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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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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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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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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글자수 :
658,374

작성
21.03.2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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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지우지 못한 단서

DUMMY

골목에서 골목으로 전전하며 걸었다. 때때로 로셸은 나타릭을 먼저 나아가게 한 뒤, 남겨진 흔적들을 지웠다.

그렇게 대략 20분을 걸어서 도착할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타릭의 호흡을 살폈으나, 역시나 멀쩡했다. 사람 하나를 안아들고 왔음에도 지치지 않다니, 언제 봐도 대단한 체력이었다.

똑, 똑똑. 사전에 정해두었던 박자로 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었다.

소녀를 안은 나타릭을 먼저 들여보냈다. 이어서 로셸이 문에 들어섰다. 마지막으로, 보는 눈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안개에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없었고, 가깝지 않다면 안개가 막아주기에 안심해도 좋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조심하지 않는 편이 위험한 법이다.

세심하게 확인을 마치고, 실틈처럼 열어두었던 문틈을 그제서야 닫았다.

몸을 돌리고, 리더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너무 심했다고 벌써부터 눈빛으로 해코지 하고 있었다.


“마음은 알겠지만, 너무 심했어.”

“반성하고 있습니다.”


로셸 일행에게는 신관이 없다. 모험가 파티라면 모를까 현상금사냥꾼들의 사이에서 신관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거의 없다고 여기는 편이 알맞은 시선이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깨고, 추방당한 사람을 구한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논리만을 가지고 생각해도 인질을 다치게 하는 건 좋지 못했다. 알고 있으면서도, 좋지 못한 일을 조바심이라는 감정에 치우쳐 행해버렸으니 혼이 나도 억울하지는 않았다.


“무겁쓰!”

“숙녀한테 실례잖아, 나타릭. 그쪽에 소파 있으니까 헝겊 깔고 눕혀줘.”

“알겠쓰!”


평소 남에게 불만을 말하지 않던 나타릭이 리더에게 해코지를 들었다.

그는 품에 안고 있던 여자를 소파에 눕히고는 엄지를 척 세워보였다. 로셸이 소외감을 느낄 거라 배려해준 걸까.

못 말린다니까, 정말이지.


“그래서, 로셸. 이 아이는 뭐야?”

“시셀티스로 이어진 북서쪽 관문에서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사내와 함께 있었습니다.”

“얼굴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기척으로 봤을 때에는 아마도 녀석이겠죠.”

“그래, 발리아의 감이 맞았네.”


리더가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밧줄로 소녀를 포박하려는 나타릭이 있었다. “묶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리더가 말리자, 나타릭이 “알겠쓰!”하고 밧줄을 내려놓았다.


“묶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저지른 것도 있는데.”

“위험해보이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하는 건 고문이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녀석과 평범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어깨에 칼 맞으면서도 관계를 부정하는 걸로 보면, 연인이거나 하지 않을까요. 깨어나서 가만히 있을 거라고는···”


로셸은 말을 잇지 않았다. 뜻은 모두 전달했다. 결정은 리더에게 맡겼다.

그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평소에는 없다시피한 일이었기에, 리더 또한 신중하게 고려하는 모습이었다. 턱을 짚고,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겨들었다. 이윽고 다시 입을 연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포박을 허락했다.


“일단은 묶어두자. 그리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나타릭은 발리아와 세이라를 불러와줘. 둘 다 성당으로 조사를 보냈으니까, 가면 만날 수 있을 거야.”

“오케이쓰!”


나타릭이 기운차게 답하며 뛰쳐나갔다. 발리아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무척이 들떠있는 것 같았다.


“도와드릴까요, 리더.”

“괜찮아. 포박은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까. 원래는 하려던 걸 내가 막은 거기도 하고.”

“딱히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내 성격이어서 그래.”


밧줄을 집어든 리더가 소녀의 팔과 다리를 묶었다. 일련의 작업을 마치고는 휴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창문으로 걸어가더니 특정한 박자로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잠시 뒤, 한 쌍의 푸른 매가 날아왔다. 펄럭이던 날개를 접은 매들은 바깥으로 뻗은 리더의 팔 위로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


“쯔, 쯔쯔. 쯔쯧.”


리더가 몇 번인가 혀를 찼다. 특정한 박자를 지니고, 매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매 한 마리가 “쌔액!”하고 답했다.

