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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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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6.04.16 23:31
최근연재일 :
2017.03.19 01:53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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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69
추천수 :
528
글자수 :
687,446

작성
17.02.0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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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밤 -95

DUMMY

[1시간, 전라남도, 구례, 하늘신교, 성전]


동진은 눈을 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완벽한 어둠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문득 등에서 한기가 치민다.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팔다리가 저려 꼼짝도 할 수 없다. 신음을 내뱉으며 다리를 일으켜 세웠다. ‘툭’하고 주머니에서 뭔가가 굴러 떨어진다. 손을 뻗어 매만지니 수류탄이다.


잠바 안주머니로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무슨 짓을 해도 액정이 들어오지 않는다. 더듬더듬 바닥을 짚어나가는데 손끝에서 차가운 감촉이 느껴진다. 사람의 피부, 딱딱하게 굳어 있다. 시체가 틀림없었다. 다시 손을 뻗어 시체를 매만졌다. 웃옷 위로 불룩한 물건이 느껴진다. 라이터와 담뱃갑이다. 일행 중 담배를 태우는 이는 한사람뿐이다.


라이터 불을 켜자, 바로 앞에 최 교수의 시신이 보인다. 불빛에 비친 그의 얼굴, 편안함이 가득하다. 최 교수의 손을 부여잡았다. 차갑고 딱딱하지만, 마음만은 푸근하다.


“편히 쉬십시오.”


방 한쪽 구석에 김 신부님의 사체가 보인다. 땅바닥에 엎드린 채, 몸을 웅크렸다. 바닥을 살피니 수겸이가 놓고 간 가방이 떨어져 있다. 안을 열어보니, 물 한 병과 지도, 새끼로 꼬아 만든 주련승이 담겨있다.


가방 앞쪽 주머니에는 부적 몇 장과 함께 초코바가 들어 있다. 전날 차에서 녀석에게 준 과자다. 먹으라고 줬는데, 아껴 두었나보다. 희미하게 웃으며 초코바를 뜯었다. 한입 베어 무니 달콤하고 고소한 초콜릿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이제 일어나야 할 때다. 최 교수 옆에 놓인 권총을 챙겨 바지춤에 꽂았다. 수류탄 역시 바로 빼서 쓸 수 있도록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 나니 약간 안도감이 든다.


‘그그긍!’


지축이 울린다.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린다. 가방을 등에 매고 부리나케 철문 쪽으로 다가갔다. 누군가의 사체가 철문을 가로막고 있다. 강 신부님이다. 옷깃을 부여잡고 몸을 당기니 바닥에 붉은 자국이 그어진다.


사체를 치우고 철문 앞에 섰다. 육중한 철문, 갑자기 두려워진다. 이 싸움을 이길 수 있을까? 그래, 싸움에서 이기려는 것이 아니다.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것일 뿐. 마음을 다잡고 문손잡이를 힘주어 당겼다. ‘끼이익’하고 소름끼치는 음향이 들린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복도, 그 어둠 속에서 뭔가가 쌓여 있다. 라이터를 켜니, 실낱처럼 복도가 밝아진다. 복도에 쌓여 있는 것은 사람들의 시체다.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붉은 핏물이 강처럼 흐른다.


‘크르륵!’


뒤엉켜 있는 시체들이 부르르 몸을 떤다. 저마다 몸을 뒤척이며, 구더기처럼 꾸물댄다. 가슴뼈가 들어날 정도로 치명상을 입은 남자가 비칠거리며 손을 뻗는다. 죽지 못한 자들. 죽음이 허락되지 않은 육신. 끝없는 고통 속에서 괴로움에 떠는 자들, 내면의 목소리가 깨어난다.


‘도망쳐!’


동진은 맞은편 철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두운 세상, 그리고 그 안을 밝히는 핏빛 기운, 차갑고 끈적끈적한 바람이 불어온다. 하늘에서는 붉은 구름이, 붉은 비를 쏟아낸다. 매캐한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른다.


‘콰쾅!’


가까운 곳에서 굉음이 울린다. 산 정상에서 뭉게뭉게 연기 기둥이 피어오르고, 붉은 용암이 솟구친다. 그 앞에 펼쳐진 들판과 논은 불길에 휩싸였다. 마치 온 세상이 타오르는 것만 같다. 유황 냄새로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지만, 이제 필사적으로 다음 할 일을 해야 했다.


이대로 걸어서는 서울까지 갈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차를 찾는 일이다. 일행이 타고 온 차량이 마을에 주차되어 있다. 어쩌면 그곳에 수겸이와 장 신부님이 계실지도 모른다. 일이 끝나면 마을에서 모이자고 했으니, 아직 떠나지 않았을 게다.


‘크으으.’


