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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스토리

사방신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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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woon)
작품등록일 :
2013.06.16 13:43
최근연재일 :
2013.09.29 22:31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42,689
추천수 :
1,055
글자수 :
286,264

작성
13.06.16 14:22
조회
2,162
추천
36
글자
21쪽

제 1장 시작의 장(3)

DUMMY

은하가 교무실에 들어서자 선생님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집중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교무실 안은 너무나 조용했고 그의 발소리는 너무나 크게 들렸다. 은하는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담임선생님의 자리로 걸어갔다. 선생님은 멀리서 은하를 보고 활짝 웃었다.


"왔구나. 반 분위기는 어때?"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래. 앞으로 차차 적응하면 되지."


선생님께서 싱긋 웃으며 은하의 팔을 쓸어내렸다.


"내가 부른 이유는…. 아, 저기 오네."


선생님께서 멀리 교무실 입구를 바라보며 웃었다. 마침 커다란 짐승이 들어서고 있었다. 적어도 은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전학생이 있다고요?"


굵직한 목소리와 함께 걸어온 짐승, 아니 사람은 그야말로 거구였다. 깔끔하게 정돈된 스포츠머리에 키는 190cm가 넘어 보였고 어깨가 떡 벌어지고 골격도 좋아서 그야말로 탄탄해 보였다. 165cm 정도의 다소 작은 키의 은하의 옆에 나란히 서 있으니 심하게 차이가 났다. 게다가 그는 위아래로 체육복을 입고 있었는데 단정하게 교복을 입은 은하와 비교가 되어 언뜻 보면 삼촌과 조카처럼 보였다.


"하하, 너희 둘 정말 잘 어울리는데?"


선생님께서 우스워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둘을 번갈아 보았고 교무실의 선생님들도 둘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흠흠, 은하야, 인사하렴. 여기는 선배이자 기숙사장인 이제웅이야."

"반갑다. 네가 전학생이구나. 난 이제웅이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제웅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은하는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했다.


"제웅아, 여기는 전학생 조은하. 아직 여기가 많이 낯설 거야. 네가 많이 도와줘."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쇼."




선생님은 둘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제웅을 향해 당부했다. 제웅은 호탕하게 웃으며 은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눈을 찡긋거렸다. 은하는 정말이지 이 곰 같은 선배의 무거운 손을 치우고 싶었으나 선생님 앞이라 차마 싫은 내색을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 제웅의 웃음소리는 어찌나 큰지 교무실이 쩌렁쩌렁 울리는 것 같았다. 선생님들은 그 소음이 익숙한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그러나 귀를 후비는 선생님들도 몇몇 보이긴 했다.


"그래. 제웅이가 은하 학교 구경 좀 시켜줘라."

"네. 하하하."


선생님도 제웅의 웃음소리에 귀가 따가운지 귀를 후벼 파며 은하를 바라봤다.


"은하야, 오늘은 첫날이니까 학교에 적응하는 게 우선 일 거야. 수업은 선생님께서 말해둘 테니까 오늘은 일단 제웅이 따라다니면서 학교 안내를 받으렴. 우리 학교가 제법 커서 꽤 걸릴 거야. 그리고 제웅인 기숙사장이니까 기숙사 안내도 받고. 하루 만에 적응하긴 쉽지 않겠지만 자주 다녀야 하는 중요한 곳은 알아둬야 할 거야."

"걱정 마십쇼. 제가 확실히 안내해주겠습니다. 구석구석. 하하."

"그래그래. 어서 가봐라."


이렇게 은하는 어깨를 제웅에 잡힌 채로 교무실을 나섰다.



* * *



백호의 수호신을 가진 백가는 현재 사방신의 가문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진 것으로 손꼽혔다. 특히 현재의 후계자인 백서호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다 가진 선택된 아이였다. 전전 대의 후계자이던 그의 할아버지는 늘 서호의 든든한 후원자였으며 특히 할머니는 그가 원하는 것이면 뭐든지 해주었다. 그래서 서호는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었고 전혀 부족함 없이 자란 타고난 혈통이었다.

게다가 백가는 현무의 후계자인 현가와도 사이가 돈독하여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세력을 자랑했다.


