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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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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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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8,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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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07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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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들이다

DUMMY

이틀을 소모했다.

하나의 산맥이 교역로와 그림자 숲을 가르기 전, 교역로를 살폈으나 이용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교역로의 머나먼 연장선. 지평선으로부터 불쑥 튀어나온 그것은 이쑤시개를 꽂아 만든 성이었다.

통나무의 색을 지닌 벽, 높이 솟은 초소에서 개미만한 인간의 형상이 나팔을 불었다. 말을 탄 병사들이 뛰쳐나왔고, 그 행선지가 명확했기에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성채의 깃발 색이 파랬으니 기사단이겠네요. 거리도 상당했고, 산맥으로 들어서는 뒷모습까지 보였으니 지금은 그곳을 조사하고 있을 거예요.”


해가 지기 전의 시간. 산맥에서 긴장감으로 가득 찬 하루를 넘기고, 그 다음날이 되는 지금.

그림자 숲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곧바로 들어서려 했으나, 하렐뉴의 부탁으로 인해 밤까지 대기하기로 했다.


“그래도,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네요. 기사단이 충분한 병력을 지니고 있었다면, 산맥의 너머를 수색하도록 또 하나의 수색대를 파견할 테니까요.”


하렐뉴가 마른 과일을 씹었다.

평소였다면 모닥불을 지피고, 요리를 했겠지만 쫓기는 입장이다. 모닥불은 피울 수 없다. 피어오른 연기로 들킬지도 모른다.

처지를 이해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오늘은 변변한 요리를 대접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한 것은 다름아닌 그녀였다.

불만은 없다. 혼자였다면 요리라는 것 자체를 맛보지도 못하고, 한계까지 나아가다 스러졌을지 모른다.

충분한 수면과 영양을 챙겨주는 것에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믿지는 않는다. 감사와 신뢰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설마··· '불가침의 밤'까지 쫓아오는 건 아니겠죠···?”


말하다가 문득 걱정됐는지 하렐뉴가 입술을 멈추었다. 불안하지는 않으나, 무언가 답을 원하는 시선. 그러나, 어느 하나 장담하지 못하는 나는 가만히 침묵만을 고수했다.

미래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미래인 것이다. 알 수 있다면 대처가 가능하기에, 미래가 아닌 현재가 되어버린다. 그녀가 묻는 것은 미래이고, 나에게 미래를 현재로 뒤바꾸는 능력은 없기에.

안전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로 강하지 않기에.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밤까지 기다리는 이유에 대해 알려주시겠습니까.”


그녀의 눈꼬리가 희미하게 내려갔다. 그와 반대로 입꼬리는 뚜렷하게 올라갔다. 진심을 담아 지어낸 미소.


“···상냥하시네요. 역시.”


어느 부분이 상냥하다는 걸까. 스쳐지나가듯 드는 의문을 포기했다.

상관없는 이야기다. 생각하면 괴로워질 거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스스로에 대해서는 떠올리지 않는다. 나에게는 감정이 없다고, 자기최면을 걸면 어느 정도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

침착하게.

그녀를 주시했다.


“그리고, 차갑기도 하고요. 냉정하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침묵.

그제서야 알겠다는듯이 하렐뉴가 설명했다.


“···불가침의 밤을 지나려면, 밤에 들어가야만 해요.”

“밤이 더 안전하다는 겁니까.”

“아니요.”


단호한 즉답.


“밤이 가장 위험해요.”

“그렇다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밤이 가장 위험하다. 그 말의 뜻은, 위험한 마물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시간이라는 것. 하지만, 인간은 보통 낮에 활동하고, 밤에 수면을 취한다.

마물들과는 정반대의 생체주기. 그림자 숲의 생태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치명적인 불협화음이다. 그리고, 그림자 숲의 생물들은 자신들과 맞지 않는 존재를 간단히 찾아 먹이로 삼겠지.

깊은 잠에 취한 인간만큼 무방비하고, 죽이기 쉬운 생물은 없다. 그러니 바꾸어야 한다. 생활습관을 뒤엎는다.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한다. 마물들과 함께 기상하고, 그들에게 먹기 좋은 먹이가 아닌 사냥감으로서. 아니, 적으로서 움직여야 한다.


