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역류!-8
마음이 점점 다급해졌다. 미래가 불확실하게 변화한다는 건 역시 불안했다.
운명과 싸우려면 무엇보다 강한 검술이 필요했다.
부모님과 할아버지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2년간 남몰래 빈손으로 수련해 온 알렌은 터지기 직전이 됐다.
‘제기랄! 어느 세월에 검을 만지냐!’
불만이 컸지만 아버지의 마음도 알기에 참았다.
매일같이 알렌은 마당에 나가 마치 손에 검이라도 잡은 듯 미친 듯이 움직였다. 좌우로 스텝을 밟아가며 검을 쭉 내리쳤다. 상상 속에서 검술을 익히려는 알렌의 노력은 피눈물 날 정도였다.
잭슨도 바보는 아니다. 없는 척 멀리서 지켜보는 여러 시선이 있었다. 옆엔 앤드류와 사비나도 몰래 숨어 있었다.
앤드류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무슨 어린애가 저 모양이냐?”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어쩌죠?”
“단단히 혼내야지.”
“때린다고 들을 아이가 아니네요.”
“알아. 살살 구슬려야지.”
앤드류도 이미 알렌 성격을 알 만큼 알았다. 그러나 가장 충격을 받은 건 아픔을 참고 알렌을 낳은 사비나였다.
“여보.”
“당신 맘 알아. 저 자식이 누굴 닮아 저리 고집이 센지.”
고개가 절로 저어진 잭슨의 말에 사비나가 한마디 툭 던졌다.
“당신이지 누구겠어요.”
“어허.”
눈을 부라린 잭슨을 보며 찔끔한 사비나였다. 그때부터 세 사람은 알렌에 대해 뭔가를 열심히 토론했다.
“알렌, 나 좀 볼까?”
“무슨 일이세요?”
“와 봐라.”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후, 알렌과 단둘이 앉아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연 앤드류였다.
“왜 그렇게 검에 집착하는 거니?”
크게 심호흡한 알렌이 짧은 시간 고민에 빠졌다. 앤드류의 얼굴을 보니 결코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따지시긴!’
내심 씩 웃었다. 물론 지나치게 어려운 말은 피해야 했기에 머릿속에서 정리한 후 서슴없이 대답했다.
“간절함이요.”
“무슨 간절함 말이냐?”
“행복에 대한 간절함이요.”
“행복이라… 검을 잡으면 행복해진다는 거냐?”
이해하기 힘든 얼굴의 앤드류이지만 알렌은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그를 설득해야 했다.
“지금으로서는 그래요.”
“검이 그리 좋아?”
“너무 좋아요.”
“도대체……?”
“우리 집이 용병 집안이잖아요. 그 피가 어디 가겠어요?”
기가 막혀도 이리 막힐 순 없던 앤드류가 허탈하게 물었다.
“너 도대체 몇 살이냐?”
“일곱 살이요.”
“너같이 어이없는 일곱 살은 듣도 보도 못했다.”
“지금 보시잖아요.”
“…….”
순간 말문이 막힌 앤드류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알렌은 뭔가 속이는 것 같아 죄송스러워 그냥 사실대로 말하고팠지만 일단 참았다. 말해 봐야 미친 어린애 취급받기 딱이다.
“허 참! 지금 네가 하는 말이 어린애가 한 말이라고 누가 믿겠냐?”
가슴이 철렁했다. 알렌은 어쩔 수 없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한마디를 꺼냈다.
“실은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대련하는 걸 봤어요.”
“그래서?”
“너무 멋졌어요.”
말투조차 바꾼다는 건 그리 편하지 않는 알렌이다. 순간 앤드류의 눈이 번쩍였다.
“단지 멋지기만 한 거야?”
“아뇨. 그 이상 되고픈 간절함이 검을 잡게 했어요.”
“아이가 처음으로 검술을 익히려는 이유치곤 정말 어이없구나.”
“나중에 세상에서 인정받는 멋진 용병이 되고 싶어요.”
“나중에 나한테 배워도 충분해.”
“할아버지를 넘은 용병이 될 건데요?”
“험!”
앤드류는 뭔가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다.
그에 알렌은 미안했지만 더 이상은 말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더 이상 말해 봐야 믿어 주지도 않을뿐더러 공연히 정신만 어지러울 뿐이다. 이 정도로 충분했다.
