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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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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6.04.16 23:31
최근연재일 :
2017.03.19 01:53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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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68
추천수 :
528
글자수 :
687,446

작성
17.02.27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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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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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밤 -106

DUMMY

[58시간, 서울]


바로 옆 야산에서 용암이 분수처럼 치솟고 있다. 그 용암이 도로와 근처 건물들을 불태운다. 매캐한 유독가스가 세상을 뒤덮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뜨거운 난로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얼굴로 열기가 밀려온다. 동진은 되도록 용암을 피하려 애썼다. 열기도 열기지만, 유독가스가 문제다. 다 헤진 방독면으로 유독가스를 막을 수는 없었다.


난데없이 발밑에서 ‘쾅’하고 굉음이 울린다. 철판을 밟은 모양이다.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녹색 철판. 무릎을 꿇고 손으로 먼지를 닦았다.


‘서울특별시.’


녹색 바탕에 흰색 큰 글씨다. 도로 한복판에 넘어져 있는 표지판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문득 화가 치민다. 폐허로 변해버린 도시. 찬란함을 구가하던 서울이 영영 사라져 버렸다. 누구 짓인가? 대체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드니 하늘이 타오르고 있다. 피처럼 붉은 구름들이 펄펄 끓는 가마솥처럼 이글거린다.


가방에 손을 넣어 살피니, 남은 식량이라고는 초코바 반쪽과 물 반병이 전부다. 이것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토록 바라던 서울에 도착했지만, 청이가 있을 병원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온다. 언제 잠을 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걷고, 또 걸을 뿐이다.



야산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도로를 타고 넘어 건물들을 불태우고 있다. 철근이 녹고 콘크리트가 바스라진다. 뿌연 먼지가 사방을 가려, 한치 앞도 볼 수가 없다. 용암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열기에 아스팔트가 녹아 흘러내린다. 숨을 몰아쉬며 다시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얼마 걸어오지도 않았는데, 거의 탈진 상태다.


잠바는 진작 벗어버렸지만,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렇다고 옷을 전부 벗어버릴 수는 없다. 살갗으로 전해지는 열기를 옷이 막아주기 때문이다.


‘콰콰쾅!’


갑자기 굉음이 울린다. 지축이 다 흔들릴 지경이다. 멀리 불타오르던 빌딩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가 폭삭 주저앉고, 붉은 화염이 하늘 높이 치솟는다. 동시에 거대한 잿더미가 구름처럼 밀려든다. 급히 옷으로 입을 가리고 건물 벽에 몸을 가렸다.


땅바닥으로 ‘우수수’하고 돌파편이 떨어져 내린다. ‘와장창’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유리파편도 쏟아진다. 피사의 사탑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건물 유리창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깨져나가고 있다. 기다란 철근이 위태롭게 서 있는데, 언제 넘어질지 몰라 두렵기만 하다.



아무래도 큰 건물은 우회해서 가는 편이 안전할 것 같다. 웃옷으로 입을 가린 채, 계속 북쪽을 향해 걸었다. 잘 포장된 아스팔트길은 샌드위치 조각처럼 잘게 부셔져 있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가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타오르는 불길을 피해 걷다보니, 입술이 바싹 타들어간다. 물을 마시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수 없지만, 견뎌내야 한다.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도심으로 진입할수록 화산재처럼 쏟아지는 먼지로 눈조차 뜰 수 없다. 녹이 슬어버린 차 위로 희뿌연 먼지들이 내려앉았다. 숨을 몰아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붉게 타오르는 하늘, 그리고 저 멀리 어둠이 내려앉은 또 다른 하늘이 있다. 화산에서 터져 나오는 거센 불길도, 그 어둠을 몰아내기에 역부족이다. 북쪽 하늘이었다.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인다. 콘크리트 잔해들이 사라지고, 완전히 파괴된 차량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차량들 주위로 엿가락처럼 휘고 구부러진 가드레일이 보인다. 차량들을 피해 언덕을 타넘자 넓은 벌판이 나온다. 동진은 숨을 몰아쉬며 벌판을 내려다봤다.