매의 말을 알아들은 걸까. 리더가 쿡 하고 짧게 웃었다.


“로셸, 수배서 좀 가져와줘. 가능하면 그림이 잘 나온 걸로.”


매를 부른 순간부터 찾고 있었던 로셸은 곧바로 그녀에게 수배서를 건네주었다.

받아든 그녀는 그것을 매에게 보여주었고, 매가 다시 한 번 크게 울었다.


“부탁할게, 발러, 그리고 퀸도. 죽지 말고 무사히 돌아와야 해.”

“쌔애액!”

리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매들은 날아올랐다. 짙은 안개가 남아있는데도 거침없는 날갯짓을 선보이며 비상했다.

사라진 매들을 바라보며 리더가 “툴툴대기는···”하고 중얼거렸다.


“사춘기인가 보군요.”

“한창 반항기지. 그래도 말은 일단 들어주는 점이 고맙다고나 할까.”

“역시, 푸른 하늘 설산의 영물이라 불릴 만은 하네요. 사춘기인데 부모 말을 듣는 걸 보면.”

“고작 그런 걸로?”

“그게 대단한 거죠.”


리더가 아하하 웃었다. 하긴 그렇지, 하고 수긍하고는 테이블에 기댔다.

그대로 따라간 로셸은 시선을 살짝 빗겨 흘렸다. 그녀 뒤의 소녀. 포박을 해놓았어도 안심하지 않았다.

도적의 기본이라고나 할까. 방심은 하지 않았다. 때문에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설령 리시스라는 사내가 이 소녀를 찾으려고 한다면 단서 하나 찾지 못할 거라고, 로셸은 장담할 수 있다.

그러니 저 소녀만을 조심하면 된다. 저 소녀가 이곳에서 빠져나가 로셸 일행에 대해 알리지 않는다면, 신변에 위험이 닥치는 일은 없을 거다.


『···믿어, 주세요. 죽고 싶지 않아서, 따르고 있었을 뿐이에요···!』


또한, 소녀의 말이 진실이라면. 이걸로 그녀는 자유로워질 수 있기도 하다.

리더에게는 거짓이라고 보고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심증에 불과했다. 확증은 아니었다.

위화감을 눈치 챘는지, 리더가 진중하게 손을 모으며 물었다.


“그래서, 로셸. 이제 말해주었으면 하는데.”

“어째서 맡기지 않고 직접 데려왔는지에 대해서, 말입니까.”


리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를 헤집어놓을 정도로 조바심을 내놓고서는 ‘전문가’들에게 맡기지 않고 아지트로 데려왔다.

소녀가 붙잡힌 상태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모종의 수단을 지니고 있다면, 모두의 신변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아마, 그녀는 지금 화를 내고 있는 거겠지.

로셸은 씁쓸해진 입안에서 침을 삼켰다.

거짓을 꿰뚫어보는 데에 재능이 있다고 칭찬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때문에 조금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조그마한 자신을 오늘, 방금 전에 잃어버렸다. 로셸은 진위를 파악하지 못했다. 시선, 호흡, 몸짓, 어느 하나 변하지 않고 소녀는 진실이라 호소했다. 심장박동 하나 달라지지 않고, 살고 싶다 말했다.

헷갈렸다. 알 수 없었다.


“진위를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잠시만, 뭐···?”


리더가 당황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로셸 또한 황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놀라운 반응이 아니었다. 도적의 핵심스킬인 진위간파가 이토록 무능할 수 있을 줄은 로셸 본인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뭐라고 말했는데?”

“협박을 당해서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었다고···”

“거짓말이, 아니라는 거야···?”

“믿고 싶지 않지만, 안 통한다고 속이고 칼을 찔러도 답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난처하네···”


로셸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 또한 뒷목을 주무르며 골똘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고, 짧은 정적이 만들어졌다.


“일단은 직접 들어봐야겠네.”

“세리아가 돌아오면 무언가 밝혀지겠죠. 어젯밤 성당으로 갔었다는 순찰병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올 테니까요.”

“거기에 이 아이가 있었다면···”


자신들이 쫓고 있는 남자는 성기사를 웃도는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는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인질을 데리고 있는 상태로 덤벼드는 성기사를 쓰러뜨린 것이다. 진심으로 포기를 생각해봐야 할지도 모른다.

