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아보미나티오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6.04.16 23:31
최근연재일 :
2017.03.19 01:53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43,845
추천수 :
528
글자수 :
687,446

작성
17.03.13 23:28
조회
232
추천
2
글자
13쪽

다시 새벽 -113

DUMMY

[오후 16시 30분, 강원도, 동해시]


장시간 운전했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다. 오히려 상쾌하다. 시내로 접어들자, 잠시 차가 막힌다. 멀찍이 빨간불이 켜져 있는 신호등을 응시하며 핸들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언제부턴가 생긴 운전 습관. 운전을 가르친 스승님께 습관마저 배웠나보다. 다시 파란 불이 켜진다. 좀 서둘러야 했다. 시 외곽까지 가려면 아직 30분은 더 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한없이 넓은 바다가 나온다. 수평선 너머로 아스라이 하얀 뭉게구름이 흘러간다. 바다를 끼고 국도를 달리자, 자그마한 산간 마을이 나온다. 소담스럽게 핀 꽃길, 그 사이 작은 버스정류장,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멀리 한편으로 대나무 장대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집이 보인다.



집 앞에 차를 주차하는데, 누군가 대문 밖에 나와 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청바지에 흰 티를 걸친 수겸이 녀석. 그런데 녀석이 웬 아주머니께 연신 고개를 숙이느라 바쁘다. 아주머니가 뭐라고 하다가 등을 돌려 버린다. 화가 많이 난 분위기다.


차에서 내려 녀석에게 다가갔다. 손에 뭔가 들려 있는데, 얼핏 보니 전기료 따위의 고지서로 보인다.


“오늘 점 안봅니다.”


녀석이 돌아보지도 않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닫히는 대문을 슬쩍 부여잡았다.


“최 교수님 소개로 왔습니다.”


“아, 그 사기꾼 아저씨?”


수겸이가 아는 체를 한다. 녀석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더니 앞서 걷는다.


“일단 들어오세요. 저도 할 말이 많으니까요.”


안으로 들어가다 마당을 둘러봤다. 여기저기 온갖 쓰레기들이 널려 있다.


“막 청소하려던 참이었어요.”


녀석이 뒤를 돌아보며 한소리 해댄다. 동진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집 내부도 난장판이다. 예전에는 깨끗했는데, 물론 그렇게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날이 아닌가보다. 먹다 남은 컵라면 그릇과 부엌에는 설거지 거리들이 잔뜩 널려 있다. 수겸은 TV가 켜진 방으로 들어가 조이스틱부터 찾는다.


“아무데나 앉으세요. 그런데 성함이?”


게임에 열중하면서 수겸이 묻는다. 동진은 녀석의 옆모습을 응시했다. 창백한 얼굴, 호리호리하다 못해 야윈 몸. 지난날을 어떻게 살아왔을까? 귀신 들린 아이, 마을에 저주를 내렸다며 돌팔매질 당한 소년. 그 모진 학대를 참으며, 이제까지 견뎌왔다. 생각에 잠겨 있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녀석이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가느다란 머릿결, 하얀 이마 위로 제법 큰 흉터가 자리했다.


“이동진.”


녀석이 눈을 게슴츠레 뜬다.


“우리 예전에 만났었나요? 어째 낯이 익네요.”


“예전에 한번 왔었지.”


문득 수겸이 멀뚱한 표정을 짓는다.


“왜 반말이시죠?”


“내가 자네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초면에 말을 놓으면······.”


녀석이 말을 잇다 말고 눈을 휘둥그레 뜬다. 안주머니에서 꺼내든 게임CD 때문이다. 전자상가에서 힘들게 구한 물건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한정판이라고 하더군.”


“이걸 직접 구하셨다고요? 그러잖아도 정말 가지고 싶었던 건데!”


녀석이 좋아라 웃으며 게임CD를 집어 든다. 그러더니 은근슬쩍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다.


“설마 저 주시려고요?”


동진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어떻게 아신 거죠? 혹시 무당이신가요?”


