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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부장
작품등록일 :
2017.12.16 21:04
최근연재일 :
2020.07.12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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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08,729

작성
17.12.1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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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유혹

DUMMY

- 탕! 탕! 탕!


총성이 울릴 때마다 40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표적 부근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맨눈으로는 어릿어릿할 거리지만 총열 위에 붙은 4배율 조준경 안에서는 나쁘지 않게 흙먼지가 비친다.


“좌상탄이 발생했습니다. 어깨견착을 주의하십시오.”


“아, 네!”


황연호가 경복궁 호위부대 소속인 유민지 중위의 도움을 받아 사격자세를 잡고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이곳은 경복궁 후원에 있는 사격훈련장인데, 이 나라 조선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가 사격이란다. 이유는 ‘활보다 총이 싸니까’. 유학적 전통에 따라 선비의 심신을 단련하는 공부로 추천되는 게 궁술인데, 활이란 게 워낙 비싸다보니 그게 사격으로 넘어간 것이다.

아울러 남녀평등법이 제정된 뒤로도 끈질기게 살아있는 남녀유별한 관점에서는 여자가 활을 잡는 게 이상하다는 감각도 남아있는지라, 여자들 살림인 경복궁에서는 궁시장을 치우고 최대 거리를 이용해 사격장을 만들었다.


아직 군대에 안 들어갔던 황연호는 총을 쏴볼 수 있다는 이야기에 회가 동했고, 피나고 알배기고 이갈리는 시간때우기 과정이 없었기에 사격에 대해 반감을 갖는 일도 없이 플라스틱 개머리판을 가진 긴 총에 손을 대었다. 조선군 제식소총인 미합중국제 M16A4 라이플로 조선군은 전군에 4배율 스코프를 보급하는 등 대놓고 장거리용으로 운용중이다.


지아 누나랑 처음 만났을 때 권총 소리(공포탄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이진은 탄창 두번째부터 실탄이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에 기겁했었건만, 매일같이 총을 잡는 사이에 총소리가 익숙해진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고무패드 달린 개머리판이 어깨를 강하게 두들기고 몸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 총 안에서 묵직한 노리쇠가 왕복하는 감촉, 거칠게 튀어나오는 탄피의 열기, 후끈하게 풍기는 매운 화약냄새. 그 모두가 영화 속의 총격전이나 BB건으로는 느낄 수 없는 매혹적인 것이었다. 다만 명중율은 매우 좋지 않다.


“아무래도 사격실력 이전에 심부 근육부터 단련해야 할 것 같구나.”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진은 엎드려쏴 자세인데도 제대로 반동을 지탱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렇게 평가했다. 총을 방아쇠만 당기면 되는 줄 아는 사람이 많고 실제로도 그렇긴 하지만, 제대로 ‘사격’을 하기 위해서는 심, 기, 체는 물론 물(物), 즉 총기까지도 일체화시키는 깊은 수련이 필요하다. 그 깐깐한 유학자들이 선비의 심신을 단련하는 공부인 궁시를 사격으로 바꾸는 데 그다지 반발하지 않았던 것에는 제법 그럴싸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헤헤, 역시 그래요?”


엎드려 있던 연호는 스스로도 느끼고 있는 사실을 지적해주는 지아 누나의 엄한 목소리에 민망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도 그렇지만 사실, 다리를 쩍 벌리는 엎드려쏴 자세를 지아 누나가 뒤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에 도저히 집중을 못 하는 와중이기는 했다. 슬그머니 다리를 모으며 그녀를 올려다보려 하자, 자연히 소총이 몸을 따라 방향을 돌리려다가 자신을 묶고 있는 쇠사슬에 걸려 절그럭거리며 멎는다. 군 사격장이었으면 걷어찼어. 라고, 조교 역할이었던 별기군 호위대 장교 유민지 중위는 생각했다.


“생각 있으면 나하고 아침 훈련부터 할래? 군 사격훈련과정을 밟으면 한 달 안에 특등사수로 만들어 줄 수 있는데.”


이진의 말은 정말이었다. 사격 전문가들은 권총이 사격전에 안 맞느니 소총은 난사하는 물건이니 하기 전에 1만발쯤 쏘고 이야기하자고 하는데, 뒤집어 말하면 하루에 300발 여덟시간씩 30일로 어지간한 특등사수를 만들 수 있다. 덕분에 조선군의 교탄 소모량은 정작 전쟁도 안하는 주제에 영원히 국공내전중인 중원을 뛰어넘어 미합중국에 맞먹는다. 그리고 황연호는 아침 훈련이라는 말에 며칠 전 잠이 일찍 깨어 아침 산책을 나왔다가 본, 옅은 안개 속에서 국방색 반바지에 탱크탑 차림으로 내원을 달리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일단 가슴 위쪽과 복근을 몽땅 드러낸 노출도가 겁나 쩔어줬다.


땀에 젖고 발갛게 상기된 피부가 겁나 쩔어줬다.