현씨 가문의 후계자인 현택우는 서호와 나이가 엇비슷했으나 서호는 17세, 택우가 18세로 택우가 한 살 더 많았다. 둘은 어릴 때부터 왕래를 하여 친형제와 다름없이 커왔다. 서호는 매사에 당당하고 생각과 감정의 숨김이 없는 솔직한 성격이었으며 항상 자신감에 차있었으나 다소 성급하고 다혈질적인 면이 있었다. 그에 비해 택우는 성격이 느긋한 편이고 서호와는 반대로 세심하고 다정하여 사람을 대할 때는 항상 웃으며 대했다. 자상한 택우는 모든 이에게 호감 가는 성격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그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둘의 성격은 기름과 물 같이 달라 보였으나 택우가 서호를 어릴 때부터 매우 좋아해서 둘은 항상 붙어 다녔고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서호 역시 자신이 내키는 대로 하는 자유분방한 상태였으나 택우의 말은 친형처럼 항상 잘 듣고 잘 따랐다. 그래서 택우가 한 살이 더 많음에도 둘은 편하게 반말을 하며 서로 대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둘은 외모도 사뭇 달랐는데 서호는 약간 반곱슬로 머리가 살짝 길었으며 눈은 컸으나 눈 꼬리가 올라간 사나운 눈매에 콧대도 높고 턱 선도 날카로워 전체적으로 기가 세고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에 반해 택우는 곱슬기가 없이 차분한 생머리에 눈썹까지 내려오는 깔끔한 앞머리로 속눈썹이 긴 두 눈은 항상 웃음을 띠고 있었고 웃을 때 입가에 보조개도 살짝 패여 자상하고 호감 가는 외모였다.


서호의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는 마치 우두머리의 그것과도 같아서 많은 학생이 그를 잘 따랐다. 게다가 그는 매사 감정에 솔직해서 사람을 대함에도 거짓이 없었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했다. 그래서 서호가 학생회장의 자리에 오를 때도 학생들은 전혀 불만이 없었고 그가 택우를 총무로 내세울 때는 오히려 반색하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방신의 수호자 중 두 명이 학교 일을 나서서 하겠다는데 감히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곳에서 사방신이란 특별했다. 그리고 택우는 항상 웃고 다니며 친근감이 있어서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그는 차별 없이 모두를 잘 대해줬으며 서호와는 반대로 세심하고 상냥해서 서호가 학생회장이 된 것보다 그가 총무가 된 것을 오히려 더 반기는 분위기였다.


서호와 택우는 반에서도 나란히 앉아있었다. 서호는 창가에 택우는 그의 바로 옆자리였다.


"어이, 택. 너 어떻게 생각하냐?"


서호가 택우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어봤다. 서호는 택우를 택이라 불렀고 지금은 자연스레 그것이 호칭이 되어 모두가 그를 택이라 불렀다.


"음. 글쎄. 전학생?"


택우가 서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택우는 눈치가 빠른 편이라 서호가 무언가를 말하기도 전에 그의 생각을 잘 읽었다. 그는 서호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듯했으며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할 때는 마음이라도 읽는듯했다. 이제 서호에게는 그런 택우의 행동이 익숙해서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학교에 전학생이라니. 그전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나?"

"아니, 전혀 없었지."


택우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걸 어떻게 아냐? 택, 네가?"


서호가 날카롭게 택우를 바라보며 쏘아붙였다. 택우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하하, 적어도 이 학교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지. 우리는."

"허, 늘 여유만만 하구만?"


서호가 눈을 가늘게 뜨며 택우를 노려봤다. 택우는 여전히 웃으며 친근한 눈빛으로 서호를 바라봤다. 서호는 그런 택우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관두자. 하여튼 전학생, 그 녀석에게 영감이 전혀 안 느껴졌단 말이야."

"음."

"택, 너는 느꼈냐?"

"그러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네."

"너 전혀 관심이 없구나?"

"하하. 남자한테 관심 둬서 뭐하겠냐? 내 관심은 너뿐인 거 알잖아?"


얼굴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웃으며 농담을 건네는 택우를 빤히 바라보는 서호의 눈 꼬리가 올라갔다.


"되도 않는 헛소리 하지 말고. 아, 전학생 얼굴은 반반하던데? 귀엽게 생겼던데 네 취향 아냐?"


서호가 심술궂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봤자 남자지. 아랫도리에 뭐 달린 거에는 관심 없어."


택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친근하게 서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뭐야? 저질. 우리 학교 신사가 여자나 밝히는 걸 알면 실망 하겠다?"

"여자를 밝히는 건 건강한 남자로서 당연한 거지. 여자는 모두 소중히 대해야 돼. 여자의 살결은 희고 부드럽고 좋은 냄새도 나고 촉감도 폭신한 게…."

"아아, 됐어. 또 시작이군. 후, 시답지 않은 소리 그만하고. 진짜 못 느꼈어?"


