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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스토리

사방신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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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woon)
작품등록일 :
2013.06.16 13:43
최근연재일 :
2013.09.29 22:31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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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85
추천수 :
1,055
글자수 :
286,264

작성
13.06.16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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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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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글자
23쪽

제 1장 시작의 장(7)

DUMMY

충청도 XX면. 도심과 다소 먼 거리에 있는 이곳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작은 촌마을에 불과했다. 모두 해서 20가구가 채 되지 않는 이 마을의 평균 연령은 67살로 주민 대부분이 주로 농사를 생업으로 해서 먹고사는 전형적인 시골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이 마을에 국도가 생겨나며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농사를 일구던 땅은 무참히 파헤쳐지고 그 아래 숨 쉬고 있던 생명은 아스팔트에 의해 덮여버린 채 그 위를 무겁게 짓누르는 자동차 바퀴들 아래에서 죽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이 마을의 비교적 싼 입지를 노린 기업들에 의해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필연적으로 하나둘씩 아파트도 생겨났다. 이 마을은 더 이상 한적한 촌마을이 아니었다. 잿빛 연기를 내뿜는 하나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공장에서는 뿌연 연기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고 지나가는 자동차들은 매캐한 흔적을 남기고 떠났다. 기계들은 사람들에게 부와 편의를 가져다줬지만, 생기를 빼앗아 갔다. 공장의 노동자들은 늘 피곤에 찌들어있었고 생동감이 없었다.


김씨 영감은 그런 그들을 보면 늘 혀를 찼다.


"기계라고 다 좋은 게 아니여. 사람이 사람다워야지."


김씨 영감은 검버섯이 핀 얼굴을 굳은살이 잔뜩 밴 손바닥으로 비비며 말했다. 그는 몇 남지 않은 이 마을의 토박이였는데 돼지와 닭 몇 마리를 키워다 팔며 끼니를 이어가고 있었다.


"암유, 그렇지유. 요새 젊은이들은 생기가 없으유. 고생도 안 해보고."


강씨가 김씨 영감의 말을 받았다. 그는 김씨 영감과 마찬가지로 이 마을 토박이로 원래 농사꾼이었으나 밭을 모두 팔아치우고 지금은 작은 슈퍼를 운영 중이었다.


"젊은 것들이 다 그렇지 뭐. 지 부모 간이나 빼 처먹으려 하고. 쯧쯧."

"그럼유. 자식새끼들 세빠지게 키워봤자 소용없이유. 결국 지 새끼들 생각만 한다니께유."


강씨는 김씨 영감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그는 5년 전 마누라를 병으로 잃고 혼자가 되었다. 그에게 외동아들이 있었는데 사업을 한답시고 제법 많은 강씨의 땅마지기를 팔아 사업자금으로 모두 끌어다 썼다. 그리곤 벌써 3년째 연락이 두절됐다.


"그러게 왜 재산을 미리 나눠줘? 강씨도 이제 이 슈퍼뿐이잖은가."


김씨 영감은 막걸리 세 병을 꺼내 들곤 안쓰러운 표정으로 강씨를 바라봤다. 잔주름이 가득한 강씨의 얼굴은 나이보다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이 마을에서 젊은 편이었던 그도 이제는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가득했다. 김씨 영감은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지 죽겠다고 난린데 어쩌겠시유. 애비가 되서 자식새끼 죽게 둘 순 없자나유."


'쯧'하고 혀를 차며 김씨 영감은 강씨의 주름투성이인 얼굴을 보고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자신도 자식을 위해 그렇게 해왔지 않는가. 자식을 둔 아비의 마음은 다 똑같으리라. 괜스레 손주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김씨 영감이었다.


"영감님, 이런 거만 자시면 속 다 버려유. 여기 이거라도 좀 드세유. 김치는 아직 남았지유?"


강씨는 김씨 영감이 올려둔 막걸리 세병과 라면 두 봉지를 보곤 참치 통조림을 종류별로 집어주며 말했다.


"뭐 하러 이런 건 자꾸 줘!"


김씨 영감은 호통치 듯 말했으나 강씨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을 뿐이었다.