리더가 하고 싶은 말은 아마 이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더는 소중한 사람을 어둠속에 놓아두고 싶지 않다. 더럽혀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로워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더는 자신이 없는 장소에 그녀를 내버려두고 싶지 않다.

괜찮다는 편지를 읽을 때마다, 심장이 찢어진다. 점차 흐트러져가는 글씨를, 창백해져가는 문체를 눈에 담을 때마다 바늘이 깊게 파고든다.


“···인질이 있기 때문에, 성기사를 이길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리시스를 쫓던 왕실기사 란슬롯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소문까지 합쳐지면, 아무래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어. 그리고, 최근 행방불명 된 기사는 그 하나뿐이 아니잖아.”

“흑기사 단테···”


리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셸, 어쩌면 우리 손으로는 불가능한 수배일지도 모르겠어. 마음은 알겠지만, 일단은 사는 게 우선이야. 네가 죽으면, 소피아는 누가 구해주는데.”

“그건, 그렇겠죠···”


시선이 떨어졌다. 전투화의 끝을 바라보고는, 멎어버린 숨을 내쉬었다.

현실이 갑갑했다.

자신이 답답했다.

내가 강했더라면, 하고 질책했다.


“바람을, 좀 쐬고 오겠습니다.”

“그래, 다녀와.”


로셸은 발끝을 바라보며, 밖으로 나왔다.

이제 시간은 새벽을 넘어서고 있었다. 아침이었다. 성벽의 너머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안개가 걷혔고, 때문에 보였다.

높은 하늘. 이곳을 향해 날아오는 푸른 매 두 마리가.


“어···?”


매가 건물을 넘어갔다. 그리고 그 너머의 골목으로 떨어지듯 내려갔다.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정면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태양을 등지고 걸어오고 있었다.

비대하게 늘어진 그림자.

그 등을 창과 할버드가 교차하고 있었다. 허리춤에 달린 여섯 개의 대거와 석궁, 그리고 대포를 닮은 무언가와 두 자루의 검은 무척이나 거친 쓰임새를 무수한 상처들로 어렴풋이 알려주었다.

수많은 무기를 지닌 남자가 목표로 삼은 곳은 다름 아닌 이곳이었다.

보고 있는 것은 누구도 아닌 로셸이었다.

어떻게.

머릿속을 짧게 스쳐가는 의문.

남자는 그것을 읽었다는듯이 답했다.


“피 냄새를 지웠어야지···”


대답과 함께 가면을 벗은 그의 이름을,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들어 맞췄다.


“리시스···”


이름과 함께 드러난 그의 얼굴은, 한없이 창백하고도 어딘가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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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불사를 베어내는 검-1 21.05.06 52 0 11쪽
118 녹빛의 검은 백화(白花)를 피워낸다. 21.05.04 65 0 12쪽
117 재생 21.04.28 8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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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상실 21.04.24 65 0 9쪽
113 고정부(固定附) 21.04.24 66 0 11쪽
112 낙마 21.04.14 64 1 13쪽
111 구역질 21.04.12 82 0 11쪽
110 발자국 21.04.09 112 1 12쪽
109 발을 들이다 21.04.07 96 0 11쪽
108 아침에는 가재 21.04.03 106 1 11쪽
107 별들에게 호소하는 밤 21.03.27 76 1 13쪽
» 지우지 못한 단서 21.03.24 75 1 11쪽
105 붙잡히다 21.03.23 79 1 11쪽
104 주맥시(呪脈視) 21.03.22 83 1 11쪽
103 잭이라는 화제 21.03.19 83 1 12쪽
102 믿음, 극복, 퍼져나가라 21.03.17 71 1 13쪽
101 성당, 시체, 전투 21.03.13 68 1 24쪽
100 외전-사냥꾼들의 밤 21.03.12 64 0 22쪽
99 간단한 수수께끼 21.03.03 68 0 12쪽
98 이동계획 +1 21.02.18 82 1 11쪽
97 쥐구멍에서 +1 21.02.16 75 0 13쪽
96 촉수 21.02.08 103 1 11쪽
95 협력제안 21.02.08 120 0 12쪽
94 탄로 21.02.06 7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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