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양쪽 다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장르문학을 좀 더 좋아하죠. ^^
순문학과 장르문학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고민을 좀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장르문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좀 이상한 표현이거든요. 문학 내에 여러가지 장르가 있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장르가 장르문학이라니. 이상하죠?
줄리언 반즈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을 두고 이동진 평론가님께서는 “장르소설처럼 읽어서는 안된다.”라고 평하셨습니다. 저는 이 평을 듣고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장르소설처럼 읽는 것은 뭘까요? 그럼 과연 순문학처럼 읽는 법이 따로 있는 걸까요?
아래 서은결님께서 올리신 글을 보면서 위의 질문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과연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차이가 뭘까요? 저는 그것이 문장이나 문체에 대한 접근방식이나 사고방식의 차이점이라고 봅니다. 예전에 소설가 김영하님께서 "소설의 문장은 사실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말을 하신적이 있는데,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몇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이해가 됩니다. 조악하지만, 설명하자면 이런거죠. 장르문학의 문장들은 지속적으로 사실을 전달합니다. 누가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일이 벌어졌고, 누가 어떻게 느꼈고, 이런 식으로 벌어지는 사실들을 계속 나열하죠. 하지만 순문학의 문장은 다릅니다. 사건의 전달보다는 인물의 심리, 감정, 갈등 등과 같은 내면적인 부분을 좀더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그런 심도있는 묘사들로 인해 사건은 더욱 깊이를 갖게 됩니다. 이렇게 만들기 위해 순문학의 작가들은 문장 하나, 문단 하나를 몇달, 길면 몇년까지도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그렇기때문에 문장이 남기는 심상도 차이를 낳게 되죠. 순문학의 문장은 문장 하나가 남기는 심상이 평생을 가기도 합니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퇴고에도 있겠죠. 장르문학의 특성상 시장에 빨리 선보여야하는 경제논리로 인해 제대로된 퇴고를 거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또하나의 차이점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문피아의 연재글은 그 성격상 초고에 가깝다고 봅니다. 미리 적어둔 분량을 다시한번 읽어보며 오타 정도를 수정하고 연재하게 되죠. 하지만 제임스 스콧 벨에 의하면 퇴고라 함은 초고를 완성하고 난 후에, 그러니까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하고 난 후에, 몇주에서 몇달가량을 잊고 있다가 그 소설에 대해 완전히 잊었을때 쯤 다시 꺼내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을 하며 수정할 부분을 찾습니다. 이때는 오타를 수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문장이나 문단, 단락등을 완전히 들어내고 다시 쓰기도 합니다. 그렇게 전체적으로 퇴고가 끝나면 또 시간을 두고 묵혔다가 다시 퇴고를 합니다. 그렇게되면 문장이 점점더 간결하게 압축되고 또 압축되며 함축적인 의미를 가진 문장으로 재탄생하게 되죠. 그래서 순문학은 문장 하나하나를 진지하게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장르문학은 그렇지 않죠. 빨리 읽는 사람은 하루에 몇권씩도 읽을 수 있으니까요. 눈으로 휙휙 훑으며 읽고 넘어가도 사건 진행만 따라간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죠.
사실, 뭐가 옳고 그르다 하는 가치판단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장르문학과 순문학이 서로 배울것이 있다고는 믿습니다. 장르문학은 순문학과 같은 완성도 높은 문장을 추구해야 할 것이며, 순문학은 장르문학과 같은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순문학과 장르문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사라져야 옳겠지요. 그렇게 될 날이 오길 바랍니다. ^^;
적어놓고 보니 주제넘은 글 같네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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