"그러지 말고 영감님도 이쪽으로 집을 옮기지라. 너무 멀어서 매일 자전거 타고 다니기 힘들자나유. 내일 비도 온다는디."


강씨가 검은 봉투의 입구를 묶어서 건네며 말했다. 김씨 영감은 축사 때문에 홀로 동 떨어져 마을의 북쪽에 있는 산 바로 아래에 농장을 지어 살고 있었다. 중간에 작은 개울을 가로질러 만든 다리를 건너서 자전거를 타고 30분은 가야 할 정도로 거리가 멀었다.


"난 복작복작한 거 싫어. 저 놈의 공장도 꼴 뵈기 싫고. 한 일주일 안 오거든 나 갔는 줄 알고 송장이나 치우러 와주소."

"아이고, 영감님도 별말씀 다 하는구만유. 어서 가보세유. 어두워지기 전에."

"나가오. 많이 팔아."

"야, 조심히 가세유."


강씨가 슈퍼 입구로 나와 김씨 영감을 마중했다. 서로 한 마을에서 30년을 함께 한 사이였다. 강씨는 김씨 영감이 점이 되어 안 보일 때까지 한참을 서서 그의 뒤를 바라봤다.




김씨 영감이 집 근처에 오자 누렁이가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컹컹 짖어댔다. 그는 한쪽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바로 축사에 들어섰다. 동물의 배설물이 한데 뒤섞인 구리구리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는 곧 돼지와 닭의 수를 세어 보았다. 2년 전 야생 멧돼지가 그의 축사를 습격해 어미 돼지 두 마리와 새끼 돼지 두 마리를 죽게 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그가 외출했다가 오면 항상 하는 습관이었다. 강씨의 권유로 농장 주변엔 전기 울타리도 설치해두었다. 가축들의 수를 확인하던 그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새끼 돼지 중 한 마리가 드러누워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 돼지를 확인해봤으나 별다른 외상이 없었다. 손을 내밀어 새끼 돼지의 목덜미에 가져다대니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 김씨 영감이 나가기 전에는 분명히 살아서 어미젖을 물던 녀석이었다.


"별일이군. 병이라도 난 건가."


김씨 영감은 홀로 중얼거리며 사체를 끄집어냈다. 그는 괜스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곧장 동네 수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재작년 구제역 파동 이후 가축이 폐사할 경우 전염병일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신고를 해야 했다. 그도 그 빌어먹을 구제역 때문에 친자식과 같은 가축 대부분을 자신의 손으로 묻지 않았던가. 그는 그 날의 끔찍한 광경을 다시 생각하니 몸이 절로 부르르 떨려왔다. 수의사는 내일 오전 중으로 들르겠노라 하였다.

김씨 영감은 다시 축사를 들여다봤다. 가축들은 먹이를 먹고 있었으나 어째 신통치 않았다. 마치 두려움에 떨고 있는 듯 잔뜩 웅크린 모습이었다. 그는 전기 울타리의 전압을 더 높이고는 축사의 문을 단단히 잠갔다.




다음날 새벽, 김씨 영감은 요란한 천둥소리에 잠이 깼다.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비가 억수같이 퍼 붓고 있었다. 그는 우비를 꺼내어 입곤 축사로 향했다. 쇳소리를 내며 축사의 문이 열리자 한쪽 구석에 돼지 한 마리가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도 외상은 전혀 없었다. 그는 마음이 급해져서 이른 아침임에도 수의사에게 전화했다. 잠에 취한 목소리를 생각한 그의 기대와는 달리 수의사는 이미 깨어있었다.


"나 김씨요. 여기 돼지가 또 죽었소. 빨리 좀 와주오."

"아이고, 영감님. 지금 개울이 넘쳐서 그리 못가유."

"뭐?"


그 말을 들은 김씨 영감은 화들짝 놀랐다.


"영감님, 흙이 흘러내릴 수도 있으니 절대 나오지 말고 집에만 있으소."


수의사가 되려 김씨 영감에게 신신당부했다. 김씨 영감은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돼지가 자꾸 죽어나가는데 그 이유는 알지 못하고 답답했다.


따르릉.

요란한 전화소리가 나며 김씨 영감의 생각을 흩트렸다. 그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영감님, 깨어나셨소? 지금 비가 와서 난리가 났시유. 영감님 집이 완전히 고립이 됐으야. 개울이 불어서 다리도 못 건너오."


