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역류!-1
어둡고 긴 동굴을 지나는 기분이다. 저 멀리 환한 빛이 보이기에 기를 쓰고 기어갔다. 이유는 몰랐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탓이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죽음도 힘드네.’
허탈하게 중얼거리던 알렌의 눈앞에 너무도 눈부신 빛이 작렬했다. 그러나 동굴은 아주 좁고도 길었다.
한참을 기었지만 전진하는 거리는 생각보다 너무 짧았다.
“해보잔 거지.”
오기가 치밀어 죽기 살기로 뚫고 나가자, 곧 전신에 지독한 고통이 닥쳐 왔다. 마치 눌려 죽을 것 같은 거센 압력이었다.
죽어서도 아파야 하는 이 더러운 현실이 기가 막혔다. 오기로 뚫고 가는 동안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짧지만 긴 시간이 지나자 겨우 고통이 사그라졌다. 온몸을 옥죄던 아픔이 사라지자 가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따악!
누군가가 엉덩이를 쳤다.
‘어떤 놈이야!’
성질을 부리려는 순간, 늙수그레한 노파의 목소리가 들렸다.
“축하하네. 아들이야.”
“감사합니다.”
“자, 안아 봐.”
그리곤 몸이 허공으로 번쩍 들렸다.
“하하, 이놈!”
우렁찬 목소리가 상당히 익숙했다. 목소리를 기억하려 애를 썼지만 아직은 무리였다.
정신없는 한참이 지난 후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내 아들 알렌, 너는 이제 우리 핏줄이니라. 크하하!”
호탕한 웃음!
이제야 알 것 같다. 꿈에서도 그리던 음성이기에 절로 눈물이 났다. 뭐라 해야는데 왜 이리 잠이 쏟아지는지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다.
아무리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써도 도무지 밀려오는 잠을 이길 재주가 없었다. 결국 무의식으로 들어갔다.
쿨쿨!
“녀석, 잘 자네.”
“여보, 잘생겼죠?”
“그럼. 누구 아들인데.”
꿈결처럼 목소리가 들렸지만 희미했다. 죽으면 인생을 한 번 되돌아본단 생각을 끝으로 알렌은 깊은 잠에 빠졌다.
이후 며칠 동안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음성이 들렸으나 너무도 멀어 알아듣기도 어려웠다.
필사적으로 바동거렸지만 꼼짝도 못하는 답답함이 지겨웠다.
‘젠장! 뭐 이리 죽어서도 힘들어.’
욕이 절로 났지만 어쩔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눈이 조금씩 뜨였다. 희미하게 비치는 사물. 왠지 모르게 뇌리에 깊이 박힌 낯익은 풍경이다.
침대도 가구도 어릴 때 모습 그대로였다. 죽으면 살아 있을 때의 풍경 그대로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영차!’
일어서려고 애썼다. 그러나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가 이리 힘들 수가 없었다.
바동거리다 지쳐 잠들다 깨고를 수없이 반복했다.
더럽게 힘든 시간이었다.
시간이 물처럼 흘러간 어느 날.
거짓말처럼 눈이 뜨였다. 흥분감에 설렐 무렵, 조금 더 지나자 이젠 모든 사물이 뚜렷이 보였다.
가장 먼저 눈앞에 선명히 보이는 얼굴 하나에 가슴이 뭉클했다.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얼굴!
하얀 피부에 미소가 포근한 그 모습 그대로였다.
‘어머니!’
자신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물론 마음으로만 일 뿐, 겉으로 나온 소리는 전혀 달랐다.
“응애!”
‘이건 무슨 일인지! 웬 애새끼 울음?’
황당했다.
“아가야, 왜 우니?”
다정스런 목소리! 분명히 어머니였다.
자세히 뜯어 보니 자신이 봤던 마지막 모습과는 다르게 아직 젊은 어머니 모습이다. 그 모습에 사무치게 서글프면서도 반가웠다.
‘어머니, 저예요~’
“어브 어브!”
악을 썼지만 그저 웃기만 하는 어머니였다.
“까꿍! 내 아들 알렌아, 뭐가 그리 슬퍼서 우나~”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났다. 웃으려고 기를 쓰고 노력했지만 얼굴만 일그러질 뿐, 웃음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거의 발버둥 치다시피 하자 겨우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머! 아기가 웃네. 기분 좋니?”
“으버으버!”
빌어먹을 애기 울음소리! 차라리 포기해 버렸다.
대번에 목소리가 올라간 사비나가 소리쳤다.
“여보, 우리 알렌이가 웃어요.”
어머니 목소리에 어이가 없었다.
‘젠장! 웃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투덜거리는 사이 잭슨이 뛰어 들어왔다.
“웃는다고?”
“네! 여기 보세요.”
자랑스러워하는 사비나의 말에 알렌은 또다시 기를 쓰고 안면근육을 움직여야 했다.
히쭉!
겨우 웃었다.
“하하! 이 녀석! 벌써부터 뭐가 그리 즐겁누?”
해맑은 잭슨의 목소리에 알렌이 중얼거렸다.
‘보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아버지!’
아기 옹알이로 나온 목소리였지만, 반가움이 얼굴에 쥐가 나도록 웃게 만들었다.
잭슨이 알렌을 번쩍 안아올렸다.
“녀석! 이 아빠가 그 웃음, 평생 짓도록 해 주마.”
“우리 알렌 귀엽죠?”
사랑스런 어머니의 말에 알렌은 왠지 눈물이 났다. 영문은 알 수 없지만 마냥 이 시간이 즐거울 뿐이다. 꿈이라면 깨지 말았음 하는 간절한 바람이 절로 일었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맞이하자 알렌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문을 알 수 없다. 분명히 기력이 다해 죽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저 아기로 변했을 뿐이다.
왜 이렇게 됐는지 몰랐지만 마냥 좋았다. 온몸 가득 밀려오는 벅찬 환희, 그리고 감동의 물결이 머릿속을 온통 헤집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는 없었지만 이토록 기쁠 수는 없었다. 과연 생각이라는 걸 한 이후에 이렇게 기뻤던 적이 있었던가.
단연코 없었다.
분명히 죽었는데 다시 살았다! 그것도 어린 모습, 아니 갓난아기로 말이다.
헛된 꿈이라 넘기기엔 너무 생생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뭔가 뇌리를 때렸다.
‘애가 이런 생각을 해도 돼?’
그 생각이 들자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하나 더, 갓난아기 때의 추억을 기억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단 생각에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면 이건 또 다른 삶이다.
순간 눈동자에 힘이 절로 들어가는 걸 느낀 알렌이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보내 주신 분이 계시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부모님 얼굴 보는 것만으로 더 바랄 나위가 없었다.
순간 입안에 쑥 박히는 건 어머니의 젖꼭지였다. 그동안은 잠에 취해 못 느꼈지만 오늘은 생생하다.
본능적으로 입을 대려는 순간 짜릿한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안 돼!’
어릴 때는 좋다고 먹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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