“이해한 모양이네요.”

“휴식을 취해둬야겠군요.”


하렐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두 시간 정도는 시간이 남았으니, 푹 쉬어두세요. 불침번은 제가 설 테니까요.”


말하며, 다가온다.

다가오며, 묻는다.


“···잠시, 만져도 될까요? 아니, 만질게요.”


선언하고는 머리를 감싼다. 그녀의 손에 남은 과일향이 잠깐 풍겨왔다. 그리고는 기우는 시선.

앉아있던 나의 몸이 저절로 저항을 해보지만, 머리를 붙잡힌 이상은 별반 소용이 없는 몸부림이었다.


“자, 됐어요.”


머리를 감싸는 포근한 감촉. 하늘에도 그녀가, 땅에도 그녀가 있다. 멍하니 있다가 무릎베개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저번에 싫다고 했습니다만.”

“싫다고는 안하셨잖아요. 마음만 받겠다고 하셨으니까요. 몇 번이고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쌓이고 쌓인 제 마음이에요.”


아무래도 쉽게 놓아주지는 않을 것 같다.


“도망치지 말아주세요. 팔란타(마족)를 힘으로 이길 수는 없으니까요. 자꾸 이러시는 건 체력낭비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가둬두었던 감정들이 정을 줘버릴까 두려웠다.

그건, 좋지 않다.


“괜찮아요. 제가 살아있는 한, 잭도, 그리고 저도 리시스 님을 배신하지 않을 거예요.”


그곳에 죽지 않겠다는 약속은 없었다. 배신하지 않겠다는 말 한 마디에, 담보라고 부를 만한 건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일어나려 애를 써도 놓아주지 않는 손힘에 몸이 먼저 지쳐 포기해버렸다.

하아, 깊은 한숨을 쉬고. 체념했다. 머리를 그녀의 무릎에 맡겼다.


“한 번은 해보고 싶었거든요. 이런 거요. 연인이랑 할법한, 그런 것들이요.”

“···연인이랑 하면 되잖습니까.”

“알아요. 그래도 연인이 생기지 않는 걸 어떡하겠어요. 잭한테 부탁해봤었지만, 절대 안 된다고 거절당하기도 했고, 그러니까···”


그 대신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헤헤 웃는 그녀였다. 아무래도 진심으로 나오는 웃음 같아서 체념에 체념을 더했다.

눈을 감았다. 두 시간만에 모든 체력이 회복될 거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지만, 이 상황이 되어서는 조금이라도 자두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보상으로··· 옛날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옛날 옛적에. 옛적보다 옛적에. 너무나도 머나먼, 태초. 그보다도 옛적에.

하렐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머리칼을 쓰다듬는 손길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졸음을 유발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감정들이, 추억을 불러오고. 그리움을 일으켰다.

한밤중의 침대 위. 동화책을 읽어 달라 조르고는 그것이 끝나기도 전에 잠들었던 시절. 이제는 아득하고도 아련한 그때의 추억이 오기를 만들었다.

눈을 감고도, 잠들지 않았다. 오랫동안 목소리를 들었다.


...



옛날 옛적에. 옛적보다 옛적에. 너무나도 머나먼 태초. 그보다도 옛적에.

하나의 영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척이나 거대했고, 또 순수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것이 자아를 가지게 되었을 때에는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사방을 둘러싼 어둠으로부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벌벌 떨던 그것은 이내 공포를 참지 못하고, 골똘히 궁리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외롭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이 어두운 공간을 무섭지 않게 만들 수 있을까.

해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영혼은 그것을 곧바로 실행으로 옮겼습니다.

자신을 둘로 나누었고, 셋으로 나누었고, 넷. 다섯. 그렇게 또 다른 자신들을 무수하게 만들어, 함께 놀았습니다.

수가 늘어날수록, 크기는 작아졌지만. 그만큼 어둠은 밝아졌습니다. 그만큼 세상은 즐거워졌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지나친 건 좋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게 그렇잖아요. 사람이랑 똑같아요. 정확히는, 사람에게 영혼이 있기에 그런 거지만···.