강씨가 호들갑스럽게 이야기했다. 김씨 영감은 내심 자신을 걱정해주는 그가 고맙게 생각이 들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괜찮아. 물난리가 어디 하루이틀인감. 내 걱정 말고 강씨나 조심하소."


김씨 영감은 오히려 강씨를 위로하며 달랬다.


"영감님, 비 그치면 갈테니께 꼭 몸조심하고 있으소."


강씨는 김씨 영감에게 신신당부했다. 김씨 영감은 그러 마 하고 약속하곤 수화기를 내려놨다. 주름투성이인 김씨 영감의 얼굴에 짙은 음영이 무겁게 드리웠다.


"휴, 이를 어쩐다."




크르르르!

그 때 누렁이가 축사를 향해 으르렁 거렸다. 김씨 영감은 귀를 쫑긋 세웠다. 희미하게 돼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렁이는 축사를 보곤 맹렬하게 짖어댔다. 무언가 축사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는 한쪽 구석에 걸어둔 낫을 집어 들고 축사로 향했다. 평소엔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곳인데도 날씨 때문인지 그의 노구는 빗줄기 속에서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져 한 걸음 한 걸음 떼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굵게 쏟아지는 빗물은 우비를 썼음에도 그의 얼굴로 흘러내려서 연신 그의 시야를 방해했다.


"꿀꺽."


그는 손에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낫을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그의 짧은 손톱이 굳은살이 잔뜩 박힌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는 낫을 잡은 손의 힘을 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조심스레 축사의 문을 밀었다. 축사 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그는 축사 안에 발을 들이기가 겁이 났다. 멧돼지 같은 산짐승이라도 만나는 날에는 호되게 경을 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가축들이 이대로 죽게 둘 순 없었다. 가족들이 모두 떠나고 유일하게 벗 삼아 기르던 것들이었다. 그만큼 평소 그의 가축에 대한 애정은 자식을 대하듯 특별했고 남달랐다.


자박.

그는 잔뜩 물기를 머금어 무거운 장화를 축축한 축사의 바닥 위로 내디뎠다. 그는 사방을 살피며 한 걸음씩 조심스레 이동했다. 한쪽 구석에 모여 있는 가축들이 보였다. 가축들은 구석에 엉켜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모두 공포에 질려있었다. 그는 가축이 모여 있는 반대편으로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헉!"하며 그는 자신도 모르게 거친 숨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것은 너무나 잔인한 광경이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형체가 돼지의 내장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돼지는 살아있는 채 항문으로 내장을 반쯤 뽑혀 있었다. 나머지 반은 아직 뱃속에 있는 듯했으나 이미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다. 검은 형체는 내장을 끊어 내지도 않고 그대로 입에 넣어 씹고 있었다. 돼지는 부들부들 떨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 영감은 팔십 평생 이런 광경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그는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검은 물체는 아직 그의 존재는 알아차리지 못한 채 돼지의 창자 부위를 씹으며 쩝쩝 거리고 있었다. 그 물체가 입에 창자를 문채로 주욱 잡아당기자 돼지의 항문으로 다른 내장이 따라 나왔다. 김씨 영감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때 그의 우비에 있던 빗방울 하나가 떨어지며 그의 얼굴을 때렸다. 그 덕에 김씨 영감은 정신을 추스르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아직 저것은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도망칠 가망이 있어 보였다. 여기서 내장을 뽑힌 채 죽을 순 없었다. 그는 시선을 그것에게서 떼지 못한 채 뒤로 한 걸음씩 천천히 이동했다. 얼굴에는 땀이 흥건했고 낫을 쥔 손에도 땀이 한가득 베어났다. 장화가 쇠로 된 듯 무겁게 느껴졌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조금씩 빗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김씨는 간절히 염원했다. 바로 두 발짝 뒤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따르르릉!

