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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님의 서재입니다.

망겜의 베이비시터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박지훈
작품등록일 :
2022.03.09 22:30
최근연재일 :
2022.05.02 23:53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7,879
추천수 :
218
글자수 :
113,683

작성
22.03.11 23:32
조회
611
추천
15
글자
11쪽

#003 각성자 협회

DUMMY

그렇게 수십 번을 반복했다.


충성의 서약도 재갱신했다. 절대로 기어오르지 않는 멍멍이로 만들었다.


끝내고 나서도, 베히모스는 시무룩해진 얼굴로 연거푸 사죄했다.


기가 잔뜩 죽었는지 치켜 올라갔던 어깨는 축 처져 있다.


몸도 반쯤 쭈그려 앉은 채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이글거렸던 눈꼬리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처럼 울먹울먹했다.


“그, 저기···.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좀 황당한 일이 있었어. 그나저나 아이템들은 멀쩡하지?”


“네.”


그를 지그시 바라본다.


도우미가 한 명 필요한데, 얘는 안 되겠다.


일단 누가 봐도 무조건 이목이 쏠릴 것 같은 덩치다.


아니, 반드시 뉴스를 탈 거다.


그리고 은연중 몸에서 흘러나오는 저 노릇 한 스파크.


혹여 아이들이 호기심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간, 대형 참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밖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꽤 오래 치고받고 싸웠던 것 같은데.


아공간에선 시간이 안 흐른다는 설정, 제발 유효하길.


그것도 아니면 제발 퇴근 시간만 아니길.


“베히모스.”


“네?”


“10초 줄게. 나약함의 로브, 드래곤 하트······.”


말끝을 흐린다.


마지막으로 대형 마정석을 가져와 달라고 하려 했다.


하지만 아직도 대형 마정석이 시중에 풀리질 않았다.


아마 부르는 게 값이 되겠지만, 불필요한 이목도 엄청 끌게 된다.


그러니 그나마 시중에 풀린 게 많은 소형, 중형 마정석 위주로 달라고 했다.


나약함의 로브. 소유자를 약해 보이도록 하는 로브였다. 마스크도 있고, 위장 기능까지 있어 신분을 감추기 쉬웠다.


사람 많은 곳에 갈 때 종종 애용하기도 했다.


드래곤 하트. 소환수를 장기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마나를 공급해 줄 동력원이자, 대용량 마나 탱크라고 보면 된다.


소형, 중형 마정석은 마물을 잡으면 얻을 수 있는 것들로,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했다.


작게는 장비 제작부터, 크게는 건물 제작까지. 안 들어가는 곳이 없었다.


따라서 쉽게 얻을 수 있지만, 간혹 매물이 없을 때도 있었다.


고인물 때문에.


발키리 온라인의 고인물들은 내부 경제 시스템을 엄청 잘 이용했다.


그들은 재료가 되는 마정석을 적정선까지 모조리 사재기한 다음, 수요가 있는 레벨 대의 장비 제작을 했다.


그다음 품질을 올리거나 장인 네임을 각인하여 팔면, 무조건 막대한 차익을 거뒀다.


이에 따라 사냥엔 전혀 관심이 없는 대장장이 및 상인 길드가 있을 정도.


보통 잘 나가는 게임은 그 구조가 무너지지 않는다. 수요와 공급의 구조 말이다.


끊임없이 유입되는 신규 유저로 인해 수요와 공급이 적정선을 유지하면, 아이템의 가격은 안정화된다. 더러는 더 싸질 때도 있다.


하지만 신규 유저의 유입이 점차 감소하는 망겜은 구조가 기이하게 뒤틀린다.


분명 수요가 적으니 공급은 많아질 테고, 자연히 아이템의 가격은 더욱 내려갈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구조를 잘 아는 고인물들은 아예 공급을 줄였다.


그리고 자전거래를 통해 아이템의 기본 가격대를 더욱 올리거나, 더욱 비싼 가격에 사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해도 수요가 있으니 무조건 팔리더라. 이후 조금씩 가격을 낮춰가며 모조리 팔아넘긴다.


아를 설거지라고 부른다.


가격을 정확히 모르는 뉴비들은 꼼짝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로 망겜은 고인물 대다수가 악질이다.


“잘 지키고 있어라.”


“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생각해 보니 나보다 더한 악질은 없을 것 같다.


당장 무급으로 베히모스를 부려 먹는 것만 봐도.


손으로 허공을 훑는다.


안과는 다른 살굿빛 공간이 열린다.


다행이다. 아공간은 시간이 안 흐른다는 설정, 여전히 유효하구나.


나가기 전에 눈을 데륵 굴린다.


“혹시, 필요한 거 없냐?”


“없습니다, 주인님.”


베히모스는 단호했다.


게임이었을 때는 자연스럽게 넘어갔을 건데, 현실이라 그러질 못하겠다.


“그러지 말고, 나중에 또 올게. 그때 술이나 한잔 하자.”


