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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님의 서재입니다.

망겜의 베이비시터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박지훈
작품등록일 :
2022.03.09 22:30
최근연재일 :
2022.05.02 23:53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7,889
추천수 :
218
글자수 :
113,683

작성
22.03.10 23:02
조회
688
추천
17
글자
12쪽

#002 목소리가 작다!

DUMMY

이상하게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이 곧잘 따르고, 좋아했다.


거기엔 남녀를 막론했다. 내가 저쪽으로 가면 우르르. 이쪽으로 가면 우르르. 그렇게 몰려다녔다.


조카들이 많이 오는 명절에는 더 심했다.


형은 쓰나미를 몰고 다니냐고 그랬다. 덧붙여 그 모습이 퍽이나 귀여웠는지, 낄낄 웃더랬다.


힘들어서 숨으면 아이들이 절박한 목소리로 부르짖더라. 엉엉엉, 엉아 어디냐고.


내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뭔가가 있나 보다, 그리 생각했다.


크면 좀 달라질 줄 알았다. 알다시피 변하는 건 없었다.


사람만 바뀌었을 뿐이지, 하는 행동은 똑같았다.


그나저나 조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부모님께 생긴 변고로 인해 못 만난지 꽤 오래됐다.


이사 간 형은 연락도 안 되고.


형과 조카들. 잘 지내겠지.


생각하면서도 차수연의 뒤를 놓치지 않는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들고. 간간이 차량 뒤에도 숨거나, 뒤를 돌아보는 것 같으면 자연스레 딴청을 피운다.


작게 한숨을 내쉰다. 여동생 스토킹은 처음이다.


해서는 안 될 짓이란 건 안다. 하지만 적어도 누굴 만나는지만 두 눈으로 직접 봐야겠더라.


얼마 지나지 않아 차수연이 누군가와 접촉했다. 야구 점퍼, 동년배인 듯 비슷한 체구에, 검은색 단발머리, 냉랭한 얼굴. 친구인 듯했다.


보자마자 등을 완전히 돌린다. 슬며시 벽에 기대어 미끄러지듯 주저앉는다.


“왔어?”


“응.”


“오빠들이 기다리고 있어. 가자.”


오빠들이라.


“혹시 아이템은······.”


“직접 만나서 주겠대.”


“내가 그걸 빌려도 될까···? 수백만 원이라며.”


“괜찮아. 어차피 잠깐 빌려 쓰는 건데 뭐. 오빠가 말했잖아. 비쌀수록 성능이 좋다고.”


수백만 원짜리 아이템. 그걸 빌린다니.


느낌이 좀 싸하다.


나는 뉴비들을 많이 만나본 만큼, 뉴비들이 많이 겪었던 사건과 사고들을 기억하고 있다.


개중 대부분이 사기였다.

사기에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노예 사기, 중매 사기, 다단계 사기, 아이템 사기, 강제 상납, 거래 바람잡이 등······.


대부분 모르고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하는 사람이 어릴수록, 그 정도가 심했다.


사족이지만 당한 뉴비들은 접었다. 일부는 접으면서 내게 복수를 의뢰했다.


그들이 당한 사기는 노예 사기. 현실 친분을 이용한 노예 사기였다. 방식은 실로 극악무도했다.


대상은 당시 악명이 제일 자자했던 랭킹 2위 길드 더티워리어스. 소속된 길드원이 수백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뿐만 아니라 길드원들 하나, 하나가 정예 수준이었다.


어느 길드라도 적대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출혈을 각오해야 했다.


나는 청부업자가 아니다, 라고 복수를 의뢰한 뉴비에게 회신했다.


선한 사람도 아니고, 징벌하는 사람도 아닌 일개 유저일 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를 좌시하지 않을 유저는 저뿐만이 아닐 거라고, 그렇게 회신을 끝맺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날 밤, 더티워리어스 길드 본부는 불에 탔으며, 길드 마스터 엔비는 숙청당했다.