“무당은 아니고, 방금 대답한 거 같은데. 예전에 한번 와봤다고.”


“그런가요? 아무튼 고마워요.”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게임CD를 이리저리 조몰락댄다. 표정이 한층 밝아진 것을 보니 마음에 쏙 드나보다. 동진은 책상 옆에 굴러 떨어져 있는 고지서를 내려 봤다. 전기료 체납 고지서다. 녀석이 눈치를 챘는지 슬쩍 고지서를 집어 등 뒤로 숨긴다.


“그런데 그 사기꾼 아저씨는 어떻게 됐어요? 부적 값은 계좌로 쏴준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영 소식이 없네요.”


“설마 받을 생각이었나?”


녀석이 꽁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한숨을 내쉰다.


“아이고, 내가 말을 말아야지.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데 그런 사기꾼까지 설치니 피곤하네요.”


“사기꾼인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야.”


“그런가요? 그런데 아저씨 좀 이상하네요. 무슨 일 때문에 찾아오신 거죠? 보아하니 점 보러 온 것 같진 않은데.”


“도움이 필요해서 왔지.”


수겸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제 도움이 필요해요? 왜요?”


“자네는 무속 뿐 만 아니라, 도술에도 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겐 그런 사람이 필요해.”


“도술이 능한 것은 맞는데.”


녀석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눈치를 본다. 그러고서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쉰다.


“요즘은 그냥 그래요. 점괘도 잘 안 맞고, 신통치가 않네요.”


그냥 그렇다는 말은 뭘까? 장사가 안 된다는 말일 테고, 소위 용한 무당이 아니라는 뜻일 게다.


“자네는 훌륭한 도사이자 무속인 이야. 그건 내가 보증하지.”


“그런가요? 좀 어안이 벙벙하네요. 근데 듣기 좋아요.”


수겸이 다시 TV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동진은 화면 안에서 요란을 떨어대는 괴물들을 응시했다. 누군가를 죽이려는 괴물들, 그에 용감히 맞서 싸우는 주인공. 둘 다 필사적이다. 그렇지만, 실제 괴물들은 저렇지 않다. 숨 막히는 공포와 싸늘한 악취가 숨통을 조이면, 그때서야 알게 된다. 고통보다 비참하고 죽음보다 원통한 것은, 바로 무력함임을.


그런 놈들을 상대하려면 뭔가 다른 것이 필요했다.


“그런데 아까는 무슨 일이지?”


“별일 아니에요.”


무심한 듯 답하던 녀석이, 이내 한숨을 내쉬며 조이스틱을 내려놓는다.


“월세가 밀려서요.”


“옆집 아주머니인가?”


“네. 집주인이기도 하죠. 가끔 김치도 얻어먹고 하는데, 이번에는 좀 미안하네요.”


수겸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녀석은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들고 털썩 앉았다.


“딸애가 아파서 서울 큰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냥 퇴원했다네요.”


“가망이 없던 거로군.”


“맞아요. 병원에서도 포기 한 거죠.”


예전에 수겸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옆집 아줌마 딸을 위해서 소원성취부를 써줬다고 말이다.


“그럼 딸은 집으로 돌아와 요양 중인가?”


“네. 그런데 아줌마가 자꾸······.”


녀석이 말을 흐리며 뭔가를 바라본다. 탁자에 쌓여 있는 부적 뭉치다. 대충 이해가 간다. 아주머니는 아픈 딸을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었을 게다. 병원에서도 포기했으니, 희망이라고는 미신에 기댈 수밖에 없었을 테고, 그런 부탁은 쉬이 거절할 수 없었을 터.


“소원성취부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나보군.”


문득 수겸이 화난 표정을 짓는다. 부적의 효력을 의심하는 것, 이는 무당의 신력 자체를 의심하는 셈이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니, 이를 어떤 무당이 좋아라할까. 그렇지만 녀석은 화를 풀고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주인집 아줌마가 딸애 때문에 돈이 많이 들어갔나 봐요. 사정이 딱해서 부적 값을 김치로 때우기는 했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나?”