술과 치킨, 두 개면 되겠다.


“······네.”


베히모스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것이 얼마나 달달한지도 모르고.


* * *


도우미는 그녀면 충분할 것 같았다.


철의 여인, 아멜리아.


내가 아는 소환수 중 그나마 멀쩡하고 냉정한 존재다.


으슥한 골목길 안.


인벤토리에 있는 드래곤 하트를 켠다.


이건 온/오프 기능이 있어, 자유자재로 켜고 끌 수 있다.


느껴진다. 조금씩 몸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정순한 마나가.


시원하고 상쾌했다.


지그시 눈을 감는다. 아래쪽으로 손바닥을 펼쳐 천천히 입술을 달싹인다.


“일어나라, 아멜리아.”


마나가 노도처럼 빠져나간다. 그러나 빠진 자리를 다시 드래곤 하트의 마나가 채워준다.


머리칼이 부드럽게 살랑인다. 혼자만 있는 이곳에, 다른 이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부르셨습니까, 마스터. 마스터의 부름에 저 아멜리아가 응했나이다.”


맑고 허스키한 목소리. 그녀의 말과 목소리에 반가움과 절제된 기쁨이 담겨 있다.


천천히 눈을 뜬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흑발과 조각으로 빚은 듯 수려한 외모, 윤이 나는 블랙 롱 코트의 미인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확실히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답다. 이목을 왕창 끌긴 하겠다.


특히 동성이 아닌 이성에게 더더욱.


그래도 흑발 덕분에 그나마 한국 사람 같다. 그냥 한국 사람 말고, 이국적인 한국 사람.


“오랜만이다, 아멜리아. 일어나도 돼.”


“네, 마스터.”


움직임 하나, 하나에 기품과 절도가 느껴진다.


당연했다.


그녀는 한때 왕가의 근위 기사단장이었다.


“···분위기가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마스터는 여전히 대단하십니다.”


이게 맞지. 이게 옳게 된 소환수지. 옅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인다.


“고맙다. 널 부른 건 부탁이 하나 있어서야.”


“뭐든 하명해 주십시오.”


“당분간 내 곁에 있어 줘.”


“······!”


아멜리아가 입을 살짝 벌린다.


* * *


나는 그녀에게 모든 걸 설명했다. 내 얼굴, 세계가 바뀐 이유. 여동생 등······.


예상외로 그녀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이러든, 저러든 상관없다는 듯이. 멍한 눈으로 나를 멀거니 바라보며 묻는 말에 끄덕, 끄덕.


머물 곳은 아파트 옆 동. 내 소유가 아니니 사주기로 했다.


소환사의 능력치에 영향을 받는 소환수의 특성 때문에, 불편한 건 없나 했더니 없다고 했다. 둘 간의 가장 빠른 의사소통 수단인 심언(心言)도 잘 되더라.


점검은 다 했고, 남은 건 협회에 가서 등록하는 일뿐이다.


그런데 아멜리아는 여러 영상 플랫폼에 얼굴이 노출된 상태다.


나는 얼굴이 게임과는 전혀 다르니까 아무도 모르는데.


혹시나 해서 나랑 아멜리아 둘 다 얼굴을 미세하게 변형했다.


살짝 변형했어도 아멜리아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이름도 한국식으로 바꾸려 했다.


처음에는 내가 직접 정해줄 생각이었는데.


그녀가 한국식 이름에 엄청 호기심을 보였다.


앞으로 남들 앞에선 마스터라 부르지 말고, 유현씨라고 부르랬더니.


머뭇거리며 내 이름을 부르다가, 차츰 익숙해지자 연거푸 연호하며 이름이 무척 이쁘다더라.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강제로 정해주긴 좀 그랬다.


결국 여러 이름 중에 마음에 드는 이름을 골라 보라고 했다.


그때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묘하게 젖어 든 것 같았다.


정한 이름은 김유리. 이유는 딱히 없고, 그게 마음에 든다고 한다.


내가 이름을 부르니, 그녀가 수줍게 웃었다.


* * *


각성자 협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대기업, 태양 그룹의 재벌 상속녀가 설립한 협회다.


서울에 본사를 두고, 전국 각 지역에 지부를 두고 있다.


각성자 협회장.


수완이 매우 좋아서 재녀 중의 재녀라 불렸다.


또한 각성자가 되면서 얻은 능력도 매우 걸출한지, 따르는 길드들이 많다고 한다.


나쁘게 말하면 그녀에게 반해 협회의 개가 된 각성자들이 많다는 뜻.


따르는 길드 대부분이 소형이라, 경계할 만한 사항은 아니다.


간간이 중형도 섞여 있지만 독점까진 안 갈 것 같다.


무척 빼어난 외모와 다르게 말수도 적고, 성격도 매우 차갑다던데.


그런데도 좋다고 따른다니까, 어떤 사람인지 내심 궁금하다.


협회 내부는 호화로웠다.