남은 잔당은 연합한 길드들이 깡그리 털어버렸다.


그 후로 길드 단위의 노골적인 유착 관계는 없었다.


현실은 게임보다 더하면 더 했지, 절대 덜하진 않을 거다.


특히 그 게임이 현실에 덧씌워진 터라 더 심한 짓을 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러냐.”


“아, 그게······. 처음이라.”


“긴장 풀어. 우리 오빠들 엄청 고였어. 랭킹 1위랑 친한 오빠도 있을걸? 아무튼, 아이템 하나 때문에 일희일비할 사람들 아냐.”


뭐?


“진짜? 랭킹 1위랑 친한 사람이 있어?”


“응, 진짜로.”


두 명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침음하며 눈을 슴벅인다. 이 근방에 친한 사람이 있었나?


나는 게임하면서 신상을 공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누군지는 몰라도, 게임 속 친분이라면 음,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무튼 만난 사람이 친구란 걸 확인했으니 더 안 따라가도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뒷맛이 영 찝찝하다.


그들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했다. 거기에 괜찮은 방법이 하나 있다.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주머니에 구겨 넣는다.


앞으로 날 도와줄 도우미도 한 명 필요했다.


* * *


세상이 변했을 때, 내가 보유했던 것도 대부분 변했다.


일부를 제외하고 전부 초기화된 것 같았다. 혹은 아예 기능 자체가 사라지거나.


첫날 잠깐 보다 말았는데, 다시 한번 확인해본다.


우선 인벤토리에 가득했던 아이템이 없다. 당연히 장비도 없다.


장비를 구하려면 또 던전을 가야만 했다. 아니면 사거나.


레벨은 하향당했고, 평균 S+였던 스텟은 크게 너프를 당했다.


스킬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그동안 쌓아둔 경험치와 숙련도가 모조리 사라졌다.


다행히 특성은 여전하더라.


[왕들의 화신], [성좌들의 주인], [괴력난신의 힘], [피닉스의 깃털], [마법의 대가], [태고의 지혜]


총 여섯 개의 특성, 그리고 특전으로 받은 아공간.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아이템들은 아공간에 꽉꽉 채워뒀는데.


오른손으로 천천히 허공을 쓸었다.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이윽고 직사각형 형태로 찢어진 허공은 칠흑처럼 새까만 속살을 드러냈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이것도 되네.’


휙휙 주변을 둘러본 후,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나는 그 안으로 얼굴을 거칠게 쑤셔 넣는다.


엄청 궁금했다. 있을까, 없을까. 두 눈이 데르륵 구른다.


“오······.”


있다. 넓고 광활한 은하색 배경을 바탕으로, 줄지어 늘어선 도서관 책장이.


우습게 들리겠지만 내게는 괴벽이 있다.


그렇다고 이상한 악취미는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건전했다.


책 수집 말이다.


한때 지식과 정보를 찾는 데 혈안이었던 나는, 아예 책장들을 통째로 훔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왕실 도서관이었다.


왕실 도서관으로 처음 출근한 유저 사서가 텅 빈 서고를 보곤, 주저앉아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더라.


커뮤니티는 그 사진을 보고 웃음바다가 됐다. 누가 책장을 훔치냐고 하면서.


그 후로 몇 번을 더 훔쳤다.


웃고 떠들던 커뮤니티는 그제야 진중해졌다.


그리고 우연히 흘러나온, 도서관에 특전이 숨겨져 있다는 말.


그래서 그 경계를 뚫고 책들을 훔친 거라는 아주 그럴싸한 말 때문에, 너도나도 책도둑으로 변해 도서관에 숨어들었다.


당시에 연이은 강탈 사건으로 인해 NPC들의 경계가 엄청나게 삼엄해지고, 발각 시 부가되는 페널티가 어마어마했던 걸로 안다.


그런데도 책을 들고 나르려다 발각된 유저들은, 홀라당 벗겨진 채 팬티만 입고 거리로 내쫓겼다.


