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햇살 아래 하얀 신전이 빛난다. 둥그런 기둥이 백룡이 양각된 지붕을 받치고 문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안이 훤히 비쳤다. 하얀색으로 도배된 신전의 가운데에 활활 타오르는 불을 품은 화로가 보인다. 화로 밑에는 은발을 길게 늘어트린 여인이 오래되어 바스라질 것만 같은 서책을 들고서 자신의 발치를 내려다보고 있다. 여인의 발치에는 두 쌍의 남녀가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여인이 서책을 한 장 넘기며 말문을 연다.
“이곳까지 오는 길이 고됐을 거라 생각하네. 한숨 자도록 하게.”
여인의 말이 잔잔한 울림을 가지고 두 쌍의 남녀를 덮친다. 그들은 무언가를 받아들이듯 목을 뒤로 힘껏 젖히더니 이내 쓰러지고 만다. 바람이 여인의 품안으로 들어와 여인이 들고 있던 서책을 훔쳐본다.
‘진실한 정, 과거로의 여행.’
여인이 피식 웃더니 화로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여인이 화로에 서책을 집어넣는다. 거센 바람에도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서책을 먹고는 스러져간다.
“끝이 다가오는구나.”
*
서란, 국력 798년.
17번째 신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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