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위무사가 되겠습니다."
사공운은 눈앞에 선 이 낯선 청년을 바라보았다. 스물 두엇 되었을까. 탄탄한 몸에 단단해
보이는 눈매가 호감을 느끼게 하는 청년이었다. 지금은 모든 동료를 잃고 풍백과의 대결로
심신이 지친 상태, 눈 앞의 청년이 한편이 되준다면 크게 힘이 될 듯 했다. 태양혈은 밋밋하
고 외공수련의 흔적은 뵈지 않으나 잘 갈무리된 푸른 눈빛이 범상치 않은 내력을 풍기고 있
었다.
"내가 자네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풍백님이 보내셨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가 왜? 아니, 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비록 적이었으나 칼을 섞은 우정이야말로 고
귀하지 아니한가. 사공운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증명할 수 있나?"
"필요합니까?"
청년은 사공운을 바라 보았다. 나이답지 않은 깊숙이 정제된 눈은 속내를 알 수 없게 했지
만 일렁이는 뜨거운 푸른빛은 그가 열혈의 사내임을 알게 해 준다.
위험한 사내는 아닌 듯 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는 상황.
"지금 내 상황에선 어쩔 수 없네. 이해하게."
청년은 씨익 웃더니, 두 주먹을 들고 사공운의 맞은 편에 있는 바위를 향해 걸어갔다.
한 수를 보여주어 입증할 생각인가?
청년의 주먹은 외공 단련의 흔적이 없이 깨끗해보였지만, 강철로 만들어진 깨끗함이랄까, 말
끔하면서도 강인함이 느껴지는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주먹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손가락의 한 마디씩만 오무려 마치 곰의
발바닥을 보는 듯한 이상한 자세였다.
바위 앞에 서서 일자로 마주서서 오른손을 끌어당겨 옆구리에 붙이고 왼손을 가슴앞에 들어
바위를 가리켰다.
"타아핫!"
한소리 낭랑한 기합이 울리며 청년의 다리를 축으로 허리의 반진력을 이용한 왼팔의 현란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흙먼지 가득 날리는 장내에 바람이 한줄기 스쳐간다.
모습이 드러난 바위에는 마치 곰발바닥으로 찍어진듯한 묘한 자국이 가득차 있었다.
무심한 듯 청년은 사공운을 쳐다보았다. 알겠냐는 듯이.
사공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기이한 형태의 변형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풍백의 투로를
따르고 있었고 풍백의 기백과 혼이 담긴 일초였다.
투로는 흉내낼 수 있으나 기백은 흉내낼 수 없다. 이 자는 풍백에게 무공을 배운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와는 무슨 관계인가?"
"제 의형(義兄)입니다."
사공운은 이 사내를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은 이 정도의 사내의 도움은 절실한 상황.
"그런데, 이름은 뭔가?"
사내는 비로소 활짝 웃으며 사공운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형님의 친구로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든 사내는 웃으며 말했다.
"신독(愼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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