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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스토리

사방신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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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woon)
작품등록일 :
2013.06.16 13:43
최근연재일 :
2013.09.29 22:31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42,690
추천수 :
1,055
글자수 :
286,264

작성
13.06.16 18:32
조회
1,481
추천
43
글자
14쪽

제 1장 시작의 장(8)

DUMMY

은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농장 안으로 들어섰다. 농장 주위로는 철조망으로 된 울타리를 빙 둘러 세워놨고 입구에서 봤을 때 오른편에 컨테이너로 된 건물이 보였다. 왼편은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기왓장으로 된 작은 단층집이었다. 집은 현관이 없이 대들보와 나무를 덧 대어 놓은 반질반질한 마루가 바로 나와 있고 그 너머에 바로 방문이 있는 옛날 방식으로 되어 있었다. 마당 이곳저곳에 빗물이 고여 웅덩이가 생겼고 한쪽 처마 끝에는 낡은 구식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계세요?"


찰박 소리를 내며 그의 장화가 차마 보지 못한 물웅덩이에 빠졌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우비로 쌓인 그의 몸을 한층 더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빗방울은 그의 우비를 타고 얼굴로 흘러내려 그는 계속 손으로 얼굴을 훔쳐야만 했다. 그는 물웅덩이를 피해 조심스레 집 근처로 다가가고 있었다.


"누구요?"


거친 빗소리 사이로 늙수그레한 음성이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댁에 이상한 일이 있으시다 고요?"


그는 제웅이 일러준 대로 목소리의 주인에게 말했다. 목소리의 주인, 김씨 영감은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뭐? 누가 보낸 거요? 무당인지 수호잔지 일없소."


김씨 영감은 그때 일을 말하기 꺼렸다. 붉은 눈의 청년이 그 짐승과 사라지고 난 뒤, 겨우 정신을 추슬러 경찰에 전화했으나 경찰은 꿈을 꾼 거 아니냐며 되려 그를 타박했다. 다음날 강씨와 수의사가 함께 와서 돼지들을 조사했는데 내장이 완전히 뽑혀 나가 있었다. 노인은 다시 그 이야기를 했으나 수의사는 그런 짐승은 본 적 없다고 산짐승을 잘못 본 거 아니냐고 되려 되물었고 말하는 자신도 터무니없다 생각한 그도 산짐승을 잘못 본 거라 여기고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누가 부른 것인지 무당인지 수호자인지가 오게 되었고 지금 다시 그 일을 묻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은하는 답답했다. 이곳은 노인의 땅이었고 노인의 영역이었다. 사실 수호자의 활동이란 가장 먼저 해당하는 영과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존재했다.


'우리의 활동은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연이 없으면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흔히 무당을 생각해 봐.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무리 강력한 귀신이 들러붙어 있어도 그 사람 본인이나 가족, 친구가 무당에게 직접 부탁하지 않으면 무당은 귀신을 쫓을 수 없어. 우리에게 인연이란 그런 거다.'


은하는 제웅의 말을 떠올렸다. 이곳에서 은하는 타인이었고 이수길의 영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가 이수길의 영과 인연을 맺기 위해 여기 노인과의 인연이 반드시 필요했다. 인연은 수호자에겐 필수적인 조건이며 그만큼 제한적인 요소였다. 그것을 위해 그는 노인과 실랑이 중이었다.


"그럼 따뜻한 물이라도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다시 비를 뚫고 내려가려니 엄두가 나지 않네요."


노인은 그 말에도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은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때 문이 열리며 김씨 영감이 마루로 나왔다. 시골의 인심이란 아직 박하지 않은 것인지 노인의 손에는 이리저리 이가 빠지고 낡은 커피잔이 들려 있었다. 노인은 하얀 잔을 내려놓으며 은하에게 턱짓을 했다. 옛날에는 제법 고급스러웠을 하얀 잔 속의 갈색 커피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자, 이거나 들고 가. 그러게 비도 오는데 뭣 하러 여기까지 기어와."

"감사합니다."


은하는 노인의 타박에 멋쩍게 웃으며 마루 끝에 걸터앉았다. 훌훌 불어가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따스함이 온몸에 퍼지는 듯했다.


"아직 어린 학생이 왜 그런 것에 관심은 두는가."


사실 은하 자신도 왜 이 시험에 이렇게 애를 쓰는지 의문이었다. 이 학교에 굳이 남기 위해 시험을 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득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어쩐지 마음 한구석에서 반드시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이 외진 곳에 혼자 살면 외롭지 않으세요?"

