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가 한차례 지났다. 우기가 시작되어서 일까? 산은 컴컴하니, 어둠의 장막을 드리우고 있었다.
능선의 초입에 접어들어 신독은 사공운과 용설아를 돌아보며 말을 했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뭘 말인가?"
기진한 용설아를 부축한 사공운이 느릿하게 반문했다.
"지금은 여름입니다. 우기로 인해 산은 잔뜩 물을 품고 있지요. 본래 난 길을 따라 봉성을
향해 가면 빠른 시간 안에 갈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우리의 발자국을 숨기는 것은 어렵습니
다. 추새꾼들은 금방 발견할 것입니다."
"다른 방법은요?"
위험을 계속 겪어서일까? 단아하던 용설아의 자세는 많이 흐트러져 있었다. 사공운이 계속
부축을 해 왔지만 용설아의 기력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용설아가 숨을 몰아쉬며 묻자, 사공
운이 측은한 듯 바라본다. 사공운의 시선을 보며 신독은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끊어 말했
다.
"나 있는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산의 맥을 따라 길을 만들어 가는 방법입니다. 조금
힘들긴 하지만, 혹시 모를 매복은 피할 수 있지요. 저들이 매복을 해있을 만한 곳은 피해서,
오히려 저들의 덜미를 잡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그게 가능한가?"
"예, 아마 저들은 이 산세에 대해 저만큼은 모를 겁니다. 저는 산에서 자랐고 산에서 무공을
닦았죠. 제 무공의 근원도 산과 연관이 많습니다. 조금 힘들긴 하겠지만, 시간 차이도 그리
많이 나지는 않을 겁니다."
사공운은 신독을 바라보며 의아하게 물었다.
"그런데, 왜 우리보고 결정을 하라 하는가?"
"무림이 인정하는 강호 10대 고수이시지만, 산에서는 활동에 제약이 많습니다. 산을 모르는
자와 산을 아는 자가 산에서 싸운다면 무공의 차이를 상쇄하고도 남지요. 제가 굳이 결정하
시라 한 이유는 이 산을 넘는 중에는 저의 의견과 판단을 전적으로 존중해주셔야 하기 때문
입니다."
사공운은 웃었다. 이 친구는 세세한 곳까지 신경이 미치는 사내였다. 나이답지 않은 노숙함
이었다.
"자네 말과 지시를 따르겠네. 용소저도 그러실 것이네."
"저도 사영환님 말씀대로 신소협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신독은 빙긋 웃으며 머리를 숙였다.
"두 분의 양보에 감사드립니다. 몇가지 주의사항만 말씀드리죠. 이 산은 깊숙이 들어갈수록
높고 가파른 산세가 이어집니다. 또한 수목이 번창해서 낮이 오히려 어둡습니다. 지금은 우
기라 흙도 물을 잔뜩 머금어 무너지기 일수이죠. 제가 가는 곳으로만 따라 오셔야 합니다.
제가 앞장을 서며 길을 뚫지요. 용소저께서 가운데 서시고 사대협께서 맨 뒤를 맡아 주십시
오. 사대협께서 지켜 보시다 용소저가 버틸 수 없을 때, 쉬자고 말씀하십시오. 물론 전음으
로 하셔야 합니다. 이제부터 산 안에 들어가면 일체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사공운과 용설아는 마음이 든든해짐을 느꼈다. 오랜만에 의지할 곳이 생긴 마음. 둘은 마주
보며 미소를 주고 받고는 앞장선, 신독을 천천히 따르기 시작했다.
삼인의 그림자는 숲에 감싸여 조금씩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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