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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님의 서재입니다.

망겜의 베이비시터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박지훈
작품등록일 :
2022.03.09 22:30
최근연재일 :
2022.05.02 23:53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7,888
추천수 :
218
글자수 :
113,683

작성
22.03.14 18:20
조회
481
추천
12
글자
9쪽

#005 가오가 있지

DUMMY

방으로 돌아온 나는 조용히 문을 잠그고 태고의 지혜를 켰다.


차수연의 의사는 최대한 존중하되, 오빠로서 최대한 도움을 주고 싶다.


그들이 뭘 할 건지 미리 알아내는 것도 그 방법의 하나였다.


원래 그런 건 직접 묻는 거 아니면 모른다. 하지만 태고의 지혜가 있으면 알아낼 수 있다.


두 손을 태고의 지혜 안에 넣어서 넓게 확장하듯 펼친다.


그러면 작은 구 정도의 크기였던 태고의 지혜가 내 상체만큼 커진다. 더욱 선명히 보이는 내용물들. 마치 뇌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태고의 지혜가 활성화됐다.


여기서 이름을 말하면.


“각성자 차수연.”


태고의 지혜가 반응한다.


[각성자 차수연]


[닉네임 우리오빠는천사. 레벨 15. 직업은 전사이며 주로 검과 방패를 다룸. 플레이타임은 10시간으로 적고······]


이제 그때 보았던 파티원들을 불러본다. 성진수, 김철민, 강도현, 김한나.


개개인의 정보가 연이어 떠오른다. 동명이인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 것도 다 기억에 기반해서 걸러주니까. 괜히 편리한 길잡이가 아니다.


개중 유독 김한나가 눈에 밟힌다. 빚도 빚이지만 각성자를 상대로 사기를 친 적이 또 있다니.


그뿐만 아니라 성진수, 김철민, 강도현 이 셋은 전과가 화려했다.


각성자가 된 이후, 안 해본 게 없더라. 살인은 물론이고, 약탈도 서슴지 않았다.


입막음도 철저히 했는지, 용케도 소문이 안 났다. 용의주도한 녀석들이다.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데.


눈빛이 낮게 착 가라앉는다.


“이들이 차수연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하나?”


[그간의 행적을 봤을 때, 유사한 행적을 이어가리라 짐작됨. 내구도를 속인 비싼 아이템을 빌려주고, 아이템이 박살 나면 차수연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 예상.]


내 예상도 비슷했다.


얼굴에 드리운 수심이 한층 깊어진다.


물론 태고의 지혜가 매번 정확한 미래를 예지하진 않는다.


얘도 틀리는 게 하나, 둘 정도는 있다.


그래서 조언은 참고하되 판단은 내가 하는 편이다.


팔짱을 끼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역시 때를 봐서 모조리 손절을 하는 편이 낫겠다.


차수연의 친구, 김한나도 예외는 아니다.


친한 친구라 생각했다면 차수연에게까지 검은 마수를 뻗지 않았을 테니까. 애초에 빚 때문에 누군가를 팔아넘긴다는 것도 좀 그렇다.


내가 나서서 차수연과 연을 끊도록 해야 한다. 먹고 떨어져, 라는 식으로.


빚을 갚아줄 생각은 없다.


협박도 되도록 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글렀다고 해도, 어린아이다.


“김한나가 차수연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


[김한나가 소속된 사냥개 길드를 박살 내야 함. 이후를 위해서도 좋을 것.]


내 생각도 같았다. 태고의 지혜를 종종 쓰다 보니, 자연스레 같은 방향성을 추구하게 되더라.


손해 보지 않고 이익을 거두는 방향성. 나를 랭킹 1위로 만들어준 능력이었다.


그리고 길드를 박살 내려면 전체 구성원을 이 잡듯이 팰 게 아니라, 제일 중요한 중추의 핵을 노려야 했다.


핵이 파괴되면 길드원들의 사기는 자연히 저하된다. 더티워리어스도 비슷한 선례를 밟았다.


“사냥개 길드 본진, 그리고 길드 마스터.”


[······]


위치는 대강 알았다.