바닥은 대리석으로 깔아 매끄러웠으며, 구조는 중세 고딕 건물처럼 고풍스러웠다.


중앙에 있는 안내인이 우릴 반긴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등록하러 왔습니다.”


우리는 간단히 등록 절차를 마무리했다.


개인 정보는 모두 속였다. 마나 정보도. 여러 트랩이 있었으나, 푸는 건 손쉬웠다.


그리하여 나온 각성자 등급은 최저 등급, F급.


F급 각성자 김유현, F급 각성자 김유리.


감회가 새로웠다. F급이라······. 밑바닥부터 시작이구나.


던전과 게이트는 협회에서 모두 관리하고 있다.


때문에 던전에 가기 위해서는 협회의 허가가 필요했다.


실적은 던전 혹은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특별한 마법에 의해 자동으로 책정이 된다더라. 신기했다.


게임에선 NPC가 담당하는 일을 여기선 유저가 직접 하고 있으니.


협회에서 주는 의뢰를 받으면 따로 보상금도 준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여긴 관리하는 것들도 많다.


거래소, 대장간, 치료소 등······. 사적으로 운영되는 곳과 다르게 세금도 덜 매긴다던데.


체계가 잘 잡혀 있다. 확실히 협회의 주인은 대단한 사람이다.


물론 협회의 주인을 칭찬하러 온 건 아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던전은 예약이 필수다.


그리고 기존에 예약한 파티와 그 구성원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동의만 있으면 합류할 수 있다.


“혹시, 근처에 예약된 던전 목록 좀 볼 수 있을까요?”


“아, 네.”


이게 내가 말했던 괜찮은 방법이다.


찝찝한 기분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


각성자 등급처럼, 던전의 등급도 나뉘어 있다. 최하 F부터 최대 A까지.


S 이상은 미발견.


F부터 던전을 훑는다.


찾았다.


F급 붉은 개미굴 던전.


친절하게 유저였을 때 닉네임도 써놨더라.


아는 사람이면 연락해달라, 라는 의미로 쓴 것 같은데.


B급 성진수 [밤하늘에]


C급 김철민 [멋진놈]


C급 강도현 [재밌게살자]


D급 김한나 [귀여운쪼꼬미]


F급 차수연 [우리오빠는천사]


······수연아?


아니, 근데.


실없는 웃음이 흘러나온다.


이 새끼들, 수연이를 속였구나.


작가의말

[‘이수현’님이 들어왔습니다.]


[ 이수현 : ? ]

[ 막강한바지 : ? ]

[ 이수현 : 님 여기 방제 왜 이럼? 이안을 찾는 사람들? ]

[ 막강한바지 : ㅇㅇ 불만이라도? ]

[ 이수현 : 바보임? 님 각성자 협회 대빵이잖음. ]

[ 막강한바지 : ????? ]

[ 이수현 : ? ]

[ 막강한바지 : 아닌데? ]

[ 이수현 : 아니긴 뭐가 아냐. 족망겜에 수천만 원씩 지르던 사람이 재벌녀인 님 말고 또 누가 있음. 게임한다는 걸 들키기 싫으니까 일부러 닉네임도 족같이 만들고, 남자처럼 행세한 거잖음. ]

[ 막강한바지 : 아 시발. 너만 눈치챈 거지? ]

[ 이수현 : 걍 찔러본 건데; ㄹㅇ이었구나 ㄷㄷ 너무 밸붕인데. ]

[ 막강한바지 : ? 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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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023 마을 부흥 22.04.30 88 6 8쪽
22 #022 정착민 마을 +2 22.04.29 95 4 11쪽
21 #021 팀 플레이 22.04.27 116 4 12쪽
20 #020 박수진-2 22.04.25 134 4 8쪽
19 #019 박수진 22.04.24 166 4 10쪽
18 #018 회색 늑대 22.04.23 188 5 9쪽
17 #017 게이트 +1 22.04.22 202 7 9쪽
16 #016 김인호 +1 22.04.21 217 5 13쪽
15 #015 금토끼 파티 22.04.13 246 6 11쪽
14 #014 게이트 22.04.10 283 8 10쪽
13 #013 일상, 차수연 22.04.04 305 9 14쪽
12 #012 변화-2 +1 22.03.31 312 9 14쪽
11 #011 변화 +2 22.03.23 335 10 12쪽
10 #010 백귀야행 22.03.21 354 11 13쪽
9 #009 황혼 22.03.19 384 11 10쪽
8 #008 던전의 주인 22.03.17 415 10 11쪽
7 #007 구원은 없다. +1 22.03.16 407 11 9쪽
6 #006 파티 맞나요 22.03.15 425 9 10쪽
5 #005 가오가 있지 22.03.14 481 12 9쪽
4 #004 플렉스 22.03.12 520 14 12쪽
» #003 각성자 협회 22.03.11 612 15 11쪽
2 #002 목소리가 작다! +1 22.03.10 688 17 12쪽
1 #001 프롤로그 22.03.09 837 2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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