어디선가 낮은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급히 몸을 숙이고 주위를 살폈다. 어둠 속, 성전 건물 뒤편의 숲에서 나는 소리다. ‘딱’하고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심호흡을 하며 권총을 꺼내들었다. 숲이 통째로 움직인다. 그 안에 맹수의 눈처럼 번쩍이는 수십, 아니 수백의 눈동자가 보인다.


‘크아악!’


아저씨가 손을 휘저으며 달려든다. 옷이 피로 물들어 있는데, 나뭇가지에 긁힌 자국이 수도 없이 나 있다.


‘탕!’


권총에서 발사된 총탄이 아저씨의 이마를 관통한다. 아저씨의 몸이 거칠게 뒤쪽으로 쳐 박히는데, 그의 몸이 부딪친 곳은 벽이다. 사람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장벽 말이다.


‘빌어먹을!’


주저 없이 몸을 일으켜 내달렸다. ‘번쩍’하고 번개가 치며 세상이 밝아진다. 성전 건물을 둘러서 내달리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누워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다. 건물 옆에도, 주차장에도 사람들이 넘쳐난다. 모두 이곳을 바라본 채다.


‘크아아!’


사람들이 이빨을 드러내고 커다랗게 고함을 질러댄다. 마치 오랫동안 배를 곯은 맹수처럼 네 발로 기는 사람도 보인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먹을 것이었다. 가쁜 숨을 참으며, 쉬지 않고 뜀박질을 했다. 생각 같아서는 차를 집어타고 싶은데, 그럴 여력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람들이 천천히 걸어온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뛰는 녀석은 찾을 수 없었다.


‘와창창’하는 굉음과 함께 바로 옆에 주차되어 있던 차 유리가 박살난다. 급히 고개를 돌려 차를 바라보는데 숨이 턱 막힌다. 20대쯤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깨진 차문 유리를 뚫고 고개를 내밀고 있다. 머리에서부터 이마로 핏물이 흘러내리는 데, 괴이치 않는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하나, 먹을 것이었다.


‘끼아악!’


그녀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댄다. 차 문 유리에 머리가 껴서 옴짝달싹 못하자 거칠게 몸을 흔들어댄다. 깨져나간 유리가 그녀의 목을 할퀴자, 붉은 피가 차 문을 채색한다. 동진은 성전을 내려와 곧장 주차장 쪽으로 뛰었다. 그렇지만, 사람들, 아니 시체들의 수는 늘어만 간다. 어슬렁거리며 움직이던 시체들의 고개가 이쪽을 향한다. 팔 하나가 없는 남성이 괴성을 지르며 앞을 막아선다.


달려가던 힘을 이용해 남자의 몸을 발로 차버렸다. 그의 몸이 뒤쪽 비닐 텐트로 처박혀 버린다. 텐트가 힘없이 주저앉아 버리는데, 그 안에서 뭔가가 꾸물거린다. 동시에 수백 개의 비닐 텐트가 꾸물꾸물하며 사람들을 토해낸다.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괴성을 지르며 몸을 일으킨다. 그 수가 수백, 아니 수천은 되어 보인다.


‘이대로는 안 돼!’


목소리가 외친다. 맞다. 이대로 수많은 사람들을 뚫고 산을 내려갈 수는 없었다. 방법은 단 하나, 도로까지 이어진 산길을 이용하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방향을 틀어 바로 옆 숲으로 몸을 날렸다. 구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치지만, 멈춰 설 수가 없다. 비닐 텐트에서 나온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비명, 고통에 몸부림치는 괴성이 세상에 가득 찬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산길을 내려가는데, 팔과 얼굴이 따끔거린다. 작은 생채기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잎이 모두 떨어진 나뭇가지는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다. 급히 자세를 낮춰 나무 사이를 빠져나갔다. 갑자기 바로 앞에서 산비탈이 모습을 드러낸다. 10미터는 넘어 보이는 급경사였는데, 쉬이 내려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뒤에서 나뭇가지들이 거칠게 흔들린다. 아니 숲 전체가 뒤흔들리는 것만 같다. 사람들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물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미끄러운 비탈을 몸을 최대한 낮춰 미끄러져 내렸다.


‘크윽!’


비탈을 주르륵 내려가던 와중에, 왼손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진다. 바닥에 착지한 후 왼손을 살폈다. 날카로운 가시들이 손바닥 여기저기에 박혀 있다. 이를 악물고 가시를 제거했지만, 피는 멈추지 않는다. 급히 잠바 앞 춤 지퍼를 내리고 웃옷을 걷어 속옷을 찢었다. 흰색 속옷으로 손바닥을 동여매니, 곧 붉은 피가 배어 나온다.