할딱거리는 가쁜 호흡이 겁나 쩔어줬다.


거기다가 그런 그녀에게서 풍기는 향기가 겁나 쩔어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하프 브래지어를 내장한 탱크탑이었기에 아래쪽에서만 받쳐지고 위로 출렁이는 무언가가...


(잠시 만주의 아름다운 초원을 바라보며 진정해주세요. 클라라가 섰다!)


덕분에 성욕과다한 시기 한복판인 소년은, 그를 알아보고 잠시 멈춰 제자리뛰기를 하며 - 출렁였다 - 같이 달리지 않겠느냐고 권하는 누나의 제의를 거절해야만 했다.


ㅡ그녀의 중얼거림은 듣지 못했다. “안 통하잖아...”


“에헤, 그, 좀, 아니요...”


엎드려쏴 자세가 심히 불편해진 소년이 머뭇거리며 이번에도 제의를 거절한다. 엉거주춤하니 일어나 이상한 태도로 인사를 하고는 상당히 어색한 걸음으로 부리나케 떠나간다. 뒤쪽에서 내려다보는 옹주도 곁에서 대기하던 궁녀도 쉽사리 알 수 있는 태도였다.

그런데 거부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육백 년을 이어져 내려온 전주 이씨의 내인들은 다시 한 번 고민한다.


두 번째 개문사가 될 수 있는 존재, 게다가 남자. 지금껏 모든 개문 능력자는 여자였다. 거의 모두가 전주 이씨의 여자였고, 극히 드물게 외부에서 나타나는 능력자들은 전주 이씨의 여자가 되거나, 곧 사라졌다.

그랬기에 황연호가 개문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이진을 포함하여 전주 이씨의 내인들이 공통적으로 떠올린 것은 바로 그것이었으니, 국력이 조선의 세 배 이상이라는 저 강대하고 위험한 대한민국은 둘째 문제였다. 개문 능력자 사이에서 아이를 얻는다면?


“나... 매력이 없나...?”


월하옹주 이진. 현존하는 조선 유일의 개문사.


옹주는 한때 임금의 후궁이 낳은 딸에게 주어지던 봉작이었으나, 그녀는 조금 다르다. 이진은 전주 이씨의 내인에 속하기는 하되 상당히 먼 핏줄이었다. 그런데 개문의 힘을 각성하면서 옹주로 봉작된 것이다. 여기에 저하라는 존칭까지 허용되었으니 이는 황실에서 그녀를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를 알려줌과 함께, 현대의 조선이 처해 있는 과격한 변혁의 한 단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작 그녀 본인은 고루하다고 비난받는 전통주의자들 중에서도 꽤나 심하게 완고한 타입이었다. 스스로의 삶의 목적을 확정한 이는 남녀를 불문하고 그것에 집착하는 법이다.


다감한 시기에 일반인을 뛰어넘는 힘을 손에 넣고, 황실의 일원이 되어 낳은 부모로부터도 윗사람 취급당하며, 동시에 공경하는 황실의 명을 받잡아 가장 잔혹한 행위를 하고, 그에 걸맞은 고귀한 대우를 받는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지금껏 그녀가 저질러 온 행위가 모두 악이었다는 것. 악을 행함으로서 우대받고 있었다는 것.


그렇기에 그녀의 본능이 그 사실을 거부하고 있다. 이진에게 있어 개문 능력은 조선을 위해 존재해야만 했다. 백성들을 위함이라는 사실만이 그녀를 지탱하는 깊은 뿌리 그 자체였으니... 그녀는 조선의 백성들을 위해 능력을 사용해 왔고, 그 능력을 물려주기 위해 언젠가 웃어른들이 정해주는 남자와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남자가 한 명이 아닐 수도 있다는, 유학의 나라 조선에서는 무시무시한 사실마저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남자를 유혹하거나 연애를 한다거나 하는 기능은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반대로 남자 개문사, 그야말로 ‘하늘이 점지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배필이 이토록 자신을 거부하는 것에, 오래 전에 포기했었던 소녀의 마음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저하는 아름다우십니다.”


곁에 대기하던 궁녀가 응답한다. 성은 한, 이름은 시영. 스물 두 살. 날카로운 단발에 책을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쓰고 있는 가느다란 무테 안경이 세련된 여성이다. 이진과 마찬가지로 전주 이씨의 멀고 먼 방계 여성이지만, 개문의 재능은 없음이 확인되었기에 이진의 궁녀로 자리잡고 있다. 이진과 나이도 비슷하고 입궐한 시기도 같아, 지위가 다름에도 가까운 사이였다.


“나도 가끔 거울 보면서 이 정도면 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싫어하잖아. 대체 뭐가 부족한 걸까?”


이런 때는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겠지만 그녀의 주변에 있는 남자 어른들은 하나같이 재미없고 고루한 정치가들이다. 다들 첩은 한둘씩 두고 있지만.

그녀의 직속부대인 별기군의 군인들은 남녀 불문하고 하나같이 뇌가 충성심으로 편향된 인재들이다. 애초에 그런 사람들만 뽑아서 모아놨다.