그 때 요란하게 전화가 울렸다. 그것은 그 소리를 듣고는 김씨 영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씨 영감은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생물이 아니었다. 시커멓고 더러운 검은 털로 덮여 있었고 눈이 비정상적으로 크고 돌출되었으며 입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크고 징그러웠다. 입가에는 돼지의 내장 찌꺼기와 피가 묻어있어서 심약한 사람은 그것을 보는 즉시 기절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것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김씨 영감과 시선이 마주쳤다. 김씨 영감은 눈이 마주치자 독사를 마주한 새앙쥐 같이 몸이 얼음 같이 굳는 것을 느꼈다.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저것이 그를 향해 달려올 것 같았다. 그와 그것은 한참동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따르르릉!

그 때 다시 전화 소리가 났다. 김씨 영감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것이 전화 소리를 듣고 멈칫하는 틈을 타 등을 돌린 채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짐승처럼 네발로 달렸는데 생각보다 재빨랐다. 김씨는 자신의 목덜미를 낚아챌 듯 한 느낌이 들어서 겁이 났다. 그러나 두려움에 차마 뒤를 돌아볼 순 없었다. 그는 재빠르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선 문을 잠갔다.


쿵!

김씨 영감이 방문을 등지고 서서 그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그것은 문을 부술 듯이 두드렸다. 김씨 영감은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것이 들어오면 끝이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붙잡았다. 그것이 문을 두드릴 때마다 문과 함께 김씨의 노구도 함께 요동쳤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이내 움직임이 멈췄다. 그는 움직임이 멈췄는데도 문에서 몸을 떼지 못했다. 몸을 떼는 순간 그것이 문을 부수고 들어올 것 같았다. 그는 가쁜 숨을 쉬며 문손잡이를 꽉 쥐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나 저것은 그의 위치를 알고 그는 저것의 위치를 몰랐다. 김씨 영감은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지금 심정으로는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기절하고 나서 일어났을 때 이 모두가 꿈을 꾼 것이리라. 김씨 영감은 볼을 세게 꼬집었다 놨다 하며 꿈에서 깨려 했지만, 이것은 현실이었다. 그의 쭈글쭈글한 볼은 손톱에 패여서 피가 지경이 되었지만 그는 깨지 않았다.


그 때 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그 발소리는 그가 숨어있는 곳으로 곧장 오고 있었다. 그는 머리가 핑 돌 지경이었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발소리는 그의 방 앞에서 멈췄다. 그와 그 발소리의 주인은 문 하나를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김씨 영감은 낫을 쥔 손에 힘을 단단히 주고는 문고리를 잡았다. 그것이 문을 부수면 낫으로 머리를 찍어버릴 생각이었다.


똑똑똑.

무슨 수작인지 그것이 노크했다. 김씨 영감은 숨을 죽인 채 문을 바라봤다.


똑똑똑.

김씨 영감은 그것의 의중을 알지 못한 채 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다행이군. 늦지 않아서."


등 뒤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김씨 영감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 했다. 그는 낫을 꼭 쥐고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칠흑같이 검은 옷을 입은 장발의 청년이 김씨 영감을 응시하고 있었다. 청년은 검고 긴 머리를 모두 넘겨 끝 부분을 하나로 묶었으며 이목구비는 수려했으나 두 눈의 아랫부분이 움푹 파여 있어서 다소 음울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청년의 눈은 새빨간 핏방울을 연상케 하는 짙은 붉은빛이어서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피부와 대조적이었다. 마치 인간이 아닌 시체가 움직이는 듯 한 느낌이었다.


"다, 당신은 누구요. 어떻게 여기 들어온 것이오?"


김씨 영감은 까무러칠 것 같은 의식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물었다. 청년은 품속에서 붉은 종이를 꺼내 들곤 눈으로 훑었다. 그리고 다시 김씨 영감을 바라봤다.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거요. 아직 당신의 시간은 오지 않았소."


종이에 김씨 영감이 없음을 확인한 청년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청년의 목소리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아서 김씨 영감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삽시간에 방 안이 고요해지고 밖의 빗소리만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문득 빗소리 사이로 깨갱 하는 누렁이의 비명이 들려왔다. 김씨 영감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밖에 괴물이 있소! 이대로 가면 우리는 다 먹혀버릴게요! 어서 신고해야 하오!"


김씨 영감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직도 피칠을 한 이빨로 내장을 쩝쩝대던 그것을 봤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다. 아마 그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리라.