‘한강이다.’


물이 말라버려 애초에 강이었는지조차 구분하기 힘들지만, 분명히 한강이었다. 그리고 한강 저 너머, 북쪽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이 자리했다. 한강을 살피려면 조금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 둔치로 올라가 쌍안경을 들었다. 한강 너머, 북쪽의 세상. 암흑 속에서 드문드문 불빛이 반짝인다. 아주 작은 빛이었지만, 분명 인공적인 불빛이었다.


아직 살아남은 사람이 존재하는 걸까?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져온다. 당장에라도 한강을 건너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한강 상류에서부터 뻗어 나온 계곡이 하류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계곡에서는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급히 언덕을 내려와 계곡 쪽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열기가 점점 심해진다. 잠바를 들어 열기를 막아보지만, 견디기 힘들다. 잠시 숨을 몰아쉬며 뒤로 물러났다. 계곡의 깊이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 밑에서 용암이 흐르는지 아래에서는 시뻘건 불길이 치솟고 있다. 문제는 계곡의 넓이였는데, 족히 20미터는 넘어 보인다.


‘이런 빌어먹을, 젠장!’


바로 너머에 사람들이 있는데, 계곡을 넘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회해야 했는데 그 거리가 실로 만만치가 않다. 계곡은 한강 하류 쪽으로 끝도 없이 뻗어 있었다. 일단 열기를 피하기 위해 다시 언덕 쪽으로 돌아봤다. 여전히 찜통처럼 더웠지만, 그나마 좀 낫다. 숨을 몰아쉬며 본능적으로 가방을 부여잡았다.


뜨뜻미지근한 물병이 손에 잡힌다. 어쩔 수 없이 물을 한 모금 머금어 본다. 탈수 증세를 피하려면 물을 마시면 안 되고, 계속 머금고 있어야 한다. 군에서 행군 때 쓰는 방법인데, 이 짓을 하기가 힘든 이유는 물을 넘기고픈 욕망을 계속 참아야 한다는 데 있다.



잠시 눈이라도 감고 싶은데, 목소리는 일어서라고 외친다. 최대한 빨리 계곡을 넘어야 한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몸속의 수분은 빠른 속도로 사라질 터였다. 가방을 짊어지고 몸을 일으키는데, 머리가 띵하고 어지럽다. 잠시 땅바닥에 손을 짚고 숨을 골라본다.


‘콰쾅!’


굉음과 함께 뒤쪽 산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화산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언제 저런 큰 산이 있었을까? 뿌연 화산재가 병풍처럼 건물들을 뒤덮는다. 다시 이동할 시간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당장이라도 쓰러져 버리고 싶지만, 마음이 조급해진다. 병원으로 가려면 한강을 건너 북쪽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지금 계속 서쪽으로 이동 중이다. 쌍안경을 들고 북쪽을 살폈지만,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문득 와르르 쏟아지는 굉음이 들려온다. 급히 쌍안경을 들어 남쪽을 살폈다. 강변 근처, 아파트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집채만 한 콘크리트 더미가 한강변까지 굴러 떨어진다.


‘이대로는 안 된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계곡을 넘을 방법 말이다. 동진은 한강변을 살피며 쉴 새 없이 생각했다. 전날 앞길을 막았던 계곡은 운 좋게 산을 통해 넘었다. 지진으로 균열이 만들어졌지만, 산이 무너지면서 계곡을 메워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한강에는 산이 없다.


‘산이 없다면, 비교적 높은 지역은 어디인가?’


쌍안경을 들고 다시 계곡을 살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계곡줄기, 비교적 강남 쪽으로 치우쳐 있다. 어떤 계곡은 도심으로 줄기들이 뻗어나가고 있다. 대충 감이 온다. 청계산을 넘어 놀이공원을 지나와 바로 서울로 들어왔다. 그렇다면, 현재 위치는 강남구의 서쪽편일게다. 목표는 좀 더 동쪽에 있었다.


