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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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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6.04.16 23:31
최근연재일 :
2017.03.19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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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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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24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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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밤 -104

DUMMY

[48시간, 수원시 인근]


쭉 뻗어있는 도로, 양 옆은 들판이다. 한줄기 바람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도로를 타고 넘는다. 동진은 떨리는 손길로 걸치고 있던 담요를 여몄다. 추위가 여전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검은 장막이라도 친 듯 컴컴했다. 하늘과 육지의 경계만 겨우 보일 정도, 세상은 암흑천지였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살을 에는 강추위, 점점 버티기 힘들어지고 있다. 걷다보니 톨게이트가 나온다. 고개를 들어 살피니, 수원시라는 글자가 보인다. 수원에서 서울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 지하철 1호선을 따라 안양을 거쳐 광명, 영등포로 빠지는 길이 있다. 또 하나는 지금 걷는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판교를 거쳐 강남을 지나는 길이다.



거리상으로는 경부고속도로를 따라가는 게 맞지만, 문제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차들이 빼곡히 들어찼을 고속도로에서 얼마나 많은 시체를 만날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물론 도시를 관통해가는 일도 만만치 않다. 언제 어디서 어떤 존재가 나타나 생명을 위협할지 모른다.


어디를 가든 위험한 건 마찬가지일 게다. 상황이 그렇다면, 차라리 빠른 길을 선택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결국 경부고속도로를 향해 방향을 잡았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차들이 수없이 멈춰서 있다. 그사이로 오만가지 쓰레기들이 나뒹굴고 있어 도로는 마치 거대한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다. 고철로 변해버린 차량은 이미 겉칠이 완전히 벗겨져 녹이 슬어 있다. 북쪽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차량들에서 뿌연 녹 가루가 일어난다. 담요를 동여매 입을 막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200미터를 더 걸어가니, 도로 사정은 점점 가관으로 치닫는다. 수십 대의 관광버스가 차도 전체를 가로막고 있는데, 서로 부딪쳐 넘어졌다. 큰 사고가 난 흔적도 여럿 보인다. 뒤집혀진 관광버스를 우회하니, 화물차량이 앞을 막아선다. 어쩔 수 없이 차 지붕을 타고 오르니, 오히려 도로를 걷는 것보다 차 위를 통하는 것이 더 빨라 보인다. 물론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는데, 가다보니 그 마저도 쉽지 않다.



버스 창문을 밟고 지붕으로 오르니 앞이 훤히 보인다. 죽 늘어서 있는 수천대의 차량들, 그 주인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가방에서 쌍안경을 꺼내 도로 끝 작은 언덕을 살폈다. 뭔가 희미한 불빛이 언덕 끝 도로면에서 일렁이고 있다. 언덕 너머에 뭔가가 있다는 뜻이다.


동진은 차 지붕에서 내려와 소총을 움켜쥐었다. 그런데 노리쇠가 움직이지를 않는다. 소총 탄창을 빼고 방아쇠를 당겨봤는데, 꿈쩍도 않는다. 완전히 녹이 슬어 버렸나보다.


‘후우.’


절로 한숨이 내뿜어진다. 소총은 이제 포기해야 했다. 작동도 안하고 무겁기만 하니, 짐만 될 뿐이다. 그래도 총알은 필요할 테니, 탄창만 빼서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소총을 바닥에 내려놓고 다시 걸음을 옮겨본다.



언덕이 가까워질수록 붉은 빛이 점점 확연해진다. 아직 실루엣만 보였지만, 목표가 코앞이다. 어쩌면 도시에서 뿜어지는 휘황찬란한 야경일지도 모른다. 점점 마음이 급해져 가방을 부여잡고 뛰기 시작했다.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기분이 들뜨기까지 한다.


“이럴 수가!”


언덕에 올라 반대편 지역을 살펴보던 동진은 나직하게 신음을 토하고 말았다. 노란색 불빛 커튼, 그래 그 표현이 가장 알맞다. 땅위로 100미터도 넘게 불빛이 쏘아지고 있었는데, 동에서 서쪽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빛으로 만들어진 커튼처럼 보일 지경이다.