수겸이 멀뚱멀뚱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떨어뜨린다.


“그런 것도 있지만, 그냥 모르겠어요.”


“내가 사람 하나는 제대로 봤군.”


“네?”


“일어나게.”


자리에서 일어나자, 녀석이 황당해한다.


“어딜 가려고요?”


“옆집.”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어두워졌다. 수겸이 슬리퍼를 신고 뒤뚱거리며 따라온다.


“무슨 일인데요? 말씀 좀 해보세요.”


동진은 다짜고짜 옆집 대문을 두드렸다. 조금 있자, 안에서 아주머니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세요?”


아주머니는 대문을 열고 나오다 대뜸 어깨 너머부터 째려봤다. 수겸이 잔뜩 몸을 움츠린다.


“안녕하세요. 수겸 선생님 말씀 듣고 왔습니다.”


“누구시죠?”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딸아이 상태부터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누구신데 그러세요?”


아주머니는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다. 그렇지만, 이내 대문에서 비켜준다. 수겸이가 데려 온 어디 용한 무당이라고 여겼나보다. 역한 한약 냄새가 풍기는 집안, 건넌방에 누군가가 누워있다. 한 여름인데도 두터운 이불을 덥고 있는데, 상태가 말이 아니다.


20대 중반의 여성, 입술은 잔뜩 부르터버렸고 몸은 비쩍 말랐다. 너무 야위어서 중학생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잠에 빠져 있다. 동진은 여성이 누워있는 바로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주머니가 뒤따라 방안으로 들어온다.


“아이고, 내가 못나서 이런 거야. 딸자식 하나 있는 거······.”


아주머니가 힘없이 방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녀의 몸 상태도 말이 아니다. 오랜 병간호로 무척 수척해있는 상태다.


“병원에서는 뭐랍니까?”


“말기 간암이라고 해요. 이미 온몸으로 퍼져서 손 쓸 방법이 없다고······. 진작 수술을 했으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다 가난한 부모 만난 죄지.”


아주머니가 결국 눈물을 보이신다. 동진은 슬쩍 수겸이 쪽을 돌아봤다. 녀석은 방에 들어오지 않고 바깥에 서 있다. 멍한 시선이 바닷가 수평선에 머물러 있다. 다시 여자의 몸 상태를 살폈다. 가슴 전체에 검은 기운이 퍼져 있다. 강하게 응어리져 있는데, 만만치 않은 상대다.


“아주머니, 마실 물 한잔 부탁드립니다. 미지근하게요.”


“아니 갑자기 물은 왜?”


“급합니다.”


굳은 표정으로 답하자, 아주머니가 못내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주머니가 부엌으로 향하자, 동진은 품 안에서 군용 칼을 꺼내들었다. 밖에서 지켜보던 수겸이가 눈을 휘둥그레 뜬다. 이를 꽉 깨물고 칼날로 손바닥을 긁었다. 굵은 핏방울이 흐른다.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는 손을 여성의 가슴 중앙에 가져다댔다.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았지만, ‘파사삭’하는 소음과 함께 검은 기운이 타들어간다.


“지, 지금 무슨 짓이에요!”


수겸이가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동진은 검지를 들어 입을 가렸다. 검은 기운이 모두 타버릴 즈음, 여자가 크게 기침을 해댄다. 숨이 넘어갈 정도다. 동진은 부엌 쪽에 대고 외쳤다.


“아주머니! 급합니다.”


아주머니가 대접을 들고 헐레벌떡 뛰어온다. 여자는 계속 기침을 해대다가 대접에 담긴 물을 보더니 벌컥벌컥 들이켠다.


“물! 물······.”


여자가 계속 물을 찾는다. 이번에는 수겸이가 나섰다. 녀석은 쏜살같이 부엌으로 달려가 물을 떠왔다. 물주전자 째 받아든 여자가 정신없이 물을 마셔댄다. 그러더니, 천천히 자리에 눕는다. 편안한 숨소리가 ‘쌔근쌔근’ 들려온다.


그제야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의 진이 다 빠진다.


