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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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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6.04.16 23:31
최근연재일 :
2017.03.19 01:53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43,773
추천수 :
528
글자수 :
687,446

작성
17.03.10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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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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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다시 새벽 -111

DUMMY

환한 가로등 불빛, 지저분한 옷차림이 드러난다. 피와 땀, 온갖 것으로 얼룩진 더러운 옷. 일단 갈아입기로 했다. 근처 주택가 담을 넘어, 빨랫줄에 옷가지들을 훔쳤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무언가로 갚아줄 것이다.


덜 마른 옷을 걸쳤지만, 한결 낫다. 날씨가 춥지 않았으니까. 그래, 이제야 살만하다. 골목길을 내려오니, 지하철 역사가 보인다. 계단을 내려가니, 승강장으로 이어지는 곳은 철제 셔터가 내려가 있다. 그렇지만, 화장실은 개방됐다.



희뿌연 빛무리가 일렁이는 화장실, 거울 앞에 웬 거지가 서 있다. 물을 틀어 얼굴과 손을 닦아 냈다. 세면대에 뿌연 구정물과 핏물이 흘러내린다. 그렇게 한참을 비비자 하얀 손바닥이 모습을 드러낸다. 상처하나 없이 말끔한 손. 그 손으로 수돗물을 받아 떠먹었다. 얼마 만에 마셔보는 맑은 물인가. 시원하고 너무나 달콤하다.


화장실을 나오는데 몸이 떨린다. 게다가 머리가 어지럽고 속까지 울렁거린다. 역사 한쪽에 간이 의자가 보인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살만하다. 이번에는 눕고 싶다. 땅바닥에 머리를 대니 시원한 느낌이 든다. 점점 의식이 흐릿해진다.




세상이 웅성댄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그 사이로 누군가가 말한다.


“아저씨, 밥이나 드세요.”


감았던 눈을 떴다. 목소리의 주인공, 50대 아줌마다. 그녀는 이미 승강장 쪽으로 사라지고 있다. 몸을 일으키는데, 가슴에서 뭔가가 떨어져 내린다. 바닥을 살피니, 천 원짜리 지폐가 떨어져 있다. 아줌마 쪽으로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아직 새벽이다.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걸었다. 무턱대고 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힐끔 쳐다본다. 그들과 마주치기 싫어서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후덥지근한 날씨, 새벽이지만 덥다. 그렇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좀 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느새 아스팔트가 끝나고 돌바닥으로 된 진입로가 나온다. 성당이 보인다. 멍하니 성당 종루를 올려봤다. 그 너머로 하늘을 금색으로 물들이는 찬란한 태양빛이 있다. 어둠이 물러가고 세상이 밝아진다. 그제야 커다란 한숨이 나온다. 늘 봐왔던 태양, 오늘은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성당 진입로에 서서 한동안 햇볕을 음미했다. 눈이 부실 정도다. 성당 안으로 걸어 올라가던 아주머니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슬쩍 아주머니께 다가갔다.


“아주머니, 말씀 좀 묻겠습니다.”


아주머니가 못내 뒤를 돌아본다.


“오늘이 며칠입니까?”


“10일이에요. 8월 10일.”


“감사합니다.”


아주머니가 등을 돌려 성당으로 올라가버린다.


‘오늘이 8월 10일.’


그래,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모든 것이 변해버린 그때, 그날.




‘딸깍’


문이 열린다. 얼마 만에 돌아온 집인가. 뿌연 먼지가 내려앉아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말끔하다. 냉장고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생수병과 맥주 캔 몇 개가 보인다. 생수병을 통째로 들고 마셨다. 마음대로 먹고 마시는 것, 그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탁’


냉장고 문이 저절로 닫힌다. 생수병을 들고 물끄러미 냉장고 문을 응시했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시 냉장고 문을 열고 생수병을 넣었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역시 조용하다. 피곤이 몰려온다. 저절로 눈이 감긴다. 육체보다는 정신이 피폐해졌다. 침대로 가서 쓰러지듯 누웠다. 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잠이 밀려온다.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에 흠칫 놀라 잠에서 깼다. 부엌 쪽 탁자에서 핸드폰이 울리고 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오른 손에 무언가가 들려 있다. 꿈에서도 놓지 않은 군용 칼. 힘겹게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세.’