둘 다 읽고 천천히 눈을 슴벅인다.


내일은 꽤 바쁘고 피곤한 하루가 될 것 같다.


사냥개 길드 마스터, 생각보다 훨씬 거물이더라.


[닉네임 박창산, 실제 이름은 박한열. 레벨 150. 3차 전직이 완료된 상태. 직업은 수라나찰. 위압, 불요불굴의 신체, 백발의 검귀 등 총 3개의 특성 보유 중. ······]


그러고 보니 친한 사람이네. 아주 안 좋은 쪽으로 친한 사람.


박창산, 한때 랭킹 2위 길드였던 더티워리어스의 최정예이자, 무한의 전장에서 연합군들을 휩쓸며 잠시나마 적군 측에 여명의 빛을 드리웠던 남자.


내가 무너뜨린 길드의 최측근이 여기 있었다니.


문득 소리 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세상 참 좁다.


던전에서의 일은 전부 김유리에게 일임해야겠다. 나는 지켜보다가 적절한 때에 나서기로 하고.


* * *


오늘은 신경 써서 아침을 만들었다. 차수연이 좋아하는 닭도리탕, 김치전, 김치찌개. 멸치볶음 등 기본 반찬들.


가볍게 아침 운동을 하고 씻고 나온 차수연이 엄청 좋아하더라.


차수연은 눈을 지그시 감고 두 손을 합장한다. 올라간 입꼬리 위로 미소가 흘러넘친다.


“잘 먹겠습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로 진공청소기처럼 흡입. 엄청 복스럽게 먹어댄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둘 다 밥을 다 먹었을 때.


차수연은 포만감 가득한 표정으로 배를 매만지고 있다. 그녀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수연아.”


“응?”


“어제 무슨 일이 있었어?”


뭘 했는지 대충은 알고 있다.


그래도 차수연의 입에서 뭘 했는지 직접 듣고 싶다. 차수연은 가만히 눈을 굴린다.


“음······.”


“말하기 싫으면 안 말해도 돼. 나는 애가 반쯤 죽어서 오길래···혹시 네가 전에 말했던 그거야?”


“응. 그냥 던전에 같이 갈 사람들이랑 가볍게 테스트 좀 봤어. 근데 나 분명 손목도 엄청 부었거든. 오늘 보니 씻은 듯이 싹 다 나았더라. 각성자라는 거, 진짜 대박인 것 같아.”


차수연은 완전 신이 난 얼굴이다.


‘그거 내가 한 건데.’


“아 진짜? 대박이네.”


그래도 부드럽게 웃으며 맞장구를 쳐준다. 물론 각성자는 일반인보다 회복 속도가 빠르다. 괜히 사람들이 초인이라 부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어제의 그녀는 하루 만에 나을 수 있는 부상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손목 부을 정도면, 좀 심하게 한 거 아냐?”


“좀 심하긴 했는데······.”


차수연이 말꼬를 흐릴 때, 슬며시 이를 갈았다. 태연하게 웃길래 눈빛이 낮게 침잠했다.


“괜찮아.”


“그래도 그 사람들이 힘들게 하면 말해.”


차수연이 풉 웃었다. 이 녀석, 날 귀엽다는 듯이 쳐다본다.


“일반인인 오빠가 어쩌려고?”


“수연아, 아무리 일반인이어도 이 오빠가 가오가 있지. 여동생 괴롭히는 놈은 내가 무슨 수를 써서든 기필코 한 방 먹인다.”


“그러다 죽어.”


“···그렇겠지?”


“아니, 오빠 가오 어디 갔어.”


차수연이 꺄르륵 웃는다. 환한 그녀의 면면을 옅게 웃으며 바라본다.


차수연은 전혀 눈치 못 채고 있다. 내가 각성자라는 걸. 그래도 밝히긴 싫다.


그동안 차수연은 날 어려워했다. 아무래도 내가 이것저것 편의도 많이 봐주고, 돈도 주는 입장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차수연의 하찮다는 반응이 묘하게 즐거웠다. 그녀의 풍부한 감정표현도.


기필코 보답할 건 보답하고 은혜를 주고야 말겠다는 의지, 지켜주고 싶다.