“아무말씀도 하지 마십시오. 전 좀 쉬어야겠습니다.”


멍청히 서 있는 아주머니를 뒤로하고, 힘없이 집을 빠져 나왔다.



[8월 13일, 오전 10시 10분, 강원도, 동해시]


흠칫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 위로 얇은 이불이 덥혀있다. 어제는 수겸이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힘을 너무 쓴 탓이다. 덮은 이불을 걷는데, 손에 붕대가 감겨 있다.


“지금 일어나셨어요?”


밖에서 수겸이 목소리가 들린다. 몸을 일으켜 마당으로 나가니, 수겸이가 장작을 든 채 뭘 삶고 있다.


“냄새가 좋은데?”


녀석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 솥단지 앞에서 빙그레 웃는다.


“닭백숙이에요.”


“백숙?”


“아저씨 몸보신하시라고요. 옆집 아주머니가 새벽부터 사오셨어요.”


녀석은 기분이 좋은지 콧바람까지 불며 솥단지 밑으로 장작을 밀어 넣는다. 동진은 솥단지 쪽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봤다. 커다란 닭 한 마리, 대추며 인삼이며 온갖 약제가 보글보글 끓는다. 바로 옆, 야외 평상에는 각종 전과 먹음직스러운 반찬이 차려져 있다.


“아이고, 선생님!”


대문이 벌컥 열리고 아주머니가 달려오신다. 양손을 부여잡고 눈물바람이다. 새벽나절 깨어난 딸애가 배가 고프다며 음식을 찾았단다. 3개월 넘게 음식물을 넘기지 못했는데, 씩씩하게 잘도 먹더란다. 이제는 혼자서 화장실에도 갈 수 있는데, 점점 병세가 호전되고 있단다.


아주머니가 난리법석이라 정신이 없었지만, 마당 평상에 앉아 먹는 음식 맛은 그야말로 별미였다. 동진은 식사를 마친 후, 집안으로 들어갔다. 수겸이가 은근슬쩍 따라 들어온다. 얼굴 가득 궁금한 표정이 역력하다.


“다시 묻겠네. 나를 도울 텐가?”


“제가 도움이 될까요?”


녀석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한다. 동진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보미나티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습작을 읽기 전에... +4 16.04.16 1,154 0 -
115 다시 새벽 - 마지막 회 +2 17.03.19 379 5 15쪽
114 다시 새벽 -114 17.03.19 209 1 15쪽
» 다시 새벽 -113 17.03.13 233 2 13쪽
112 다시 새벽 -112 17.03.12 218 1 10쪽
111 다시 새벽 -111 17.03.10 300 1 11쪽
110 밤 -110 17.03.09 236 1 14쪽
109 밤 -109 17.03.05 225 1 11쪽
108 밤 -108 17.03.03 199 1 10쪽
107 밤 -107 17.03.01 202 1 11쪽
106 밤 -106 +1 17.02.27 671 1 11쪽
105 밤 -105 17.02.26 244 1 12쪽
104 밤 -104 17.02.24 366 1 12쪽
103 밤 -103 17.02.22 298 1 11쪽
102 밤 -102 17.02.20 336 2 14쪽
101 밤 -101 17.02.18 355 3 14쪽
100 밤 -100 17.02.16 339 2 11쪽
99 밤 -99 17.02.14 305 1 17쪽
98 밤 -98 17.02.13 335 1 15쪽
97 밤 -97 17.02.09 415 1 19쪽
96 밤 -96 +3 17.02.08 428 1 20쪽
95 밤 -95 17.02.05 418 1 16쪽
94 저녁 -94 17.02.04 347 3 10쪽
93 저녁 -93 17.02.03 521 3 13쪽
92 저녁 -92 17.02.03 459 3 16쪽
91 저녁 -91 17.02.02 482 3 16쪽
90 저녁 -90 17.01.30 382 3 14쪽
89 저녁 -89 +1 17.01.28 434 3 15쪽
88 저녁 -88 17.01.27 388 2 14쪽
87 저녁 -87 17.01.25 373 2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