[64시간, 서울]


예상대로다. 용암 계곡이 도심으로 이어져 있다. 아니, 정확히는 섬을 통과하고 있다. 서울에 그런 곳은 단 한곳, 여의도뿐이다. 결국 다시 도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가야한다.


도심으로 진입하자, 끔찍한 열기가 느껴진다. 폐허로 변한 건물들이 이글이글 불탄다.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더미에서 용광로처럼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게다가 거리는 유독가스로 가득 찼다. 동진은 쓰고 있던 방독면 렌즈를 문질러 닦았다. 시커먼 먼지를 계속 닦는데도,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공기가 오염됐다는 의미다. 또다시 걸음을 멈췄다. 방독면이 얼마나 버텨줄지 걱정이 앞선다. 본래 방독면은 공기 오염도에 따라 수명이 결정된다. 입 부위에 장착된 정화통 필터가 유해가스나 오염물질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데, 사실 농도나 공기유량, 파괴농도에 따라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달라진다. 일정시간이 지나면 정화통을 교체해야 한다.


최대한 빨리 유해가스 지대를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쉴 시간이 없었다. 땀이 비 오듯 흐르지만, 열기로 인해 금세 옷이 말라 버린다. 이러다가 탈진해 쓰러지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으리라.



조금씩 시야가 넓어진다. 방독면을 벗어버리고 한강변을 살폈다. 한강물이 말라버려 미처 몰랐는데, 눈앞에 보이는 경사면은 섬이 분명했다. 여의도에 도착한 것이다. 한강 상류에서 굽이쳐 내려온 계곡이 여의도를 관통하고 있다.


여의도는 물이 말라버린 한강 바닥보다 지대가 높다. 계곡이 얼마나 깊을지 모르겠지만, 분명 희망은 있었다. 조심스럽게 계곡 쪽으로 다가갔다. 주위에 무너져 내린 건물 파편이 오히려 반갑게 여겨진다. 거대한 콘크리트 파편이 계곡을 메웠을 수도 있다. 내딛는 발에 힘이 솟는다.


‘됐어!’


계곡이 가까워지는데 열기가 수그러든다. 뭔가 열기를 막고 있다는 뜻이다. 황급히 계곡 끝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깊이가 50미터는 넘어 보이는 계곡 바닥, 토사와 각종 콘크리트 더미가 수북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계곡 바닥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올라오고 있는데, 열기가 만만치 않다.


동진은 입술을 깨물고 다른 쪽을 살폈다. 여의도를 벗어나자마자, 계곡에서 붉은 화염이 넘실거리고 있다. 건너려면 이곳 밖에 없었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한다. 아무리 흙더미가 계곡 바닥을 메웠지만, 열기는 어마어마하다. 몸을 보호할 것이 필요했다. 근처 건물로 다가가 부서진 잔해를 헤집었다. 그렇지만, 쓸 만한 것은 나오지 않는다. 시커멓게 타다 남은 더러운 천 따위가 굴러다니는데, 혹시 몰라 가방에 챙겼다. 바로 옆 상가건물에도 쓸 만한 것이 보인다.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는 곳에 타다 남은 옷가지들이 있다.


칼을 꺼내 찢어진 옷감을 잘라냈다. 급한 대로 지저분한 옷을 몸에 두르니 그나마 낫다. 다 헤진 신발에는 천을 감았다. 천을 말아 두툼하게 신발을 감싸니 걸음걸이가 불편해진다. 남은 천으로는 양 손과 머리를 감쌌다. 그러고 나니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준비를 끝내고 계곡으로 향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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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60 순한양
    작성일
    17.03.01 01:33
    No. 1

    아직 낮 25를 읽고 있습니다. 이게 습작인가요? 대단하십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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