영혼도 사람이랑 같아요. 사람들은 수가 많아지면 불필요한 일부를 덜어내잖아요. 멸시하거나, 따돌리죠. 그건 순수한 영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아요.

때문에 즐거워지지 못하는 영혼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소외되고, 끝내 잊혀져서 자아를 포기했죠.

끝내는 하나의 영혼이기를 포기했고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별. 그리고, 별의 거대한 영혼을 조금씩 물려받아 태어난 것이 생명이랍니다.

아아, 그래요. 너무 추상적이고 방대하기는 해요. 그래도, 창세기가 다 그런 법이지 않나요. 신이라던가, 터무니없는 존재들로 가득한 게 기본이잖아요.

···그 다음, 말인가요. 그 다음은, 죄송해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요. 나중에 잭을 만난다면 다시 한 번 물어볼게요. 설명해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떠오르는 것만 말해보자면, 별 위에서 살아가는 그 자그마한 영혼들에게 흥미를 느낀 거대 영혼들이 세계에 신으로서 자리 잡았다고. 그 이후로는··· 아아, 역시 떠오르질 않네요. 정말 죄송해요.


...


어느 샌가 잠에 들어있었다.

어깨를 흔드는 손길.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리시스 님.”


주변에 달리 소음이랄 것은 없었다. 귀뚜라미가 울고 있다. 어딘가에서 포효하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먼 곳에서부터 고막에 들려온다.

하늘에 떠오른 무수한 별빛. 그 뒤를 장식하는 성운. 밤하늘은 달을 중심에 걸어놓았다.


“기적 중에서는 피로를 회복하는 것도 있거든요. 수면 중일 때밖에 사용하지 못하지만요.”


기적의 효과 덕분일까. 짧지만 깊은 수면이었다. 전신의 근육들을 늘어지게 짓누르던 피로가 사라졌다. 희뿌옇던 의식이 뚜렷하게 자리 잡았다. 둔감했던 감각들이 예리하게 돌아왔다.

최상이라고까지는 하지 못하더라도 분명 좋아졌다.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깊은 어둠이 그녀의 표정을 가리고 있었다. 쓰다듬던 손길을 떼어내고, 일어서도록 놔주었다는 것을 촉감만으로 알았다.

해방된 몸을 일으키고, 풀어두었던 창대들을 짊어졌다.

낮과 밤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말들은 여전히 깨어있었다. 상당히 피로가 쌓인 건지, 고삐를 끌어도 쉽게 움직여주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은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


“가시죠.”


짧게 말하고는, 하렐뉴에게 고삐 하나를 쥐어주었다.


“···리시스 님. 아까 했던 이야기, 아직 기억하시나요?”

“중요한 부분들은 기억해뒀습니다.”

“그런가요.”


하렐뉴는 그 뒤로 말을 잇지 않았다. 잠자코 걷다, 이내 나를 앞서 나아갔다.

멈춰선 곳은 거대한 숲.

어둠에 적응한 눈에는 돌아서는 그녀가 어렴풋이 보였다.


"···도착, 했네요."


드높이 자란 활엽수. 그것은 마치 그림자를 머금은 듯 전신을 까맣게 물들이고,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검은 잎으로 그 아래의 사물과 생명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희박한 달빛조차 비치지 않는 그곳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밤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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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낙마 21.04.14 64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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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아침에는 가재 21.04.03 10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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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지우지 못한 단서 21.03.24 75 1 11쪽
105 붙잡히다 21.03.23 79 1 11쪽
104 주맥시(呪脈視) 21.03.22 83 1 11쪽
103 잭이라는 화제 21.03.19 84 1 12쪽
102 믿음, 극복, 퍼져나가라 21.03.17 71 1 13쪽
101 성당, 시체, 전투 21.03.13 68 1 24쪽
100 외전-사냥꾼들의 밤 21.03.12 64 0 22쪽
99 간단한 수수께끼 21.03.03 69 0 12쪽
98 이동계획 +1 21.02.18 83 1 11쪽
97 쥐구멍에서 +1 21.02.16 75 0 13쪽
96 촉수 21.02.08 103 1 11쪽
95 협력제안 21.02.08 120 0 12쪽
94 탄로 21.02.06 7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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