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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oc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을 구하는 육아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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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oc
작품등록일 :
2024.02.12 01:14
최근연재일 :
2024.03.2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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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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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8,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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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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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피의 마스터(1)

DUMMY

일리엔이 땀내나는 오일 레슬링을 보면서 어이없어하던 무렵, 두 모녀와 멀리 떨어진 곳에 그들의 흔적에 관심을 갖는 자가 있었다.


두 모녀가 마하루텐에서 로렌 영지로 향하는 길에 사교도들을 물리쳤던 마을, 그곳에 한 명의 말 탄 기사가 나타났다.


단단한 체격에 반백의 머리칼, 그리고 상처투성이인 온몸. 특이한 것은 외팔이란 것이었다. 오른팔이 온전히 잘려 있고, 그곳을 보호대로 감싸고 있었다.


그는 마을에 하나 있는 여관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먹을 거 내와.”


손님은 동전을 던지며 짧게 말했다. 여관 주인은 식은 토끼고기 스튜를 데워서 빵과 함께 내 왔다.


“그런데 손님, 팔이?”


“벨름 전투에서 팔을 날려먹어서 말이야. 그뿐만 아니라 온몸이 마법으로 갈가리 찢겼지.”


그는 오른팔이 잘려나간 어깨를 감싼 보호구를 들어 보였다. 벨름 전투면 벌써 10년이 다 된 일인데, 희한하게도 아문 흔적이 안 보였다. 보호구를 들자 고였던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 죄송합니다. 참전용사셨습니까?”


“지금도 기사야.”


“상처가 터졌는데, 약초라도 갖다드릴깝쇼?”


“괜찮아. 이건 내가 검을 휘두르는 한 영원히 안 아물 상처니까.”


한쪽 팔이 없는데다, 칼도 안 차고 있어서 기사란 것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잘린 팔을 가린 보호구가 미스릴이었다. 지킬 힘이 없다면 누군가가 강제로 뜯어가고도 남았을 물건이었다. 안 아문 상처는 단검으로 한 번 더 휘저어 주는 것도 잊지 않겠지.


그런 것을 대놓고 쓰는데, 지금까지 살아 있단 것부터가, 상대가 범상치 않은 강자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스튜를 숟가락으로 저었다. 스튜에 들어 있던 토끼고기 토막을 입에 집어넣더니 뼈째로 으적으적 씹었다. 억센 토끼뼈를 아무렇지 않게 씹어먹는 것을 본 여관 주인이 흠칫했다. 계속 피가 흐르는 팔의 상처도, 얼굴을 뒤덮은 상처도, 먹는 모습도 묘하게 섬뜩했다.


“뭐, 세상에는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기 마련이야.”


그는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난 팔을 잃었지. 덕분에 강해지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어.”


여관 주인은 괜히 말 걸었다 싶었다.


“뭐, 죽을 정도로 아팠는데 이렇게 잘 살아 있으니, 죽음의 고통이란 감당할 만한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 내 칼에 죽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테니 상대를 죽일 때 맘도 편해지더라고. 역시 사람은 죽음의 고비를 넘겨봐야 해. 그게 별거 아니란 것을 깨달으면 삶의 자세가 달라진다니까. 아니, 과연 지금의 나는 나일까? 싸울 때마다 흐르는 피가 달라지는데, 듣기에는 피에 사람의 영혼이 담겨 있다잖아. 그래서 성격이 달라진 거 아닐까?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던 거 같거든.”


여관 주인은 그 두서없는 말을 들으며 아무래도 잘못 걸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언급하듯 미친 것 같은 언행도 그렇고, 지금 하는 말은 지금도 칼을 뽑을 수 있다고 협박하는 것으로밖에 안 들렸다.


“이봐.”


“네, 네?”


그런데 상대의 말이 끝나질 않았다.


“여기서 뭐 강력한 기사에 대한 소식 못 들었나?”


“강력한 기사라면······.”


“예를 들면 기사 같은데 나처럼 칼을 안 들고 다닌다든가.”