최 교수 목소리다. 말을 하려 했지만, 목이 메어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뭐하나? 듣고 있나?’


“예, 듣고 있습니다.”


‘식사도 못했겠구먼. 나오게. 요 앞에서 부대찌개나 먹자고.’


“바로 나가겠습니다.”



집을 나오니 어느새 컴컴해졌다. 최 교수가 담배를 피우다 말고 손을 흔든다. 장 신부님도 같이 계신다. 그 모습이 정겨워서 또 다시 목이 멘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아무 느낌도 없었던 일들이 너무도 소중하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손님들이 뉴스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여기저기서 범죄와 각종 사고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화면 속 아나운서가 말을 잇느라 바쁘다. 장 신부님이 국자로 부대찌개를 휘휘 젖다 말고 혀를 찬다.


“세상이 어쩌려고 이러는지 원.”


“그러게 말일세. 점점 각박해지고 있어.”


최 교수가 국자를 건네 달라고 손을 내밀지만, 장 신부님은 한숨만 내쉰다.


“허어, 걱정일세 그려.”


“좀 있다 보면 나아질 겁니다.”


최 교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돌아본다.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심해지고 있다네. 자네는 뉴스도 안보나?”


장 신부님이 국자를 건네며 묻는다.


“그런데 자네, 많이 피곤해 보이는군. 요즘 일이 힘든가?”


“아닙니다. 그냥, 좀······.”


“쉬엄쉬엄하게. 건강이 제일이야. 자네 나이도 이제 한창이 아닐세.”


최 교수가 커다랗게 웃으며 등을 두드린다. 무척 따뜻한 손길이다.


“아직 한창이지. 내가 자네 나이 때는 쌀 한 가마니를 지고······.”


문득 최 교수와 장 신부님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뚱한 표정을 짓는다. 어느새 눈물이 흘렀나보다. 얼른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양파를 집어 들었다.


“양파가 아주 맵네요.”


손에 들린 양파를 씹으며 눈을 찡그리니, 최 교수가 파안대소를 터트린다.


“하하하, 자네가 재롱을 다 떠는구먼.”


“교수님 재롱이라니요. 단지 양파가 매웠을 뿐입니다.”


“좋아. 오늘 왠지 기분이 좋구먼. 장 신부! 오늘 한잔 어때?”


최 교수가 술을 권하자, 장 신부님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좋지! 간만에 내가 쏘겠네.”


“저도 좋습니다. 그런데 이번은 제가 사겠습니다.”


“자네가?”


최 교수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동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하하하. 그럼 오랜만에 동진이가 사는 술 한 잔 얻어먹어 볼까!”


작은 식당이 한동안 시끄럽다.



[8월 11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한국대학교, 의과대학병원, 정신과]


박시연이 환한 미소를 짓는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주 미소 짓게 만드는 친근한 웃음이다.


“웃으니까 보기 좋아요.”


차트를 읽던 박시연이 빙긋이 웃는다. 애써 그녀의 시선을 회피했다.


“약은 꼬박꼬박 챙겨 드시죠?”


“글쎄요.”


“잉? 무슨 대답이 그래요. 약 끊으시면 안 된다고 그렇게 당부 드렸는데.”


박시연이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다. 동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꼬박꼬박 챙겨먹겠습니다.”


“그럼 약속!”


그녀가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어쩔 수 없이 마주 새끼손가락을 걸어주었다.


“그럼 약속하신 거예요. 절대 빼먹지 않기로요.”


“알겠습니다.”


“건강하시구요. 약 잘 챙겨 드시고, 힘드시면 내일이라도 또 오세요.”


“감사합니다.”