서호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혀를 내밀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곤 눈을 치켜뜨며 택우를 노려봤다.


"음. 못 느낀 거 같아. 새로운 기운이면 이질감이 느껴질 텐데 전혀 없었거든."


택우는 서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서호의 표정은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그래. 이상하군. 백호와 현무가 못 느끼는 수호자라."


서호의 표정이 진지한 데 비해 택우는 아무 생각 없는 듯 보였다. 택우는 서호의 표정을 살피곤 다시 서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못 느낄 수도 있지. 우리가 전지전능한 것도 아닌데."


택우가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사방신이 못 느끼는 영은 없어. 무능력한 수호자가 아니라면 말이야."


서호는 어깨에 올려놓은 택우의 손을 거칠게 처내며 딱 잘라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있어서 자부심마저 느껴졌다. 그리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우연인지 그의 시선 끝에는 정운용이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서호의 시선이 싸늘해지며 눈매가 매섭게 올라갔다.


"아, 예외는 있지. 사방신과 힘이 비슷하거나 수호자의 능력이 우리와 같거나 강할 때."


그 말을 듣곤 서호는 시선을 택우에게로 옮겼다. 서호는 입 꼬리를 한쪽만 치켜세웠다.


"재밌군. 그렇다면 더더욱 그 녀석 정체가 뭔지 궁금해지는데."


서호가 은하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 *



"여기가 강당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 중 하나지. 사실 난 공부보단 몸을 움직이는 게 좋거든. 물론 보는 것도 좋아하지. 이 학교에 안 왔다면 아마 난 운동선수가 됐을 거야. 이 학교는 팀이 하나도 없거든. 안타깝지, 하하. 넌 무슨 운동을 좋아하냐?"

"저는 운동을 잘 못해요."

"저런, 아쉽군. 아직 한창인데…."


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며 제웅은 정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은하는 오늘 온종일 끌려 다니며 학교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오전에는 수업 중이라 돌아다니는 학생은 거의 없었는데 쉬는 시간이 되니 우르르 몰려나와 제웅에게 인사하며 은하를 신기한 듯이 봤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은하가 불편해하자 제웅은 은하를 데리고 이곳으로 왔다. 제웅은 시종일관 친절했지만, 은하는 죽을 맛이었다. 제웅은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에 온통 웃음꽃이 피어있었고 은하는 제웅이 웃을 때마다 제웅의 손에 그의 등을 맡겨야 했다. 제웅의 입장에서는 그냥 정겨워서 툭툭 건드리는 것이었지만 은하의 왜소한 신체는 제웅의 힘을 온전히 받기엔 너무나 약했다. 지금도 제웅은 은하의 등을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하하, 이해해라. 전학생이 처음이라 그러니까."

"네. 그럴 만도 하네요."

"자, 기숙사로 가기 전에 저기 벤치서 잠깐 쉬자고. 말을 많이 하니 목이 타는군."


제웅은 자판기에서 탄산음료를 두 개 뽑아 은하에 건넸다. 은하는 벤치에 앉자마자 등을 의자에 바싹 붙였다. 더는 제웅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그리곤 캔을 따서 마셨다. 음료가 식도를 따라 흐르는 느낌이 짜릿했다. 입 안 가득 머무는 톡톡 튀는 청량함이 상쾌했다.


"여기 자판기는 학교에서 직접 관리를 하지. 알다시피 이곳은 타지와 조금 멀잖아?"

"네. 그렇겠네요. 하하."


은하가 어설프게 웃으며 대꾸했다. 제웅은 더는 은하의 등을 노리지 않고 있었다. 은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제웅은 캔을 따서 입에 대더니 한 번에 털어 넣었다.


"이 학교에 대한 설명은 들은 거냐? 아버지가 추천하셨다며?"

"아뇨. 전혀 듣지 못했어요. 이런 섬인지도 몰랐고요. 그냥 떠밀려서 왔죠."




제웅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어 눈치체지 못했지만, 은하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아버지와 대면했을 때를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자신을 보살피기 싫어도 그렇지 이런 섬마을에 보내버리다니. 착잡해지는 은하였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떨쳐버렸다. 차라리 떨어져서 사는 게 나은 것 같았다. 아버지와 함께 살며 매일 얼굴을 마주친다 생각하니 그게 더 끔찍했다. 혼자가 익숙하고 어느새 외로움과 고독에 익숙해진 은하였다.


"음. 은하야, 실은 이 학교는 다른 학교들과 조금 달라."

"네. 그런 것 같네요."

