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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oc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을 구하는 육아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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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oc
작품등록일 :
2024.02.12 01:14
최근연재일 :
2024.03.2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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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8,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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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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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내집 마련(2)

DUMMY

“1600입니다.”


제임스는 솔직하게 집주인이 희망하는 가격을 말했다.


“흐음······. 다음 집도 한 번 보죠.”


“다음 집도 맘에 드실 겁니다. 로렌 아카데미와 가까운데다 규모도 더 크죠.”


로렌 아카데미는 로렌 백작가에서 직접 후원하는, 이 오베르네에서 가장 평판이 좋은 학교였다. 하지만 아델라이데는 시큰둥했다. 일리엔은 아예 결격이었기 때문이다.


‘편부나 편모 슬하의 학생은 입학자격 없는 것으로 유명하지.’


누가 봐도 사생아 출신의 입학을 원천차단하는 규정이었다. 제대로 된 귀족가문의 적자끼리 모아서 교육하기 위한 규정.


그녀는 딸을 명문학교에서 정치질과 성적관리에 스트레스 받게 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기에, 그건 아쉽지도 않았다. 그것보다 급은 떨어지더라도 경쟁이 덜하고, 즐겁게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선택할 생각이었다.


두 집을 보았다. 다 처음 본 집과 비슷비슷했다. 그리고 가격도 입지나 마감에 따라 1500~2000 사이를 오갔다. 별로 인상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제임스가 마지막으로 보여준 집은 달랐다.


“이 집은 좀 특이합니다. 혹시 모르니 소개해 드리지요.”


집 폭도 더 넓어서 6m 가량이고, 앞에는 작게나마 화단도 있었다. 층도 한 층이 더 붙어 있다. 3층에는 넓은 테라스도 마련되어 있는 등, 척 봐도 앞서 본 집들과 격이 달랐다.


대리석으로 마감된 테라스에서 앞에 펼쳐진 공원을 내려다보며, 일리엔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침실도 네 개나 되고, 서재와 거실, 식당 등이 있었다.


“이건 2300입니다. 그런데 협상만 잘 하면 1할 정도는 깎을 수 있을 겁니다.”


제임스는 이 껄끄러운 모녀를 등쳐먹을 생각을 버렸다. 솔직히 말하자 일리엔이 아무런 말도 안 하는 걸 보니 더 식은땀이 흘렀다.


“생각보다 싼데다 더 깎을 수 있다고요?”


교육 도시에서 명문 학교와 가깝고, 선제후가 직접 관리하는 학교와 붙어 있다 보니 정비도 잘 되어 있었다.


아델라이데는 못해도 4천 골드는 될 거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여기 집주인 아들이 로렌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했어요. 그뿐만 아니라 이전에 살던 사람들도 자식들이 다 로렌 아카데미에서 말로가 좋지 못했다더군요. 사고사를 당한다든가, 꼴찌를 한다든가.”


“아.”


자식교육에 목숨 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 만큼, 그런 징크스가 집값을 반토막낼 만큼 중요한 거였다.


“그래서 로렌의 학부모들 사이에 이 집은 오베르네 하우스라고 불립니다. 오베르네 스쿨은 맞는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비웃음이지요.”


오베르네 스쿨은 이 도시에서 중간 정도로 치는 학교였다. 상급학교 진학을 생각하지 않는 학생들이 다니는, 교양 위주로 다니는 학교.


솔직히 제임스 입장에서는 이런 말을 하지 않고 어떻게든 사탕발림으로 팔아야 했다. 3000 정도에만 팔아도 그에게 떨어지는 추가 리베이트만 200골드가 넘는다.

그렇지만 아델라이데를 속이는 건 포기했으니 솔직히 말했다. 이건 팔릴 거라고 생각도 안 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 집을 사지요.”


“그럼 이전에 보여드린 세 집 중······, 네? 사시겠다고요?”


아델라이데의 말에 제임스가 더 놀랐다.


