 데려와야 한다.”






웨스트우드 숲 깊은 곳. 거대하고 울창한 오크나무들과 길고 곧게 뻗은 자작나무들의 군락지를 지나 반나절을 들어가면 작은 들판과 커다란 바위산이 나온다.


수천 년의 세월을 바람과 비에 풍화돼 겉면이 매끈하게 다듬어진 바위산. 생긴 것이 사람의 엄지 손가락과 닮아 엄지 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나마 이 곳을 아는 사람들끼리 부르는 이름일 뿐, 너무 깊은 숲 속이라 인적이 이어지는 곳은 아니었다.


엄지 바위 아래쪽에 바위가 처마처럼 튀어나온 부분이 있었다. 그것을 지붕 삼아 통나무로 벽을 세운 오두막. 셀리나 일행이 오두막을 찾아낸 이후 짐머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지어 놓은 제 2의 은신처였다.


동쪽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든과 고든은 깊은 잠에 빠졌다. 지난밤, 어두운 숲 속을 긴 시간 동안 이동한 덕에 둘은 완전히 골아떨어졌다.


짐머는 오두막 앞 바위에 걸터앉았다. 한은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은신처 주위를 살펴보고 있었다.


한이 말했다.


“꽤 괜찮은 곳이로군. 앞쪽은 트인 잔디밭에 뒤쪽은 바위라 방어하기 좋겠어.”


“자꾸 초청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우리 집을 찾아와서 말이야. 만일을 대비해 만들어 둔 곳이지. 이렇게 처음 만난 사람하고 같이 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


한이 짐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치, 나를 탓하는 것 같은 말투로군.”


짐머는 입을 비죽거렸다.


“뭐, 습격당한 게 네 탓이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엄마한테 낯선 사람은 쉽게 믿지 말라고 배웠거든.”


한은 기가 막힌다는 듯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적이 아니야.”


“그래, 그건 믿어. 적이었다면 우리도 이미 무사하지 못했겠지. 그런 검술은 처음 봤어··· 그래서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거야.”


동이 트자 한의 생김새를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짐머는 한처럼 생긴 사람을 난생처음 보았다. 붉은 얼굴, 칠흑같이 검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플레이튼 대륙 사람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북방의 노드족과도, 남방의 써던 제국 사람들과도 달랐다. 자신도 몇 번 밖에 본 적이 없었지만 바다 건너 동방의 메르시안 제국 사람들도 한처럼 생기진 않았었다.


“하지만 워낙 낯설어야 말이지, 내가 원래 조심성이 많은 편이니 이해하게.”


짐머가 자신의 생김새를 유심히 살핀다는 것을 눈치챈 한이 말했다.


“동인을 처음 보는 모양이군.”


“동인?”


한은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


“꼬마들이 깨어나면, 내가 어디서 왔는지. 왜 이곳에 왔는지 설명하도록 하지.”






바이칼은 아침 해가 밝자마자 아들레드 국왕을 찾아갔다. 그는 짐머가 이교도와 손잡고 성녀의 가족을 납치했으며 그를 구하려던 신의 병사를 죽이고 많은 병사들을 다치게 했다고 말했다.


바아킬은 짐머를 반역자로 규정하고 토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들레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그를 보호해 줄 명분이 없었다.


곧 1개 대대 1,000명 규모의 토벌대가 꾸려졌다.


토벌대는 그날 정오가 되기도 전에 짐머의 오두막을 급습했다. 그러나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토벌대 대장은 클럭이었다. 그는 얼굴에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칼의 특별 명령으로대대장 승진과 함께 토벌대 대장으로 임명됐다.


클럭은 웨스트우드 숲을 잘 아는 병사들을 선발해 10개 조의 수색대를 꾸렸다. 짐머의 오두막을 거점 삼아 끝까지 짐머를 추적할 생각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성녀의 가족을 납치한 반역의 무리를 살려 보낸다면 세튼신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병사들을 독려하는 클럭의 눈이 불길한 붉은빛으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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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7화 – 검은 암살자 2 20.09.13 26 0 11쪽
56 56화 – 검은 암살자 1 20.09.09 22 0 11쪽
55 55화 – 에이럼 원정 7 20.09.06 24 0 11쪽
54 54화 – 에이럼 원정 6 20.09.01 25 0 10쪽
53 53화 – 에이럼 원정 5 20.08.26 41 0 11쪽
52 52화 – 에이럼 원정 4 20.08.23 25 0 13쪽
51 51화 – 에이럼 원정 3 20.08.19 25 0 10쪽
50 50화 – 에이럼 원정 2 20.08.16 35 0 10쪽
49 49화 – 에이럼 원정 1 20.08.12 36 1 12쪽
48 48화 – 여행에 필요한 것 3 20.08.09 38 0 10쪽
47 47화 – 여행에 필요한 것 2 20.08.05 74 0 11쪽
46 46화 – 여행에 필요한 것 1 20.08.02 38 0 10쪽
45 45화 – 벨디무스의 파멸의 서 2 20.07.29 36 0 10쪽
44 44화 - 벨디무스의 파멸의 서 1 20.07.26 48 0 10쪽
43 43화 - 나 대신 약속을 지켜줘 3 20.07.22 41 2 10쪽
42 42화 - 나 대신 약속을 지켜줘 2 20.07.19 49 2 12쪽
41 41화 - 나 대신 약속을 지켜줘 1 20.07.15 45 1 10쪽
40 40화 - 지옥으로부터의 습격 5 20.07.12 53 0 13쪽
39 39화 - 지옥으로부터의 습격 4 20.07.08 49 1 9쪽
38 38화 - 지옥으로부터의 습격 3 20.07.05 46 1 10쪽
37 37화 - 지옥으로부터의 습격 2 20.07.01 50 1 9쪽
36 36화 - 지옥으로부터의 습격 1 20.06.28 59 1 11쪽
35 35화 - 불타는 광산 2 20.06.24 48 0 13쪽
34 34화 - 불타는 광산 1 20.06.21 53 0 10쪽
» 33화 - 검사 한 2 20.06.17 56 0 9쪽
32 32화 - 검사 한 1 20.06.14 58 0 9쪽
31 31화 - 세튼신의 성녀 3 20.06.10 55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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