“칼을 안 들고 다니는 기사님은 못 봤습니다. 손님이 처음입니다. 이곳은 외딴 마을이라 호신을 위해서라도 무장을 한 손님이 대부분이지요.”


“그런가, 그럼 질문을 바꿔 보지.”


여관 주인은 도망가고 싶은데, 발이 떨어지질 않는 것을 느꼈다. 그는 몰랐지만, 마나를 다룰 줄 아는 기사의 기운에 압도당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그만한 강자인 아델라이데를 만나보긴 했지만, 그녀는 마을 사람들 상대로 실력을 과시하질 않았다. 그래서 그녀와 있을 때는 마스터의 무서움을 느낄 수 없었다. 나중에 사교도들을 쓸어놓은 것을 보고 대단한 기사였단 것을 알았을 뿐이다.


“뭔가 인상이 남았던 기사 없어?”


“아, 그러고 보니 신께서 보내주신 기사님이 한 분 계셨죠.”


“신이 보내준 기사?”


“우리를 괴롭히던 사교도들을 단신으로 몰살시키셨어요.”


그는 존경어린 어조로 아델라이데의 위업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을 고문하던 사교도들을 죽이고, 밤이 지나기 전에 그 마을까지 싹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고. 그러고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홀연히 떠났다고.


“아, 그러고보니 그 사교도들이 변신했을 때 칼을 놓쳤어요. 그리고 도망치는 모습만 봤는데 어찌 해치우셨더군요. 그리고 사교도들의 마을은 마을의 경계 안만 타고 그 바깥은 조금의 불길도 옮겨붙지 않은 모습이었어요.”


“흠, 그 사교도들의 마을이 어디지?”


“여기서 산을 넘어가면 있습니다.”


그는 음식을 싹싹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더니 품에서 뭔가 꺼내서 던졌다.


“재밌는 이야기를 알려준 대가다.”


그러면서 던진 뭔가를 받은 여관 주인은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무려 금화였다.


“마지막으로 하나 묻지. 그 자는 어느 방향으로 향했지?”


“루텐 공작령 쪽으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


눈앞의 기사는 위험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야기를 할 때는 그저 재밌는 이야기를 원하는 거라 생각하고 이야기를 털어놨지만, 어디로 갔는지 찾자 반사적으로 반대 방향을 가르쳐 줬다.


본능이 마을의 은인과 눈앞의 기사가 만나면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다.


피식.


기사는 눈을 빛내며 비웃었다. 태연한 척 하지만 공포로 표정 관리가 안 된다. 거짓이란 것이 다 보였다. 다른 이들을 대할 때, 공포는 이처럼 다루기 쉬운 도구였다.


“어지간히 맘에 들었던 모양이군. 반대 방향으로 갔겠지.”


콰당.


그 말에 여관 주인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상대가 거짓말을 했다며 당장이라도 목을 미틀 것만 같았다. 상대는 든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그 반응을 즐겼다. 그러다 여관을 나섰다. 주인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기사 나으리.”


“왜?”


“혹시 그 기사님과 싸우실 생각이십니까? 그분은 진정으로 기사도의 표상과 같은 분이셨습니다.”


“글쎄?”


그는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과 함께 기이한 냄새가 짙어졌다. 익숙한 냄새였다. 아델라이데가 사교도들을 도륙했을 때 마을에 진동하던 냄새다. 인간의 피비린내. 분위기가 아니라 진짜 혈향이 진동했다.


“내가 보기에 그 년은 기사 이전에 도둑이야. 그것도 감히 폐하의 것을 훔친.”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혼자 남은 여관 주인은 그대로 입을 막고 부엌으로 뛰어들어갔다.


“우웨엑!”


쓰레기통에 대고 토사물을 쏟아붓는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섭고, 역겨운 상대였다.




마을을 떠난 기사는 여관 주인에게 들은 대로, 사교도의 마을이 있던 장소로 향했다.


아델라이데가 사교도들을 전멸시키고 계절이 변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며 재로 뒤덮인 곳에 싹이 나고, 이내 그것이 사람의 허리를 넘겨 우거졌다. 그럼에도 숙련된 기사는 이곳에 남은 흔적이 수정검을 들고 행한 일이란 사실을 확신했다.