"외롭긴. 돼지랑 닭이 내 새끼야. 내 새끼들 있는데 뭐가 외로운가."

"그래도 한 번씩 사람의 온기가 그리울 때가 있잖아요."

"온기라……. 가끔 그럴 때도 있긴 하지."

"그리고 이렇게 산에 가까이 있으면 산짐승도 종종 내려올 텐데 무섭진 않으세요?"

"허, 무섭긴. 짐승만도 못한 사람도 있는데."

"하하. 산짐승이 가축들에게 해를 끼치진 않나요?"

"산짐승들이 가축을 죽여 놓고 가긴 하지. 쯧, 몇 년 전에도 멧돼지가 돼지들을 다 죽여 놨어."


은하는 작전을 바꿔서 영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로 했다. 할머니와 17년을 함께 산 은하였다. 노인과의 대화는 그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투박함 속에 묻어나는 정이 그에겐 익숙하게 와 닿았다. 노인이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문득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할머니의 모습이 가물가물해진 기분이 들어 불쾌했다. 그는 이내 고개를 떨쳤다.


"그럼 혹시 최근에도 산짐승이 내려온 적 있나요?"

"글쎄. 그게 산짐승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도 보긴 봤지."

"자세히 말해 주실 수 있으세요?"


김씨 영감은 은하가 그 일에 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을 진작에 눈치챘으나 자신을 마치 친할아버지 대하듯 하는 그가 손주같이 귀엽게 느껴져 대화를 좀 더 하고 싶었다. 자신이 이런 젊은 이와 대화를 한지가 언제였던가. 노인은 쯧하고 혀를 찼다.


"허, 그렇게 듣고 싶다면 해주지. 아직도 귀신에 홀린 기분이여."


김씨 영감은 그때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은하는 김씨 영감의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귀담아듣곤 축사와 방문도 살폈다. 축사에는 아직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은하는 그것을 유심히 살펴봤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은하가 진심으로 감사를 표시하자 노인은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나야 뭐 한 게 있나. 근데 왜 그리 그 짐승을 궁금해 하는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단호하게 말하는 은하의 모습에 노인은 내심 걱정이 되었다.


"설마 그 짐승을 잡으러 가는 건 아니겠지. 전에 그 청년이 벌써 진즉 산속으로 내쫓았다니까. 내가 꿈을 꾼 걸 수도 있고…."


김씨 영감이 은하를 보며 만류했다. 앳된 모습의 은하는 이제 막 중학생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작고 약해 보였다. 자신의 손주도 그보다는 더 크고 강해보였다.


"커피 잘 마셨습니다. 제가 꼭 그 짐승을 잡아올게요."


은하가 김씨 영감을 보며 씩 웃었다. 노인은 그의 결심에 찬 표정을 보며 더는 그를 잡을 수 없었다.


"몸조심하게. 목숨보다 중한 건 없네."


김씨 영감이 멀어져 가는 은하의 등을 향해 외쳤다.




산속은 컴컴했다. 아직 한낮이었으나 나무들 사이로 두터운 물안개가 껴있어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은하는 속으로 덜컥 겁이 났다. 이수길의 영은 내장을 파먹는다 하지 않았는가. 시커먼 나무 사이에서 이수길의 영이 갑자기 튀어나와 그의 목덜미를 짓누를 것 같았다. 그는 이내 고개를 저어 나쁜 생각을 떨쳐 버렸다. 사방에는 비가 떨어지는 소리만 요란하게 날 뿐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가끔 산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빗속을 날아다니거나 울음소리를 냈다. 그럴 때마다 은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빗방울이 나뭇잎에 떨어져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꼭 자신에게 다가오는 무언가의 소리 같아서 그의 오감은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으르렁.

물안개 속 어딘가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은하는 사방을 살폈으나 짐승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고, 그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였다. 후두둑 거리며 비가 나뭇잎을 타고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마치 비가 장막이 되어 소리의 근원을 감추는 것 같았다. 이때 크르르 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는 소리의 위치를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산의 위쪽에서 들려왔는데 그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소리가 난 쪽을 향해 빗속을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욱한 물안개 때문인지 끝도 없이 퍼붓는 비 때문인지 한참을 달려도 소리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는 길을 잃었다.


'허억…. 허억….'


