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검게 물들어 있다.
빛을 잃어버린 태양, 죽어버린 대지. 세상의 모든 악의가 농축되어 있는 듯한 구름이 온 땅을 뒤덮으며 서서히 영역을 넓혀 가고 있었다.
"후....."
얼어붙은 숨결을 내쉬던 루시페르는 떨리는 손을 들어보였다.
새하얗게 죽어버린 팔. 파국이 올 것을 알면서도 무리를 한 대가.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후부터는 손익분기점이 교차한다. 더 이상 성검을 드는 것은 그에게 있어 마이너스 요소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루시페르를 파멸시킨 성검 문 라이즈는 그를 파국으로 이끄는 대신 인류를 구원할테니까.
그것으로 충분하다.
"자, 이제 마지막이야. 곧 성검의 가호가 풀리게 되니까."
어둠 저편 허공에서부터 감미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목소리를 차갑게 잘라낸 루시페르는 뚜벅 뚜벅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번뜩!
그는 팔을 쑤시는 통증에 잠에서 깨어났다.
테이블에 앉아 꾸벅 꾸벅 졸고 있는 레니를 발견한 루시페르는 무방비 상태의 그녀에게 슬립을 건뒤 침대로 옮겨 재웠다.
아직은 괜찮다. 그의 팔은 지금껏 화상 이외에 어떠한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
파국은 멀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