‘마나 속성은 불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군. 전투력에서는 수위를 차지하는 속성이니 까다롭겠어.’


도난당한 수정검을 수색하던 기사, 수정검 블러드러쉬의 주인인 벨몬드 제스트람은 여관 주인이 가르쳐준 대로,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드문 여기사, 그렇다면 오래지 않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다음주, 일리엔에게 못 먹을 음식을 제공했단 것을 깨달은 아델라이데는, 때마침 수업이 없는 틈을 타서 크로프트 저택을 찾아갔다.


“어머, 선생님! 어쩐 일로 오셨어요? 어쨌든 들어오세요. 우리 애들이 얼마나 선생님을 좋아하던지, 질투가 날 지경이라니까요.”


느닷없이 찾아가는 것이 그리 예의바른 행동은 아니었지만, 크로프트 부인은 아델라이데를 환영했다.


네 자녀가 모두 훌륭한 선생님이라며 칭찬한 데다, 오빠들을 가르친 일을 전해들은 남편 또한 아델라이데의 조언이 크로프트 가의 가전검술을 정확히 이해한 것이라며 감탄했다.


“아, 그게······.”


아델라이데는 자초지종을 말했다. 음식실력이 형편없어서 일리엔을 고생시켰다고. 그래서 요리를 좀 배우고 싶은데, 알려 줄 사람을 주선해 줬으면 좋겠다고.


그걸 들은 크로프트 부인은 별 거 아닌데 심각하게 생각하는 모습에 미소 지었다. 역시 사람은 모든 것을 잘할 수 없구나 싶었다. 자신의 남편처럼 대단해 보였던 아델라이데가 갑자기 친근하게 느껴졌다.


“어머, 요리사를 여럿 고용하면 되죠.”


“······.”


“왜 표정이 그래요?”


정말 모르겠다는 듯 반문했다. 크로프트 부인은 집안일이 아니라 가문의 무식한 이미지 불식시키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그러니 고용인들에게 지시하고, 연회와 다과회 계획을 짜고, 파티에 출석하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저는 부인처럼 부자는 아니거든요.”


“이상하네. 강하면 부는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하던데. 선생님은 우리 남편이 인정한 사람인데 당연히 부유하지 않아요?”


급이 달라서 도움이 안 된다.


원래 강한 기사면 돈이 된다. 봉급이 높긴 하지만 가장 큰 수입원은 바로 전쟁이다. 도시나 성을 함락시키면 관례상 사흘간 약탈을 할 수 있으니, 지휘관급은 한몫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 기사단에 소속되지 않은 아델라이데는 약탈로 한몫 챙기는 일과 인연이 없었다. 그렇게 남의 것 빼앗은 돈으로 일리엔을 키우고 싶지도 않았고.


역시 가장 좋은 건 운명의 아이를 위해 기꺼이 자금을 기부할 의사가 있는 사교도들에게 기부받는 것이었지만, 워낙 음지에 숨어 다니는 놈들이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 번 기부한 놈들이 다시 기부하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고.


“그리고 전 딸에게 직접 만든 음식을 먹이고 싶어요. 그래서 음식을 배우고 싶어요.”


딸이 먹고싶단 것을 직접 만들어주는 어머니, 그 음식을 먹으며 어머니의 애정을 느끼는 딸, 그것이 바로 아델라이데가 원하는 구도였다. 성녀가 될 아이가 사랑을 배울 수 있도록.


“세상에······, 일리엔을 진짜 사랑하시는군요.”


아델라이데의 말에 크로프트 부인은 크게 감동했다.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릴리에게 직접 저녁을 차려 주고 싶어졌어요. 같이 주방으로 가서 배워 보죠! 하녀장, 지금 제가 주방에서 입을 만한 옷을 갖다 줘요.”


크로프트 부인은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그냥 포기하시죠.”


“괜찮지 않은가요?”


아델라이데는 시커멓게 탄 파이 조각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먹을 만한데.


“전혀 아닙니다. 주인마님께서 뛰쳐나간 것을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잠시 후 창백한 얼굴로 돌아온 크로프트 부인이 아델라이데의 어깨를 잡았다.