"그는 당신과는 관계없소. 그리고 아직은 당신을 해치지 못할게요."


청년은 아무 감정이 담기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씨 영감은 동공이 풀리며 멍한 표정이 되었다.


"저것의 정체를 아는 게요?"


김씨 영감이 다급하게 물어봤으나 청년은 그 말을 못 들었는지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다. 토요일까지 시간이 있을 텐데 어찌 벌써 이승에 관여한단 말인가.'


청년은 붉은 눈을 빛내며 검은 형체가 있음 직한 곳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영의 힘이 강하게 느껴지는군. 죽어서도 따뜻한 피를 갈구하고 있는 건가."


청년이 중얼거리며 바깥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문득 청년의 시선이 축사로 향했다. 그는 문을 열더니 밖으로 나섰다.


"어딜 가는 겐가. 여길 나가면 죽어. 밖에 괴물이 있어!"

"아이고, 가지 말게. 자네 죽을 수도 있으이."


청년은 만류하는 노인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 듯 축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축사를 노려보는 그의 눈빛이 더욱 붉어졌다. 그가 축사에 들어서자 짙은 피비린내가 동물의 배설물 냄새와 섞여 코를 자극했다. 청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쪽 구석에 웅크린 검은 물체를 향해 다가섰다. 검은 물체는 남아 있는 내장을 씹어 먹다가 청년의 존재를 알아채곤 잔뜩 웅크려 있었다.


"이 곳에 산 자들이 두려워하고 있다. 살아생전에 그렇게 사람을 죽여 놓고 또 피를 원하는가? 업보로다."


청년이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검은 물체가 충혈된 눈을 뒤굴뒤굴 굴리며 그를 응시했다. 허공에서 둘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검은 물체가 청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청년은 가만히 서 있다가 검은 물체가 움직이자 그것의 뜻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듯이 머리를 묶은 끈을 풀어 던졌다. 놀랍게도 끈이 마치 살아있는 듯 요동치며 점점 커지더니 검은 물체를 거칠게 포박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혼백도 머무르지 못하게 산산조각 내버리고 싶으나 아쉽게도 너의 인연은 다른 자와 닿아있다."


청년은 묶여있는 검은 물체를 짊어지고 산속으로 사라졌다.



* * *



"저,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은하는 제웅을 향해 물었다.


"물론이지. 무엇이든 처음이 제일 어렵지. 너무 긴장만 하지마."

"후, 마치 큰 시험을 치르는 것 같네요."

"병신, 큰 시험 맞다. 너 같은 놈에게는."


서호가 은하의 말을 받으며 거칠게 내뱉었다. 그들은 모두 은하의 시험을 위해 이동 중이었다. 커다란 스쿨버스 안에는 오직 다섯 사람뿐이었다. 그 중 택우와 서호만이 나란히 앉아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따로 떨어져 앉아있었다.


"백서호. 말 좀 이쁘게 해."

"흥!"


서호는 다윤의 말에 콧방귀로 대답했다. 주작이 소멸한 지금 다윤은 더 이상 사방신의 수호자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 이 자리에 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다윤은 교장을 졸라 여기에 참석했다.


"자자, 곧 도착이니 쓸데없는 소모전은 그만두라고들."


제웅의 말에 은하는 긴장이 되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영의 인도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이 축축해져서 연신 바지에 손을 훔쳐냈다.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쳤다. 건너편에 앉은 운용은 탈 때 잠들더니 지금껏 눈 한번 뜨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친구란 놈이 정말 무신경하단 생각이 드는 은하였다.


"자, 다들 내려. 짐들 잘 챙기고."


제웅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버스가 멈춰 섰다. 은하는 짐을 챙겨 버스 밖으로 나섰다.


잿빛의 도시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드문드문 회색의 연기를 내뿜는 공장들이 들어서 있고 한쪽으로는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었다. 제웅은 잠시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마시더니 내뱉었다.


"후, 차를 오래 탔더니 온몸이 쑤시는군."

"선배, 그거 비가 와서 그런 거 아니에요? 나이를 먹으면 비가 올 때마다 온몸이 쑤시다 던데."


다윤이 짖궂은 표정을 지으며 제웅을 놀렸다.


