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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스토리

사방신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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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woon)
작품등록일 :
2013.06.16 13:43
최근연재일 :
2013.09.29 22:31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42,694
추천수 :
1,055
글자수 :
286,264

작성
13.06.16 14:13
조회
1,119
추천
64
글자
12쪽

제 1장 시작의 장(2)

DUMMY

은하는 아직 한 번도 부모님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었을 때였다. 담임선생님께 처음 그 얘기를 듣고도 그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할머니도 그에게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낸 적 없었고 그도 할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꺼낸 적 없었다. 그래서 처음 만나보는 아버지가 마냥 낯설기만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은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앉아있었다. 은하 역시 아버지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내 얘기를 하신 적 없었냐?"

"……."


아버지는 여전히 그를 보지도 않고 얘기했다.


"이 집은 처분하기로 했다."

"……."


은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너도 다른 학교로 전학가야 된다. 이미 다니던 학교에는 내가 처리해놨으니 그리 알아라."

"……."

"아무런 말이 없구나. 그래, 너도 나와 살긴 싫을 테니 기숙학교로 봐 놨다. 열흘 뒤부터 가면 될 거야. 접수는 전부 해뒀으니까."


말을 마치고 아버지가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아버지가 나랑 살기 싫은 거 아닌가요?"


아버지는 처음으로 은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소년은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서 가로등 불빛만이 빛나고 있었지만 은하의 눈에는 다른 것들도 보였다. 아버지는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키곤 허공으로 내뿜었다. 소년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은 여러 감정이 담겨져 있었다.


"왜 그런 걸 묻는 거냐?"

"왜 장례식장에 오지 않으셨죠?"


은하는 아버지의 질문은 무시하고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창밖의 꾸물거리는 물체를 향해있었다.


"가야할 필요를 못 느꼈으니까."

"아버지의 어머니잖아요! 왜 장례식장에는 코빼기도 안보이다 이제야 찾아오신 거냐구요!"


은하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소년의 두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아버지는 소년의 눈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 없이 담배 연기만 내뿜었다.


"장례식 때 얼굴도 비추지 않더니만 이제와서 날더러 전학을 가라구요?"


소년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눈가가 벌겋게 충혈 되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무런 말없이 소년을 응시했다. 소년은 아버지의 태연한 모습에 더 화가 난 듯했다.


"17년 만에 처음 본 아버지가 고작 한다는 말이 자기와 살기 싫을 테니 전학을 가라고요? 겨우 그 말 하려고 여기 온 거냐고요!"

"그래. 그럼 뜨겁게 눈물이라도 흘릴 줄 알았냐."


아버지의 냉소적인 대답에 소년의 표정이 멍해지며 순식간에 머리속이 텅 비었다.


"순진하군. 난 겨우 그 말하려고 온 거다. 이제 용건이 없으니 가보마."


아버지는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서 버렸다. 은하는 멀어지는 아버지의 등을 보며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 * *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먼 옛날, 사방신은 네 사람을 선택했다. 그들의 뜻에 따라 네 사람은 원래 성을 버리고 사방신의 이름을 따서 각각의 가문을 세웠다.


백호(白虎)의 수호신을 지닌 백(白)가, 청룡(靑龍)의 수호신을 지닌 정(靑)가, 현무(玄武)의 수호신을 지닌 현(玄)가, 주작(朱雀)의 수호신을 지닌 주(朱)가가 바로 그 가문이었다. 이들 네 가문은 서로의 영역을 암묵적으로 정하고 대립을 피했다.

그 중 주씨 가문은 대대적으로 주작의 가호를 받아왔다. 주작의 수호신은 그들 가문의 부와 명예를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주씨 가문은 주작의 수호신을 온 힘을 다해 모셔왔다. 이 나라에서 주작은 여러 가지로 특별한 의미를 띄고 있었는데 특히 주작은 가장 높은 자리의 사람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치계와 떼어낼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었고 주씨 가문도 암암리에 그 덕을 보고 있었다.

