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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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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6.04.16 23:31
최근연재일 :
2017.03.19 01:53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43,835
추천수 :
528
글자수 :
687,446

작성
17.02.16 22:43
조회
338
추천
2
글자
11쪽

밤 -100

DUMMY

시내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1호선 철도는 다른 교통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고가철도로 세워졌다. 고가철도의 높이는 항상 일정하지는 않았지만 지상에서 20미터 높이로 건설돼 있다. 덕분에 철로 옆으로 늘어선 낮은 건물은 옥상이 환히 내려다보인다. 고가철도를 감싸고 있는 푸른색 방음벽은 군데군데 박살이 나 있거나,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터덜터덜 고가철도를 걷고 있으니, 괜스레 기분이 묘해진다. 평소라면 기차를 타고 지났을 길인데, 직접 걸으니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문득 지갑을 꺼내 청이의 사진을 찾았다. 갑자기 새삼스러운 생각도 든다. 그녀는 어떤 여자일까? 사실 알고 지낸지는 얼마 안 된다. 무슨 애인사이도 아니었고, 서로 호감을 가졌던 상대도 아니다. 그녀와 어떻게 가까워졌을까? 많은 일이 있었지만, 단편적인 기억밖에 없다.



북쪽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동진은 걸음을 멈추고 급히 자세를 낮췄다. 바람 안에 썩은 냄새가 섞여 있다. 고개를 돌려 살피니, 고가철도 오른쪽은 큰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반대편이 문제였는데, 드넓은 논이 펼쳐져 있고 그 위로 뭔가가 새카맣게 내려앉아 있다. 가방에서 군용 쌍안경을 꺼내 논 쪽을 살폈다. 절로 신음성이 나온다.


이쪽저쪽으로 푸득푸득 날아오르는 검은 생물들, 메뚜기 때였다. 그런데 보통 메뚜기가 아니다. 몸길이가 60센티는 넘어보였는데, 비둘기보다 몇 배는 크다. 그런 녀석들이 수천, 아니 수만 마리가 모여 논에서 뭔가를 주어먹고 있다. 검은 뭔가가 파닥거리는데, 전날 봤던 거머리로 여겨진다.



숨을 고르며 다시 철길 앞 쪽을 살폈다. 약 200미터 전방에 멈춰선 전동차가 보인다. 총 석대가 방치되어 있는데, 그 앞에 역사가 있는 것 같다. 문제는 100미터 전방에서부터 고속철도가 지상철도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시체를 만난다면 당장 피할 길이 없어 불안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려면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소리만 내지 않으면 된다.’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철길을 걸어갔다.


‘크르륵!’


난데없이 목울대를 비집는 괴성이 들려온다.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뒤를 돌아봤다. 아무것도 없다. 앞 쪽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소리가 들려온 곳은 고가철도 아래뿐이다. 천천히 철도 가장자리로 다가가 밑을 내려다봤다. 10미터 아래로 보이는 광경, 깊은 한숨이 나온다.


커다란 광장 안, 그 안에 세워진 붉은 천막들. 첫눈에는 흰색일 것으로 여겨졌는데,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천막이 둘러 쳐진 곳, 그 너머로 10층은 넘어 보이는 병원 건물이 서 있다. 건물 벽면에는 ‘질서 유지, 위생 철저’라 쓰인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다. 그리고 그 아래 수백, 아니 수천도 넘어 보이는 시체들이 쓰러져 있다.



조심스럽게 숨을 고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장 안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의 상태는 차마 눈뜨고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하다. 천막 주변에 나자빠진 시체들, 사지가 멀쩡한 시체를 찾기 힘들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천막 옆에 ‘121호 대피소’란 글자가 선명하다. 그리고 그 옆. 재빨리 등에 매고 있던 소총을 겨눴다.


“주위를 봐. 아직도 모르겠어?”


흰옷을 입은 소녀, 눈동자가 온통 검었는데 흡사 마네킹을 보는 것처럼 생기가 없다.


‘한수련.’


아니, 한수련이 아니다. 그녀를 가장한 무언 가다. 한수련이 이곳에 있을 리 없다.


“다 죽었어.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말이야.”


소녀가 실룩 인상을 일그러뜨린다.


“아참! 청이라고 했던가?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려줄까? 궁금하지 않아?”