동진은 쌍안경으로 바닥을 살펴보다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커튼의 정체는 균열이었다. 빙하처럼 이어지는 균열이 마치 비무장지대 철조망처럼 동서로 끝없이 펼쳐져 있다. 바닥에서 커튼처럼 뿜어져 나오는 불빛은 동쪽 산에서부터 시작해, 도로와 들판, 심지어는 도시마저 가로지르고 있다.



균열로 다가갈수록 열기가 느껴진다. 타는 듯한 열기는 아니었기에 견딜 수 있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에 숨이 가빠온다. 찌는 듯한 열기를 담요로 막으며, 균열 밑을 내려다봤다. 절망감으로 마음이 내려앉는다. 균열의 깊이는 족히 수 백 미터, 그 아래에서 용암이 흐르고 있다. 문제는 균열의 넓이였는데, 항상 일정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30미터는 넘어 보인다. 대지진의 흔적인 듯, 그 비슷한 균열이 저 너머에 몇 개 더 있다.


“제발, 조금만 도와주십시오.”


동진은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응시했다.



균열 주위를 걷는데 머리가 아파온다.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추위는 막을 수 있어 좋은데, 그게 아니다. 헛구역질이 나오고 뛰지도 않았는데 숨이 가빠온다. 용암에서 올라오는 유독가스 때문이었다. 용암에서는 각종 유해가스를 비롯해서 이산화황, 황화수소가 발생한다. 좀 더 거리를 둘 필요가 있었다.


서울을 향해 가려면 북쪽으로 향해야 한다. 그렇지만 계속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들판을 가로지르자 제법 큰 도시가 나온다. 수많은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는데 판교 근처로 여겨진다. 균열은 도시 중앙을 구불구불 가로지르고 있다. 들판에서보다 너비가 좁아지는데, 그래도 20미터는 넘는다. 뛰어넘을 수도 없거니와 만약 실패한다면 그대로 끝장이었다.



무너져 내린 아파트 건물, 철근이 엿가락처럼 휘어있고 잔뜩 녹이 슬었다. 균열이 있는 곳은 대화재가 발생한 듯, 모두 불타 있다. 새카만 그읆을 뒤집어쓴 콘크리트 무더기만 줄지어 늘어섰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물병을 꺼내들었다. 이제 물도 얼마 남지 않았기에 아껴 마셔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도 빡빡하리만큼 아껴 마셨지만 말이다.


풍비박살이 난 건물 뒤로 높은 산이 보인다. 산세가 제법 깊어 보이는데, 균열이 산 중앙을 꿰뚫고 있다. 가방에서 지도를 펴고 살피니, 해발 600미터가 넘는 청계산이다. 서쪽으로 계속 산을 넘으면 서울 대공원이 나올 것이다. 거기서 조금가면 드디어 서울이었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균열이 앞을 막고 있다. 동진은 끝도 없이 펼쳐진 균열을 응시했다. 균열의 깊이는 100미터에서 깊으면 수백 미터에 이른다. 그렇다면, 해발 600미터가 넘는 산도 반으로 갈라놓을 수 있었을까? 대지진으로 균열이 일어났다면, 내부로 대량의 흙과 바위가 쏟아져 내렸을 것이다. 자연적으로 균열이 매립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청계산이라.’


산 크기가 만만해 보이지 않지만, 해볼 만하다. 그러려면 아주 멀리 돌아가야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동진은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병풍처럼 늘어선 산자락, 그곳에 활로가 있길 빌어본다.


[51시간, 경기도, 과천시, 청계산]


산 숲으로 진입했지만, 상황은 같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깊은 숲, 풀은 보이지 않고 땅은 새카맣게 죽어 있다. 나무가 빽빽이 들어찼는데, 손으로 만지자 어른 팔뚝만한 가지가 수수깡처럼 부러진다. 나무토막을 발로 밟으니, 푸석거리며 재로 화해 버린다.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손전등은 켜지 않았다. 만일을 대비해서였다. 계곡을 미끄러져 내려가는데, 재가 먼지처럼 피어오른다. 숨을 쉬기가 곤란할 지경이다. 빛 한 점 없는 계곡 바닥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검은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 어디선가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지옥은 빛이 없는 곳이라고. 사실, 빛은 희망이다. 희망조차 없는 삶, 인간은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만큼 강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지만,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 그 희망의 불꽃이 자신을 목 놓아 기다리고 있을 게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제까지 잘 버텨왔다. 이런 식으로 앞으로 조금씩 전진하다보면, 언젠가는 희망을 만날 수 있을게다.