나로 인해 꺾이지 않았으면 한다. 앞으로도 그녀의 환한 미소를, 계속 보고 싶다.


* * *


처음 각성자가 됐을 때, 차수연은 많이 당황했다.


발키리 온라인. 호기심에 잠깐 해봤던 게임이었다.


너프되긴 했어도 게임 속 능력치를 그대로 쓸 수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완력과 근력, 그리고 체력이 여리여리한 몸에 깃들어,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케 해주었다.


이를테면 주먹을 꽉 쥐고 벽을 치면, 주먹을 중심으로 새겨진 금이 가지를 치듯 죽죽 뻗어나갔다.


그리고 끝에 이르렀을 때 벽이 와르르 무너진다.


‘그때 진짜 놀랐지.’


그 힘에 경악하며 다급히 도망쳤던 기억이 난다.


‘오빠한테 말해야 할까, 했는데.’


고민을 엄청 했다. 자신의 오빠, 차유현에게 말해야 할지.


각성자가 등장하자 모든 매스컴, SNS,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각성자에 관한 이야기들로 연일 화재였다. 좋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으나, 일반인 중심의 커뮤니티에서는 각성자를 괴물이라 생각하고 두려워했다.


일반인보다 강하고, 일반인이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내서.


그들의 시선은 별로 안 중요했다.


중요한 건 그들이 아니라 오빠였다.


오빠는 달라진 게 없었다.


평소와 같은 행동을 보고 확신이 들었다. 오빠는 평범한 일반인이라는 확신.


각성자에 대해 별말이 없는 걸로 보아, 극성스러운 일반인처럼 괴물로 보지도 않는 것 같고.


‘오빠를 지켜줘야 해.’


그런 오빠를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차수연은 그리 생각했다.


그가 미친 듯이 좋아서 그러는 건 아니다. 근친도 잘못된 거라는 걸 안다.


그냥 그에게 받은 것들이 많았다. 계시지 않는 부모님과, 도망가버린 큰오빠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신에게 잘해줬다. 가끔 해주는 조언도 부정적이지 않고 항상 긍정적이었다.


고맙고, 감사했다.


묘한 마음이 싹트던 사춘기 시절, 그를 상상하면서 몹쓸 짓도 했지만······.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자신은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다.


집을 나선 차수연은 흘깃 뒤를 돌아본다. 아직 오빠가 있을 집을 바라봤다.


이제 어른의 방식으로 은혜를 갚을 수 있으니까.


오늘도 힘을 내자. 차수연은 스스로 다짐하며 비장한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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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023 마을 부흥 22.04.30 88 6 8쪽
22 #022 정착민 마을 +2 22.04.29 95 4 11쪽
21 #021 팀 플레이 22.04.27 116 4 12쪽
20 #020 박수진-2 22.04.25 134 4 8쪽
19 #019 박수진 22.04.24 166 4 10쪽
18 #018 회색 늑대 22.04.23 188 5 9쪽
17 #017 게이트 +1 22.04.22 203 7 9쪽
16 #016 김인호 +1 22.04.21 219 5 13쪽
15 #015 금토끼 파티 22.04.13 246 6 11쪽
14 #014 게이트 22.04.10 283 8 10쪽
13 #013 일상, 차수연 22.04.04 305 9 14쪽
12 #012 변화-2 +1 22.03.31 312 9 14쪽
11 #011 변화 +2 22.03.23 336 10 12쪽
10 #010 백귀야행 22.03.21 355 11 13쪽
9 #009 황혼 22.03.19 384 11 10쪽
8 #008 던전의 주인 22.03.17 415 10 11쪽
7 #007 구원은 없다. +1 22.03.16 407 11 9쪽
6 #006 파티 맞나요 22.03.15 425 9 10쪽
» #005 가오가 있지 22.03.14 482 12 9쪽
4 #004 플렉스 22.03.12 521 14 12쪽
3 #003 각성자 협회 22.03.11 612 15 11쪽
2 #002 목소리가 작다! +1 22.03.10 688 17 12쪽
1 #001 프롤로그 22.03.09 839 2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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