앤드류가 나직하게 물었다.
“검이면 되나?”
“그럼요.”
“그럼 됐다. 나가자.”
먼저 방문을 나선 앤드류가 기다리던 잭슨에게 찡긋 신호를 보냈다. 살살 달래자는 세 사람의 계획대로 앤드류는 잭슨에게 말했다.
“저놈이 그렇게 원한다면 가벼운 목검을 하나 만들어 주면 될 거 아니냐?”
“목검이요?”
“가벼운 나무로 만들어 주면 안전할거 아니 야. 애기가 놀고프다는데 해 주는 게 부모지. 적어도 네놈 할아버지는 그랬다.”
사전에 계획된 대로 착착 이야기가 진행됐다. 잠시 고민하던 척하던 잭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가 죽었던 알렌은 내심 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그래! 목검도 좋습니다.’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잭슨의 시선이 돌아왔다.
“너, 할아버지 말씀대로 목검이라면 가지고 놀 거야?”
“그럼요.”
알렌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어차피 무거운 검으로는 수련하기 힘들었다. 목검으로 가볍게 만들어 준다면 10만 번 휘두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좋다. 그럼 목검을 만들어 주지. 그러면 앞으로 목검만 사용하고 진검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 약속할 수 있지?”
“네.”
아주 짧고 간단하게 대답한 알렌이다.
“맹세할 수 있느냐?”
“네.”
또 한 번의 간단한 대답이다.
그날 밤!
알렌은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설쳤다. 사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다 꿰뚫어 본 후였다.
‘후후, 이번은 넘어가 드리죠. 뭐, 제게도 이익이니깐요.’
다음 날, 눈을 뜨자 알렌의 머리맡에는 언제 만들었는지 모를 자그마한 목검이 놓여 있었다. 길이도 진검에 비해 너무 초라했다.
“이게 무슨 목검이야? 장난감이지.”
기가 막혔지만 일단 검을 잡아 들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 나한테 딱 맞네.”
팔 길이만 한 목검은 그야말로 최상이었다.
붕붕!
휘둘러 보니 더더욱 좋았다.
“아주 좋아! 일단은 여기부터!”
만족한 기분으로 바로 수련대에 올라 목검을 들고 잠시 명상에 잠겼다. 7년 동안 발버둥 치며 기억해 온 미지의 검술을 검을 들고 수련하는 첫걸음이다.
절로 긴장될 수밖에 없다.
“자, 이렇게 하는 거지.”
기억을 되살려 움직이는 어설픈 행동!
비틀비틀거리는 몸으로 검술은 무리였지만, 그래도 이를 악물고 시전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기대하진 않았으나 너무 실망적인 결과였다. 이게 검술인지 춤인지 헛갈릴 정도였다.
“젠장! 몸이 어디 쓸 만한 데가 없어. 천재 검사들 보면 어릴 때부터 싹수가 보였다는데… 한심하네, 한심해.”
절로 신경질이 났다. 그래도 해야 할 수련이다.
알렌은 좌절을 딛고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일단은 몸으로 취득하는 게 급선무였다.
누가 보면 그저 어린애가 목검 들고 장난치는 거, 그 이상은 절대 아니다.
보는 사람이 있긴 했다. 아무도 몰래 멀리서 지켜보던 잭슨과 앤드류였다.
한참을 지켜보던 잭슨이 허탈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버님, 저거 보십시오.”
“음, 뭔가 기대했는데.”
“그러기엔 너무 어립니다.”
“하긴 코 훌쩍거리며 뭘 하겠나.”
그렇게 실망한 부자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련대 위의 알렌은 주위를 잊고 기억과의 싸움에 이어 한심한 육체와 전쟁을 시작했다.
“누가 이기나 해 보자고.”
눈빛은 절대 어리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걸 활활 불태울 신념이 언뜻 보일 정도였다. 힘들면 지우고픈 기억을 떠올렸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그 꼴은 다시 안 본다.”
미친 듯 목검을 휘두르는 손길에 희망을 담았다.
고작 7살짜리가 이를 갈고 수련하는 걸 보는 어른들은 어떠한 심정인가.
“어쩌다가 저런 놈이 태어났는지, 원.”
“그리 나쁜 일은 아니란다.”
앤드류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잭슨의 어깨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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