"아니, 위치 말고. 이 곳은 평범한 학교가 아니란다."

"그럼요?"

"음…. 그게……."


제웅이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망설이는 느낌이었다. 곰 같은 제웅이 머뭇거리는 모습은 우스워 보였다.


"이거 원. 전학생이 처음이라…."

"그냥 속 시원하게 말하세요."


제웅은 애꿎은 뒤통수만 계속 긁다가 이내 결심한 듯 은하를 바라봤다.


"흠흠. 이 학교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학교야."

"바로 영적 능력이지."

"네?!"


은하는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제웅의 말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은하의 마음은 복잡했다. 자신의 능력을 아무 곳에도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 이런 곳에 끌려온 것이다. 아니, 스스로 걸어들어온 것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사실상 자신의 능력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만큼 숨기고 또 숨겼다. 그런데도 결국 이런 곳에 온 것이다. 지금 은하의 머리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리곤 그에 대한 깊은 분노를 느꼈다. 그 사람이 나를 이곳에 보냈다. 그렇다면 그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가. 혹시 그 사람도 나와 같은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닌가. 그럼 이 능력은 유전이란 말인가. 순식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몰려오며 다시 멀미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의 머릿속은 풀 수 없는 실타래처럼 엉켜있었다.


"이해가 안 되겠지만 그런 곳이 존재한다. 그리고 여기가 바로 그곳이지."


제웅은 복잡한 은하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이곳에 온 이상 적응해야 해."

"나갈 순 없는 건가요?"


나가봤자 갈 곳도 없는 은하였지만 제웅에게 물어봤다.


"한번 들어온다면 나가기가 쉽지 않지. 이곳에 발을 들인 이상 영적 능력자 모두가 너를 알고 있어. 그들이 너를 항상 주시할거야. 언제 어디서든. 그러니 나가더라도 이전과 같은 삶을 살긴 힘들 거다."

"그럼 못 나간단 거군요."


은하가 정신을 어느 정도 추스르고 말을 했다. 그는 가슴에 바위를 올려놓은 듯 마음이 무거웠다. 그의 머릿속에 새삼스레 잊고 싶은 얼굴이 떠올라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간단하게 생각해. 여긴 학교야. 나가기 위해선 졸업을 하면 돼. 하지만 이곳을 알게 되면 생각이 바뀔 거야. 내가 장담하지."

"이곳에 있는 사람은 모두가 같아. 영적 존재를 느낄 수 있지. 너도 물론 그럴 테고."

"영이라…. 전 기껏해야 하얀 공을 보는 게 다라고요. 귀신을 직접 보지도 못해요."

"하하, 그게 바로 영적 능력인 거지. 사람마다 혹은 가문의 피에 따라 그것을 느끼는 방법은 다르다. 사람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짐승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너처럼 형태로 볼 수도 있지. 하여튼 첫 시작은 영을 느끼는 것이다."

"그럼 선배도 그 영이란 걸 볼 수 있다는 건가요?"

"그래. 나도 마찬가지지. 난 짐승으로 보인다. 이 세상에 도저히 존재하지 않는 짐승. 머리가 셋이 달렸다거나 눈이 얼굴의 반이라거나 한 시커먼 짐승. 난 처음 그것을 봤을 때 너무 무서워서 침대 시트에 오줌을 지렸다. 한 삼일 정도 그랬을까. 도저히 무서워서 잠을 못 자겠더군. 밤마다 무서워서 부모님 사이에 끼여서 잤지. 나중에 말해주시던데 부모님께서 나 때문에 동생을 늦게 만드셨다는군."

"동생이요?"

"그래. 여동생. 그리고 걔는 아무것도 못 느껴. 이 능력은 우리 가문에서 나에게만 전수되었지. 그래서 동생은 평범한 학교에 다니고 있다."


제웅이 씩 웃으며 은하에 말했다. 은하는 제웅의 이야기를 듣곤 많이 누그러졌다. 그에게도 자신과 비슷한 과거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람에게 여동생이라니, 웬지 우스워졌다.


"이 섬에 들어오고 나서도 그 하얀 공을 본 적 있니?"

"아뇨."


그러고 보니 은하는 신기했다. 이 섬에 오고 나서부터 그의 눈은 하얀 공을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이 섬에는 특별한 결계가 되어 있어서 우리들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일부러 힘을 쓰려고 하지 않는 이상은."


제웅은 아까부터 태연스레 능력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말했다. 자신에겐 그저 저주받은 것이었는데 능력이라니 은하는 생각해보니 우스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곳의 학생들은 모두가 영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이 섬 안에서는 모두가 동등하게 생활할 수 있어. 그게 이 학교의 목적 중 하나지."