“엄마, 나 학교 못 다니는 거야?”


일리엔이 아델라이데의 손을 잡아당겼다. 소녀는 엄마야말로 만나본 사람중 가장 유식한 사람이었고, 그 엄마보다도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최고의 명문학교에 들어가서 자신의 우수함을 뽐내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다.


“미안, 거기는 부모가 양쪽 다 있어야 지원자격이 나와.”


아델라이데는 아이를 안아들며, 상처받지 않게 말했다. 그거 나 때문이라고.


“그런가요······, 몰랐어요.”


일리엔은 아쉬워하긴 했지만, 납득했다. 엄마가 미혼인 건 알았다. 결혼도 안 했으면서 자신을 입양한 엄마를 원망한다니, 일리엔은 그렇게 후안무치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배우지, 뭐.’


일리엔은 그렇게 생각하며 주먹을 꾹 쥐었다. 커서 로렌 아카데미 출신들을 다 때려눕히겠다고.


제임스도 왜 아델라이데가 이 집을 사려 했는지 납득했다. 얄미운 꼬마이긴 하지만, 엄마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다.


“말씀드린 대로 가격을 깎아 보겠습니다. 집주인에게는 2000골드면 사겠다고 제안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고 교섭하다 보면 1할 정도 깎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해 주세요. 교섭 후 연락은 이곳으로 해 주시고요.”


아델라이데는 자신이 지금 묵고 있는 여관과 호실을 불러 주고 돌아왔다.




그리고 밤이 되자, 아델라이데는 다시 한 번 도둑의 옷을 갈아입었다.


“엄마, 오늘도 정의로운 도둑이 되는 거야?”


“그건 아닌데······.”


아델라이데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톡톡 두들겼다. 도둑질은 아니지만 어제 얻은 보석을 처분하러 가는 거라 떳떳하지 않은 것은 맞으니 자랑스레 말하기는 곤란했다.


“도둑질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 띄어서 좋은 일은 아니거든.”


“엄마, 무사히 다녀오세요.”


일리엔은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뒷짐을 쥐고 섰다.


“그러고 보면 우리 집은 현관이 없어도 되겠네요.”


“넌 필요하잖니.”


“엄마가 안아주면 되죠.”


팔을 벌리며 까르르 웃었다. 수상하지만 멋진 엄마.


집을 구경하고 다닐 때, 지하 하수구에서 사교도의 아지트와 그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때문에 경비대가 난리가 났다.


일리엔은 그게 엄마가 한 일이란 것을 눈치 챘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란 것은 사실이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강하다는 것을 드러내길 싫어할 뿐.


일리엔에겐 그런 모습도 멋있어 보였다. 고아원에서 본 사람들은 힘이 있으면 그걸 과시하고 싶어했는데, 엄마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하면서도 그걸 자랑하지 않았다.


소녀에겐 엄마야말로 진짜 어른이었다. 강하고, 힘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고, 포용력 있고. 태어나서 처음 만난 본받고 싶은 존재.


아델라이데는 일리엔을 안아 주었다. 일리엔이 바라는 대로였다.


“오늘은 금방 돌아올 거야. 그럼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렴.”


“네에.”


아델라이데는 일리엔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한 번 창문을 뛰어넘었다.



@



아델라이데는 베냐민 루텔의 가게에 들어가기 전 안에 혹시 매복이 있는지 확인해 봤다.


훗날의 행적으로 봐서 악인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사교도의 신탁을 빌어서라도 부를 쌓으려 하는 욕심쟁이인 것도 사실이었다. 아델라이데는 고가의 보석을 가지고 있으니, 그걸 강탈할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없네.’


다행히 상대는 약속을 지켰다. 아델라이데는 2층 창문으로 들어간 뒤, 조용히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자, 초조한 얼굴로 가게의 출입문 앞에서 왔다갔다하고 있는 루텔의 모습이 보였다.


“이봐.”


“힉!”