"하하, 너희도 멀지 않았어."

"빨리 이동이나 하죠. 비도 많이 오는데."


서호는 얼굴을 구기며 빗물 때문에 생긴 웅덩이를 바라봤다. 택우는 그의 옆에서 서호가 비를 맞지 않게 돌보고 있었다.


"그래, 가보자!"


은하는 굳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저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으나 은하는 긴장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긴장 되냐?"


어느새 다가온 운용이 은하의 옆에 나란히 걸으며 물었다.


"응,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너 정말 잘 자더라. 한 대 치고 싶을 정도로."

얄밉겠지만 시험 보는 건 너 잖냐."

"정말 밉상이네. 걱정은 안 되냐?"

"당연히 되지. 사랑하는 룸메님을 잃을지도 모르니까."

"말을 말자. 근데 이런 거 꼭 해야 하는 거냐?"

"글쎄. 저기, 고귀하신 도련님이 하라는데 우리야 선택권이 없지."


운용이 입 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그의 시선 끝에는 불평 중인 서호와 그를 달래는 택우가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고귀? 저 녀석이 그렇게 대단한 집 자식이냐?"

"어,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만큼."

"그래? 그래서 그렇게 건방진 거냐?"


운용이 씨익 웃었다. 은하의 표현이 마음에 든 거 같았다.


"너도 느꼈구나? 하지만 별 수 있냐? 우리와는 태생이 다른데."


운용의 말에 은하는 입술을 실룩이며 무언가를 말하려다 그만뒀다. 같은 사방신의 수호자이나 운용과 서호는 태생이 서로 달랐다. 은하도 그 사실을 아는지라 선뜻 무어라 위로를 할지 몰랐다.


"오늘 잘해라. 저 재수 없는 놈한테 책잡히기 싫으면."


은하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인지 운용이 농담을 건네며 말했다. 은하도 씨익 웃으며 그를 마주 봤다. 운용도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앞서 가던 제웅이 우뚝 멈춰 섰다. 그들 앞에는 뒷산을 끼고 있는 자그마한 농장이 내려다보였다. 농장은 마당에 컨테이너로 된 작은 축사를 끼고 있어서 일반적인 시골의 집보다는 큰 규모였다. 농장을 직접 보자 은하는 한층 긴장감이 몰려옴을 느꼈다.


"저기다. 은하야, 잘 다녀와. 우린 여기 있을 테니까."


제웅이 은하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몸조심하고 이 산 전체에 결계가 처져있으니까 무슨 일이 나진 않을 거야. 위험하면 운용이랑 바로 달려갈게."


다윤이 은하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은하는 그녀의 손이 너무나 따뜻해서 마음까지 따스해지는 느낌이었다.


"다녀올게."

"조심해라."


은하가 씨익 웃음을 지으며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운용은 은하에게 태연하게 말했으나 얼굴엔 걱정하는 빛이 가득했다. 은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농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수호자로서 첫 활동을 개시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말

뜬금없는 내용전개가 시작 되었네요.

이번건 처음으로 컴퓨터로 글을 썼는데 확실히 모바일보다 빠르더군요. 프로그램으로 오타도 많이 잡아냈습니다. 띄어쓰기 오류가 꽤 많더라구요 ㅠㅠ 앞으로도 기회되면 컴퓨터로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시험이 시작 됩니다. 은하가 과연 잘해낼지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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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신의 수호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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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 1장 시작의 장(9) 13.06.16 979 62 29쪽
9 제 1장 시작의 장(8) 13.06.16 1,481 43 14쪽
» 제 1장 시작의 장(7) 13.06.16 2,374 87 23쪽
7 제 1장 시작의 장(6) +2 13.06.16 2,371 59 15쪽
6 제 1장 시작의 장(5) 13.06.16 1,685 19 16쪽
5 제 1장 시작의 장(4) 13.06.16 1,575 50 13쪽
4 제 1장 시작의 장(3) 13.06.16 2,162 36 21쪽
3 제 1장 시작의 장(2) +2 13.06.16 1,119 64 12쪽
2 제 1장 시작의 장(1) 13.06.16 1,894 51 11쪽
1 프롤로그 +2 13.06.16 2,306 47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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