‘툭’하고 바로 옆으로 흙이 굴러 떨어진다. 동시에 사람들이 산비탈에서 굴러 떨어진다. 허겁지겁 몸을 일으켜 산길을 뛰었다. 고개를 뒤로 돌려 살피니, 산비탈 아래로 사람들이 떨어져 차곡차곡 쌓인다. 밑에 깔린 사람들이 괴성을 질러댄다.


좁은 산길을 뛰어내려오니, 한편으로 도로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앞을 여자가 가로막고 서 있다. 동진은 오른손을 들어 권총을 겨눴다. 여자의 검은색 눈망울에 웃음기가 감돈다.


“이제 그만해. 제발.”


낯이 익다. 예전 공원에서 만난 바로 그 여자다. 여자가 양 팔을 뻗는다.


“나랑 같이 가. 응? 같이 가면 더 이상 고생하지 않아도 돼.”


‘탕!’


권총이 불을 뿜는다. 총탄은 정확히 여자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렇지만, 여자는 자리에서 꼼짝도 않는다. 그녀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걸린다.


“아직도 모르겠어? 죽었어.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 다 죽었다고.”


동진은 권총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꿔 들었다. 천에서 배어나온 핏물이 권총 손잡이에 덧칠된다. 여자가 커다랗게 비명을 질러댄다.


“다 죽어버렸다고!”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여자의 몸이 뒤로 고꾸라져 버린다.


[4시간, 전라남도, 구례]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시내가 나온다. 일차 목표는 장 신부님과 수겸의 안전을 살피는 것이고, 이차는 먹을 것을 구하는 일이다. 잠시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봤다. 도로 끝 멀리서 검은 인영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그 웅성거림이 점점 가까워져 온다. 살아 있는 시체, 그들은 자지도 먹지도 않고 영원히 뒤를 따를 것이다.


얼마를 더 걸었을까? 시내 건물들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동진은 마을 입구로 통하는 도로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군용차들이 도로 곳곳에 멈춰있다. 그 밑으로 사람처럼 보이는 인영들이 어른거린다. 다시 권총을 꺼내들었다.


쓰러져 있던 군인들이 몸을 일으킨다. 꾸부정하게 팔을 흔들며 입으로 피를 토해내는 군인도 있다. 가슴에 기다란 철근이 박혀 있다. 길을 뚫어야 한다. 일단 근거리에 있던 군인들에게 권총을 발사했다. 총탄에 맞은 군인 셋이 바닥에 쓰러져 버린다. 군인들에게 다가가 소지품을 검사했다. 특별히 먹을 것이라고는 없고, 탄띠에 탄창이 몇 개 보인다. 몸에 빗겨 매져 있는 소총을 거둬들이고 탄창도 챙겼다.


‘끄으으.’


바닥에 쓰러져 있던 군인이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킨다. 군인에게 다가가 머리에 대고 소총을 발사했다. 이마가 꿰뚫린 군인이 몸을 움찔하더니 이내 축 늘어진다. 군복 윗주머니를 살피니, 말린 육포가 나온다. 적은 양이었지만, 없는 것보단 낫다.


‘쿠쿠쿵!’


산 쪽에서 또 다시 굉음이 울린다. 연기기둥이 들썩 하더니 꾸역꾸역 용암을 토해낸다. 용암이 산 밑을 미끄러져 내려오며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시내가 보인다. 용암이 도시를 불태울 기세다. 서둘러야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도로가 갈라지며 시내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동진은 시내 쪽으로 접어드는 길을 살펴다 흠칫 몸을 낮췄다. 수많은 시체가 길바닥에 머물러 있다. 뚫고 가기에는 너무 많다. 그렇지만, 되돌아갈 수도 없다.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니, 시체들이 아직도 따라오고 있다.


길은 단 하나, 논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전날에 있었던 일이 마음에 걸린다. 군인들과 대치하던 사람들이 논두렁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대던 사람들, 그들의 몸에는 검은 물체가 수도 없이 달라붙어 있었다. 시선을 돌려 도로에서 비켜나 논 쪽을 살폈다. 논 주위로 바둑판처럼 이어진 황톳길이 보였는데, 그 끝이 도시로 이어지고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좀 돌아가야 하지만, 결국 시내에 도착할 것이다. 갈 곳을 정하고 논길로 뛰어들었다. 붉은 황톳길 위로 빗물 구덩이가 이곳저곳 파여 있다. 구덩이에서도, 물이 차오른 논에서도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온다. 안에 뭔가가 있었다.


작다. 그리고 많았다. 작은 물고기는 아니다. 몸 전체가 검고 지렁이처럼 긴 녀석, 길이가 30센티가 넘는 거머리 때였다. 수십, 아니 수백만 마리의 거머리가 논 전체에서 꾸물거린다.