설마 가게 안으로 들어와 있으리라 생각도 못한 루텔은 그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거래.”


여전히 정체를 숨기기 위해, 목소리를 깔고 말은 짧게 했다.


“네, 이쪽으로 오시죠.”


루텔은 황급히 안쪽의 방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뭐라도 마시시겠습니까? 이번에 좋은 홍차를 들여왔는데······.”


“됐어.”


무슨 수작을 부렸을지 알고. 거래가 끝날 때까지 아델라이데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대신 보석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루텔은 확대경을 들고 그걸 감정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보면서 주판을 튕겼다.


“다 해서 1630골드입니다. 살 때는 대략 2000골드 정도 나올 텐데, 보석은 원래 팔 때 가격이 많이 깎입니다.”


아델라이데가 잘 모를 걸 생각해서 설명해 줬다.


보석이 살 때 팔 때 가격이 다른 것은 알고 있었다. 세공 정도와 크기 등에 가격이 영향을 받는데 제각각 다르다 보니 정해진 가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물아비를 찾는 것도 일이니까.’


잘 모르긴 해도 아델라이데가 생각한 가격은 나왔다. 신원을 숨기고 처분할 수 있는 루트가 한정된 이상,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한 거래였다.


“좋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그는 대범하게 금고를 열고 돈을 꺼내왔다. 못해도 수천 골드는 되어 보이는 금화를 꺼내 놓고 센다.


“무섭지 않나?”


아델라이데가 사교도들을 죽이고 돈을 강탈하는 것을 보았다. 지금도 그녀가 그를 간단히 죽이고 빼앗을 수 있다.


“여기서 강도질을 하실 분이면 절 살려주시지도 않으셨겠지요. 자, 2000골드입니다.”


어제 보석의 환금을 미끼로 길 안내를 부탁하는 것도 그렇고, 생각보다 배짱이 좋았다. 과연 대상인이 될 만한 배포였다. 어느 순간에도 긴장하지 않고 활로를 찾는다.


“1630골드라며?”


“나머지는 제 목숨 값이라고 치시죠.”


“고마워.”


아델라이데는 돈주머니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상대가 호의를 베푼 김에, 그녀도 호의를 하나 베풀기로 했다.


“입도선매 생각해?”


“정확히 입도선매는 농민 입장이고, 저희는 선물거래라고 하죠.”


그렇게 말하고 정확히 어떻게 할 건지 안 말한다.


“올해 풍년이다. 확실하다.”


미래를 보고 왔으니 이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기후야 아델라이데의 행적이 변했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좋은 계절은 언젠가 끝나고 고통스런 때가 오기 마련이다. 올해는 찬바람이 불고 누군가가 항상 배고플지니.]



앞내용은 못 들었었는데, 루텔이 알려준 사교도의 예언 전문은 이랬다.


“말 그대로다. 계절은 끝난다.”


말 짧게 하려니 힘들다. 길게 하면 본래 목소리 톤이 나올 거 같고.


“······.”


“겨울은 춥다.”


“그······렇죠?”


“투자 실패하면 네가 굶는다.”


“······.”


거짓말은 안 했다. 그리모어의 사도들이 하는 예언은 다 그런 식이었다. 나중에 돌아보면 맞긴 하다.


아델라이데는 거기까지 말하고 일어섰다. 그녀의 충고를 안 듣는다고 설득할 의리까진 없었다. 그의 운이 거기까지였거니 할 뿐이다.


그녀는 돈을 가지고 뒷문으로 나섰다. 그리고 주변을 바라보고 다시 지붕 위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뭐에 홀린 것 같군.”


어제도, 오늘도 홀연히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진다. 사교도들을 상대로 그 강력한 무력과 무자비함을 자랑했지만, 자신은 살려 줬다. 그 정도로 강력한 기사라면 이름이 알려졌어야 할 텐데, 누군지 감도 안 잡혔다. 거기다 유적의 존재, 앞날까지 알고 있었다.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그는 이내 피식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천사가 돈이 필요할 리가 있나.