소녀의 물음에 동진은 이를 악물었다.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을 주려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여기서 총을 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안 봐도 뻔했다. 소녀의 얼굴에 차가운 웃음이 맺힌다. 실제로 웃은 것이 아니라, 소녀의 감정이 그대로 전달된다.


“그리로 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네가 하루도 빠짐없이 외웠던 사도신경. 정말 그렇게 된 것 같지 않아?”


소녀가 양 팔을 벌리고 주위를 가리킨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혹하고 비참하게 죽어 있다.


“불신과 부정으로 가득한 네 모습을 봐.”


시체들이 꾸물꾸물 몸을 일으킨다. 곳곳에서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동진은 곁눈질로 곧게 뻗어 있는 철로를 응시했다. 멈춰선 전동차까지의 거리는 약 200미터. 고가철로에서 지상철로로 바뀌는 구간은 100미터 앞이다. 지상철로에서 전동차까지, 100미터 거리를 달려 시체들을 따돌릴 수 있을까? 그런데 전동차까지 간다 해도 뭘 어쩐단 말인가? 시체들은 영원히 뒤를 따를 것이다.


이미 시체들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고가철로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신은 너를 버렸다. 아니, 너희 모두를 버렸어. 그런데 아직 신을 믿나? 허울 좋은 허깨비에 불과한 존재를?”


소녀가 말을 이으며 손을 내민다.


“내 손을 잡아. 애초부터 신 따위는 안 믿었잖아. 그걸 증명할 기회를 줄게.”


“하나만 묻지.”


소총을 겨눈 채, 살짝 고개를 돌려 논 위 메뚜기 때를 쏘아봤다.


“너희에게도 죽음이라는 것이 있나?”


“죽음? 그런 건 피조물 따위에게나 존재하는 거야.”


소총 방아쇠에 손바닥 피를 묻혔다.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며, 스스로 있는 자들이다. 너희와······.”


‘탕!’


말을 잇던 소녀의 고개가 뒤로 확 젖혀진다. 총탄이 그녀의 이마를 관통하고 지나친 것이다.


‘크아악!’


소녀가 괴성을 질러댄다. 그녀의 이마에서 시뻘건 불이 뿜어져 나온다. 동진은 소총을 거두고 부리나케 달리기 시작했다. 급히 고개를 돌려 논 쪽을 바라보니, 검은 메뚜기 때가 날개를 펴고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다. 수백 대의 선풍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세상이 바람소리로 가득 찬다.


‘크아아!’


동시에 시체들도 뛰기 시작한다. 높다란 고가철로 기둥을 붙잡고 위로 올라오려 애쓰는 녀석도 있다. 뛰는 와중에 자기들끼리 부딪치고 넘어지기도 한다. 수천에 달하는 시체들이 괴성을 질러대자, 마치 콘서트 장에 온 것처럼 귀가 멍멍하다. 동진은 호흡을 조절하며 지상철로를 내려다봤다. 점점 철로의 높이가 낮아지고 있다. 어떤 시체들은 벌써 어른 턱 높이까지 낮아진 철도위로 기어 올라오고 있다.


전동차까지의 거리는 대략 100미터, 이제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 할 시간이다. 등에 맨 총과 가방이 거칠게 흔들린다. 가방 안에 든 통조림이 이리저리 부딪치며 쇳소리를 낸다. 그렇지만, 멈출 수 없다. 멈추는 순간 그 자리에서 산채로 찢겨죽을 것이다.



수백구의 시체들, 달려오는 속도가 짐승을 방불케 할 만큼 빠르다. 팔과 다리가 없는 시체들은 기어서라도 왔다. 세상을 가득 메우는 시체들의 울부짖음, 그렇지만 곧 날갯짓 소리에 묻혀버린다. 고개를 돌려 살필 새가 없다. 까딱 잘못하다가 철도침목에 걸려 넘어지면 끝이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식은땀으로 바지가 젖어 허벅지를 움직이기 힘들다. 무릎이 찢어질 듯 아파왔지만, 이를 악물고 달려야했다.


‘크아악!’