“선생님, 평소 일리엔에게 먹이는 음식도 이랬습니까?”


“아뇨.”


그럼 그렇지, 이번엔 실수한 거지 생각하는데 이어지는 말에 부인의 얼굴이 완전히 흙빛으로 변했다.


“전문가에게 배워서 그런가 지금 만든 게 확실히 나아지긴 했는데요.”


“세상에, 이것보다도 못하면 아동 학대 수준이잖아요!”


“정말이에요?”


주방장과 하녀들까지, 아델라이데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동 학대 이전에 이 파이를 위해 희생된 거위와 채소가 불쌍해집니다.”


“선생님, 혹시 연 30골드가 없어요?”


“네? 그 정도야······.”


크로프트 부인이 비장한 얼굴로 탁자를 내리쳤다. 파이라고 주장하고 있던 물체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지만, 그걸 아까워하는 사람은 그걸 만든 한 명밖에 없었다.


“그럼 딴 말 마시고 요리사를 고용해요! 괜찮은 사람 추천해 줄게요!”


“알겠어요······.”


아델라이데와 일리엔에게, 고난은 이제 다 지나간 듯 보였다. 운명의 아이란 의심을 지웠고, 폴리모프를 한 자객도 없다. 일리엔을 괴롭히던 군대식 생활과 맛없는 음식도 끝났다.




바로 그때, 팔 한쪽이 없는 사내가 오베르네에 도착했다.


작가의말

지금까지 쓴 것은 여기까지이며, 연재는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아무리 재미로 쓴 소설이라지만, 작가로서 부끄러울 정도로 조회수가 안 나와서 더 써 봐야 의미가 없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아무래도 저만 재밌었나 싶어서 씁쓸하네요.

다음에는 독자 분들이 더 재밌게 느낄 만한 작품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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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운명의 아이 판별(2) 24.03.26 18 0 13쪽
32 운명의 아이 판별(1) 24.03.26 17 0 12쪽
31 딸을 지켜라(3) 24.03.26 17 0 12쪽
30 딸을 지켜라(2) 24.03.26 17 0 12쪽
29 딸을 지켜라(1) 24.03.26 18 0 13쪽
28 일리엔, 정체를 의심받다(3) 24.03.25 25 0 16쪽
27 일리엔, 정체를 의심받다(2) 24.03.24 25 0 13쪽
26 일리엔, 정체를 의심받다(1) 24.03.23 34 2 13쪽
25 꽃의 왕의 축복 +1 24.03.22 32 1 15쪽
24 일리엔의 입학 시험(3) +2 24.03.21 29 0 14쪽
23 일리엔의 입학 시험(2) 24.03.20 30 0 12쪽
22 일리엔의 입학 시험(1) 24.03.19 34 0 12쪽
21 어긋난 현실(2) 24.03.18 32 0 14쪽
20 어긋난 현실(1) 24.03.17 35 0 12쪽
19 내집 마련(2) +1 24.03.16 34 1 12쪽
18 내집 마련(1) 24.03.15 38 0 12쪽
17 회귀한 기사의 돈 버는 법(3) +1 24.03.14 46 2 12쪽
16 회귀한 기사의 돈 버는 법(2) 24.03.13 43 0 13쪽
15 회귀한 기사의 돈 버는 법(1) 24.03.12 47 1 14쪽
14 엄마와 딸 사이의 거리 24.03.11 58 0 22쪽
13 마족의 추종자들(3) 24.03.10 53 1 13쪽
12 마족의 추종자들(2) 24.03.09 52 0 11쪽
11 마족의 추종자들(1) 24.03.08 53 0 12쪽
10 운명의 아이, 절망하다(2) 24.03.07 59 0 13쪽
9 운명의 아이, 절망하다(1) 24.03.06 69 1 13쪽
8 운명의 아이, 그 이름은(4) +2 24.03.05 73 1 15쪽
7 운명의 아이, 그 이름은(3) +1 24.03.04 73 1 15쪽
6 운명의 아이, 그 이름은(2) +1 24.03.03 8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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