@



아델라이데는 돈을 가지고 일리엔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부동산 중개업자의 연락이 왔다.


“2000골드에 팔겠다고 합니다.”


1할이라고 해서 230골드를 깎아 올 줄 알았는데, 그것보다 더 깎아 왔다. 약점을 잡힌 제임스가 얼마나 열심히 집주인과 협상했는지 알 수 있는


“좋아요. 사겠어요.”


아델라이데는 즉시 계약하기로 했다.


“그럼 계약금을 10% 거시고, 절차는······.”


집이란 것이 워낙 비싼 물건이고, 그래서 소유 여부를 두고 공증과 등록 절차가 복잡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방 해결될 문제였다.


“우리 집······.”


일리엔이 그녀의 손을 잡고 중얼거렸다.


고아원은 당연히 여럿이 한 방에 살았고, 누울 공간도 부족했다. 엄마와 만나게 된 뒤로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은 없었지만, 여관에 투숙하는 세월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종업원들이 친절하고 침대가 안락하더라도 그것이 안식처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스쳐가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 진짜 소녀가 돌아올 곳이 생긴 것이었다.


“일리엔.”


“네, 네!”


아델라이데도 일리엔의 흥분을 눈치챘다. 그래서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물었다.


“어느 방을 네 방으로 선택할지 생각해 놨니?”


“내 방이요?”


일리엔의 눈이 반짝이고 입술이 벌어진다. 자신의 방이라니, 오로지 소녀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공간이라니, 지금껏 상상도 못한 것이었다.


다시 한 번 자신과 연이 없다 여겼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소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야무지게 외쳤다.


"오늘부터 종일 생각할래요! 후회하지 않게요!"


작가의말

다음 챕터 '어긋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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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운명의 아이 판별(1) 24.03.26 17 0 12쪽
31 딸을 지켜라(3) 24.03.26 17 0 12쪽
30 딸을 지켜라(2) 24.03.26 17 0 12쪽
29 딸을 지켜라(1) 24.03.26 18 0 13쪽
28 일리엔, 정체를 의심받다(3) 24.03.25 25 0 16쪽
27 일리엔, 정체를 의심받다(2) 24.03.24 25 0 13쪽
26 일리엔, 정체를 의심받다(1) 24.03.23 34 2 13쪽
25 꽃의 왕의 축복 +1 24.03.22 32 1 15쪽
24 일리엔의 입학 시험(3) +2 24.03.21 29 0 14쪽
23 일리엔의 입학 시험(2) 24.03.20 30 0 12쪽
22 일리엔의 입학 시험(1) 24.03.19 34 0 12쪽
21 어긋난 현실(2) 24.03.18 32 0 14쪽
20 어긋난 현실(1) 24.03.17 35 0 12쪽
» 내집 마련(2) +1 24.03.16 34 1 12쪽
18 내집 마련(1) 24.03.15 38 0 12쪽
17 회귀한 기사의 돈 버는 법(3) +1 24.03.14 46 2 12쪽
16 회귀한 기사의 돈 버는 법(2) 24.03.13 43 0 13쪽
15 회귀한 기사의 돈 버는 법(1) 24.03.12 47 1 14쪽
14 엄마와 딸 사이의 거리 24.03.11 58 0 22쪽
13 마족의 추종자들(3) 24.03.10 53 1 13쪽
12 마족의 추종자들(2) 24.03.09 52 0 11쪽
11 마족의 추종자들(1) 24.03.08 53 0 12쪽
10 운명의 아이, 절망하다(2) 24.03.07 59 0 13쪽
9 운명의 아이, 절망하다(1) 24.03.06 69 1 13쪽
8 운명의 아이, 그 이름은(4) +2 24.03.05 73 1 15쪽
7 운명의 아이, 그 이름은(3) +1 24.03.04 73 1 15쪽
6 운명의 아이, 그 이름은(2) +1 24.03.03 8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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