"그럼 다른 목적은요?"

"영적 능력을 갖춘 자들의 보호. 그리고 그들끼리 교류, 견제, 마지막으로 생존을 위한 것이랄까. 사실 이 목적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어. 우린 일종의 능력자들이라서 일반인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하거든."


제웅은 '능력자'란 단어를 힘주어 말했다.


"비장한데요. 그리고 어째 영화와 비슷하네요? 초능력자들을 학교에 가둬놓고 그들을 감시하는 거 말이에요."

"하하. 그것과는 달라. 여기에 입학하는 것은 기밀이야. 이 나라는 물론 전 세계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해. 자료 따위가 전혀 없거든. 물론 능력자들을 제외하고. 그리고 결계 때문에 이 섬에 사람들이 가까이 올 수 없어. 그래서 원한다면 이 섬에서 평생 살아도 된다. 세상을 등지고 말이야."


은하는 섬에 처음 도착했을 때 봤던 작은 마을을 떠올렸다. 그럼 그들 모두가 귀신을 본단 말인가.


"자료가 없다는 게 무슨 의민가요? 실종이라도 됐다가 나타나기라도 한단 건가요?"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래서 말했잖아. 영능력자라고."


제웅은 씩 웃으며 말했다.


"다른 이름으론 수호자라고 부르지."

"수호자요? 무엇을 수호하는데요?"

"수호신을 가진 자란 의미지. 사실 인간의 뇌는 오감 중에서 시각으로 많은 것을 인지하지. 그래서 영적 능력도 제일 먼저 시각으로 인지되는 경우가 많아. 물론 드물게 청각으로 인지하는 때도 있어. 촉감도 있고. 하여튼 제일 처음으로 능력이 발현하고 나면 수호자들에게 수호신이 나타나게 되지. 한마디로 수호신이 수호자를 직접 선택한단다."

"수호신? 그건 또 뭐죠?"

"흠. 사실 수호자에겐 수호신이 가장 중요하다. 수호자는 수호신에게서 능력을 빌려와야지만 초월적인 힘을 사용할 수 있어. 그래서 이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선 반드시 수호신이 있어야한다. 가문의 수호신 말이야."

"그냥 귀신만 보면 다 입학할 수 있는 게 아닌가요?"

"은하, 넌 영적인 존재라면 귀신을 생각하는구나. 귀신은 영적 존재의 일부일 뿐이야. 생각보다 영적인 존재의 범위란 넓단다."

"하, 그래요. 어찌 됐건 전 수호신이란 게 없는데 어찌 들어온 거죠?"


제웅은 잠시 숨을 가다듬고 은하를 응시했다.


"사실 나도 의문이다. 지금 너에겐 전혀 영의 느낌이 나지 않거든."


제웅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은하의 전신을 훑었다. 그 눈빛이 얼마나 매서운지 은하는 자신의 모든 것이 제웅이 의해 파헤쳐지는 기분이었다. 사실 제웅은 곰 같은 외모보다 세심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외모만 보고 단순하게 생각하다가 낭패를 보는 학생들도 많았다.


"게다가 이 학교에 전학생은 전대미문이다. 즉 네가 처음인 거지."


제웅의 시선이 한층 더 매서워졌다. 마치 먹잇감을 두고 살펴보는 맹수의 눈빛 같았다.


"저도 제가 왜 여기 온 것인지 모르겠는걸요. 수호신인지 뭔지 하는 것도 처음 들었고요."


은하는 제웅의 시선을 태연히 받아넘기며 대꾸했다. 하지만 제웅과 둘이 있는 게 껄끄러워졌다. 지금 제웅의 시선은 꼭 야수의 그것 같아서 사람이 달라 보였다. 조금 전까지 미련한 곰 같은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먹잇감을 사냥하는 곰 같이 매섭고 사나운 느낌이었다. 곰에 곰이라니 결론은 결국 곰인가 하는 생각이 은하는 왠지 우스워져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제웅은 은하의 웃는 모습을 보더니 표정이 한층 누그러졌다.


"너 웃는 모습 보니 여자들 꽤 울리겠다. 자식, 어찌 됐건 이곳에 입학한 이상 잘 지내보자."


제웅이 씩 웃으며 거친 손을 내밀었다. 은하도 그 손을 맞잡으며 어처구니없는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자, 그럼 기숙사로 슬슬 가볼까?"


작가의말

머리로 생각한게 글로 써보면 내용이 많이 바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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