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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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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14,097
추천수 :
264
글자수 :
658,374

작성
21.02.0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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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촉수

DUMMY

“마약상들한테는 안 보이게 조심해. 걔네한테 걸리면 성가시거든.”


잭의 충고를 귀담아들으며,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

하수도의 밤은 달이 없음에도 선명했다. 흘러가는 오수보다 더러운 손을 가진 방문자들이 고요해야 하는 장소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먼 곳에서 내장사냥꾼의 마약을 팔고 있는 청년이 하나 보였다. 투기장으로 끌려갔던 과거가 떠오른 탓에, 멀쩡하게 그곳에 남아 뻔뻔스런 얼굴로 마약을 파는 그를 저도 모르게 쳐다보았다.

잘못한 건 나이다.


‘그를 때리지 않고 지나쳤다면, 별 탈 없었겠지. 죄 없는 사람을 살기 위해 죽일 일 따위는 없었을 텐데.’


나라는 걸 알면서도, 자기보호 본능이 그에게로 원망의 방향을 돌린다.


“어이, 뭐하고 있어. 안 따라오고. 이상형이라도 찾았나?”


앞서가던 잭이 발걸음을 멈춘 나에게로 돌아와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떼었다.

잭은 한 차례 마약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가, 뒤늦게 따라왔다.


“저 녀석을 때렸다가 잡혀왔었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어리석었던 건 자신인데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를 원망하고 있더군요.”

“어쩔 수 없는 거야, 사람이라는 게. 자신은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객관적인 시선마저 자신을 변호하는 데에 쓰지. 주관에서 벗어나지 못해.”


잭은 담배를 물었다. 성냥불을 옮겨 붙이고는 피겠냐고 물어왔다.

“괜찮습니다.”하고 거절하자, “그러냐.”하는 짧은 답이 돌아왔다. 연기와 함께 깊은 숨을 들이켠 잭은 천천히 연기를 내뿜으며 거의 새것인 담배를 바닥에 내던졌다.


“무튼, 요점은 그거지. 객관적이라는 말을 사람이 하는 이상, 자기 자신의 올바름을 주장하기 위한 개소리밖에 안 돼. 그런 면에서 보자면, 너는 조금 나은 편이야.”

“말이 많다. 빨리 와라.”


잭이 뒤로 넘어오는 탓에 맨 앞에서 걷게 된 엘무리아스가 하수도의 벽에 손을 짚으며 불렀다.

그가 손을 짚고 가만히 기다리자, 벽에서 빛나는 선들이 생겨났다. 선들은 빠르게 원을 그리고, 거미줄처럼 교차되더니 한 면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마법진을 형성했다.


-드드드드드···


벽돌과 벽돌이 스치는 잠잠한 소음과 함께 벽이 뒤로 밀려났다. 그곳에서 안으로 향하는 새로운 통로가 생겨났다.

암시장의 한복판, 목격자들이 열이 넘는데도 그는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저기는···?”

“쥐구멍이야. 암상인들이나 손님들이 순찰대한테서 숨으려고 만든 거지.”

“그렇게나 위험한 사람들입니까?”

“보통내기를 넘어서서 미친놈들이라는 소리밖에 안 나와. 직접 보면 알 거다. 뭐, 그 다음은 죽겠지만.”


끅끅 웃으며, 쥐구멍 안으로 들어서는 잭이었다.

암시장의 구석에 위치한 그곳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처음에는 잭을 주시하는 건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쥐구멍이 열렸다는 것으로부터 순찰대가 오는 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는 그저 쥐구멍을 열었다는 것만으로 순찰대가 오는 건 아닌지에 대해 묻고 다니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망을 보던 사람들은 상인들에게 추가 보수를 받고 먼 곳까지 순찰을 다녀오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위험한 거야···’


그동안 마주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며, 쥐구멍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서서히 돌아오는 벽이 통로를 반쯤 막은 걸 보고는 허겁지겁 달렸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고, 먼저 걸어가던 잭과 엘무리아스의 뒤로 따라붙을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자, 좁은 외길이 놓여있었다. 그것은 마치 징검다리와도 같았고, 그 양옆에는 어둠으로 가득한 낭떠러지가 있었다.


“어이, 리시스. 말하는 거 까먹었는데 말이야.”