동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다 슬쩍 박시연 쪽을 돌아봤다. 차트에 열심히 뭔가 기록 중이다. 조용히 문손잡이를 돌려 밖으로 빠져나왔다.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지하식당으로 내려갔는데, 사람들로 발 딛을 틈이 없다. 설렁탕을 시켜 구석 자리로 가 앉았다. 맹숭맹숭한 국물, 넌지시 소금 병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먹으면 몸에 안 좋아요.’


그녀의 목소리다. 흠칫 소금 병을 내려놓았다. 급히 주위를 살폈지만, 찾을 수가 없다. 그녀는 여기 없었다. 멍하니 소금 병을 내려다보는데, 검은 뭔가가 힐끗 지나친다. 고개를 돌리니, 60대 아저씨 가슴 부위에 검은 연기가 덩어리져 있다. 연기가 휘몰아칠 때마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가슴을 부여잡는다. 그런 사람들이 몇몇 더 있다. 그들 모두를 도울 수는 없다. 그렇지만, 꼭 돕고 싶은 사람도 있다.



병실 복도를 걸었다. 목발을 짚은 사람들, 휠체어에 탄 환자들이 대기실에 앉아 있다. 그 사이로 간호사들이 바쁘게 뛰어다닌다. 응급환자라도 생긴 모양이다. 병원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그들 중 아픈 사람도 있고, 건강한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머리, 어떤 사람은 가슴이나 팔에 검은 연기를 머금었다.


문득 병실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명패는 4개지만 다른 2개는 비어있다.


‘김주현’


병실을 지나쳐가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뒤돌아서 병실 문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병실 내부, 창가 쪽 침상에 환자복을 입은 아저씨가 누워계신다. 주무시는지 움직임이 없다. 반면, 문 쪽 침상에는 한 소년이 누워있다. 10살 쯤 됐을까? 침대 맡 걸려있는 차트에 ‘김주현’이란 이름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소년, 그 옆 의자에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 주무신다. 헝클어진 머리를 침대에 대고 곤히 잠드셨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 지쳐서 쓰러져버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소년 때문일 게다.


소년의 가슴에 응어리진 검은 기운이 크게 일렁인다. 그 기운은 곧 폭발이라도 할 듯 벌컥거렸다. 그때마다 소년의 미간이 잔뜩 좁혀진다. 고통을 참느라 말라버린 입술이 부르텄다. 조심스럽게 소년 옆에 가서 섰다. 조용히 손을 잡아주니, 소년이 눈을 뜬다.


“청이 누나에요?”


눈동자가 초점을 잃었다. 눈을 떴지만, 소년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었다.


“아니, 누나 친구란다.”


“누나가······. 누나가 밥 잘 먹고 엄마 말 잘 들으면 다시 건강해 질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계속 아파요. 너무 아파서······.”


소년의 작은 손을 힘주어 잡아주었다.


“주현이는 축구 잘하니?”


언 듯 찌푸려진 소년의 얼굴에 미소가 스친다.


“잘 못해요. 아니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구경하는 걸 더 좋아해요. 형은 축구 잘하세요?”


“그래, 아주 잘하지.”


소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그럼 누나랑 우리 셋이 축구해요. 다시 건강해지면, 그러면, 그때······.”


소년이 눈을 감는다. 가슴이 크게 일렁이지만, 숨소리가 점점 격해진다. 천천히 오른 손을 주머니로 집어넣었다. 칼끝에 손바닥이 살짝 찔려 따끔하다. 그렇지만, 아프지는 않다. 오른 손을 소년의 가슴 쪽으로 가져다 댔다. 붉은 피 한 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저희들 중, 가장 버림받은 영혼부터 돌보소서.’


순간 가슴에 응어리졌던 검은 기운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식은땀을 흘리던 녀석의 얼굴도 점점 차분해진다. 동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 문 쪽으로 다가갔다. 쌔근쌔근 숨소리가 조용히 안정되어간다.


‘그래, 이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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