인벤토리까지 싹 다 털려서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났다길래, 좀 미안했던 적이 있다.


그게 아닌데. 대체 누가 그런 괴소문을 흘린 건지, 참.


그때 이후로 훔치는 걸 그만뒀다.


미안해서는 아니고, 특전으로 얻게 된 사기급 특성 ‘태고의 지혜’ 덕분에 책을 읽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파수꾼이 하나 있었지.


아이템이 있는 깊숙한 곳에, 내게 충성을 바친 군단장 한 명이 아이템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베히모스.”


그의 이름을 부른다.


베히모스, 암흑 도시 로흘렌의 마수 군단장.


여기서는 한낱 파수꾼일지라도, 한때 랭커 여럿의 목을 썰어버린 살벌한 전과가 있다.


절대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시야가 우르르 요동친다.


멀리서 검붉은 연기가 솟구쳤다.


그의 능력은 약자 멸시. 말 그대로 약자를 멸시하는 능력이다.


능력치를 적잖이 너프 당한 지금의 내겐 상당히 까다로운 존재기도 했다.


그렇다고 아공간을 닫고 돌아가긴 좀 그렇다.


베히모스 뒤편에 있을 아이템이 필요한 터라.


쿵쿵대며 걸어오던 그의 몸이 일순 멈춘다.


“···약해지셨군요, 주인님.”


그럴 줄 알았다.


긴장 좀 해야겠는데.


그래도 다행인 건 얼굴과 목소리 등이 달라져도, 기감만으로도 대충 나를 알아봤다는 거.


한숨을 쉬며 어기적어기적 아공간으로 기어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아공간이 닫혔다.


이제 퇴로는 없다.


* * *


붉게 타오르는 두 시뻘건 동공, 움직일 때마다 절걱대는 칠흑색 전신 갑옷. 위로 주욱 올려다보아야 할 정도로 큰 신장. 금방이라도 휘둘러질 것 같은 자색의 거대한 도끼.


그의 입에서 연거푸 뜨거운 숨결이 새어 나온다.


“약해졌어도 여전히 나잖아.”


“제가 알던 주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약해졌다고 바로 약자 멸시 들어가는구나.


우뚝 선 채 그를 올려다본다.


“제가 알던 주인은 훨씬 강했습니다.”


베히모스는 계속 에둘러 말하고 있다. 너 좆밥 다 됐다고.


길을 비킬 생각도 없고, 서서히 손잡이를 그러쥐고 있다.


나와 그 사이에 맺은 충성의 서약이 잘못된 건 아니다. 그에게서 내 마나의 잔재가 느껴지는 걸로 보아, 여전히 예속된 상태다.


그러나 이건 충성과는 별개로, 본능의 문제다. 언제든지 통제할 수 있으리라 믿고 줬던 약간의 자유. 그게 문제가 된 거다.


그에게서 느껴진다. 서서히 끓어오르는 증오의 열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다.


내게서 이 천혜의 보물고 소유권을 빼앗은 다음, 밖으로 나가고 싶은 거겠지.


나약한 놈을 주인으로 삼고 싶지 않으니까.


이해된다.


그의 태생인 지하세계는 강자존,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지배되는 단순한 세계였다.


또한 강자는 언제나 강자로 남지 않는다. 약자도 마찬가지다.


빈틈이 보이면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지하세계 약자의 숙명.


도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는 그렇게 살아남고자 했다.


심장이 천천히 맥동한다.


그동안 나는 변화를 마냥 손 놓고 지켜보진 않았다.


틈틈이 연습했다.


어색하진 않았다. 마치 게임 속 캐릭터처럼 자연스럽게 힘을 다뤘다.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몸속에 내재된 마나를 서서히 끌어올린다.


시야가 새파랗게 들끓었다.


“야, 답답하게 돌려서 말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나는 너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으스러질 듯 주먹을 쥔다.


