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역류!-3
세월은 번개같이 흘러 어느덧 5살이 됐다. 긴 세월 동안 오로지 하나만 붙잡고 늘어지느라 알렌은 기진맥진 그 자체였다.
그래도 성과는 약간 있었기에 기운이 났다. 마나의 흐름? 그걸 알았기에 최소한은 했다.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젠 하급 용병 신세를 벗어날 마지막 끈이 남았다.
‘휴! 다 기억했다.’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려 5년간에 걸친 사투였다. 이제는 당장 펼칠 수는 없어도 잊어버릴 것 같지는 않았다. 남은 건 검을 들고 할 수련뿐이다.
‘운명을 바꾼다는 거 정말 힘들군.’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필사의 노력으로 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물론 다 얻는다면 최상이겠지만, 그건 무리였다.
아쉬운 건 딱 하나였다.
‘그때 다 펼쳤어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직 인생은 길어. 차곡차곡, 하나하나 해 보는 거야.’
알렌은 오랜만에 개운한 기분으로 방을 나섰다.
창창!
멀리서 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가 볼까?’
결정을 내리자 아장아장 걸어 수련대로 향했다.
역시 예상대로 잭슨과 앤드류가 검을 맞대고 대련 중이었다.
“왼쪽이 비었다!”
앤드류의 날카로운 외침에 잭슨이 이를 악물고 막아 갔다.
“알고 있습니다!”
“아는 놈이 왜 비우고 그래!”
“일부러 오시라고 한 겁니다.”
“허, 사정 봐주는 거냐?”
“아버님도 이제 근력이 예전 같지 않으실 텐데요?”
“네놈 정도는 이길 수 있어.”
앤드류가 버럭 소리치며 바로 검을 직선으로 그어 갔다.
창! 창!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허공에 상쾌하게 울려 퍼졌다.
한참을 대련하던 두 사람을 바라보던 알렌이 빙긋 웃었다. 지겹도록 봤던 검술이기에 펼칠 자신이 있었다.
오랜 수련으로 몸에 익었다지만, 그래 봐야 하급 용병 검술이다. 이나마 앤드류가 자존심을 던지고 용병들에게 배운 걸 보완해 가르쳐 준 가문의 비기였다. 그 사연을 너무도 잘 알기에 약간 숙연해졌다.
‘남들이 뭐라 해도 두 분을 존경합니다!’
어쩌면 세상에 널린 검술 중에 하나! 그걸 평생 수련한 두 분!
숙련도는 있을지 몰라도 마나 검술이 아니기에 평생 밑바닥 인생을 기게 만든 원흉이기도 했다. 다른 편으론 생계를 책임진 검술이기도 했기에 애증이 교차하는 마음이다.
잠을 자다 소란스러움에 깬 알렌은 번잡스런 느낌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지?’
궁금증에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현관 쪽으로 향했다.
거기엔 잭슨이 용병 옷을 잘 차려입고 검 하나는 등에, 또 하나는 손에 든 채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어디 가시나?’
빼꼼히 바라봤다.
잭슨이 사비나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여보, 다녀오겠소.”
“조심히 다녀오세요.”
아버지는 누가 봐도 늠름해 보였다.
‘아, 멋지셨네.’
빙긋 웃음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궁금해 한마디 묻는 사비나였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투산 상단의 의뢰를 받아 테칸 시로 가오. 물건을 전해 줄 게 있다고 합디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길이 머니까 더욱 조심하셔야겠네요.”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누구요? 으하하하!”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잭슨, 멀리서 바라보던 알렌은 마치 번개에 맞은 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투산 상단? 테칸시?’
아련한 기억의 파편이 점점 형상화되는 순간이다.
투산 상단의 의뢰로 테칸시에 가는 상행이라면?
끔찍한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이번 용병행에서 오크와 싸우다 왼팔을 잃고 한동안 폐인 생활을 했다. 단란하던 집안이 무너지는 건 바로 이때부터였다. 죽어도 말려야 했다!
순간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건 분명히 여섯 살 때 가는 거였는데, 뭐가 잘못된 거지?’
움직이는 시간이 변화된 느낌이었지만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일단 말리는 게 급선무였다.
“안… 돼!”
알렌은 소리치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너무 놀라 말도 더듬더듬 나왔다. 그저 미친 듯 달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가서 무조건 잭슨을 붙잡고 늘어졌다.
뜻밖의 행동에 당황한 잭슨이지만 환히 웃으며 아들을 안았다.
“하하! 우리 아들, 왜 이렇게 달려오시나? 아빠가 떠나는 거 알고 있나?”
번쩍 들리는 몸!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의 몸에서 살포시 그만의 체취가 느껴졌다.
급했다.
일단 옷을 잡고 늘어졌다. 차분하게 말하려 해도 입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하긴 5살짜리가 설명하면 다들 기절할 일이기에 참았다.
“모옷… 가!”
“가서 돈 벌어 와서 맛난 거 사 줄게.”
“싫어. 안 먹어. 가지 마.”
“아니, 이 녀석이 왜 이러나?”
잭슨이 당혹스러워했지만, 물러서고 자시고 할 입장이 아니다. 무조건 막고 볼 일이다.
보다 못한 사비나가 달래는 음성이 들렸으나 싹 무시했다.
“얘야, 아버지 가시는데 그러면 안 되지.”
‘그래서 말리는 겁니다.’
알렌은 내심 대답했지만 겉으론 오로지 발버둥이다. 옷깃을 잡은 손에 죽을힘을 다했다.
“허, 이놈.”
잭슨은 순간 짜증이 났지만 차마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아직 철없는 아이에게 화를 내서 뭐하겠는가. 다만 갈 길이 먼 탓에 조금 귀찮기는 했다.
알렌이 필사적으로 외쳤다. 다급하니 말도 꼬였다.
“가… 므은… 아, 안… 돼!”
“얘 좀 잡아 주시구려”
잭슨이 사비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반질책성으로 말했다.
“죄송해요.”
사비나가 당황한 표정으로 당기자 발악했지만 이내 힘없이 떨어지는 알렌의 손이다.
‘지랄! 무슨 힘이 이따위야!’
아직 아기의 힘인지라 비록 여자라 해도 그에 비할 순 없었다.
“다녀오리다. 알렌아, 잘 놀아라.”
바로 돌아서려는 잭슨을 보자 알렌은 심장이 터질 정도로 마음이 급했다.
이대로 간다면?
짜증이 치밀었지만 이제는 방법이 없었다. 발길을 돌리는 아버지를 막을 길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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