“뭡니까, 잭.”

“신고식 잘하라고.”

“예···?”


먼저 건너간 잭의 말을 이해한 것은 발목에 차갑고 축축한 무언가가 휘감긴 뒤였다.

광원이라고 할 만한 것을 들고 있는 게 아니었기에, 그게 무엇인지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차라리 확인하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으아아아악?!”


발목을 휘감은 무언가가 강하게 끌어당겼다.

찰나만에 몸이 기울고, 길에서 벗어나 어둠속으로 떨어졌다.

찐득한 불쾌감에 빠졌다. 몸이 깊게 잠겨든다. 발목을 붙잡은 것과 같은 것들이 온몸을 휘감는다.

대거를 꺼내 끊으려 했으나, 휘두르기도 전에 팔을 붙잡혔다. 목을 감싸고, 옷 안으로 파고들며 마구 휘젓는다.

촉수다. 촉수에게 붙잡혔다. 촉수에게 만져진다. 촉수가 나를 만진다. 촉수가 쓰다듬는다. 촉수가 촉수하고 있다. 촉수가 촉수해서 촉수한다. 촉수촉수촉수.


“하하! 언제 봐도 아무리 봐도 재미있다니까!”


잭이 끅끅대며 웃는다. 그러는 와중에도 촉수가 가득하다. 머릿속이 촉수다. 온통 촉수. 촉수 그 자체. 스스로가 촉수라고 여겨질 만큼 촉수에 둘러싸여서 촉수한다.


“우웁···! 우웨엑···!”


입안으로 파고들어 목젖을 건드린 촉수가 구역질을 유발했다.

위액이 올라오자, 입안으로 들어온 촉수가 그것을 꿀렁거리며 먹어치웠다.

그 이후로 촉수는 서서히 몸에서 떨어져나갔다. 그나마 소화되던 음식물들이 입안에서 후두둑 떨어져내렸다.

질척이고 축축한 감촉들이 바닥을 짚은 손에서, 꿇고 있는 무릎에서 느껴졌다.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뜨거운 감촉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X발, 이거 뭐야···?”


허우적거리며 울고 있자니, 밧줄이 내려왔다. 위에는 낄낄대는 잭과 먼 곳을 바라보는 엘무리아스가 있었다.


“포이즌텐타클이라는 마물이다. 원래는 독에 있는 강한 산성으로 사람이나 짐승을 녹여서 먹어치우는 생물이지. 하지만, 이곳에선 독소를 빼서 방범용으로 쓰고 있다더군.”


엘무리아스가 설명하며, 나지막이 “나도 처음에는 당황했다.”하고 덧붙였다.

울분이 덜어지기는커녕 그가 똑같은 꼴을 당하는 장면이 상상된 탓에 또 한 번 신물을 쏟아냈다.

사라졌던 촉수가 슬금슬금 삐져나와 그것을 처리했다.

기분이라던가 감정 같은 사사로운 것들을 운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진심으로 더러웠다.


“의외로 좋아하는 녀석들도 있다고? 그거.”

“닥쳐.”


가관이었다며 비웃는 잭을 향해 쏘아붙였지만, 그런다고 말을 듣는 인간이 아니었다.

이길 수만 있는 상대였다면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밧줄을 타고 올라오자, 누군가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오셨습니까, 잭. 오늘따라 소란스럽네요.”


뒤로 묶은 푸른 머리카락. 덥수룩하게 기른 그것조차 가리지 못한 굴곡진 뿔. 이색적인 하얀색의 눈동자가 건조하게 나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나를 보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했다는 듯, “씻을 물을 준비하겠습니다.”하고 돌아갔다.


“언제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군.”


엘무리아스가 사라진 그녀의 뒤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팔란타(마족)가 지닌 마력은 엘프랑 상극이니 어쩔 수 없지.”


잭이 답하며, 잊을만하면 혓바닥을 짓누르는 촉수의 촉감 때문에 계속 무언가 쏟아내는 나를 보고 괜찮냐고 물어왔다.


"괜찮게 보입니까 지금?"

“이봐, 너무 그러진 마. 엘무리아스는 남정네밖에 안 떨어진 오른편에 갔으니까. 너는 방금 전의 저 아이와 같은 쪽으로 떨어진 걸 감사해야한다고?”