게다가 주작은 사방신 중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주씨 가문의 후손들은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그 중 당대의 수호자인 주다윤은 더더욱 아름다웠다. 그녀의 검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따라 내려오면 주름 하나 없이 적당히 부푼 이마가 눈길을 끌었다. 이마의 바로 밑은 마치 흑요석을 박아놓은 듯 빛나는 크고 검은 두 눈이 시선을 사로잡았고 그 중앙에 매끄러운 콧날이 위치했다. 콧날을 따라 내려오면 앙증맞은 콧망울이 다시 시선을 사로잡았고 양 옆의 두 뺨은 마치 잘 익은 복숭아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톰하고 작은 입술은 이제 막 피게 시작한, 새벽이슬을 머금은 연하디 연한 장미를 닮아서 아직 풋풋한 그녀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길고 검은 머리칼은 탐스럽고 부드러웠으며 항상 달콤하고 좋은 향기를 머금었고 그와 대조적으로 하얀 피부는 결점 없이 매끄럽고 탱탱해서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사방신의 후계자들 중 가장 영감이 뛰어나서 영혼을 감지하는 능력이 타고 났다. 아마 별다른 사건이 없었다면 그녀는 네 가문의 후계자들 중에서도 손꼽이는 존재가 됐을 것이다. 그녀가 주작의 후계자라면 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주작의 수호신은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도 주씨 가문은 주작이 사라진 원인을 전혀 파악조차 못 하고 있었다. 심지어 후손들 사이에는 주작이 소멸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그래서 주다윤은 아직 한 번도 주작의 혼을 보지 못 했다. 그녀가 가문의 후계자로 선택된 때도 주작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주작이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었다. 주작의 수호신은 벌써 삼대째 실종 중이였다.



* * *



"오늘 전학생이 우리 반에 오게 되었다. 전학생은 학교에 대해 잘 모를 테니 잘 알려주도록."


선생님은 칠판에 '조은하'라 크게 쓴 글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선생님의 옆에는 작은 키에 밝은 갈색 머리, 큰 눈을 가진 소년이 서 있었다. 은하는 무표정한 얼굴로 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느 학교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는데 한 가지 신기한 것은 학생들 중 대부분이 그를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게 중에도 엎어져서 퍼질러 자는 녀석이나 창밖을 보는 녀석도 있었다. 그 중 창밖을 보는 녀석은 유독 눈이 띄었다. 눈매가 날카롭게 올라가 사나워 보이는 녀석 이었는데 머리가 온통 백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은하의 눈이 자연스레 그 학생에게 향했다. 그 녀석은 자기를 바라보는 줄도 모른 채 창밖만 보고 있었다.


"저기 빈자리에 가서 앉거라. 그리고 수업 마치면 나한테 좀 들르렴. 내 자리는 아까 기억하지?"

"네."


선생님이 한 책상을 가리키자 갑자기 아이들의 표정이 돌변했다. 어떤 녀석들은 수군거렸고 어떤 녀석들은 히죽거렸다. 창밖을 보던 녀석도 어느새 은하를 보더니 재미있단 표정을 지었다. 그들 중 한 소녀는 반짝이는 눈길로 은하와 빈자리를 번갈아보았다.


은하가 의자에 앉자 앞자리의 녀석이 재빠르게 뒤돌아보며 물었다.


"어디서 왔어?"


은하는 아무 말 없이 녀석을 바라봤다. 은하와 눈이 마주치자 머쓱한지 시선을 피하며 다시 말했다.


"전학생을 처음 보거든.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신기해서."


그 남학생은 은하가 신기한지 다시 한 번 말을 붙여보려다가 냉랭한 은하의 표정을 보곤 도로 몸을 돌렸다. 머쓱할 때 어깨를 으쓱하는 것이 버릇인 것 같았다.

사실 은하는 지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학 온 학교가 남쪽 끝의 땅 끝 마을에서도 배로 두 시간 남짓 걸리는 섬이었다. 멀리서 그 섬을 봤을 때는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 무인도인 줄 알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 위를 계속 배를 타고 가려니 자신이 납치 당해서 어디 팔려 가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섬에 내려서자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의 읍내 정도 될까한 마을이 존재했고 사람들도 살고 있었다. 게다가 처음 학교를 봤을 때는 생각했던 것 보다 규모가 커서 놀라기도 했다. 일반 고등학교의 규모가 아니라 마치 외국의 거대한 대학교를 보는 것 같았다. 섬마을의 규모를 생각하면 도저히 믿기지 않는 크기였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배를 두 시간이나 탔더니 배 멀미 때문에 머리는 아직도 욱신거렸고 속은 계속 울렁거렸다.

그리고 은하는 지금껏 반 아이들과 한 번도 친하게 지낸 적이 없었다. 그는 항상 아웃사이더였고 그 자신도 사람들과 접촉을 꺼려했다. 친구는 그에게 사치라 스스로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친구도 한 손에 꼽힐 정도였고 그나마도 이리저리 이사 다니며 지금은 한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다. 이 학교에서도 아이들과 친하게 지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물론 그들에게 관심도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때 앞자리 녀석이 다시 뒤돌아보며 말했다.


"안녕? 반가워."