뒤따라오던 일부 시체들이 땅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메뚜기 때들이 시체들을 덮친 모양이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기는 소음, ‘붕’하는 날갯짓 소리가 들리면 핏물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동진은 있는 힘껏 내달리며 전동차하나를 쏘아봤다. 뒷문이 열려 있는 가운데 차량이 목표다. 선풍이가 돌아가는 굉음과 함께 뒤통수에서 뭔가 쇄도하는 소음이 들린다. 본능적으로 뛰던 자세 그대로 몸을 웅크리니, ‘찌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가방이 찢겨 나간다. 그 충격에 땅바닥을 몇 바퀴 나뒹굴었다. 가방에서 떨어진 통조림이 철로 위를 나뒹굴지만, 주워들 새가 없다. 크기가 1미터나 되는 메뚜기가 곁을 스쳐 지나간다.


벌떡 일어나 다시 달렸다. 이미 하늘은 메뚜기 때로 새카맣게 변해 있다.


‘조금만 더!’


뒷문이 열려 있는 전동차까지는 3미터, 이를 악물고 문을 향해 점프를 시도했다. 메뚜기 몇 마리가 땅을 헤집고 지나친다. 그 모습이 마치 물고기를 낚아채는 갈매기를 연상케 한다. 전동차 내부로 몸을 날린 후 엎드린 상태에서 재빨리 몸을 뒤집었다. 시체 한구가 막 내부로 들어서고 있다.


문득 날갯짓 소리와 함께 시체의 머리를 뭔가가 부여잡는다. 대롱처럼 길고 날카로운 한 쌍의 발톱. 메뚜기는 바동거리는 시체의 머리에 한 쌍의 크고 튼튼한 턱을 박아 넣는다. 비명소리도 없이 시체의 머리가 순식간에 잘려나간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동차 내부를 달렸다. 메뚜기가 시체를 집어던지고, 전동차 안으로 기어온다.



‘쿵’하는 굉음에 뒤를 돌아봤다. 점프를 시도한 메뚜기가 전동차 천정에 머리를 부딪친 듯 바닥에 나자빠져 있다. 그 뒤로 시체들이 전동차 내부로 들어오고 있다. 도무지 포기를 모르는 녀석들이다. 욕지기를 내뱉으며 다음 칸으로 이동해 전동차 문을 세게 밀어 닫았다. 시체 한구가 괴성을 지르며 쫒아와 주먹으로 문을 두드린다. 마치 문에 대고 살려달라며 비명을 질러대는 것만 같다.


‘크아악!’


시체에게 메뚜기가 달려든다. 강한 턱으로 시체의 팔을 물자, 손목이 잘려나간다. 다른 메뚜기가 턱을 벌리고 달려들어 시체의 머리를 산 채로 씹어버린다. ‘와장창’하는 굉음과 함께 앞쪽 유리가 박살이 난다. 반쯤 열려 있던 전동차 창문으로 메뚜기가 돌진한 것이다. 크기가 1미터도 넘는 메뚜기가 바들바들 떨며 객실 바닥에 누워 있다.


“이런 젠장!”


동진은 달려가던 자세 그대로 메뚜기의 머리를 차 버렸다. 퍽하고 누런 체액이 얼굴까지 튀어 오른다. 메뚜기가 한쪽 구석에 처박히자, 급히 다음 칸 문을 열었다. 내부에 옷가지며 온갖 쓰레기들이 가득 차있다. 거칠게 문을 밀어 닫으니 ‘쾅’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덜컥 흔들린다.


숨을 몰아쉬며 다급히 소총을 움켜잡았다. 객실 창문 너머로 새카맣게 날아다니는 메뚜기 때가 보인다. 발톱이 유리를 ‘지익’ 긁고 지나갈 때마다 금이 쩍쩍 간다. 천정에서는 메뚜기들이 쿵쾅거리며 철판을 때려댄다.


“빌어먹을 놈들.”


시간이 얼마 없다. 곧 객실 안으로 메뚜기 때가 들이닥칠 것이다. 동진은 가방 안에 넣어둔 일회용 라이터와 방독면을 꺼냈다. 동시에 옷가지들을 움켜쥐고, 전동차 의자 위에 쌓았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자, 금세 옷이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전동차 의자는 불에 잘 타지 않는 재질이지만, 옷에서는 유독가스가 피어오른다. 급히 방독면을 쓰고 뒤로 물러나니, 불이 쓰레기 전체로 번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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