“직접 겪어보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나도 해보고는 싶은데. 저 촉수가 나를 먹어주질 않더군.”


미친놈. 솔직하게 내뱉고서 일어났다.


...


목욕을 마치고 식탁에 앉았다.

처음 보는 식상한 요리들이 가득했다. 개구리를 간장이라는 양념에 졸인 음식이라던가. 방금 전, 포이즌텐타클의 촉수로 만든 야채볶음 등등. 촉수의 감촉이 온몸에 남아있는데 그런 음식들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손을 멈추게 했다.


“여전히 자비 없는 메뉴구나, 하렐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잭뿐인 걸요. 저희 팔란타에 원한을 가진 마물로 요리를 해먹는다는 문화가 있음을 이해한 엘무리아스님은 맛있게 드시잖아요.”


하렐뉴의 문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야, 요리에 그녀의 소심한 배려가 깃들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알게 되었을 뿐이지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지식이 하나 늘었다. 그걸로 끝. 식욕 하나 생겨나지 않았다.


“저는 아직도 혀에 촉수가 들어와 있는 것 같아서··· 성의는 정말로 감사합니다만···”

“키스라도 해드릴까요? 하고나면 좀 나아져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냥 먹을 게요···”


그렇게 식감으로나 맛으로나 영 좋지 못했던 식사를 마쳤다. 가장 맛있었던 게 개구리를 간장에 졸인 음식이었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엘프의 입맛과는 제법 일치했는지 의외로 맛있었다는 평을 내리는 엘무리아스를 존경스럽게 바라봤으나, 잠시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고 해놓고 핼쑥한 표정으로 돌아오는 그의 모습에 곧바로 생각을 거두었다.


‘잭은 이걸 매일같이 먹는 건가···’


미쳤다는 감상을 넘어서서 대단하기까지 했다.


“힘이 좀 나셨나요?”


부대끼는 속을 잠재우려 필사적으로 애를 쓰는 나에게 하렐뉴가 커피를 대접해주었다.

그녀는 식탁에 커피를 올려놓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모았다.

어딘가의 시종이기라도 했던 걸까. 가지런히 손을 모은 채로 서있는 자세가 몹시 자연스러웠다.


“상당히 피폐할 거라고 잭이 말했거든요.”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막 만났을 때 이후로는 죄책감이나 무력감을 느끼지 않았다. 자책을 하지 않았고, 무거운 생각들을 가지지도 않았다.


“잭이 배려를 하다니, 놀랍군요.”

“어머, 그런가요? 저는 오히려 리시스님의 말이 놀라운 걸요.”

“···그렇습니까.”

“겉으로는 세상의 모든 악이 자신이라는 양 행동해도, 사실은 무척이나 좋은 사람이랍니다. 친한 관계인 줄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나보네요. 죄송해요.”


사과하는 하렐뉴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그녀가 내린 커피를 홀짝였다. 쓴맛으로 위장한 약간의 신맛. 그곳에는 약간의 흙 냄새와 상큼한 향기가 뒤섞여있었다.


‘아아, 맞다. 예전에는 카페를 했었구나. 나는.’


잊고 있던 과거의 일상들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자기도 모르게 커피잔을 그립게 쳐다보았다.


“맛있네요. 페르티안인가보죠?”

“어? 어떻게 아셨어요?”

“저희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원두였거든요.”


작가의말

 꼭 촉수에게 당하는 게 예쁜 미소녀여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예? 있다구요?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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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지우지 못한 단서 21.03.24 74 1 11쪽
105 붙잡히다 21.03.23 79 1 11쪽
104 주맥시(呪脈視) 21.03.22 83 1 11쪽
103 잭이라는 화제 21.03.19 83 1 12쪽
102 믿음, 극복, 퍼져나가라 21.03.17 71 1 13쪽
101 성당, 시체, 전투 21.03.13 68 1 24쪽
100 외전-사냥꾼들의 밤 21.03.12 64 0 22쪽
99 간단한 수수께끼 21.03.03 68 0 12쪽
98 이동계획 +1 21.02.18 82 1 11쪽
97 쥐구멍에서 +1 21.02.16 75 0 13쪽
» 촉수 21.02.08 103 1 11쪽
95 협력제안 21.02.08 120 0 12쪽
94 탄로 21.02.06 7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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