‘크르륵!’


도로 쪽에서 괴성이 들려온다. 어느새 따라온 시체들이 논두렁을 내려오고 있다. 주저하고 있을 여력이 없다. 이를 악물고 황톳길을 내달렸다. 바닥을 살피니, 다행히 거머리는 황톳길 위로 올라오진 못한다.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바로 옆에서 거머리들이 요동을 쳐댄다. 그 모습이 물고기 때가 물 위에서 먹이를 먹으려고 요란을 떨어대는 듯하다.


‘크아악!’


뒤쪽에서 날카로운 비명성이 울린다. 막무가내로 논에 뛰어든 시체들이 괴성을 질러댄다. 그들의 몸에는 검은 물체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다. 거머리들은 미꾸라지처럼 꼬리를 세차게 뒤흔들며 배와 가슴으로 파고든다. 곧 핏물이 강을 이루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일부 시체들은 정확히 황톳길을 따라오고 있었다. 동진은 소총을 겨누다가 포기하고 어깨에 걸었다. 숫자가 너무 많다.


시내로 향하려면 황톳길을 일직선으로 걸어간 후 직각으로 좌회전을 해야 한다. 산 쪽을 바라보니, 용암이 이미 시내 안으로 접어들고 있다. 불이 타오르면서 피어나는 연기가 거대한 장막을 형성한다. 그 모습이 마치 도시 전체에 커튼을 친 것 같다.


서둘러야했다. 논두렁을 내달리는데, 뒤쪽에서는 여전히 비명성이 울리고 있다. 시체들이 본격적으로 논을 타 넘자, 비교적 뒤쪽에 있던 거머리 때가 요동을 친다. 논에 찬 물을 타고 피가 번지자, 거머리들이 흥분한 듯 하다. 찰랑거리는 소음이 파도처럼 거칠어지더니, 수많은 거머리들이 시체들에게 달려든다. 그 모습이 마치 검은 파도가 밀려오는 듯 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마의 땀을 훔쳤다.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땀과 비에 젖어 옷이 살에 달라붙어 움직임이 둔해진다. 금방이라도 거머리들이 달려들 듯 해서, 숨이 가빠온다. 그렇지만, 가야하는 길이다..


‘와장창’하는 굉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 파편과 뿌연 먼지구름 사이로 불길이 하늘높이 치솟는다. 용암이 시내 외곽 건물들을 덮치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동진은 황톳길을 달리다 흠칫 몸을 세웠다. 중간에 길이 끊겨있다.


“빌어먹을!”


황톳길로 물이 범람해 길 중간에 작은 시냇물이 생겼다. 그 폭이 족히 2미터는 넘어보였다. 물 안은 거머리들이 우글거린다. 물과 함께 쏴하고 거머리들이 쏟아져 내린다. 거머리들은 살을 파먹으며 몸 구석구석을 이동한다. 한번 물리면 그대로 끝장이었다.


‘크아아!’


황톳길을 따라 걷던 시체 한구가 발을 잘못 디뎠나보다. 길에서 떨어져 논에 빠진 시체에게 기다렸다는 듯 거머리들이 달려든다. 괴성을 질러대던 시체가 허우적대며 길로 올라온다. 피가 사방으로 번져 나가자, 근처에 있던 거머리들이 미꾸라지처럼 우글거리기 시작한다. 순간 거머리 한 마리가 픽 하고 날더니 시체의 몸으로 뛰어든다. 시체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이리저리 몸을 비튼다.


마음을 다잡고 건너편을 쏘아봤다. 비가 끊임없이 내려 흙바닥이 철퍽철퍽하다. 거리는 얼마 안 되지만, 미끄러지는 게 두렵다. 더 이상 생각할 여력이 없다. 점점 거머리들이 들어찬 논 수위가 오르고 있다. 일단 뛰어야 했다. 뒤로 물러나 도움닫기를 이용해 몸을 날리자, 방금 있었던 자리로 픽하고 거머리가 날아든다. 이를 악물고 모든 신경을 발끝에 집중했다.


발이 땅에 닫자마자 뒤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앞으로 몸을 숙였다. 한 바퀴 몸을 구르며 착지를 해내니, 그제야 참았던 숨이 터져 나온다. 무사히 냇물을 건넌 것이다. 거머리들이 화가 났는지 팔딱댄다. 마치 커다란 잉어가 작은 물에 몸을 담그고 철퍽대는 것 같다. 동진은 가쁘게 호흡하며 뒤를 돌아봤다. 수백에 달하던 시체들이 전부 사라졌다. 거머리 때가 논두렁과 황톳길마저 뒤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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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저녁 -93 17.02.03 520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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