은하가 문득 고개를 드니 어느새 흑발을 길게 늘어뜨린 미소녀가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드러난 하얀 치아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은하는 아무 반응 없이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 좀 특이하구나?"


은하와 눈이 마주친 소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눈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나는 주다윤이야.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저 녀석들은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가 본데?"


은하가 턱으로 가리킨 곳에는 몇몇의 남학생들이 도끼눈을 뜨고 은하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윤은 그들을 힐끔 보더니 다시 은하를 응시하며 웃었다.


"저들은 무시해. 난 쟤들보다 니가 더 맘에 드는데? 아님 쟤들이 무섭니?"

"……. 하하."


그들을 다시 보더니 은하가 웃기 시작했다. 다윤은 은하가 웃는 모습을 보더니 눈을 휘둥그렇게 뜬채 눈을 때지 못했다. 눈이 반달처럼 접히며 살짝 하얀 이가 드러난 은하의 웃는 모습이 어쩐지 매력적이라 느껴졌다.


그 때 드르륵 소리와 함께 뒷문이 열렸다. 그리곤 다소 불량해 보이는 남학생 하나가 들어왔다. 그 녀석은 은하의 옆자리에 앉더니 은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윤을 빤히 봤다.


"니가 왜 거기 앉아있냐?"

"뭐 잠깐 앉은 거야. 전학생하고 이야기 좀 하려고."

"전학생? 이 학교에 그런 제도도 있었나?"


그 녀석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거만한 자세로 다윤을 노려봤다. 다윤은 은하를 대할 때와 달리 그 녀석에게 무척 조심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글쎄, 있나보지. 니 옆자리인데. 직접 물어보지 그래?"

"관심 없어."


다윤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그 녀석에게 말했으나 그 녀석은 은하를 힐끔 보더니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과연 그럴까?"

"볼 일 끝났으면 이제 그만 가지. 눈웃음치며 사람 심란하게 하지말고."

"그런 걸로 넘어갈 운용이가 아니 잖아?"


다윤의 눈이 초승달 같이 접히며 곱게 눈웃음을 띄었다.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호호하고 웃으며 전학생에게 눈웃음을 지어보냈다.


"앞으로 우리 친하게 지내자, 은하야. 궁금한거 있으면 나한테 뭐든 물어봐. 옆자리 짝꿍씨는 좀 까칠하니까 조심하구."


다시 한번 활짝 웃으며 다윤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운용은 다윤의 말이 거슬렸는지 그녀를 노려보다가 금세 책상 위로 엎어졌다. 은하는 웬지 이상하게 엮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떨쳐버렸다.


작가의말

본디 주 2회 연재였으나 주 1회 연재로 바뀌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40 수원꿀주먹
    작성일
    13.06.22 06:26
    No. 1

    청룡의 청은 푸를청으로 한자도 써놨는데 어떻게 정씨가 되는건가요?
    다른 회에서도 정씨로 쓰여진거 보면 오타는 아닌데 이해가 안가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운(woon)
    작성일
    13.06.22 16:28
    No. 2

    댓글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본래 설정대로 하면 청룡의 수호자 가문은 '청'씨가 되어야 합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성으로 쓰이는 '현'씨와 '주'씨와는 달리 '청'씨는 우리나라의 정서와는 너무 맞지 않은 것 같아 '정'씨로 변경했습니다. 사실 사방신 자체가 중국의 영향이 크고 이미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힌 것이라 글을 쓸 때 늘 조심스럽습니다.
    각설하고 '청'씨로 설정하려니 너무 중화적인 요소가 강하지 않나 싶어서 제 임의대로 흡사한 발음의 '정'씨로 설정한 것입니다.
    자칫 모순이 될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청룡의 가문은 '정'씨로 계속 밀고 나갈 생각입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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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신의 수호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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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 1장 시작의 장(9) 13.06.16 980 62 29쪽
9 제 1장 시작의 장(8) 13.06.16 1,482 43 14쪽
8 제 1장 시작의 장(7) 13.06.16 2,374 87 23쪽
7 제 1장 시작의 장(6) +2 13.06.16 2,372 59 15쪽
6 제 1장 시작의 장(5) 13.06.16 1,686 19 16쪽
5 제 1장 시작의 장(4) 13.06.16 1,576 50 13쪽
4 제 1장 시작의 장(3) 13.06.16 2,163 36 21쪽
» 제 1장 시작의 장(2) +2 13.06.16 1,120 64 12쪽
2 제 1장 시작의 장(1) 13.06.16 1,895 51 11쪽
1 프롤로그 +2 13.06.16 2,307 47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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