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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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클리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콘텐츠. 점점 필수가 되어가는 현질. 망겜으로 가는 일반적인 루트다.
발키리 온라인. 이 게임도 여타의 망겜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망겜이라는 소문이 나면 자연히 유저 수는 감소하고, 신규 유저의 유입도 줄어든다.
그래서 망겜은 신규 유저, 다른 말로는 뉴비가 귀했다. 고인물이 뉴비에 환장하는 이유였다.
근데 꼭 귀한 것 같지는 않더라.
[ 루비맛자몽 : 저, 혹시······랭킹 1위 맞죠? ]
[ 루비맛자몽 : 미친, 대박. 맞네, 맞아! 저 귀찮게 안 할게요. 제발 친추 좀 받아주실래요? ]
[ 안졸리나졸려 : 저도요. 영상으로 엄청 많이 봤는데. 설마 여기서 보게 될 줄은. ]
[ 똥망겜뉴비데스 : 아 응애. 응애예요. 저도, 제발. ]
내 주변에는 유독 뉴비들이 드글드글 들끓었다. 심지어 쪽쪽이를 문 애도 보이더라.
망겜은 뉴비가 악착같았다.
[ 23세만기제대백수 : 형 어디세요? 형이랑 하는 거 아니면 도저히 못 하겠어요. ]
[ 낚시가좋아 : 님 어디세용. 없으니까 힘들어 죽겠어요. 하와와악! ]
[ 울산상여자임 : 오빠, 보고 싶어요. 저 8명이랑 같이 갔는데, 자꾸 터져요. 오빠 아니면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돼버린 거시야요. ]
[ 대물흑인 : 사랑하는 나의 형은 보시오. 대답 안 해주면 자살함. 진짜임. 그리고 나 죽으면 저주할거임. 염라대왕한테 가서 형 데리고 오라고 할 거라고. 어? ]
겜이 망겜이라 그런가.
애들 상태도 엄청 이상했다.
망겜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으려다, 머리가 어떻게 돼버린 것 같았다.
뉴비도 뉴빈데 고인 애들도 만만치 않았다.
[ 막강한바지 : 결혼하자, 이 새끼야. 결혼하면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 그래. ]
아니, 오히려 한술 더 떴다.
[ 나 : 꺼져, 미친 놈. ]
[ 막강한바지 : 도도한 거 봐 ㅋㅋ 개꼴리네, 진짜. ]
[ 랭킹2위이수현 : 님 어디임? 같이 오붓하게 데이트 ㄱ? ]
[ 나 : 집임. ]
[ 랭킹2위이수현 : ㅇㅋ 주소 부르셈. ]
[ 나 : 제발. ]
결국 힘들어서 당분간은 접기로 했다. 애들이 자꾸만 엉겨 붙는 것도 있지만, 직장 일이 많이 바빠졌다.
미안하진 않았다.
내 팬티 뒤집어쓰고 좋다며 시시덕거리던 놈들이다.
미안해하면 안 된다.
이런 일도 있었다.
밤새가며 뇌제(雷帝) 아스라엘 토벌전을 클리어해줬더니, 잠깐 잠에 곯아떨어진 새에 사진을 찍고는.
‘랭킹 1위 아헤가오 시킴 ㅋㅋ’
이런 제목으로 커뮤니티에 올리질 않나.
심지어 두 손 검지와 중지를 V자로 만들고, 입을 살짝 벌려 혀가 나오게끔 하며 디테일을 살렸더라.
아주 그냥, 인간의 존엄성 따위 개나 줘버려라, 그래.
그래도 다행히 현실은 평온했다.
교통사고로 인해 부모님 두 분을 일찍 여의고, 고등학생인 여동생이랑 둘이 살고 있다.
생계는 내가 전부 책임졌다.
빡세긴 해도 괜찮았다. 내가 해야 하는 거니까. 여동생도 바쁘지 않으면 내 손을 거들어줬고.
내 나름의 평화를 즐기는 방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했던 망겜이, 그대로 현실이 된 것이다.
현실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각성자들이 등장하고, 각성자 협회를 비롯해 길드 등이 빠르게 나타났다.
나는 조용히 그 과정을 지켜봤다. 나서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닌 터라.
그들이 온전히 자리를 잡기까지 수개월은 걸렸을 거다.
그러나 변화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오빠, 나 사실······각성자야.”
각성자. 다른 말로는 발키리 온라인의 유저였던 이들.
아무리 약해도 일반인보다 훨씬 강한 존재들.
“어······?”
믿기지 않았다.
차수연이 생긋 웃는다.
“대단하지? 늦게 고백해서 미안해. 나도 처음에는 많이 혼란스러워서······. 각성자들, 돈 엄청나게 번다더라. 앞으로 돈은 동생인 내가 많이 벌어줄 테니까, 오빠는 너무 무리해서 일하지 마.”
“······.”
세상에서 하나뿐인 여동생, 차수연이 각성자라니.
내가 아무 말도 못 하니까 무서워하는 거라 오해한 모양이다.
“괜찮아. 무서워할 필요 없어. 이렇게 각성해도 난 여전히 오빠 여동생이니까.”
차수연이 샐쭉 웃으며 내 배를 콕 찌른다.
“알았지, 응?”
그녀는 대답을 종용했다.
“그래, 고마워.”
말과는 달리 속은 그러질 못했다.
그야말로 썩어 문드러진다.
“그럼, 나 잠깐 누구 만나고 올게. 공부도 제대로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래.”
차수연이 나간 문을 멍하니 바라본다.
폭풍이 휩쓸고 간 것 같았다.
갖은 상념이 떠오른다.
공부가 제대로 될까.
그렇다고 여동생에게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둘이 사는 동안, 서로의 의사와 삶을 최대한 존중하기로 했으니까.
그런데 만난다는 사람이 혹시 같은 각성자인가? 레벨이랑 장비, 직업은?
설거지해야 하는데, 도저히 집중이 안 된다.
더군다나 여기는 게임이 아니다. 게임의 탈을 뒤집어쓴 엄연한 현실이다.
그간 적잖은 일이 있었다.
차수연도 알고 있을 거다.
죽었다가 살아나지 않은 각성자들을.
게다가 척 봐도 레벨이 얼마 안 되는 뉴비 같은데. 마냥 지켜볼 수는 없더라.
결국 고무장갑을 내려놓고, 코트를 챙겨 들었다.
아무래도 내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응애 뉴비들 챙기는 베이비시터 말이다.
가만 보자, 베이비시터 센터 번호가 몇 번이더라.
나, 거기 취직이라도 할까 봐.
-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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