기다시피 계곡을 오르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수북이 잿더미를 뒤집어써 손과 발이 꺼멓다. 추위는 어떤가? 먼지를 몰고 다니는 계곡 바람은 살을 엘 듯 차갑다. 어쩔 때는 갑자기 눈이 감길 만큼 피곤이 몰려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냥 고꾸라져 잠을 자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잠에 빠지면, 그대로 얼어 죽을 터였다.


깊은 계곡을 넘으니, 뭔가 앞길을 막아선다. 철제로 만들어진 펜스였다. 깊은 산 숲에 웬 인공 구조물일까? 등산로나 다른 시설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펜스 위는 철조망이 쳐져 있고, 그 너머도 윤형 철조망이 둘러쳐진 모양새다. 대지진의 흔적 때문인지, 펜스와 철조망 곳곳이 파괴되어 버렸다.



덕분에 펜스를 넘는 고생은 면할 수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든다. 계속 산을 오르자, 넓은 구릉지가 나오는데 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산 전체에 수도 없이 많은 텐트가 쳐져 있다. 고급스러운 텐트도 보이고 어떤 것은 비닐 천막뿐이다. 이 광경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난다.


그래, 지리산 하늘신교와 똑같은 모습이다. 수많은 난민들이 가축처럼 모여 지내던 곳, 그 처참한 광경에 혀를 내둘렀었다. 지금도 그때와 같다. 언제, 어디서 시체들이 몰려나올지 모른다. 동진은 허리춤에서 군용 대검을 꺼내들었다. 소총이 없어서 최소한의 저항도 할 수 없다. 그나마 주머니에 든 수류탄이 있어 안도가 된다. 죽음만큼은 편할 테니까.



세찬 바람이 불어오자, 천막에 친 비닐이 거세게 펄럭인다. 슬쩍 가까이 다가가 내부를 살피니, 특별한 것은 없다. 다른 천막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깨진 컵이며 비닐 봉투 등 쓰레기들만 잔뜩 널려 있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 아니, 살아 있기는 한 걸까? 여기까지 오면서 살아있는 사람은 만날 수 없었다. 오히려 가는 곳마다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딘가에 자신처럼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 장 신부님과 수겸이도 무사하리라 믿고 싶다.


수백 개의 천막을 지나자, 난데없이 규모가 큰 흰색 건물이 나온다. 고풍스러운 대리석으로 겉면을 꾸몄는데, 여기저기 공사가 덜된 흔적이 엿보인다. 건물을 크게 우회하니, 넓은 공간이 나오고 그곳 한 중앙에 누군가 손을 벌리고 서 있다. 높이가 10미터도 넘어 보이는 붉은 석상, 세상을 향해 양팔을 편 채 땅을 우러러보고 있는 모습. 예수님, 아니 하늘 신교의 메시아 상이다.



동진은 뚜벅뚜벅 예수님 상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앞에서 예수님 상의 두 눈을 쏘아봤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예수님은 말이 없다.


“그래서 심판하러 직접 내려오신 겁니까?”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


“말씀을 해보십시오. 말씀을!”


나직한 외침이 고요한 세상을 메아리친다.


“인간들이 다 죽으면, 그래서 완전히 멸종해버리면 지옥이 완성되는 겁니까?”


동진은 자신의 가슴을 쳤다.


“절 죽여야 합니다. 그 전에는 뜻대로 되지 않을 겁니다.”


‘크르륵!’


어디선가 가래 끊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진은 얼굴가득 비웃음을 머금고 예수님 상을 올려봤다.


“그렇게 나오실 줄 알았습니다.”


들고 있던 군용 대검을 힘주어 움켜잡았다.


‘크아악!’


성전 대문이 ‘쾅’하고 열리며 셀 수도 없는 시체들이 쏟아져 나온다. 동진은 부리나케 바로 옆 등산로를 향해 뛰어올라갔다. 고개를 돌려 뒤를 살피니, 시체들의 숫자가 속히 수천은 넘어 보인다. 모두 광기와 살육에 미쳐 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정신없이 산길을 오르지만, 시체들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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