“그러냐, 이 꽉 깨물어라.”


* * *


-쾅!


뒤로 커다랗게 튕겨 나가, 몇 번을 나뒹굴고 나서야 겨우 자세를 잡았다.


붉은 화마가 넘실거렸던 시뻘건 두 동공이 거나하게 흔들렸다.


‘어, 어떻게······.’


믿을 수가 없었다. 예고조차 없던 단순한 일격이었다.


‘분명 약해졌는데······.’


확실했다. 기감으로 알았다. 분명 그는 전보다 훨씬 약해졌다. 이유는 몰라도, 다신 없을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약해졌어도, 이런 힘이라니.’


하지만 오판이었다. 오래 아공간에 갇혔던 탓에 감각이 망가졌다.


중죄를 저지른 것 같았다. 전신이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렸다.


“일어나라.”


베히모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길게 찢어진 그의 두 눈에서는 새파란 불꽃이 일렁이고, 자신을 쳤던 손은 녹빛 아지랑이가 길게 아른거렸다. 그야말로 악귀 같았다.


불현듯 떠오르는 악몽.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러나 입술을 꾹 다물고, 도리어 투지를 불태운다.


등에 걸친 도끼의 손잡이를 우악스레 잡았다.


“불경을 저지른 죄, 달게 받겠나이다.”


베히모스는 두려움을 떨칠 기세로 크게 기함하며 도끼를 휘둘렀다.


* * *


화륵, 화륵. 어깨에 붙은 잔불을 털어낸다.


온몸이 뻐근하다. 파수꾼으로 적당한 놈이 아닌 미친놈을 들인 내 잘못이지.


뭐, 이렇게 너프당할 줄 누가 알았겠냐마는.


그래도 전부 너프당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메시지가 말하길, 발키리 온라인 초창기 버전부터 시작이라고 했으니까.


앞으로 나올 것이 많았다. 내가 못 잡은 기회도 많았고. 아마 너프당한 건 금방 복구할 수 있을 거다.


탕탕, 그의 엉덩이를 두드린다.


“뭐 해? 계속해.”


시야가 쑥 내려간다.


“다시는.”


“목소리가 작다!”


다시 올라온다.


“깝치지 않겠습니다!”


작가의말

[‘막강한 바지’님이 방을 개설했습니다.]


[‘막강한 바지’님이 방제목을 변경했습니다.]


[변경된 방제목 : 이안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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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023 마을 부흥 22.04.30 88 6 8쪽
22 #022 정착민 마을 +2 22.04.29 95 4 11쪽
21 #021 팀 플레이 22.04.27 116 4 12쪽
20 #020 박수진-2 22.04.25 134 4 8쪽
19 #019 박수진 22.04.24 166 4 10쪽
18 #018 회색 늑대 22.04.23 188 5 9쪽
17 #017 게이트 +1 22.04.22 203 7 9쪽
16 #016 김인호 +1 22.04.21 219 5 13쪽
15 #015 금토끼 파티 22.04.13 246 6 11쪽
14 #014 게이트 22.04.10 283 8 10쪽
13 #013 일상, 차수연 22.04.04 305 9 14쪽
12 #012 변화-2 +1 22.03.31 312 9 14쪽
11 #011 변화 +2 22.03.23 336 10 12쪽
10 #010 백귀야행 22.03.21 355 11 13쪽
9 #009 황혼 22.03.19 384 11 10쪽
8 #008 던전의 주인 22.03.17 415 10 11쪽
7 #007 구원은 없다. +1 22.03.16 407 11 9쪽
6 #006 파티 맞나요 22.03.15 425 9 10쪽
5 #005 가오가 있지 22.03.14 482 12 9쪽
4 #004 플렉스 22.03.12 521 14 12쪽
3 #003 각성자 협회 22.03.11 612 15 11쪽
» #002 목소리가 작다! +1 22.03.10 689 17 12쪽
1 #001 프롤로그 22.03.09 839 2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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