은하는 숨이 차오름을 느꼈다. 비를 맞은 우비는 쇠를 달아놓은 듯 너무나 무거웠고 두발을 감싼 장화는 빗속에 미끄러지기 일 수였다. 비는 우비를 뚫고 그의 얼굴을 연신 때려서 그는 계속 얼굴을 닦아내야 했다. 그의 양손과 얼굴에 하나둘씩 작은 생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산 특유의 풍경 때문일까.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를 맞아 요란하게 움직이는 나뭇가지들이 살아서 꿈틀대며 그의 뒷덜미를 낚아챌 것 같았고 이수길의 영이 나무 뒤에 숨어 그가 힘이 빠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후두둑 하는 빗물 사이로 이수길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때 캐갱 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는 그곳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서 뛰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미끄러졌을까. 마침내 그는 소리의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는 짙은 피 냄새가 물안개를 따라 퍼지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진돗개처럼 보이는 누렁이가 땅바닥에 누워 숨을 헐떡였다. 개의 뒷다리는 뼈가 드러날 정도로 거칠게 찢겼는데 마치 짐승의 송곳니가 뒷다리 살점을 물고 뜯은 듯했다. 누렁이의 뒷다리에서 피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은하가 누렁이에게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상처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그가 누렁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누렁이가 반가운 듯 귀를 뒤로 젖히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는 자신의 셔츠를 길게 찢어 누렁이의 다리 부분을 싸맸다. 누렁이가 끼잉 하고 소리를 냈으나 은하의 의중을 파악한 듯 은하의 손을 핥았다.


'후, 아무래도 여기 가까이 있나 보는군. 이를 어쩐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누렁이를 두 손으로 안아 들었다. 목줄을 한 것으로 봐선 주인이 있는 듯했는데 이곳에 버리고 갈 순 없었다. 그는 두 팔로 누렁이를 단단히 쥐고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천천히 뒤를 돌아섰다.


그리고 그의 뒤에 이수길의 영이 서 있었다. 은하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있음 직한 큰 키에 온몸에 지저분한 검은 털이 숭숭 나 있었고 벌겋게 충혈된 큰 눈과 비정상적으로 큰 입은 오감이 저릴 정도였다. 은하는 이런 모습을 한 영은 처음 봤다. 그가 보는 영은 항상 하얀 공의 형태였고 기이한 꿈틀거림 외에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주위를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다. 만약 김씨 영감에게 대강의 설명이라도 듣지 못했다면 그는 깜짝 놀라서 누렁이를 떨어뜨렸을 것이다. 지금도 누렁이를 잡은 두 손의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생명의 무게가 새삼스레 무겁게 그의 두 팔을 짓눌렀다. 이수길의 영을 본 누렁이는 크르르 거리며 위협하듯 이빨을 드러냈다. 문득 따스한 누렁이의 온기가 느껴졌다. 은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곳에서 마냥 당할 순 없었다.


"이수길! 무엇 때문에 이승에 미련이 남는지 모르겠지만 넌 이미 죽었다! 이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은하가 그를 보며 크게 소리쳤다. 이수길의 영은 그의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품에 안긴 누렁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죽은 자가 산 자에게 관여하면 안 돼!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라!"


은하는 그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다시 한 번 크게 외쳤다. 두 손이 봉쇄된 지금으로선 크게 외치는 것 말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말 알지? 우리에겐 그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 영혼이 얼마나 끔찍한 모습일지 직접 보기 전에는 알 수 없거든. 그래서 항상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해. 요즘 말로 무슨 일이 생기든 절대 멘붕 오면 안 된다는 거야.'


은하는 이곳에 오기 전 제웅에게 들은 것을 떠올리며 새삼스레 그가 고마워졌다. 이수길의 영은 큰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그의 손에 안긴 누렁이를 빼앗을 궁리를 하는 것 같았다. 누렁이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은하에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었다.


"이수길, 죽은 자가……. "


은하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뒤 굴 뒹굴 눈을 굴리던 이수길의 영이 크고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그대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것과 동시에 은하에 안겨있던 누렁이도 용수철이 튕겨 나가듯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이수길의 영을 물었다.


"키에에에엑!"


영이 기묘한 소리를 내며 누렁이를 떼어내려 하자, 누렁이가 먼저 알아차리곤 그에게 떨어져 나와 산 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수길의 영도 이에 뒤질세라 그 뒤를 네발로 쫓기 시작했다. 은하도 그들 뒤를 놓치지 않고 그들을 따라 달렸다.



작가의말

 늘 길을 올릴 때마다 주눅이 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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