남자 금제의 비처인 경복궁에 그런 쪽의 전문가를 불러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황연호라는 소년의 존재가 극비사항이다.


덕분에 글로 연애를 배운 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애소설과는 전혀 반응이 다른 소년의 대응에 고민하는 것이 경복궁의 나날이었으니...


물론 남자가 여자를 거부한다는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현상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아직 그녀는 그것을 모른다.


그리고 한숨쉬는 이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시영 궁녀는 낼름, 혀로 입술을 핥았다. 얇고 붉은 혀가 음란하게 허공을 흝는다.


“아름다우시고 말고요...”


과일향과 벌꿀을 섞어 만든 입술연지가 혀끝에 달았다. 남녀가 평등하고 지위가 무관하다는 사상이 나름대로 퍼져가고 있는 이 현대 조선에서 자신도 몰랐던 혈통 때문에 유학 중이던 스탠포드대 경제학 석사 과정에서 강제로 자퇴‘당’하고 경복궁에 하녀로서 가두어진 여자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뱀처럼 혀를 날름거렸다.


참고로 사격조교였으면서 뒷정리까지 해야 하는 최말단 유민지 중위는 전주 이씨와는 아무런 혈연도 없다.


***


“고향에 장래를 약속한 규수라도 있다고 하니?”


“아직 그것까지 묻지는 못하였습니다.”


별기군 이강훈 소장과 마주앉은 이진은 그의 질문에 조심스레 대답했다. 비교적 온후한 성품인지라 궁에 입궐한 이진을 마치 아버지처럼 잘 보살펴 주었기도 한 사람으로, 딱히 뛰어난 점은 없지만 책임감이 있고 포용력이 큰 남자인지라 어디에도 가둘 수 없고 무엇으로도 묶을 수 없는 개문사를 다뤄야 하는 별기군의 장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은 이였다.


그리고 이 인선은 성공했다. 이진은 그를 존경한다.


“네가 경복궁에 온지도 벌써 십 년이 되어가는구나. 그때는 참 귀여운 아이였는데.”


입궐이 정해진 그 날, 친부모가 보인 모습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진은 친부모로부터 큰절을 받았다. 어린 마음에도 무언가 부모와의 끈이 끊어진 듯한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이진을 보듬어준 것이 그녀의 아버지보다도 연상인 이강훈 소장이었다.


“부끄럽습니다...”


이강훈 소장 역시 전주 이씨의 일원이며, 전통과 기록에 따른 복잡한 수셈 끝에 황연호가 오기 전까지는 이진과 후사를 만들 자격이 있는 후보 중 하나였다. 다행히도 페도필리아가 아니었던 이강훈 소장은 그러한 기미를 흘려보이지조차 않았지만 교육 과정 중 이야기를 들은 열여섯의 이진은 얼굴을 붉혔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네 나이 스물, 이제 후사를 생각하여야 할 때로구나.”


실로 그렇다. 이 나라 조선을 지탱하는 개문사가 자기 한 명 뿐이어서야 실로 위험하기 그지없다. 얼마 전 ‘세계에서 가장 석유가 많은’데다 백성에 대한 복지가 조선을 압도할 정도였던 나라인 베네수엘라가 유가하락 한번에 멸망해 버린 것처럼, 그녀가 없어지기라도 하면 조선의 앞날은 어둠 속에 갇히게 될 것이다.


...이진은 그 어둠 속에서 촛불을 밝힌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생각했다.


“몇 년만 일렀다면 시간을 들여 황 군의 마음을 살폈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구나. 근시일 안에 그의 정을 받지 못한다면 정해둔 바대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믿음직한 어른의 목소리는 촛불이 밝혀지지 않은 어둠 너머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그것은 여자의 장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닌, 가문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조차 아닌, 조선이라는 나라를 위한 ‘도구’를 만들려는 축산업자의 태도였다.


보다 좋은 품종의 가축을 만들기 위해 조심스레 더듬어 찾아가는 과정.


목동은 양을 사랑한다. 그러나 양을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잉태하는 것은 실로 육백 년에 한 번 하늘이 내린 기회일 것입니다. 허락하신 동안 군의 정을 얻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스스로 죽어 먹히는 것을 원하는 가축이라면, 도덕적인 문제는 없어지는 것일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이진이 그와의 아이를 얻고 싶어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조선의 옹주이자 별기군 중령으로서 조선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곳마다 문을 열어 공간을 연결해 온 월하옹주 이진이 선택한 방식은-


...

..

.


“내가 밉니?”


“무슨 소리에요!?”


정면돌파였다.




* 이 소설에 등장하는 국가를 비롯한 조직 또는 인명, 사건 등은 모두 상상에 기반한 것이며, 현실에 유사한 사례가 존재한다면 이는 모두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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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혹 17.12.19 583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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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제국과 대한민국 17.12.17 1,055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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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 +1 17.12.16 2,882 1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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